작은 지혜는 큰 지혜를 알 수 없고, 작은 해는 큰 해를 알지 못한다.
아침에 돋아난 버섯은 밤과 낮의 교체를 알 수 없고,
매미는 봄과 가을의 교체를 알지 못하나니, 이는 작은 해이기 때문이다.
- 장자 -
장자
장자의 사상
장자의 사상을 최대한 쉽게 요약하자면 '관점주의(perspectivism)'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의견은 결국 각자의 관점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이른바 보편타당한 객관적 기준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모장이나 여희같은 미녀를 두고 남자들은 모두 아름답다고 하지만, 물고기는 그녀들을 보자마자 물속 깊이 들어가 숨는다"는 장자의 말처럼, 우리의 판단은 모두 각자의 처지에 따른 것이므로 자신의 견해를 절대화할 수는 없다. 오리발이 짧은지, 학의 목이 긴지, 그 기준은 어디까지나 서로 다른 사물 간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내 관점'에만 집착하지 말고 '상대의 관점', 심지어 '사물의 관점'에서도 사건을 살펴보자는 것이 장자의 주장이다.
장자 제2편에 나오는 '엷은 그림자'와 '본 그림자'의 대화는 사물의 상호 의존성과 상호 연관성을 묘사하는데, 궁극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존재의 바탕이자 움직임의 근원은 도(道)일 수밖에 없음을 나타낸다. 결국 선악, 미추, 고저, 장단 같은 것들은 독립한 절대 개념이 아니라 빙글빙글 돌며 서로 의존하는 상관 개념이라는 것이다. 조삼모사의 일화도 사건의 본질이 하나임을 깨치지 못한 원숭이들이 사물의 양면을 파악하지 못하고 당장의 입장에 따라 자신의 관점을 바꾸는 어리석은 모습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호접지몽의 이야기도, 물아일체의 신성함이나 인생무상 같은 것의 호소를 추구했다기보다,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꾸는지 나비가 장자의 꿈을 꾸는지 알 수 없듯이 가상과 실재의 구분은 모호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렇다면 장자가 말하는 도란 무엇이며, 어떻게 이것을 체득할 수 있는 것일까? 일단 장자는 "도라 말할 수 있을 것은 도가 아니다"고 말한 노자의 노선을 따른다. 한마디로 절대 진리는 말이나 문자로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한쪽만을 절대시하는 독선에 빠지지 않고 양쪽을 전체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시시비비를 따지는 분별지(分別知)를 초월해야 하며, 좌망(坐忘: 앉아서 잊는다)과 심재(心齋: 마음을 가다듬다)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를 잃어버린 상태(吾喪我)에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자유롭게 노닐다 보면 그것이 곧 양생이 되고, 처세의 도가 된다는 것이다.
당대 사상가들이 대부분 성인(聖人)의 권위를 빌리거나 지배 계층에게 조언하는 식으로 자신의 사상을 풀어나간 데 비해, 장자는 특이하게도 동물, 자연물, 또는 이름없는 민중(백정, 수영하는 사람, 수레 만드는 사람 등)이나 하급 관료와의 대화 등을 이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물론 장자의 일화에는 공자나 양주 같은 이들과 대화하며 이들보다 더 큰 통찰력을 보여주며 대화했다는 기록도 있으나, 그마저도 권위있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것에 가깝다.
유명한 고사론 호접지몽, 조삼모사가 있다. 그 외에도 대붕이나, 포정해우, 혜시와의 대담 등이 대표적인 일화이다.
첫댓글 장자의 말씀을 익힙니다^^
장자님 말씀~^^
장자의 지혜를 배웁니다~^^
장자를 배웁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