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0일(토)
* 시작 기도
(룻 3:9b)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구원이 필요한 모압 여인 룻은 보아스의 옷자락으로 덮음을 받습니다.
이는 범죄한 아담이 하나님이 지으신 가죽옷을 입은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것과 같습니다(갈 3:27).
나 또한 나의 죄로 얼룩진 죄인입니다.
하여 나를 새롭게 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옷이 필요합니다.
오늘 이 시간 내가 입고 있던 더럽고 추한 무화과옷을 벗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옷자락으로 덮이기 원합니다.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보아스와 룻을 통하여 오벳을 주셨고 그 오벳을 통하여 다윗이 왔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다윗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왔사오니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반드시 예수가 육신을 입고 유다의 자손으로 오셔야 했기에 그 약속은 성취되었고 나 또한 새 언약 안에서 아들의 생명을 받아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창세전 언약은 오고 오는 모든 세대를 통하여 완전히 성취되오니 그 언약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습니다.
구원의 주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21:10-26
제목 : 여호와를 버리고 그 길로 행하지 아니하더라.
10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도다.
12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3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14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들을 버려 그들의 원수의 손에 넘긴즉 그들이 모든 원수에게 노략거리와 겁탈거리가 되리니
15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 하셨더라.
16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17 므낫세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과 범한 죄는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8 므낫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궁궐 동산 곧 웃사의 동산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9 아몬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22세라. 예루살렘에서 2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므술레멧이요 욧바 하루스의 딸이더라.
20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의 행함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21 그의 아버지가 행한 모든 길로 행하여 그의 아버지가 섬기던 우상을 섬겨 그것들에게 경배하고
22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그 길로 행하지 아니하더니
23 그의 신복들이 그에게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24 그 국민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대신하게 하여 왕을 삼았더라.
25 아몬이 행한 바 남은 사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6 아몬이 웃사의 동산 자기 묘실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요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나의 묵상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아합이 행한 것처럼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겼으며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하였다.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의 제단을 쌓고, 성전 마당에 일월성신을 위한 제단을 쌓았으며, 자기의 아들을 불에 태우는 몰록의 신을 섬기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임명하여 점을 치고 사술을 행하는 등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진노를 샀다.
므낫세는 다윗에게 이르신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역행하며 자기만 아니라 그의 백성들까지 므낫세를 따라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는 더욱 크셨다.
이로 인하여 선지자들을 통하여 므낫세 왕에게 경고하시기를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내리는 재앙으로 인하여 듣고 보는 이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두려워 떨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2절).
사마리아와 아합이 멸망한 것처럼 예루살렘도 멸망할 것인데 그릇을 씻어 엎어놓은 것처럼 예루살렘을 씻어 엎으시겠다고 하신다(13절).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오늘까지 악을 행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자들을 쫓아내서 원수의 손에 넘길 것이고 모든 소유를 빼앗기며 겁탈도 당할 것임을 말씀하신다(14-15).
므낫세가 죽고 그의 아들 아몬이 왕이 되어 2년간 왕위에 있었는데 그 역시 아버지가 섬기던 우상을 섬기는 등 여호와의 길을 버리고 아버지의 길을 따라 악을 행하였다.
그래서 그의 신하들이 반역하여 아몬을 죽였으며 그 백성들은 아몬을 죽인 신하들을 죽이고 아몬의 아들 요시야를 왕으로 삼았다(19-24).
하나님은 다윗을 향하여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하셨다(삼상 13:14).
그렇다면 다윗은 그의 평생에 하나님의 마음을 단 한 번도 아프게 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다.
다윗은 신하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하는 간음죄를 지었고 그로 인하여 충신 우리아를 죽이는 살인죄까지 저질렀다.
그로부터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나단 선지자가 와서 다윗의 죄를 지적할 때, 다윗은 그 자리에 엎드려 자신의 죄를 자복하였다.
솔로몬의 죄로 인하여 나라가 둘로 나뉘어졌을 때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의 왕으로 솔로몬의 신하였던 여로보암을 지명하셨다.
그리고 여로보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왕상 12:38)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은 다윗과 같이 간음죄를 짓거나 살인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여호와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여로보암의 길을 만들어 많은 후대의 열왕들이 자기의 길을 따르게 만들었다.
여로보암의 길이란, 다름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야 했으나 자기 백성들이 남 유다에 있는 중앙성소인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할 경우, 남 유다에 백성들을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여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고 ‘이는 애굽에서 너희를 인도하여낸 신들’이라고 하면서 거기에 제사하도록 하였다.
그뿐 아니라 레위 자손을 제사장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아무 지파 사람이나 자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로 제사장을 삼았다.
초막절 절기 등 각종 절기도 제 날짜가 아닌 유다의 절기와 다르지만 엇비슷하게 하여 분향하게 하였다.
여로보암이 만든 이런 유사신앙이 결국은 이후 열왕들이 따르는 여로보암의 길이 된 것이다.
