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트막한 야산을 사이에 끼고 있는 공원묘지의 무덤들은 푸른색의 때를 입고 있을 뿐 누구의 것이든 대동소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아마 생전 삶의 모습들은 그리도 제 각각이었을 것을 어쩌면 떠난 이의 모습은 저렇게 한결 같을까?
떠난 이에게까지 개성을 부여하기에는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이 너무 분주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후의 남서울 공원묘지는 명절도, 한식도 휴일도 아닌 탓에 너무나 적막하게 그렇게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저기 누워있는 이들이 깊은 영면에서 깨기라도 할 듯이 옆에 서 있는 그는 나직나직하게 내게 속삭인다.
“아마 그는 외로워서 죽었을 거야”
“왜 외로워? 가족이 있었다면서…부인도, 아이도..”
“외로움은 가족과는 상관없는 거야.
오히려 가족때문에 더 외로울 때 많은 거라구.
그리고 노래하는 사람은 외로워야 해.
그래야 가슴에서 노래가 나오거든”
“외로워서 죽는 사람도 있니? 술을 많이 먹어서 간이 안 좋아져서 떠난 거 아니야?”
“아니야 외로움이 술을 먹게 하고, 그리움이 더 빨리 간을 나쁘게 한 것일 꺼야. 그는 늘 사랑을 잃은 사람 같아.”
“그 사람이 어째서 그렇게 외로웠을까?
근데 넌 어떻게 외로워야 노래가 가슴에서 나오는 줄 알았어?
그럼 행복한 가수나, 행복한 연주자는 하나도 없는 거니?”
“응. 사생활이 행복한 뮤지션은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올해 그의 기일에 나 혼자 여기 왔었어. 그때 오니까 한영애랑, 권인하랑, 후배들이 와 있더라.
그래서 너를 데리고 꼭 여기를 오고 싶었어”
아직 내게는 앳된 청년으로만 보이는 그는 인생을 다 안다는 듯이 노래하는 사람이 당연히 외로워야지 하면서 내게 그렇게 단언하고 있었다.
나는 목메이게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어하는 그가 음악과 음악인에 대해 하는 말은 늘 지지를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그때, 차안에서는 그가 틀어준 ‘골목길’과 ‘내사랑 내곁에’, ‘추억만들기’가 내내 흘러 나왔었던가…

그가 강변하던 대로 김현식이 사랑을 잃었고, 외로움 때문에 그렇게 떠났는지는 세월이 꽤 많이 흐른 지금으로서도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이제는 그때보다 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이고, 나는 쓸쓸함이 삶을 단축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그때보다는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달 수 밖에…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음악은 단 몇마디의 단어 사랑, 외로움, 잃었다 정도로 표현해 낼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아직은 앳된 청년인 외로운 그의 우상이었고, 그의 우상이었으므로 덩달아 나의 꽤 큰 호의를 받는 음악인이었으니 말이다.
“1년도 채 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왠지 그를 보기가 싫어졌다.
심지어 밤늦게 찾아온 그를 그냥 대문 밖에서 돌려 보내기도 했다.
얼마나 나를 원망했을까.
나 역시 괴로움에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며칠동안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밤, 골목 저 끝에서 낯익은 하모니카 소리가 들린다.
현식이가 온 것이다.
조금은 멋적은 표정으로 들어오는 그의 손에는 영락없이 돼지고기가 들려있다.
우리집 개들은 반가워하고...... 며칠 우리집에 묵으며 많은 얘기들이 오간다.
새로 들어갈 앨범 얘기며 공연 얘기 등….
얼마 있으면 다시 완제와 완제 엄마랑 같이 살게 된단다.
그리고는 술을 조금씩 밖에 입에 대지 않았다.”
그의 음악적 완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신촌블루스의 엄인호는 그가 떠난 뒤에 이런 말들을 남겼다.
그에게도 가까운 김현식의 소진함이 아마 보기 싫었었나 보다.
강인원도 권인하도 그가 마지막 병상에서 조차 늘 노래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었다고 토로한다.


나는 음악평론가도 아닐 뿐더러 음악에 관한 깊은 이해를 도울만한 어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유재하, 김광석, 그리고 김현식에 이르는 이들까지 젊은날 열정을 불사르고 떠나간 그들에게는 열정의 에너지가 무엇이었든 간에 비교적 안정적인 정서를 보여 주었던 유재하를 제외하고는 꽤 광기적인 어떤 것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어떤 사랑의 변형된 감정이든 아니면 외로움의 변형된 감정이든 그것은 그들에게 음악으로 그들의 노래로 바뀌어 우리들에게 남겨졌다.
싱어송라이터로서도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되는 유재하를 제외하고 김광석이나 김현식은 다소 그 방면으로는 재능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수로서 싱어송라이터가 되면 그만큼 본인의 감성을 살릴 수 있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장점은 있겠지만, 김현식과 김광석의 뛰어난 곡해석을 통한 보컬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중들에게 충분히 감정을 움직이는 그것이었다.
굳이 음악평론가의 말을 빌지 않아도 너무 일찍 해체되어 맥이 끊길 뻔한 들국화의 소울적인 느낌이 강한 락샤우팅 창법을 김현식이 소울&부르스 창법으로 이었다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가 직접 작곡한 하모니카 경음악으로 이어지는 4집의 ‘한국사람’은 김현식의 뛰어난 감성이 절정을 이룬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오히려 대중적인 인기를 많이 누렸던 2집의 ‘사랑했어요’나 3집이후의 영화음악 ‘비오는 날의 수채화’보다도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어둠, 그 별빛’이나 ‘떠나가 버렸네’, ‘그대 내품에’, '넋두리' 등이 나는 더욱 그답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중들이란 참으로 어찌 보면 냄비처럼 얄팍한 족속들일지도 모른다.
그의 활동이 왕성하던 어느 때보다 그가 사망한 이후의 6집, 7집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으며, 2번이나 발매된 그의 추모앨범도 꽤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던가..
이슈가 만들어진 대중가요인에게 쏠리는 흥미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극적인 짧은 생애, 시중을 떠도는 연애담에 관한 이야기들에 오히려 사람들은 더 흥미있어 한 것은 아닐지..
한참을 김현식의 이야기를 다시 추억해 내는 과정에서 인간 김현식에 대해 소중한 보물을 나는 찾아낸 듯 하다.
다른 어떤 일화보다도 이 세가지 이야기가 인간 김현식에 대해 가장 잘 표현된 이야기들로 사람들에게 남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야기 하나.

