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기
마지기
정의
농지의 면적을 파종할 종자의 분량으로 어림하여 측정하는 단위.
역사
조선조의 태조가 큰아들인 이방우李芳雨에게 고향인 삭방도朔方道(고려조의 행정구역, 지금의 함경도와 강원도 북쪽 지역)의 함주咸州와 고주高州의 토지를 상속한 분재기에서 논을 ‘마지기’로 표기한 기록으로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한 농지면적 단위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조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조세징수 등을 위하여 관청에서는 공식적으로 결부법結負法을 시행하였기 때문에 마지기는 어디까지나 민간에서 통용된 단위였다.
한 말[斗]의 종자를 파종할 면적을 기준으로 하는 마지기는 비록 민간에서 사용한 단위였지만 관청에서도 보조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1895년(고종 32) 내무아문에서 각 도에 훈시한 규례에도 경작하는 논은 마지기, 밭은 일경日耕 그리고 화전火田은 식경息耕으로 조사하게 한 기록이 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강화군으로 추정되는 지역의 토지문서에도 ‘두락斗落’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두락은 마지기의 이두식 표기다.
고려조 이래 공식적으로 사용되던 결부법은 1906년 일제에 의해 도량형사무국이 설치되면서 척관법尺貫法으로 개정되었다. 정부 수립 이후에는 1961년에 제정된 〈계량법〉으로 미터법을 쓰도록 법제화하였으나 여전히 민간에서는 국정단위國定單位보다 마지기를 더 선호하였다. 국정단위가 자주 바뀐 것도 한 원인이었지만, 농경방식으로 볼 때 마지기가 더 헤아리기 쉽고 익숙하기도 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금은 미터법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논농사의 규모를 말할 때 아직도 관행적으로 마지기를 쓰고 있다.
내용
전통적으로 농지의 크기를 측량하는 방법에는 사람의 걸음으로 재어 면적을 측정하는 방법과 파종할 종자의 양으로 측정하는 방법 그리고 투입되는 노동력으로 측정하는 방법이 있었다. 관청에는 실제 면적을 실측하여 산출하는 결부법이 있었고 민간에서 통용되는 방법에는 종자량이나 노동력으로 어림하여 산출하는 마지기와 일경 등이 있었다.
한 말 분량의 종자가 뿌려지는 농지의 규모를 마지기라고 하며 주로 논의 면적을 나타내는 단위로 쓰였지만, 논보다 밭이 많은 중부 이북지역에서는 밭의 면적도 마지기로 표시하였다. 그리고 마지기의 실제 규모는 지역에 따라 그리고 파종하는 종자의 종류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논의 경우에는 한 마지기가 적게는 80평에서 많게는 300평까지 12가지 유형이 있었다고 하는데 대체로 평야지에서는 150평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밖의 경우에는 200평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도서산간지역에서는 200평 이상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 지역에는 경사가 급하고 규모가 작은 다랑논이 많기에 그만큼 소용되는 종자도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밭에서는 논보다 마지기의 기준이 훨씬 더 다양하다. 밭은 재배되는 작목이 많을 뿐만 아니라 같은 작목이라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생산력이 크게 다르고 밭의 구획과 경사가 논보다는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소요되는 종자량이 크게 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적게는 30평에서 많게는 400평까지 논보다도 훨씬 다양한 15가지 유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절반 정도는 200평을 기준으로 하고 25%가 100평, 그리고 500평, 300평 순서로 마지기의 크기를 구분하였다.
이처럼 일부 지방에서는 밭의 면적을 마지기로 헤아리기도 하였지만, 마지기는 주로 논농사의 규모를 나타낼 때 사용하였다. 그 대신 밭에서는 쟁기로 하룻낮 동안 작업하는 면적을 가리키는 일경을 썼다. 일경은 하루의 일거리라는 의미로 ‘날갈이’ 또는 ‘하루갈이’라고도 한다. 또 일경을 6등분한 것을 식경息耕이라고 하는데 한 번 쉴 때까지 쟁기질한 면적을 말한다.
한편 관청에서 시행한 결부법은 사람의 걸음을 기준으로 6척尺을 1보步라고 계산하여 3보 제곱이 1부負이고 100부가 1결結이 된다. 그리고 토지의 등급에 따라 면적의 차이가 있어서 상전上田인 경우에는 대략 2,000여 평이 1결이고 하전下田은 이의 두 배인 4,000여 평이 되기도 하였다.
특징 및 의의
전통적으로 민간에서는 농지면적을 마지기로 표시하였는데 1말의 종자를 파종하는 면적을 말한다. 마지기는 밭보다는 주로 논에서 쓰였다. 지금은 미터법의 보급에 따라 단보段步(10a)와 정보町步(㏊)가 통용되고 있으나 관행적으로 벼농사의 규모를 마지기로 헤아리는 풍습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러한 관행은 예전 벼농사에서 모내기하지 않고 볍씨를 직접 뿌리는 직파재배를 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1말의 볍씨가 필요한 논을 1마지기라고 하지만, 1되가 필요하면 ‘되지기’, 1섬이 필요하면 ‘섬지기’라고도 하였다.
지금은 되지기와 섬지기라는 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마지기를 한자로 ‘두락지斗落只’ 또는 ‘두지斗只’라고도 쓰는데, 이는 마지기의 이두식 표기라서 마지기로 읽는 것이 맞다.
참고문헌
농림수산고문헌비요(김영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2), 실행농지단위의 유형별 분포에 관한 조사연구(김영진, 농림경제5-3,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2), 조선전기농업경제사(이철호, 한길사, 1986).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