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독일 람슈타인 서방 주요국 정상회의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불참 소식과 함께 무기한 연기되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직접 유럽 4개국 정상을 찾아나섰다. 당초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20여개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람슈타인 회의에서 자신의 전쟁 ‘승리 계획’을 설명하고 군사 지원 등을 얻으려고 했지만, 미국을 덮친 허리케인으로 무산됐다.
람슈타인 미 공군기지는 12일로 예정된 “우크라이나방위연락그룹(UDCG) 회의가 연기됐다”고 발표했고, 독일 국방부도 이를 확인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 '승리 계획'의 큰 틀은 나토 가입 초대와 장거리 미사일의 러시아 본토 공격 승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9일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열린 제3차 우크라이나-동·남유럽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며 "그렇다면, 푸틴 대통령이 지정학적으로 패배하고, 평화를 위한 귀중한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정상회담/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젤렌스키 대통령을 맞이하는 스타머 영국 총리/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이 매체는 그러나 '승리 계획'의 핵심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초대이라면, 그간의 나토 회원국 반응과 주변 정세를 감안하면 당혹스럽다고 논평했다. 얼마 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미국과 다른 나토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등 우크라이나의 나토 초청이 비현실적인 구상이라는 것이다.
승리계획의 또 다른 축은 서방이 지원하는 장거리 미사일을 러시아 본토 깊숙한 곳까지 공격할 수 있게 허용해달라는 것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10일 파리에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한 뒤 "우크라이나는 군사 장비 부족에 직면해 있다"며 “겨울이 오기 전에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양국 정상회담의 주제 중 하나가 프랑스제 장거리 미사일의 러시아 공격 허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군사 지원은 스칼프(영국에서는 스톰 섀도) 장거리 미사일을 겨냥한 것으로 추측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동안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으로 개발한 스톰 섀도(프랑스명은 스칼프, 사정거리가 560㎞), 미국의 에이태큼스 등을 러시아 본토 공격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독일에게는 타우러스 장거리 미사일(사정거리 500㎞) 제공을 촉구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자국 미사일의 러시아 공격을 특별한 경우(하르코프주 방어용)를 제외하고는 허용하지 않았고, 독일은 아예 타우러스 미사일 제공을 거부해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에 앞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만나 자신의 승리 계획을 설명한 뒤 "우리는 동맹국들과 함께 이를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마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스타머 총리와 3자 회담을 가졌다"면서 "러시아 영토 깊숙한 군사 목표물에 대한 서방 무기의 장거리 미사일 사용 문제에 대해서는 입장이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최종 결정은 (무기 제공) 동맹국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 스타머 영국 총리, 뤼터 나토 사무총장간의 3자회담 모습/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영-프랑스 방문에서 기자들로부터 러시아와의 평화협상에 대한 질문을 받고 "서방의 안보 보장을 대가로 한 휴전(예컨대 영토와 나토 가입 교환)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휴전은 유럽 지도자들과 논의할 대상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의 파리 방문 전,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동부 군사기지를 찾아 프랑스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제155여단 소속 군인 2,300여명을 만나 격려하는 등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프랑스측의 의지는 거기까지 인 것으로 해석된다.
영국에서는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영국군 지도부가 자국 교관들의 우크라이나 파견을 논의하고 있다는 더 타임스 보도가 나왔다. 교관을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으로 파견하는 것이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영국으로 데려오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고 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군 소식통은 더 타임스에 "그곳으로 가면 훈련을 더 빨리 할 수 있었고, 최전선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별로 위험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트라나.ua는 "프랑스와 폴란드가 과거에 군사 교관을 우크라이나에 파견하는 문제를 제기했으나 더이상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러시아와의 확전 가능성과 인명 손실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외국 군사 교관이 우크라이나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할 경우, 러시아 미사일의 최우선 목표는 그 훈련 캠프가 될 것이라고 이 매체는 지적했다.
스타머 총리, 마크롱 대통령을 만난 젤렌스키 대통령은 11일 독일과 이탈리아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