사진은 흑백으로 참 정직한 발의 모양을 하고 있다.
뮤지션의 발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들판을 맘대로 뛰어다니는 철없는 아이의 발같이도 보인다.
불쑥 튀어나온 엄지만이 그의 개구장이 같은 면이 보여지는 듯 하다.
헤져서 편안한 운동화, 양말도 채 신지않은 맨발….
대중들이야 어떻든지 간에 자신의 음악을 위해 구두처럼 멋이 나는 신도 아닌 운동화를 신고서 저벅저벅 걸어왔을 그의 발.
그의 발을 보면서 나는 외려 15여년 전에 무덤가에 섰을 때보다 가슴이 저며 눈가를 훔친다.
김현식처럼 저벅저벅 제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한 열의만 있을뿐 재능은 부족했던 한 외로운 한 청년의 모습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이야기 둘, 김현식과 아들 완제

그의 사진을 여러 곳을 찾았어도 이렇게 해맑은 웃음은 본 적이 없는데, 김현식과 아들 완제는 어느새 붕어빵 같은 모습으로 이렇게 서 있다.
그렇게 사랑하였다던 단 하나 자신의 피붙이인 완제.
고통스러웠을 병원생활에 김현식에게 삶을 되돌이켜 줄 이유가 충분히 되었을 그와 꼭닮은 완제의 모습.
음악인이요 가수가 아닌 인간 김현식, 아버지 김현식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가 건강한 모습으로 있었더라면 지금도 가끔 TV에 나와 아버지의 노래를 연주하는 그와 한 무대에 서 있을지도….
이야기 셋, 별헤는 밤이면 들려오는 그대의 음성

어느 한적한 오후의 병원.
그와 병실을 함께 썼던 이의 생일을 위해 작은 콘서트를 열어 주며 불렀던 노래.
특히 이 작은 웅성거림, 자동차 경적소리, 낮게 들려오는 휘파람소리, 사람들의 수근거리는 음성…
김현식!
술을 먹으면 한없이 외로워져서 울고 또 울곤 했던 그.
이 한곡의 노래에 그의 사랑, 그의 인생이 다 녹아져 있는 듯 나는 한참을 듣고 또 돌려 들어야만 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병상에서 그가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노래뿐이라는 듯 이렇게 노래할 수 있는 그를, 그의 노래를 우리가 가졌으니 참으로 다행이지 않은가?
저 골목길을 돌아 그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없다 해도 끝없이 음악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몸부리치며 만들어낸 노래를 토해낸 김현식.
내가 그에 관한 추억을 소중히 한켠에 접어 가지고 있는 것처럼 비슷한 시절, 그의 노래로 떠올려지는 소중한 추억을 갖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가 아마도 있으리라…
그의 노래로 한 시절을 공유한 모두에게 축복이 있길…
김현식!
맨발로 바닷가를 저벅저벅 걸었을 당신을, 완제가 태어났을 때 아내의 손을 힘껏 움켜쥐며 함빡 웃었을 당신을...
생명이 꺼져가는 병실에서 다른 이의 생일선물로 노래를 불러주던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노래를 사랑합니다.
당신이 가고자 했던 그곳을 향해 고뇌하던 당신의 의지를 존중합니다.
내 사랑이 내 곁에 남아 있던 혹은 떠나갔던 당신의 노래를 공유했던 시절이 인생의 빛나는 한때였음을 따스히 기억합니다.
더 많은 글과 사진은...
블로그 <물꼬기's on the road> http://blog.naver.com/eonmi_blue
첫댓글 좋은 글 보고 갑니다. 아련한 옛 추억에 젖어..
추억이란 .... 머 그런거지요^^ 감사합니다.
하모니카 소리에 "한국사람을 들으며..." 외로움이 술을 먹게하고 그리움이 간을 병들게하는......." 그리고 꺼질듯한 그에목소리로 넋두리 해봅니다...... 너.....무....마.....니........ 아퍼옵니다....... 왜이리 또 술이 고파지는건지요.... 물고기님 덕분에 외로움에 술마시고 그리움에 간을슬프게만들어봅니다.....
한국사람...김현식 하모니카 소리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여기 링크걸고 싶은데..이제는 그것도 쉬운일이 아니라^^ .. 목숨이 간당간당한 그 순간에... 그 병실에서 '별헤는 밤이면 들려오는 그대의 음성
' 깨끗하지도 않은 음원을 들으면... 참... 슬퍼요.
김현식을 너무 좋아해서
리버사이드 호텔에 나올때 자주가서 바라보았다는 ㅎㅎ
물꼬기님덕에 좋은모습 글 추억회상에 빠져보네요
저두요. 참 좋아했지요. 다시 그런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객을 만나기 힘들것 같아요.
김현식. 김광석. 유재하 더 간다면 김정호도..
모두 깊은 색깔 목소리만 남기고 일찍 떠나버린 사람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