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를레오네의 성 베르나르도
필립 라티니(Philip Latini)는 1605년 2월 6일에 이태리의 시칠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신발을 만드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들에게는 장사를 가르쳤다.
그의 마을과 그의 섬의 전설(전통)에 순수했던 그 젊은이는 격정적이며 공격적이었다.
가톨릭 신앙과 그안의 좋은 교육위에서 양육되었슴에도 불구하고 그는 군인이 되는 것과 검술연마에 온 시간을 보내는 것과 시칠리에서 최고의 검투사로서 명성을 얻는일에 더 흥미있어 했다.
그는 강한 체격이었고 겨루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기꺼이 도전했다.
하지만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의에 무방비한 노인들을 보호하기위해 애썼고, 존경심을 보였고 심지어 돌봐주기까지 했다.
그는 성 프란치스꼬에게 기도했고 기도하기위해 성당(성인의 유골/유물이 모셔진 성당)을 방문하곤 했다.
하루는 한 어리석은 사나이가 칼로 승부를 겨루기위해 도전을 해왔다.
그 사나이는 심사숙고도, 충분한 수련도 없었기에 필립으로부터 손이 잘리는 심한 상처를 입었다.
그를 죽일뻔 했었다고(죽였었다고) 생각한 그는 성역인 카푸친 수도원으로 피하였다.
그가 저지른 일들의 반동(반작용)으로 그는 큰 후회를 하였고 인생 행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1632년 12월 13일에 그는 카푸친 수련소에 받아들여졌고 베르나르도라는 이름을 받게되었다.
그는 그의 죄많음을 알고 그의 공격성을 거꾸로 돌렸다.
그는 거의 영구히 빵과 물만으로 수도생활을 하였고, 나무토막 베개를 베고 판자위에서 3시간만 잤으며, 하루에 7시간씩 피를 흘릴 때 까지 자신을 채찍질(편태)하였다.
만약 그에게 그 어떤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이 주어지더라도 그는 먹지 않고 조금만 맛만 보곤 옆으로 떨어져서 그 안락함을 멀리하였다.
그는 그 어떤 새 의복도 입지 않으려 했고(않곤 했고) 그의 방에 그 어떤 새 가구도 들여놓지 않으려 했다(않곤 했다). 오랜시간 동안 그는 병을 돌봤으며(병자들을 돌봤으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는 온화하고 친절해졌다.
하느님께선 기도안에서 그에게 기적들이라는 은총과 4개월 앞서 임종날짜를 알려주시는 선물을 포함한 큰 은총들을 베푸셨다. 그는 1667년 1월 12일에 시칠리의 팔레르모에서 임종했고, 1768년 5월 15일에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시복(諡福)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1년 6월 10일에 그를 시성(諡聖)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