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여행4 - 은각사를 구경하고 철학의 길에서 옛날 봄 벚꽃철 여행을 회상하다!
2024년 9월 18일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해 렌터카를 인수해 교토에 도착해서는
고조거리와 가와라마치 거리가 만나는 지점에 레시 스테이 브릭스 RESI STAY
BRiX 에서 1박후 9월 19일 렌터카를 몰아 긴카쿠지(銀閣寺 은각사) 에 도착합니다.
절을 나와 삼거리에서 개울을 따라 에이칸도 까지 이어지는 철학의 길 哲學の道 을 걷는데, 수로를
끼고 나무가 심어진 작은 길 을 말하니 교토 대학 교수인 니시 기타로 가 이 길을 걸으며
사색하기를 즐겼다는데 원래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 Philosophenweg 을 본뜬 말입니다.
은각사와 철학의 길은 우리 부부만 온게 2번이고 선배님 부부와 한번 그리고 오늘 딸과 손주까지 왔으니
4번째인데.... 지난 여행 중 벚꽃철에 온건 2번으로 한번은 반대편 난젠지쪽에서 은각사 쪽으로
걸었고, 또 한번은 오늘처럼 은각사에서 에이칸도 방향으로 걸었으니 옛 벚꽃철 여행을 회상해 봅니다.
4월 10일 히가시야마(東山)의 호스텔을 나와 오카자키 수로 입구 5거리에서 우회전해 난젠지산도
(南禪寺 參道) 를 접어들어 大本山南禪寺(대본산남선사) 라고 적힌 절에 도착하는데...
난젠지 南禪寺(남선사)는 1293년에 세운 선종사원으로 호조정원 方仗庭園(방장정원) 이 볼만합니다.
간무왕(천황) 이 나라의 고후쿠지(興福寺) 와 도다이지 (東大寺) 등 막강한 불교 세력
을 피해 교토(平安京 京都) 로 천도하면서 사찰들은 교토로 옮겨오지
말 것을 엄명했으나 이후 후지와라등 귀족 세력의 비호로 하나둘 옮겨오게 됩니다.
교토역앞 신린이 세운 정토진종의 대찰 혼간지(本願寺 본원사) 는 세력이 너무나 막강해
제11대 법주 겐뇨는 1579년 무력으로 천하통일을 목표로 하는 오다 노부나가가
셋쓰국을 침공하자 대치를 시작해 모리 가문의 도움으로 이시야마 전투를 벌였습니다.
노부나가를 불교를 해치는 적으로 간주해 전국의 정토진종 종파들에게 노부나가 타도를
부르짖고는 셋쓰국(오사카) 이시야마 혼간지에서 농성했는데 1580년 덴노의 중재로
노부나가와 화친을 하고는 이시야마 혼간지를 떠나 기이국 사기노모리로 거처를 옮깁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의 명으로 교토 시치조(교토역앞) 에서 혼간지 를 다시 일으켜 세운뒤
50세 나이로 입적했는데 세력이 크다 보니 1602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절을
둘로 나누었으니 니시 혼간지와 히가시 혼간지로 법당은 나라 도다이지 목조건물 보다도 더 큽니다.
여기 난젠지의 산몬과 수로각이며 난젠인(남선원) 에 본당인 호조(방장) 를 구경하고는 북문을
빠져 나와 왼쪽으로 굽어지니 오른쪽에 동산중고등학교로 특이한 것은 학교 건물에
야구부, 정구부, 사진부, 검도부 등 클럽명이 붙어있고 그 위쪽에는 현수막이
걸렸으니 우승과 준우승 축하인 데..... バスゲットボル 부 라면 농구부 를 가르키는 것인가요?
학교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에이칸도 永觀堂(영관당) 인데 여러채의 건물이 복도를
통해 연결된 요술 같은 사찰로... 이 절 에이칸도 永觀堂(영관당) 는 단풍이
아름답고 853년에 창건된 본당의 뒤돌아보는 아미타여래상 은 중요문화재 라고 합니다.
그 옆에는 永觀堂(영관당) 부속 유치원인데 실내에 시설이며 놀이 및 학습 커리큘럼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유치원의 건물이며 놀이기구등 겉모습 만 보기로는 우리나라 유치원과 별반 다를바 없어 보입니다.
그러고는 시시가타니토리 鹿ケ谷通 (녹케곡통) 도로에서 우회전을 하여 산쪽으로
올라가니 조그만 건물이 나타나니 구마노냐쿠오지진자 ( 熊野若王子神社
약왕자신사) 인데... 들어가서 둘러보니 산속에 자리한 소박하고도 신사 입니다?
