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자,천하지대본"은 상인을 경시하는 농경사회의 가치적 사고를 나타내는 말인 즉, 이익적 사고를 모토로 하는 상업사회와 산업사회, 나아가 금융자본주의사회와 대별되는 유교적 질서로서 의를 강조한다는 것.
"견리사의"는 역시 농경사회의 유교적 관점에서의 가치중심적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 상업사회로의 변환점에서 나타나는 상인의 정신(상도)을 가리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익을 추구하되 가치를 버리지 말라는 경고로도 읽힌다.
이익을 좆는 것은 허용되지만 의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의(신뢰, 신용)를 저버린 이익추구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회악으로서 공동체의 해악이라는 사회적 규정(규제)이자 규약(약속)이다.
부모의 자격을 돈으로 논해서는 안 되며 존재의 의미로서 인식되어져야 함도 마찬가지요, 친구를 사귐에서도 이보다는 의를 먼저 생각함이 유익하다.
이를 우선적 가치로 여기는 상인에게 있어서도 물질적 숭배에 앞서 정신적 의를 함께 하는 것이 지혜롭다. 이것이 상인의 도이며 상인의 지혜다.
리차드 버크의 말처럼,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이치와도 통하는 공통의 지혜다.
kjm _ 2026.4.16
* [펌] 김경호 (페이스북, 1시간 전)
[통나무 칼럼] 썩어빠진 군사법, 군법무관 수뇌부 중 방조한 자들을 향한 과감한 메스가 필요하다
12·3 친위 쿠데타 당시 군법무관들의 행태를 겨냥한 2차 종합특검의 수사는 지연된 정의의 실현이자 사필귀정이다.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검찰단장 등 군사법 수뇌부가 계엄의 위법성에 침묵하고 내란 세력을 방관한 것은 단순한 '직무유기'가 아니다. 이는 권력의 눈치만 보며 영달을 쫓던 군사법 조직의 곪아 터진 치부가 백일하에 드러난 결정적 장면이다.
필자는 군법무관 13년, 군 사건 전문 변호사 11년, 도합 24년간 군사법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을 지켜봤다. 그 경험에 비추어 단언컨대, 현재의 군법무관 조직은 회생 불능 상태로 썩었다. 구성원들의 법적 실력은 이미 처참한 수준으로 전락했으며, 공적 책임감은 찾아볼 수 없다.
이번 내란(반란) 사태에서도 그들의 본질은 여실히 증명됐다. 헌정 질서 유린이라는 거대한 범죄 앞에서 그들은 헌법을 수호하기는커녕, 태풍이 지나가기만 숨죽여 기다렸다. 그저 육사 출신들이 무리하게 설치다 떨어져 나간 빈자리에 숟가락을 얹어 권력을 꿰차려는 대령, 중령급 지휘부의 자리싸움은 도덕성 제로의 세금 낭비일 뿐이다. 이 썩은 부위는 적당한 봉합이 아니라 과감한 절단이 필요하다.
2009년부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유튜브 등을 통해 군판사, 군검사, 징계 담당 군법무관들의 어이없고 무능하며 비도덕적인 행태를 끊임없이 고발해 왔다. 거대한 바위 같던 비리의 카르텔이 특검의 칼날 앞에 서며 세상이 변화하는 것을 살아 생전 목도하게 되어 놀랍고 감격스럽다. 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필자는 이 시대적 흐름에 맞춰 앞으로 군사법 개혁의 길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을 다짐한다.
나의 남은 소명은 단 하나, 완벽하고 불가역적인 군사법 개혁이다. 특권 의식에 찌든 무능한 젊은 군법무관들이 전역 후 사회의 판검사가 되고, 나아가 판사 출신 장동혁이나 검사 출신 한동훈 같은 정치인이 되어 권력을 좇는 비극이 대한민국에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혹자는 내게 현실 정치 참여를 묻지만, 단호히 선을 긋는다.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판은 국민을 위한 ‘의(義)’가 아니라 위선적으로 뒤로 사익인 ‘이(利)’만을 탐하는 곳이다. 패가망신하기 딱 좋은 도박판 같은 그곳에 발을 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영원히 야인(野人)으로 남아, 부패한 군사법의 심장에 개혁의 메스를 꽂는 날카로운 감시자로 살 것이다. 그것이 칼럼니스트이자 법조인으로서 내가 세상과 교감하는 가장 강력한 상식적인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