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스토리>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 후 내게 자신의 삶을 주었다.
내겐 처음 있는 일이라 우선은 기분이 우쭐했지만 곧 어깨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가벼운 삶이란 없다. 모든 삶은 다 지니고 다니기 어렵다.
유약하고 순종적이었던 나는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을 지고도 흔들림 없이 산으로 나아갔다.
가끔 균형을 잃을 때면 그녀의 삶이 내 견갑골에 부대꼈고, 피부는 심한 통증과 함께 붉고 여위어갔다. 한쪽 옆구리에 심한 통증이 올 때면, 등을 휘게 해 무게가 반대편으로 완전히 옮겨가도록 했다.
갈비뼈 하나가 탈골돼 위를 찌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아직 여정의 초반부도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놀란 나는 그녀를 떨쳐내려 했지만 그녀는 사랑한다고 엄숙히 말하며 내 어깨에 더욱 바짝 매달렸다.
갈비뼈가 위를 찌르는 채로는 먹거나 움직이기도 힘들었지만 두 번으로 나누어 숨쉬는 법을 새로 터득해 처음은 그다지 깊지 않게 천천히, 두번째는 조금 깊이 숨을 쉬어가며 계속 길을 갈 수 있었다.
걷는 동안 많은 이들이 나를 축하하기 위해 멈춰서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사랑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고, 나는 웬만큼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발에서는 피가 났고, 구두는 포기한 지 오래였다. 거대한 바다거북처럼 등을 보호해줄 아주 오래된 덮개를 갖는 게 소원이었다.
그녀의 삶이 주는 무게에 짓눌려 몸을 기울인 채 걸었다.
이젠 더이상 하늘도, 높은 나뭇가지도, 허공을 가로지르는 새들도, 폭풍 때 잠시 나타나는 나비도 볼 수 없었다.
가끔씩 구름과 무지개가 너무도 그리웠지만, 오그린 채 걸으며 바닥의 물건들만 바라보는데 익숙해져갔다.
처음에는 물을 마시거나 잠시 쉬기 위해 맑은 개울가에 멈추어서면 그녀는 잠시 그녀의 삶을 바닥에 내려놓도록 허락했다. (나는 그녀를 잃어버리거나 낯선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지 못하도록 주의 깊게 감시하며 음식을 먹거나 물을 마셨다.) 그런 식으로 나는 조금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우리가 어지간히 걸었을 즈음, 그녀는 다시는 내게서 떨어지지 않겠다는 결정을 알려왔다.
무게 때문에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볼 수도 없었지만 어쨌든 그 목표의 집요함을 이해했다.
그녀가 말한 대로라면, 그 결심은 나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내 등은 굽었고, 근육은 경련을 일으켰으며, 발은 껍질이 벗겨지고, 갈비뼈는 반항이라도 하읏 끊임없이 자리를 이탈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사랑에 대한 우선권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녀도 더이상 내 등에 붙어 있지 못할 거야.'
나는 어깨 위의 그녀를 움직여 조금이라도 편하게 자세를 가다듬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산에 가까워졌고, 두려운 등반이 곧 시작될 터였다.
계속 혼잣말을 했다.
'그녀가 울며 칭얼거리거나 아픈 척하더라도 물을 마시거나 잠을 자기 위해서라면 잠시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올 수 있을 거야. 그녀가 떨어지도록 어깨를 흔들어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그녀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기 위해 등에서 떨쳐내려 했을 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길을 걷는 동안 그녀의 내장에서 누런 액체가 분비되기 시작했고, 그것이 굳으면서 내 등에 생긴 뿔 모양의 조직이 그녀와 나를 완전히 결합시켰던 것이다.
마치 조난당한 사람처럼 아뜩해진 나는 우리를 결합하고 있던 딱딱한 껍질을 손으로 부수려 했다.
"소용없어요"
그녀가 내 콩팥 한가운데서 말했다
"내사랑은 영원하고, 용해될 수도, 파괴될 수 없으니까요. 내 가슴에서 샘솟는 액체가 당신에 닿아 단단해지고, 내 자궁에서 새어나오는 이 무기질이 당신 갈비뼈에 들러 붙으니까요. 우리가 떨어지는 일은 더이상 없을 거에요."
승리에 겨워 그녀가 말했다
그녀를 떨치기 위해 헛되이 흔들어보지만 더욱 피곤해질뿐이었다.
어설픈 달팽이가 껍질을 지고 천천히 나아가는 것처럼 원치 않아도 움직일 때마다 그녀와 같이 갔다.
산에 근접하자 잠을 자지 못했던 나는 딱딱한 돌멩이에 그녀를 세게 부딪쳐볼까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나 역시 미쳐버린 야수처럼 산산조각 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내장은 점점 더 자주 냄새를 풍겼고 끈적한 분비물들은 손가락에 들러붙으며 내 손에 뒤범벅되었다.
점성이 강한 두꺼운 조직들이 만들어져 내 육신의 이곳저곳을 아귀도 맞지 않게 붙여놓았고, 그로 인해 걷기는 더욱 힘겨워졌다.
등 위로 그녀의 분비물이 흐르며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껍질을 점점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느껴졌다.
밤이면 녹초가 되어, 그녀의 겨드랑이와 모공, 다리사이에서 쉼 없이 흘러내리는 액체에 젖어 잠깐씩 눈을 붙였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단단한 조직으로 된 끈적이는 누런 물질로 완전히 입이 막힌 채 잠을 깼고 더이상 말을 할 수 가 없었다.
그녀가 잠든 채 움직일 때 연골조직이 분비되었고, 그것이 내 입술에 들러붙어 딱딱해졌던 것이다.
나는 껍질을 부수려 안간힘을 썼지만 불가능했다.
지금 나는 벙어리가 되어 산을 오르고 있다. 산을 오르기는 힘들고, 내 등은 점점 굽어만 간다.
이제 길을 가면서 나는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다. 그곳에 인적이 드물거나 산이 위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지나가더라도 무게 때문에 몸이 바닥으로 기울어져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지녔던 명성은 이미 사라졌다. 피부 바깥으로 튀어나오고 여위었으며, 덕지덕지 껍질이 말라붙은 나를 알아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여정의 끝을 걱정할 여력 따위는 없다. 정상은 아주 멀리 있으며, 나는 결코 그곳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이미 나는 아주 늙었고, 아니 적어도 늙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내가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서 그녀에게 알리려 했다.
점점 여위어가자 발에는 이미 피부도 남아 있지 않고, 뼈는 몸의 구멍을 통해 밖으로 튀어나왔다.
껍질 때문에 먹지도 말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동작으로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녀가 곧 나를 위로해주었다.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에게 내 삶을 주었으니, 이제 당신이 내게 줄 차례가 아닌가요?"
그녀가 말했다.
-끝-
첫댓글 에릭시걸 원작, 아서 힐러 감독, 알리 맥그로와 라이언 오닐 주연,
70년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영화.
멜로의 온갖 요소를 다 품어있어, 때론 달콤하고 떄론 슬프게....
사랑은 멜로, 멜로는 사랑....
그러나 어쩌면 사랑은 절망, 실존이 실패한 절절한 모습.
그로테스크한 사랑의 본질.
아,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확실히 이른 아침에는 선선한 기운 살갗에 새롭습니다.
한낮에는 여적 열탕이지만.
벗이여. 좋은 하루~~~
단연 최고의 melo,
러브 스토리 영화,
<love story>.
의인화 된 ? 사물화 된 ?
grotesque 한 사랑의 형태군요.
한 낮의 열기도 곧 사그라지곘지요.
벗님들,
맑고, 밝은 구월의 날 되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