도로변에 팻말이 보이니 철학의길 哲學の道(철학노도) 이니... 에이칸도 永觀堂(영관당)에서
긴카쿠지 銀閣寺(은각사) 에 이르는 수로를 끼고 나무가 심어진 작은 길을 말하는데
교토대학 교수 니시다 기타로 가 걸으며 사색하기를 즐겼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네이버에 들어가 “철학의 길” 을 검색하니 당연하다는 듯 모두 여기 “교토 철학의 길” 이
나와서 놀라는데... 원래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 Philosophenweg이니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 철학자들이 산책하며 명상에 잠기고 영감을 얻었다 는 길이지요?
네카어강변 아름다운 길을 걸어서 산책하다 보면 철학에는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철학가
못지않은 사색에 잠긴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전철이 다니고 있는 테오도르
호이스 다리 쪽에서 부터 시작하여 카를 테오도르 다리가 있는 곳까지 산 중턱길 입니다.
이처럼 남의 것이라도 훌륭한 것은 스스럼 없이 받아들여 배우는 일본인들의 자세 는 칭찬할만하.니... 우린
1653년 태풍으로 제주도에 표류한 네델란드 배의 선원 64명중 생존자인 하멜 일행 36명을 체포해서는
공맹의도를 모르는 서양 오랑캐 야만인 이라고 생각해 배울게 없다고 여겨 풀베고 나무하는 일만 시켰지요?
나가사키로 가다가 풍랑에 배가 난파한 것이니 부모 처자가 있는 고향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그렇게 간청해도..... 조선은 나라의 지리등 비밀 이 외국에 새나갈 것을 염려해서
귀국을 불허하고는 훈련원 병사로 편입했다가 2명이 청나라 사신을 만나 귀국을 간청하자
놀라서 2명은 죽여버리고 나머지는 전라도 3곳에 분산시켜 보내서는 노비 로 부려먹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가고시마 남쪽 다네가시마에 표류한 포르투갈인 들을 절로 인도해 숙식을
제공하며 배를 수리해 주고 부상자를 치료 하며 거금을 주고 조총 2자루 를
구입하는데...... 책임을 맡은 대장장이는 총신의 비밀 을 풀기위해 16세난 딸 까지 바쳤습니다.
배를 수리해 포루투갈인들을 귀국 시켰으며 사위(?)가 된 서양인으로 부터 조총 제작법을 알아내
서양무기로 무장하고 포르투갈과 스페인 및 네델란드인들을 받아들여 천주교를
수용하는데...... 쇄국정책으로 문을 닫기도 했지만 훗날 서구문명 을 받아들여 강국이 되었지요?
이전에도 1627년 박연 등 네델란드 선원 3명이 풍랑으로 표류해 식수가 떨어지니 제주도에 상륙했는데
조선은 식수는 커녕 돌려보내지도 않고 병자호란에 출전시켜 2명이 전사했는데 하멜 일행
36명도 병졸로 시키려다가 안되니..... 노비로 부리면서 귀국을 불허한 것은 침략에
대한 두려움이니 서양인을 돌려 보낸 일본과는 다른데 이 차이가 두나라 역사와 운명을 가르게 됩니다!
하멜의 귀향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이광표씨가 쓴 “교토 고려 미술관과 재일동포의 망향가”
가 떠오르니.... 1955년 교토 산조의 골동거리를 걷던 재일동포 정조문 은
뽀얀 조선 시대 백자 달항아리 에 넋을 잃었으니 보면 볼수록 떠나온 고향이
떠올라 가격을 물으니 200만엔으로 집 두채 값이었다는데...... 1년 할부로 손에 넣었습니다?
그는 일본에 건너와 부두 노동자 로 막일을 하다가 성인이 되면서 사업을 시작했고 조금씩
돈을 모으자 고향은 더욱 그리워졌으니.... 백자 달항아리와의 우연한 만남 이후,
일본에 유출된 문화재 를 모으기 시작했다는데 도자기 회화 불상 금속공예품
목공예품 민속품에 고려 석탑이 고베 논바닥에 뒹구는 것을 보곤 논을 통째로 사들입니다.
그렇게 우리 문화재 1700여 점을 모아 1988년 교토 북쪽 시치쿠(紫竹) 한적한 주택가에 "고려미술관" 을
세웠으니 다른 재일동포들과 공유하고 싶어서였다는데 외손녀는 “외할아버지는 늘 청자와 백자를
쓰다듬으셨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한 것이었지요. 일본에 끌려온 조선 도공 들의 얘기도 많이 하셨어요.”
