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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로 향하는 길, 비가 내리는 둥, 마는 둥 변덕이다. 꽤 고달픈 여정이 될 것 같다. 백두대간 정맥이 잠시 자세를
낮춘 듯한 산세가 보인다. 문경새재다. 도립공원 입구 근처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문을 여는 순간, 숲 기운이 녹아든
습한 공기가 코를 찌른다. 좌측 조령산, 우측 주흘산 사이로 흐르는 계곡을 따라 첫발을 내디뎠다.
빗물 머금은 경관, 초록 물감이 한 번 더 덧칠된 듯 진하다. 하늘과 땅 사이 산의 존재감이 더욱 돋보인다. 백두대간에
누운 이 길을 지나야 한양에 당도할 수 있단 말인가. 위엄이 느껴지는 자연 앞에 서보니,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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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로 들어가는 초입, 선비의 상을 만났다. 아름다운 한국인을 상징한다. 과거 선비의 지성과 인격을 본받아
역사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미래를 창조하자는 취지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 사이에서는 문경새재가 인기였다.
추풍령은 ‘나뭇잎 떨어지듯 낙방한다’, 죽령은 ‘대나무에 미끄러지듯 낙방한다’고 전해지니 문경새재만을 고집해
한양을 가려 한 것이다. 물론 선비 외에도 보부상, 나그네, 고향으로 내려가는 사람 등등 많은 선인의 발길이 문경
새재를 넘고 다시 넘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발길 따라 하나씩 쌓인 영남, 기호 지방의 풍부한 이야기들이 저 너머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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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히 뚫린 길 주위 가로수를 지나면 제1관문 ‘주흘관’이다. 문경새재 3개 관문 중 보전상태가 최고 양호하다.
넓은 터 왼쪽으로 과거의 목조 수송수단이 만들어져 있다. 주흘관보다 먼저 눈길을 끄는 감나무 한그루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주위를 둘러싼 산도 모자라 아직 잎사귀도 안 열린 큰 거목이 문경새재의 위압감을 더한다. 절로 떠오르는 상상을
억누르고 경관을 살피며 천천히 걷기 시작. ‘발 씻는 곳’이란 글귀의 목판 주위로 얕은 물가가 조성됐다. 신발을 벗을
지 말지 고민하며 잠시 근처에 앉아 상황을 두고 봤다. 혼자 온 사람, 친구끼리 온 사람, 삼삼오오 이곳에서 맨발을 드러
낸다. 그 틈에 살짝 끼어 신발을 벗었다. 실제로 손에 신발을 들고 맨발로 터벅터벅 걷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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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의 황톳길이 그대로 보전된 계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마련했다. 1976년 국무회의 자료에 문경새재와 관련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언이 있다. “이(문경새재) 고갯길은 절대 포장하지 마시오” 그 이후부터 국가와 문경시의
지속적인 관리를 받아 현 모습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일일이 손으로 돌을 치우고 빗자루로 쓸어가며 만든 정성스런
길이다.
황톳길 따라 펼쳐진 이야기 파노라마
부슬부슬 내리는 비 덕분에 산행이 시원하다.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도 끊이질 않으니 금상첨화. 오르는 길 오른쪽은
인공물길이 조성됐다. 좁은 물길 중간마다 작은 연못, 꼬불꼬불한 물길 등이 아기자기한 공간으로 꾸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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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흘관에서 주흘산 방면으로 1.2km 거리에 혜국사가 있다. 문경새재에 자주 출몰하던 산도둑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혜국사 주변 지리는 매우 험준해 산도둑의 활동지로 제격이었고 때때로 점령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길동무 없는
행인들은 길목에서 산도둑에게 붙잡혀 통행료 명목의 돈을 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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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의 거리는 약 3㎞. 걷다 보니 점점 속도가 붙고,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잠시 계곡으로
내려가 물에 발을 담갔다. 얼음장같이 차다. 1분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다. 정신이 번뜩 뜨인다. 얼얼한 발을 달래고 다시
걷기 시작.
플랫슈즈, 치마, 청바지, 등산복 등 문경새재에서 마주친 사람들, 참 다양한 모습이다. 문경새재 길 대부분은 경사가
심하지 않아 가벼운 나들이에 제격이다. 또 조령산, 조흥산으로 이어진 등산길도 있다. 모든 코스의 시작은 제1관문이니
다양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국가 명승 제32호 ‘문경새재 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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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태가 고혹적인 소나무, 그 옆으로 비교적 큰 정자가 터를 잡고 있다. 교귀정, 새로 온 경상감사와 떠날 경상감사가
만나 인수인계를 하던 장소다. 소나무의 줄기가 뻗은 방향은 남쪽을 가리킨다. 과거 나침반이 없던 길손에게는 등대
같은 존재였으리라. 이곳에 정자를 만든 선인의 마음을 헤아려 다시 한 번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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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내려가는 길 작은 동물 하나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숨을 죽이고 카메라를 꺼냈다. 기다려보니 다람쥐다.
