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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성공최면과 행복한 마음치유™ 』 원문보기 글쓴이: 행복최면사 청은 ™
이 글 들은 지난 날 삶에 대한 방황과 고뇌속에 깊은 통찰과 진리에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삶에 대한 진실을 탐구하면서.. 한 글 한 글 하루에 한 문장씩 쓴 글입니다.
글을 쓰며 내 영혼의 울림을 느끼게 되었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삶에 대한 진실은 오직 나의 선택으로 인한 “내가 설정한 그림”으로 생겨나고, 존재하는 것이며, 그 모든 사건을 통해 나는 끈임없이 성장에 순환고리를 걷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만나는 사람과 사건에서 오는 고통과 힘겨움은 나에 또 다른 모습이며, 그것은 나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는 것!
우리들의 영혼의 여행은 끝없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여행은 자신이 자신임을 증명하기 위해 펼쳐진 축제입니다.
- 마인드 성공코치 이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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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에 서면 우리에겐 어떤 일도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중요한 건 그일을 하는 동안 자신이 어떤 사람이 었는가 뿐이다.
우리는 행복했는가? 다정했는가? 자상했는가? 남들을 보살피고 동정하고 이해했는가? 너그럽고 잘 베풀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했는가?
우리에 영혼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란 것을 알게 되고,
마침내는 자신의 영혼이 바로 "자신"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 신과나눈교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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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음이란 근원적인 가까워지면,
나라는 존재는 자연에 일부에서 나온 하나임에
고개가 숙여지고, 또 숙여집니다.
제가 가진 지식은 너무나 보잘 것 없고,
그것은 방편에 불구 합니다.
진정한 근원에 대한 자각만이 수없이 품어 왔던,
숱한 고민과 허무함을 채워줄 수 있습니다.
2
세상에 대한 철저한 허무감이 밀려올 때가 많습니다.
아직 제가 수행에 1덕목인 세상에 대한 무상함을
깨닫는 과정이겠지요!
허무하고, 애절하게 외롭고 고독합니다.
이 마음을 붙들고, 벗 삼아 나아가라!
3
이 공부는 진심으로 내는데 있는 것이지
상을 내는데 있지 않다.
4
언어와 문자란, 단순히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과 같다.
그건 진리가 아니며, 안내판일 뿐이다.
손가락이 없다고 해서 달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달 그자체가 되어야 한다.
손가락만을 보고 가기에는 우리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5
깨달음에 가장 빠른 길은 진아에 머무는 것이다.
난 진아 머물다 미쳐서 죽고 싶다.
진아를 위한길이 이 세상에 태어난 유일한 길입니다.
[그림출처-만들기나라/노란잠수함]
6
눈을 내부로 돌리면 명상이고 눈을 외부로 돌리면 망상이다.
7
내려놓음, 그것이 도에 길입니다.
8
마음이란, 미쳐 날뛰는 원숭이와 같다.
늘 마음의 행동을 지켜봐야 하며,
늘 지켜보는 자로써 머물러야 한다.
마음에서 벗어나 본질과 더욱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길이다.
9
군인에 무기는 총이며, 교사에 무기는 책입니다.
수행자에 무기는 진실됨과 정성입니다.
늘 고뇌하며 그 고뇌가 진정으로 진실되고,
그곳에 정성이 더해져, 그것은 원력이 되며,
그 원력은 서원한 것을 이룰 수 있는 최고의 도구입니다.
10
부처님의 일생에 관한 글을 또 읽었습니다.
구도에 핵심은 고뇌이며, 고뇌는 추진력을 가져다주는
가장 확실한 도구임을 느꼈습니다.
세상에 대한 무의미함,
무가치성 진정한 가치는
영원한 것임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그림출처-만들기나라/노란잠수함]
11
마음에 빠져 나와 동일시 하고 있으면, 그것은 불행이고, 에고의 삶입니다.
마음에서 벗어나 근원에 삶을 추구하고,
본질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그것은 행복입니다.