그 결과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은 다윗의 길을,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게 하는 유사신앙을 만든 여로보암은 여로보암의 길을 만든 것이다.
이 두 길이 곧 열왕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의 대표적인 길이 되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므낫세 역시 다윗의 길이 아닌,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행하여 하나님을 떠난 자가 되고 말았다.
나는 모태신앙인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내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면 온전한 신앙이 아니라 유사신앙으로 살아온 자임을 깨닫는다.
무엇하나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여 신앙생활을 해 온 적이 없는 것 같다.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동안 내가 믿어온 하나님은 철저히 나 중심적이고 지극히 이기적인 신앙의 하나님이었다.
나를 위하여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었다.
내가 꿈꾸고 계획하며 기도하는 것을 들어주시는, 아니 들어주셔야만 하는 하나님을 믿어온 것이다.
그러니 그 신앙이 온전할 리도 없지만, 기도 응답을 받으면 좀 신앙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응답이 없으면 내 맘대로 해석하고 내 뜻대로 행하는 극히 이중적인 잣대로 살아 온 것이다.
때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전혀 하나님 없는 자처럼 살기도 하였다.
삶의 가치관이 하나님이 아니라 내 자신이요 땅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목사가 되어서도 성도들 앞에서 설교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앙하라고 하지만, 정작 나의 삶에서는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괴리감은 나로 하여금 끊임없는 갈등을 겪게 만들었다.
범죄하였으나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 자복하는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시며 그를 받으시는 것처럼 주님은 회개를 기뻐하신다.
그러나 여로보암과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으나 비슷하게 섬기는 그런 모습과, 잘못을 지적했을 때 겸손히 받아들여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대적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무엇보다 싫어하신다.
회개가 없는 삶은 영이 죽은 것이다.
그렇다고 죄 짓고 회개하고, 또 죄 짓고 또 회개하는 것을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종교생활에 불과할 뿐이다.
살아 있는 말씀의 검은 오늘 나의 이런 모습을 찌르고 또 찌른다.
요즘 기도에 눈물이 없다.
눈물이 말라 마치 물 없는 샘처럼 갈급하다.
수가성 여인은 그래도 성분이 좋은 야곱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셨지만, 지금 나는 성분이 좋지 않은 물조차 없다.
내 영이 사막처럼 건조하여 목이 말라 죽을 것 같다.
삼손이 ‘내가 목이 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질 것 같다’(삿 15:18)고 고백한 것처럼 나 역시 그렇게 목이 말라 죽을 것 같다.
주님께서 수가성 여인에게 주셨던 그 물.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그 물을 이 땅에서 구하였으며 만물 안에서 찾았다.
그러니 마시면 또 다시 목마르고, 그러다가 그 물마저 말라버리면 죽을 것 같은 갈증을 느낀다.
나는 안다.
그 물은 오직 그곳에만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다시 그 나라, 창세전 만물 위의 세계로 올라간다.
주님이 주시는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기 위하여 그곳으로 나아간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하는 그 자리가 오늘 내가 맛보는 샘물이 있는 자리임을 안다.
그 자리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자리요, 세상 그 무엇도 빼앗을 수 없는 영광의 자리이다.
이제 그 영생의 맛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알지도 못하면서 성도들에게만 강요하는 그런 거짓 선지자가 아니라 주님의 고난에 온전히 동참하며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내 기쁨으로 주님의 영광이 나의 영광임을 날마다 맛보는 참 선지자로 서기를 원한다.
회개에 가슴을 찢는 심령이 있기를 원한다.
주님이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던 것처럼 나의 기도에 주님의 마음이 담기길 소원한다.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는 소리에 심한 통곡과 눈물이 담겨지길 원한다.
그 안에 주님의 심장을 담아 이제는 유사신앙이 아니라 온전히 주님만 의지하며 나아간다.
복음은 언약 안에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전략이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자는 무엇 하나 우연히 되는 것이 없다.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의 언약과 섭리 안에서 이루어짐을 믿음으로 본다.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받지는 못하였지만, 그 약속을 받은 것처럼 믿고 살았다.
그 믿음을 하나님은 받으셨다.
오늘 나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온전히 신뢰하며 아들의 생명으로 살아 주님이 보신 영광을 나도 보기를 원한다.
말씀으로 교제하는 영생의 삶이 바로 그것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언약 안에 있으나 그것을 몰랐던 우매무지한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복음을 몰랐을 때는 모르니까 그런다지만, 복음을 알면서도 행했던 나의 악함을 굽어보시고 이 죄인을 주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옵소서.
내 영혼이 사함 받아 정결케 되기 원합니다.
주님과의 막힌 담을 허뭅니다.
주의 손이 나를 감싸주시고 오직 주의 영으로 충만케 채워주소서.
말씀묵상이 나의 의가 되지 않게 하시고, 억지로나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 나라를 보기 원하여 영생의 맛을 누리기 원하여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상한 영혼을 붙들어 주시며 혼자 두지 않으시는 주님을 온전히 신뢰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