문경새재 옛길은 국가 명승 제32호로,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는 문화재다. 이 다람쥐 또한 보호받는 대상 중 하나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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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걸었음에도 시간이 꽤 지났나 보다 제2관문까지 약 1km 남았다는 푯말에 조금 놀랐다. 길 왼쪽으로 돌탑이 보인다.
소원성취탑이라고 불린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문경새재를 지나는 길손의 소망이 돌에 담겨 하나하나 쌓인 탑이다. 당시에
돌을 쌓으면 선비는 장원급제하고, 상인은 장사 수완이 좋아지고, 여인은 옥동자를 낳을 수 있었다는 전설이다. 그 실체를
마주하니 수많은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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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다녀왔다는 기념사진을 찍고 싶다면 응암폭포가 제격이다. 폭포 앞으로 운치 있는 물레방아도 돌아간다.
단체사진을 찍고 독사진도 찍어야 한다며 차례를 기다리는 여행객들로 붐빈다. 물레방아로 내려오는 물길이 고상하다.
목재만을 이용한 물길인데 그 길이가 상당하다. 잠시 그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니 계곡 힘찬 물소리와 다른 시냇가의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백두대간에 놓인 옛길
왼편의 백두대간이 점점 가까이 붙어온다. 첩첩산중의 가운데로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제2관문이 가깝다’ 조곡교를
건너며 주위를 살피니 봉우리에 봉우리가 얹힌 험준한 산세, 끝이 없다. 잊고 있던 위엄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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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관문 ‘조곡관’이다. 왼편 백두대간, 오른편 주흘산이 조곡관을 마주 보며 얼굴을 맞댄 것 같다. 그만큼 조곡관은
문경새재 구간 중 특히 비좁은 곳에 지어졌다. 제1관문 방향으로 고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것도 계곡을 앞에 두고
지어졌으니 방어적 요충지로 여기만 한 곳이 더 있을까 싶다. 넓은 터, 길게 이어진 성곽이 한눈에 들어오던 주흘관과
크게 다른 분위기다.
조곡관까지 비교적 넓은 길에서 편하게 걸었다면, 이제부터는 좀 더 좁아지고, 더 가파른 경사의 길로 돌입한다.
더욱 옛길 모습 원형에 가까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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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로, 유일하게 옛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영남대로를 지나가면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고 전해져 영남은
물론 호남의 선비들까지 이 길을 택했다고 한다.
옛길에 박힌 희·노·애·락, 가슴에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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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과거길 주위로 조선시대 선현의 한시들이 석판에 새겨져 있다. 추풍령, 죽령보다 문경새재 길을 고집한 유생들의
흔적이다. 새재를 노래한 선현의 마음, 과거를 앞둔 유생의 꿈과 애환이 시간을 넘어 전해진다.
『새재는 남북과 동서를 나누는데 그 길은 아득한 청산으로 들어가네.
이 좋은 봄날에도 고향으로 못 가는데 소쩍새만 울며불며 새벽바람 맞는구나』 (김시습의 ‘새재를 넘어 시골집에 묵다’)
『살랑살랑 솔바람 불어오고 졸졸졸 냇물 소리 들려오네.
나그네 회포는 끝이 없는데 산 위에 뜬 달은 밝기도 해라.
덧없는 세월에 맡긴 몸인데 늘그막 병치레 끊이질 않네.
고향에 왔다가 서울로 가는 길 높은 벼슬 헛된 이름 부끄럽구나.』 (류성룡의 ‘새재 주막촌에서 묵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멀리서 울리는 노랫자락을 따라가니 문경새재 아리랑비가 세워져 있다.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맹이로 다 나간다.
홍두깨 방맹이 팔자 놓아 큰 애기 솔질에 놀아난다.
문경새재 넘어갈제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 (어문학 13집 홍재휴)
우리 방식으로 나무들을 눕혀 쌓아올려 만든 집을 귀틀집이라고 한다. 1970년대 말까지 화전민이 살던 귀틀집이 문경
새재에 남아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 아귀가 잘 맞고 틈마다 진흙을 정성스레 발라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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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 또는 음지에서 서식하는 야생화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길의 매력이다. 거대한 민달팽이, 칠성모,
다람쥐, 새의 지저귐도 길동무다. 그런 와중에 상처 난 소나무를 보게 된다. 1943년부터 1945년 사이로 짐작되는 기간에
일본군이 주민들을 동원해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약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그대로 남은 상처에 속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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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이다. 왼쪽 길은 조금 험하지만, 낙동강 발원지, 책바위 등을 볼 수 있는 구간이다. 왼쪽으로 발을 돌렸다.