전 후자에 인생을 선택했고, 평생을 근원에 머물기로 결심했습니다.
12
내가 이 길을 왜 가냐 누군가 묻는다면,
내가 할 일이란 이거 밖에 없기 때문에 이 길을 갑니다.
혜암스님이 말씀하시길, 참선하기 전에는 죄만지었지 옮은일이란 한적이 없다.
옮고 그름은 깨달음을 얻을 때만이 가능하다고 감히 이야기합니다.
13
오늘은 수행이 한결 부드럽게 잘되는 걸 느낍니다.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트니, 바로 마음의 고요함이 찾아오고,
아직 모르겠지만, 그 느낌이 잔잔한 향기로 내 온몸에 촉촉히 젖어 있습니다.
생활속의 명상을 실천하며..
14
늘 깨워 있다는 건, 무의식의 자동화된 반응에 속지 않는걸 의미한다.
난 늘 내가 선택하는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선택을 한다.
늘 깨어 있어 진정한 진리에 머물자!!
15
문제란 존재 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문제로 보기 때문에 그건 문제가 됩니다.
우리에 또 다른이름은 위대함과 사랑입니다.
우리에 밑바탕에 "존재상태"가 원래 사랑 그 자체임을 기억하고 그걸 통해
세상을 바라 볼때 모든 문제라고 생각했던 환영이 사라집니다.
우리가 해야 할일은 원래에 나를 찾고 나누는 일입니다.
16
내면으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매순간 이런 하늘의 실험들이 찾아옵니다.
사람들을 미워해야 하는 마음,
내 마음의 합리화,
부정적인 마음의 에너지 내 내면 못 보도록
많은 사물이 우리에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내 가슴에 집중해야 합니다.
17
오로지 주시자로 남기위해서는 마음의 힘이 필요합니다.
에고의 나와의 완전한 분리를 위해서는 지극히
고요하고 평정된 상태를 이끌어낼수 있는 마음의 힘이 필요합니다.
돈오자들은 몸과 마음이 겪는 극한 고통에
마음의 힘을 활용해 깨달음에 눈뜬 자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주시자로 바라볼 뿐 입니다.
18
우린 텔레비전 속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 텔레비전에서 벗어나 텔레비전를 시청하고 있는 "나"를 봅니다.
그 텔레비전 속에 "나" 텔레비전을 지켜보는 "나"
이 둘에 이야기를 또 지켜보는 "나"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텔리비전 밖에 지켜보는 내가 있습니다.
이것이 깨달음뒤에 또다른 깨달음이 있다는 깨달은 성현들에 큰 진리입니다.
19
깊은 침묵의 세계로 들어가면 갈수록 우린 우리 자신에 근원에 한층 더 가까워집니다.
높은 뇌파의 활동은 우리가 흔히 마음(에고)에 물질이라 부르는 신경세포속에 DNA 정보를 나라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수없이 많은 신경원에 네트워크에 활동에서 벗어나 주시자(제3자)가 됨으로써 그 활동에 주체가 신경세포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뇌파가 떨어지면, 1차적으로 내몸은 내가 아니라는 주체의 자각이 일어납니다.
2차적으로 수없이 많은 가능성에 다차원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본질과 하나가 됩니다.
뇌파가 떨어지면 떨어질 수록 우린 진정한 자신에 참모습을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림출처-만들기나라/노란잠수함]
20
생각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
한마디로 그냥 내버려 두는 것!
그것이 참 사랑이다.
21
사회적 시스템에 수긍하게 만들어진,
모든 문화적 배경, 치료적 행위, 예술, 종교, 경제시스템은
모두가 인간에 에고와 결부된 기준으로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사회적 에고를 배부르게 하기 위한 전략과 맞지 않으면,
우린 그 사람을 정신병자 취급하게 됩니다.
우린 이 에고라는 딜레마를 분명히 인식하고, 본질적 자각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22
몸은 3차원적 움직임 (좌/우, 앞/뒤, 위/아래)에 묶여 있습니다.