그 다음에는 여기 은각사를 보고 에이칸도로 걸었는데.... 은각사통 거리에는 벚꽃 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이
즐거운 얼굴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데 일본인 도 많지만 중국인 들도 그에 못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한 서양인 관광객 들도 많이 보이며 간간이 한국말 소리도 들리는데, 여기 강변에 벚꽃이 떨어져
강물에 떠내려 가는 것을 보노라니..... 마치 비단을 직조 하는 것 처럼 보여 아름다운 느낌입니다.
환상적인 벚꽃 을 보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게 한국 기상협회 예보센터장인 반기성 씨가 모 신문의
‘날씨 이야기’ 라는 칼럼에 쓴 글 인....“벚꽃 예보 틀려 국민께 미안합니다”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벚꽃은 오랜 기다림 이며 순간의 이별 이다. 고교 시절 읽은 일본 소설 ‘대망’에 벚꽃 이야기 가 나온다. 일본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전쟁을 하지 않는다. 봄이 되면 전쟁을 시작 하는데 출정 시기가 벚꽃이 필 때 이다. ”
“눈처럼 흩날리는 벚나무 아래서 출정식 을 한다. 이런 벚꽃 이 3월 하순 남쪽 지방에서 화사한 속내를
드러내더니 북으로 숨차게 올라와 여의도 윤중제 까지 피었다. ‘어서 오렴. 얼마나 기다렸는지.’”
“사람들에게 벚꽃은 어떤 의미 일까. ‘겨울 내내 드러내지 않던 사랑/
온 세상 천지에 소문내고 있구나/ 웃음꽃 활짝 피워
감동 시키는구나.’ 용혜원 시인 에게 벚꽃은 사랑이며 감동 이다. ”
“벚꽃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본인 이다. 일본 기상청이 벚꽃 개화 시기를 잘못 예보했다고 대국민 사과
를 한 적도 있다. 호우나 태풍이 아닌 벚꽃 예보가 틀렸다고 대국민 사과 를 하다니. 그 정도로 그들의
벚꽃 사랑은 대단 하다. 벚나무 아래 자리를 펴놓고 벌이는‘하나미(벚꽃놀이)’는 일본인의 애착이며 자랑이다”
“그런데 벚꽃은 일본의 국화도 아니며... 전유물은 더더욱 아니다. 파리 에펠탑 의
4월은 벚꽃 으로 너무 아름답다. 파리지앵들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잔디밭에 누워 벚꽃을 즐긴다. 필자가 공부했던 독일 함부르크도 벚꽃이 너무 화사하다”
“일본에는 벚꽃과 연관된 영화 가 많다. ‘벚꽃 동산’은 소녀들이 가질 법한 호기심을 그렸다. 그러나 감독
나카하라 슌이 말하고 싶은 벚꽃은 무언가를 함께 성취한다는 것에 대한 기대와 즐거움 인 듯하다 ”
“영화 ‘초속 5cm’ 에 벚꽃이 날리는 장면은 환상적 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루어
지지 못한 첫사랑 이야기를 벚꽃속에 잘 녹였다. 영화가 시작되는 장면에 폭설처럼
떨어져 내리는 벚꽃 이 아름다운‘4월 이야기’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첫사랑 이야기다. ”
“벚꽃이 쏟아져 내릴때 우산을 쓴다는 것도 이 영화에서 처음 봤다. 한국 영화 중에는 황정민, 전도연이
벚꽃 아래 에서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너만 사랑할게”라는 고백을 나누는‘너는 내 운명’이 기억난다.“
“‘벚꽃이 흩날린다 서러워 마라/ 흐드러진 열매 맺는 시대 키워..../
희망의 앞날을 기약하는 축복 일 뿐이니.’최범영의 ‘벚꽃이
흩날린다고 서러워마라’중, 그렇다. 벚꽃은 봄이며 희망이며 밝은 미래 다.”
누가 벚꽃은 필 때 보다 질 때가 더 아름답다고 했던가요? 사진을 찍으면서 올라가 3거리에 도착해
골목길 로 접어드니...... 언덕길 좌우로 가게들이 밀집해 있는데 긴카쿠지(은각사) 를
찾은 사람들로 인산인해 라 복잡하기 그지 없었던게 떠오르는데 이제 차를 타고 아라시야마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