문경초점, 낙동강 발원지다. 그 거대한 영남의 젖줄이 석판 옆 작은 냇물에서 시작된다니, 실감 나지 않는 사실에 잠시
멈춰 서서 강줄기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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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철이면 합격을 비는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책바위다. 설화에 의하면, 집 주위의 담을 헐어 그 돌을 문경새재 책바위
뒤에 쌓았더니 몸이 튼튼해지고, 장원급제하게 됐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퍼지면서 과거객들이 책바위 앞에서 소원을
빌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굽이굽이 돌고돌아 도착한 제3관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발길을 돌린 순간부터 물안개가 점점 내려오더니 50미터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짙어졌다. 숲 깊숙이
들어선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숲 냄새가 점점 강렬해짐이 느껴진다. 책바위부터 제3관문까지 이어진 길의 경사가 제일
가파른 편이다. 비와 땀으로 범벅된 채 1시간 정도 걸었을까. 멀리 제3관문이 물안개 건너 희미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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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쁜 숨을 고르고 제3관문 ‘조령관’ 앞에 섰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로 신비로운 분위기다. 조령관, 높이 40m는
될 법한 침엽수, 짙은 안개, 고요한 적막 등 비현실적이 모습이다. 언제부터 따라왔는지 모를 바람이 비구름을 데려온
듯 굵어진 빗방울이 숲을 울린다. 때문에 조령관에 도착했다는 성취감은 꽤 시간이 지나서야 뇌리에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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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맛이 있는 여행에서 주변 환경은 단순히 공간만을 제공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여행자의 마음과 계속 상호작용
하며 다양한 의미를 제공한다. 이야기를 전하는 DJ가 되기도 하고 희망을 보여주는 한 폭의 그림이 되기도 한다. 과거길의
선비들은 조령관을 지나면서 마음을 다시 다졌으리라. ‘꼭 급제하리다’ 다시 힘겨운 발걸음을 이어갔을 모습이 떠오른다. 그 건너로 장원급제를 한 선비의 위풍당당한 걸음이 다가온다. 되돌아가는 길, 저 선비와 길동무하면 좋겠구나.
옛길박물관, 길 위 삶이 고스란히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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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라는 주제의 국내 유일 박물관이다. 하늘재, 토끼비리 등 문경새재와 관련된 옛길 정보가 한곳에 모여 있다.
옛사람들은 여행을 떠날 때 무엇을 준비했을까. 보부상의 짐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런 궁금증은 옛길박물관에서 깔끔하게
해소된다. 길 위를 떠날 수 없었던 보부상의 모습, 휴대용 고지도를 들고 팔도에서 떠돌던 나그네의 모습 등을 상상케
하는 유물이 전시됐다. 왕명서 ‘유지’, 침식 제공문서 ‘노문’, 엽전, 나침반, 호패 등 생생한 자료가 가득이다.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살가운 옛 모습까지 재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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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오픈세트장 구석구석
최근의 ‘추노’를 포함해 ‘태조왕건’ ‘불멸의 이순신’ ‘대왕세종’ 등 드라마가 촬영된 세트장이다. 2000년 문경
새재 용사골에 고려시대 사극촬영장을 조성, 2007년 조선시대 배경의 오픈세트장을 새롭게 단장했다. 경복궁, 동굴,
궐내 각사, 사대부집, 저잣거리 등 130여 동의 대규모 세트장으로 볼거리가 풍성하다.
문경새재자연생태공원, 생태가 있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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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식환경을 구역별로 다르게 조성한 공원이다. 생태습지, 생태연못, 건생초지원, 습생초지원, 야생화원 등으로 구성.
생태학습을 보고 배우기에 좋은 현장이다. 설명문을 보고 해당 자연물 하나하나 살펴보니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다.
※TIP
◎ 문경새재도립공원 가는 방법
* 자가용
-서울 : 중부고속도로→호법분기점→영동고속도로→여주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문경새재IC→문경새재도립공원
- 부산·대구 : 경부고속도로→김천분기점 →중부내륙고속도로→문경새재IC→문경새재도립공원
- 대전 : 경부고속도로→남이분기점→중부고속도로→증평IC→국도34번→괴산→연풍→이화령터널→문경새재도립공원
- 광주 : 88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김천분기점 →중부내륙고속도로→문경새재I.C→문경새재도립공원
☞ 문경새재도립공원 자세히보기
☞ 옛길박물관(문경새재 박물관) 자세히보기
☞ 문경새재 KBS촬영장 자세히보기
☞ 문경새재 자연생태공원 자세히보기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안정수 취재기자(ahn85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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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 아~ 요 ~!
기회가 되면 함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