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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기도하는 사람이란 깨어있는 상태로 하느님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저희 공동체 전례 담당자이신 어르신 신부님께서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대림 시기 시작하는데, 대림환 어쩔거요?” 하고 물으셨습니다.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저는 부랴부랴 창고에서 아이 키 만한 큰 초들을 쇠톱으로 자르고 칼로 다듬었습니다.
시골스럽게 대성당과 소성당에 대림환을 설치해놓으니, 그제야 어르신 신부님 얼굴에 화색이 환하게 돌았습니다.
대림환 장식은 초기 양성기 형제들이나 젊은 형제들, 아니면 봉사 오시는 자매님들의 몫이라 생각했는데, 깊은 시골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웬만한 것은 직접 다 해야 합니다.
열심히 초를 자르고 깎던 제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번 대림 시기 초를 깎는 마음으로, 나를 깎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
하늘을 찌르는 교만을 깎고, 나태함과 게으름의 나를 깎고, 하느님께 대한 불신과 불충실한 나를 깎으며 그렇게 한 달을 살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오늘 전례력으로 새해 첫날, 돌아보니, 지난 한 해도 어김없이 결핍과 상처투성이의 삶, 실패와 부끄러움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제 깊은 상처 그 틈 사이로 크신 주님의 자비가 흘러들어왔음을 실감합니다.
대림 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예수님께서는 각별한 당부 말씀을 우리에게 건네고 계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 날이 너희를 덫처럼 덮치지 않게 하여라.”(루카 복음 21장 34절)
돌아보니 참으로 많은 시간을 헛되고 의미 없이 보냈습니다.
내 인생 여정에서 앞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금쪽같은 시간을 흥청망청 놀고, 먹고, 마시는데 소모했습니다.
모든 것 하느님 자비하신 손길에 맡겨드리지 못하고 부끄럽게도 오랜 시간 근심하고 걱정했습니다.
놀고,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듭니다.
한 치 앞만 내다보게 되니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게 만듭니다.
남아있는 시간, 남아있는 인생을 주님 권고에 따라 살아가야겠습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카 복음 21장 36절)
깨어있음은 언제나 기도와 연결돼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란 깨어있는 상태로 하느님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일정 시간은 잠을 자야 하는 인간이기에 항상 깨어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하루의 많은 시간을 생업에 몰두해야 하는 게 우리네 삶입니다.
그러나 잠드는 순간, 잠자는 순간조차도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고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깨어있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일할 때 역시 주님께서 내 옆에서 내를 지켜보시고 나를 도와주신다고 생각하고 일을 하면 그 역시 깨어있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결국 깨어 기도함을 통해 우리는 주님 재림의 날에도 굳건하고 기쁘게 서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예수님 인격적으로 만나는 법: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 빛이 떠오른다>
복음: 루카 21,25-28.34-36
오늘 복음은 실상 세상의 마지막 때를 예언하고 계십니다. 세상 마지막 때는 고통의 때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사람의 아들이 권능을 떨치며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법입니다. 마지막은 항상 새로운 시작입니다. 목동들은 그 마지막 때에 아기 예수님을 만나 위로를 받았습니다. 당시 목동은 가장 보잘 것 없는 직업이었습니다. 고통받는 이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보이시는 주님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마태오 복음엔 이런 이사야서의 인용이 있습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마태 4,16)
별은 밝은 도시가 아니라 깜깜한 시골에서 더 잘 보입니다. 우리가 죽음 직전까지 가지 않으면 생명이신 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신학교에 들어가서 매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행복을 찾아 들어갔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행복하게 해주지 않으면 죽여달라는 마음으로 일주일 단식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때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한번의 만남의 힘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시간』이란 책에는 봉하령 요셉 신부의 기도 체험인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결정적인 사건, 죽을 고비」라는 꼭지가 있습니다. 봉하령 신부는 부모의 낙태 시도를 이기고 3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돌도 되기 전,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1월 동네 할머니가 아기를 업고 우물물을 길으려다 20미터 우물 속으로 떨어져 돌아가셨습니다. 아기도 죽었지만, 그를 구한 분이 침을 놓아 다시 살렸습니다. 열 살 때는 친구들과 놀다가 경운기에 끼여 왼 팔은 잘렸고 오른 팔은 처참할 정도로 뭉게져버렸습니다. 오른 팔은 하루 꼬박 걸린 수술로 회복할 수 있었으나 왼 팔은 잃었습니다. 그 무렵 성당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는 팔을 감추고 본심도 감추었습니다. 그러다 ‘선택’이란 청년 피정에 가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게 되었고 그때 자신이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청년이 되어서도 장애로 인해 취업을 할 수 없었던 그는 수도회에 입회하기로 합니다. 장애인을 받아주는 수도회가 없었지만, 갓 만들어지기 시작한 중증장애인을 돌보는 ‘작은예수수도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8년 서른셋의 나이에 한국 신학교에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2008년에 부제품을 받았으나 15년 동안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제품을 받지 못했습니다. 2023년 사제품을 받을 때까지 부제로 15년 정도 살아야 했습니다. 이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뛰쳐나가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풍선처럼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숨을 쉴 수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봉 신부는 이때 ‘기도’를 선택했습니다. 늘 입에 이 노래를 달고 살았습니다.
