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耽羅)는 제주도에 존재했던 왕국이다.
통일신라시대까지 한반도의 나라들과 교류를 하고 후삼국 시대에 고려가 분열된 삼국을 통일한 뒤 현으로 복속되었으며, 400년에 걸친 성주시대 동안 제주 고씨가 성주로서 서탐라를 다스리고 남평 문씨가 왕자로서 동탐라를 다스리는 등 한동안 자치권을 유지하다가 15세기 초반에 조선의 태종 시기에 완전 병합되었다.
전해진 바에 의하면 탐라의 인구는 10만명이었다고 한다
태평양의 외딴섬 이스터섬의 모아이는 바다를 바라보지 않고 육지를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운 바다를 놔두고 황량한 벌판에 볼 것이 뭐가 있다고 육지를 바라보고 있을까?
모아이의 시선에서 이스터섬의 비밀을 풀 수 있다.
이스터섬은 육지에서 3000키로 가장 가까운 섬 핏케인에서 2000키로가 넘게 떨어져 있다.
이스터 섬에 언제 사람이 처음 도착했는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남겨진 뼛조각등 유물의 탄소 측정연대와 그들의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로 짐작해 보면 기원후 900년 정도로 추정이 된다.
이스터 섬 원주민들은 모아이 석상을 어떻게 만들어서 운반하고 세웠을까?
크고 작은 모아이의 크기는 10미터에 달하는 것도 있다. 무게는 100톤이 넘는 것도 있다.
온전히 세워져 있는 것은 25개 정도이다.
나머지 수 백개가 조각을 하던 채석장에 있거나 운반을 하던 도로 옆에 쓰러져 있거나, 모아이를 세웠던 기단 아후에 쓰러져 있다.
세워진 모아이에는 푸카오라는 모자를 쓴 것도 있고 쓰지 않은 것도 있다. 모아이는 왜 푸카오를 쓰고 있을까? 푸카오를 쓰지 않은 모아이는 왜 있을까?
그리고 현재 남아 있는 주민들이야 관광으로 먹고 산다고 하지만, 과거의 원주민들은 황량한 벌판과, 절벽이 많아 어업을 하기도 힘든 곳에서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이스터 섬 원주민들이 사라진 이유는, 환경파괴와 권력 때문이다.
넘처나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먼바다에 나가 돌고래를 잡고 넘쳐나는 육지새, 바다새, 농업생산물을 조리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나무가 필요했다.
다른 섬들과는 다르게 불을 피우지 않고서는 요리를 할 수 없었다.
커다란 카누를 만들기 위해서도, 작업에 쓰이는 그물과 밧줄을 위해서도, 집을 짓기 위해서도, 농업을 위해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도, 점점 나무들은 사라져갔다.
부족장들은 불안해하는 주민들에게 뭔가 보여주어야 했고, 그들의 불안을 잠재울 증거가 필요했다.
부족장은 제사장과 공모하여 드디어 모아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화산석은 섬 정상에 널려 있었다.
채석장에서 만들어 운반하여 해안지역에 기단 아후를 쌓고 모아이를 세우고 나중에는 푸카오라는 붉은 모자를 만들어 씨웠다.
각 부족장들은 서로 경쟁을 하면서 점점 더 큰 모아이를 만들었고, 나중에는 높이 경쟁을 하기 위해 붉은 모자 푸카오가 등장한 것이다.
모아이의 시선이 바다를 향하지 않고 육지를 향한 것은, 오로지 주민들에게 그들의 힘을 과시하고, 모아이라는 신격 존재를 통해 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권력은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시점에 도달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다른 권력자가 그랬듯이.
숲은 점점 더 망가져 갔다. 모아이 작업 과정에서, 육체노동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식량이 필요했다.
모아이를 운반하기 위해서도 많은 나무와 밧줄이 필요했다.
숲이 망가지면서, 농지도 황폐해져갔다.
식량은 부족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커다란 야자수가 사라지자 카누를 만들 수 없어, 돌고래 사냥도 불가능해졌다.
씨족간에 전쟁이 일어나고, 하나의 부족으로 통일되면서 점점더 숲이 망가지고 급기야는 부족장을 믿을 수 없었던 주민들은 쿠테타를 일으켰고, 식량이 점점 더 사라지자 인육을 먹는 카니발리즘이 생겨났다.
제주도의 돌하루방도 역시 이스터섬의 모아이와 같은 권력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물론, 모아이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것이기에 탐라 왕국의 왕은 비교적 소박한 권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행히 탐라 왕국은 조선에 완전히 병합되었다.
아마, 통합되기 전의 제주도 언어는 조선의 언어와는 완전히 다른 외국어 였을 것이다.
오끼나와가 일본에 통합된 과정과 비교하면, 제주도가 조선에 통합되는 과정은 대단히 순조로왔다.
아마, 일본 제국주의 악랄함과 조선 건국 이념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지금도 오끼나와 사람들은 철저하게 본토인과 차별을 받지만, 제주도 사람들은 전혀 차별받지 않는다.
다만, 4.3 사건으로 엄청난 아픔을 겪었지만.
이스터섬의 사람들은 겨우 생명을 유지하다가, 백인에 점령 되었다가 칠레에 복속되었다.
지금은 본토 칠레 사람들이 이스터 원주민을 대신해서 관광으로 먹고 살고 있다.
이스터섬의 백인 침략과 칠레의 복속, 미국의 일본에 대한 선물 오끼나와, 조선의 제주 병합.
과연, 어느 섬이 더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