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은퇴하였다.
대한민국의 장남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다가 캐나다로 건너 온 그의 어깨는 여전히 가벼워지지 않았다.
영어라는 언어의 무게가 그의 발목을 잡았고 아직은 어린 아이들이 걸어 준 가장이라는 이름표를 내려 놓을 수 없었다.
이민온 지 24 년
엔지니어였던 그가 적성에도 맞지않는 일을 하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두 아이들이 결혼하여 독립해 나가고 어머니는 정부 연금을 받으며 노인 아파트로 가신 후
그의 입에서 이제 일 그만해야지, 일만 하고 살 수 있나, 하면서 은퇴를 시사하였다.
그는 요즈음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영어 배우기를 포기할 수 없다며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는 가방을 메고 마치 학교를 가듯 집을 나선다.
도서관 의자에 앉아 있으면 꾸벅꾸벅 졸기도 한단다.
내가 농담 삼아 종이 냄새 맡으러 도서관 간다고 놀리면 씨익, 웃는다.
그는 요즈음 앉기만 하면 존다.
그동안 긴장하며 남의 나라에서 사느라 미처 못 잔 잠을 밀린 숙제라도 하는 듯 그렇게 잔다.
며칠 전 성당에서 사순절 특강이 있었다.
한국에서 오신 베드로 신부님의 강의는 참 재미있고 의미있는 내용이 많았는데 옆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아예 잠이 들었다.
다른 때 같으면 옆구리를 찔러 깨우련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Let It Be
자고 싶은 만큼 자다가 강의가 거의 끝날 무렵이면 깨어날테니까
일 하고 싶은 만큼 일 하다가 어느 날 은퇴를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