“하느님, 내 하느님 어찌 저를 버리셨나이까. 하느님, 내 하느님 어찌 저를 버리셨나이까.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생명의 하느님을 그리워하나이다.”
결국 숨이 막혀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세상에 오신 것도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신 것도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도 다 “너를 위해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봉 신부는 “고통이 없었다면, 아픔이 없었다면, 좌절이 없었다면 나는 그토록 애절하게 주님을 찾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그분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죽을만큼 원해야 생명이신 분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확실합니다. ‘엄마 찾아 3만리’를 보십시오. 엄마는 아들 마르코를 살리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먼 아르헨티나까지 돈을 벌러 갔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은 그만큼 멀리 있습니다. 그분을 만나려면 나도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너무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단식하시며 광야에서 기도하신 만큼 절실히 주님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한 5년은 가슴이 저미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성체조배를 하면 잠깐 사라졌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바라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생명의 빛을 보고 싶다면 최대한 어둠이 되어야 합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루카 21,25-28.34-36: 너희가 구원받을 때가 가까이 왔다.
오늘부터 대림시기가 시작된다. 대림이란 인류가 고통스러운 체험을 통하여 구원에 대한 열망으로 그리스도께서 정의와 평화를 주시는 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실 것을 준비하고 바라고 희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기다림은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셨던”(요한 1,14) 그 역사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하여 그분에 대한 새로운 체험을 통하여 그분이 영광중에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된다. 그분은 이제 매 순간 우리에게 오시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이 대림을 살아야 하고 그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예레미야서는 인류가 기다리는 메시아가 “다윗의 정통 왕손(싹)”(예레 33,15)으로 메마른 땅에서 생존의 희망인 생명의 싹이시다. 오직 하느님만이 이 메시아를 일으켜 주실 수 있고, 그분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며, 바로 그분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역사적으로 오신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의 사명, 정의와 평화를 이룰 사명, 정신적 육체적 모든 악을 치유해야 할 사명은 우리가 느끼듯이 성취되어야 한다. 그래서 대림이란 신앙인의 본질적 차원인 동시에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도 기다림의 자세를 알려주고자 한다. 이 기다림은 성탄을 넘어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께 대한 것이다. 오늘의 말씀은 공관복음에 나타나는 종말론적 담화의 내용이다. 복음에서는 여러 가지 징조들을 들어 신앙인들의 준비된 삶을 살도록 초대하고 있다(25-26절).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27절) 이때 세상은 새로워져, 낡은 세상은 가고, 악과 죽음의 세력은 더는 그 영광을 위협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28절). 이러한 새로운 세상은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시지만, 인간의 거룩한 삶과 깨어 기다림으로 준비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34-36절) 말씀하신다. 세상 걱정에 휩싸인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반대되는 나의 인간적인 것에 매여 하느님께로 가기보다 죽음의 길로 가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날은 어느 때 올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그때는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는 아름다운 순간이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만났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영광스러운 만남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깨어있는 삶을 언제나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하신다(36절). 그러므로 항상 깨어있는 삶이나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삶 전체가 계속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의 삶이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바로 대림의 삶인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을 잘 맞이하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을 통하여 계속 우리에게 오고 계시는 분이시며, 이제 우리의 매일의 삶을 통하여 잘 준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 준비는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쓸데없는 마지막 날에 관한 생각과 두려움 때문에 이 순간을 잃는다면 우리가 원하는 가장 중요한 것까지 잃을 수도 있다. 주님께서 오심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사는 현재 이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 안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는, 체험할 수 있는 삶이 계속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삶을 우리가 노력한다면 우리가 시간 안에 살면서도 시간을 초월하며 사는 것이다. 나의 이 순간의 삶은 바로 하느님 앞에 영원한 가치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다리는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며, 이 세상을 새로운 하늘과 새 땅으로 만드시는 분이시다. 참된 구원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의 이러한 선물도 인간의 협력이 없으면 주어지지 않는다. 그분을 기다리는 우리의 삶 역시 하느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는 생활이어야 한다. 현재의 이 삶은 구원을 체험하는 장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의 삶에서 사랑의 삶을 노력해야 한다. 이 사랑의 삶이 곧 깨어있는 삶이며, 깨어있을 때 정의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고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줄 수 있는 삶이 될 것이며, 이러한 삶이 사랑의 완성인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해 줄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1986년 데이비드 스노든은 75세 이상의 가톨릭 수녀 678명을 대상으로 ‘노화와 알츠하이머에 관한 수녀 연구’라는 제목의 연구를 했습니다. 사후 수녀들의 뇌를 검사한 결과, 살아 있을 때 치매를 유발할 수 있었을 정도의 뇌 손상이 심한 수녀들이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수녀들이 삶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는가에 따라 치매에 걸리는지 안 걸리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무엇보다 영적으로 삶의 더 많은 면에서 활동적으로 참여했고, 노년기까지 그런 삶의 방식을 유지했던 수녀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경 생성과 신경 가소성을 자극했습니다. 이런 수녀들의 뇌는 일부 손상이 되었어도 건강한 삶의 발판이 되어 줄 수 있었습니다.
치매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열정을 가지고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연구였습니다. 그만큼 열정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열정을 멈추고 시들시들한 삶을 사는 사람이 너무 많아 보입니다. 나름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과연 자기를 망가트릴 정도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활기차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삶이 자기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미 충실한 삶을 당신 모범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그 모범을 따라 적극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를 망가트리는 삶이 아닌,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기를 완성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심판 날이 갑자기 들이닥치고, 죽음이 생각지도 않은 사이에 닥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때 심판관이신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하시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산 사람이 주님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서 있을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순간의 만족만을 위한 삶을 산 사람이 과연 주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루카 21,34)
오늘부터 우리는 대림시기를 지내게 됩니다. 대림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주님 성탄 대축일을 준비하면서 다시 오실 구세주를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구세주이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며 회개와 속죄로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이 시기를 잘 보낸 사람만이 당당하게 기쁜 성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활기차게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기쁜 성탄이 멀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다(호세 무히키).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하느님의 시간은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인간의 시간(크로노스)이 아니라
하느님의 시간(카이로스) 영역이기 때문에
인간이 알 수 없습니다.
원래 성숙한 사람은 무엇이든지
애써 붙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흘러가는 강물처럼 그대로 그냥 두는 것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려 하고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고
필요 이상으로 욕망에 사로잡히는 순간
걱정 근심에 사로잡히게 되는 법입니다.
그건 내가 아닙니다.
살아도 인간답게 살 수 없습니다.
깨어있는 사람은 소유한 것이 없기 때문에
단순명료하고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명명백백(明明白白) 분명하게
표징을 보는 겁니다.
대림시기를 깨어있으며
하느님의 시간(카이로스)안에서
표징을 잘 살피는 시간이 되어야 겠습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예수님 성탄을
기다리는 새해
첫날,
새아침이다.
어제가 흘러
새로운 속량의
오늘이 되었다.
우리의 속량은
다름아닌
주님의 탄생을
만나는 행복이다.
주님의 탄생은
행복해야 할
우리를 회개와
변화의 삶으로
이끈다.
우리의
신앙또한
새로운 탄생이
필요한 새로움의
간절한 여정이다.
새로 태어나는
마음들이 모여
우리신앙을
자라게한다.
묵은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워지는
사랑이다.
새로움이란
좀더
낮은 곳으로
내려오시는
주님의 사랑을
만나는 행복이다.
좀더 낮은 곳에
좀더 좋은
행복이 있다.
내려오시는
주님의 행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사람이 행복이고
사람이 말씀이다.
이 새로운 한 해가
서로가 서로에게
참된 기쁨이 되는
한 해이길
기도드린다.
주님께서는
아낌없는 사랑을
새로이 시작하는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사랑을 나누어
주시는 예수님
자신이 바로
우리가 맞이하는
새 해
새아침이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희망과
기다림으로
살아가는
대림(待臨)의
존재이다.
기다림이
사랑이고
기다림이
설레는 행복이다.
하느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 삶의
자리에
하느님께서
탄생하실 것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라는
새 해
새 아침의
맑은
기도이다.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21,36)
'믿음의 힘!'
오늘 복음(루카21,25-28.34-36)은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에 대한 말씀과 '깨어있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달력인 전례력으로 새해인 '다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해 인사드립니다.
"새해에는 믿음의 힘으로 은총과 평화가 충만하고, 영과 육이 더 건강한 은혜로운 한 해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새해의 첫 주일인 '대림 제1주일'입니다.
'대림(待臨)'은 '도착'을 뜻하는 라틴말 '아드벤투스(adventus)'에서 온 말입니다.
'대림시기'는 '기다림의 시기'입니다.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재림)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립니다.
'대림제1주일부터 12월 16일까지의 전례'는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을 기다리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12월17일부터 12월24일 성탄 전야까지의 전례'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대림시기는 '회개와 속죄의 시기'입니다.
그래서 사제는 대림시기 동안 회개와 속죄의 의미를 담고 있는 '자색(보라색) 제의'를 입고 미사를 집전합니다.
대림시기는 '용서와 화해의 시기'입니다.
용서와 화해는 회개와 속죄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용서와 화해가 없으면 영원한 생명도 없고, 내 안에 주님께서 탄생하실 수 없습니다.
대림시기는 '깨어 기도하는 시기'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21,34.36)
'믿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다시오심과 주님의 성탄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17,)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좀 더 커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복음말씀
제1독서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33,14-16
14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 주겠다.
15 그날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니,
그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
16 그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예루살렘이 안전하게 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주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3,12―4,2
형제 여러분,
12 여러분이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도,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13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4,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끝으로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지 우리에게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욱더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2 우리가 주 예수님의 권위로 여러분에게 지시해 준 것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25-28.34-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5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