눈을 감고, 자신에 내면을 보면 그 안에 과거와 현재 미래과 함께
공존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즉 우린 몸에 제한적 측면에서는 과거라는 지나간 시공간
미래라는 다가올 시공간속에 묶여 있지만,
내면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주적 움직임 즉 4차원적 움직임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적 고통도 사실은 이 3차원적 문제라기 보다는
4차원 원주적 움직임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23
화를내고 고통받는 나는 나인가?
이것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제3자인 주시자로 남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행복이며, 기쁨입니다.
24
마음(에고)이 마음(고요함)을 관찰하고,
마음의 힘이 강해지면, 오로지 주시자로 남습니다.
그리고 그 주시자인 마음마저 내려 놓으면,
그대는 무의 세계, 단일함에 세계,
본질적 일체 속으로 존재함만이 남습니다.
25
너와 내가 없는 완전한 하나 삼매 며, 깨달음 입니다.
26
지구에는 중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 밖으로 나가면 지구에 중력에 법칙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시공간 또한 지구에서의 개념입니다.
지구 밖을 벗어나면 시공간에 개념은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우리가 업이라 부르는 모든 과정과 현상이
사실은 모두 환상적 체험 입니다.
27
방송, 신문 각종 언론매체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자살과 죽음,
사고 정신이상적 행동과 같은 사건들을 목격합니다.
사실 그들은 가장 깨달음에 가까워 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들은 깨달았을 것 입니다.
28
깨달은 성자가 우리에게와 깨달음을 준다고 합시다.
자신이 준비 되어있지 않다면, 전기에 과부하가 걸리면,
폭발하듯 우린 죽거나 정신이 나가 버릴지도 모릅니다.
주의를 살펴보십시오. 최고의 악인과 당신이 비천하다고 생각했던,
거지나 보잘거 없어 보이는 그들은 사실은 최고의 부처며, 예수입니다.
악인이 당신에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면, 대부분에 사람들은 그를 미워하고,
모든 잘못을 그에게 돌리려 합니다.
그가 계속 당신을 괴롭힌다면, 당신은 도망가거나 싸우거나 아니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당신을 깨닫게 해주기 위한 하늘에 실험이 었습니다.
고뇌가 진실될때 그것은 진정한 수행입니다.
29
내가 했다는 생각을 모두 없애야 합니다.
결국 행위에 깨달음은 그 속에 나는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림출처-만들기나라/노란잠수함]
30
우린 알던 모르던 모든 걸 몸, 마음, 영혼 차원에서
창조하고 계획하고 선택합니다.
다차원적인 우주(나)는 우리에 선택에 의해
그 모습을 창조하고 만들어 냅니다.
31
마음이 지어낸 학문, 예술, 건물, 형상들 속에 우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흉악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우린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톨레글인용)
우린 항상 "상"에 속고 있습니다.
귀신도 악마도 모두 터무니 없는 개념이며,
그것은 마음을 주인 삼을 때 만이 그 모습을 들어 냅니다.
32
간절한 마음, 일체에 한마음,
정성 이것이 구도의 핵심입니다.
늘 매순간 타성에 젖어 있는
자신에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3
마음(에고)은 진실된 세상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에고는 고통입니다. 고통을 고통인지 모르기 때문에
우린 그곳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34
수행자는 칼날 끝에 서있는 것 같이
모든 순간에 예리함을 가지고 마음을 관찰해야 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35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가슴에 품고,
매순간을 살아가는 사람 이 사람을
구도자이며, 성자라 하겠다.
36
본질과 몸을 잇는 중요한 다리는 기 에너지입니다.
근원에 대한 가까워짐은 고요한 내면에 에너지를 느끼는 훈련입니다
37
본질 이야기 - 하나, 큰 바위는 우리의 본성입니다.
큰바위가 쪼개지면서, 수없이 많은 작은 돌멩이가 생겼습니다.
그 개체는 우리들에 "분리된 나 - 에고"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돌멩이가 자신이 큰 바위 였음을 기억하며,
그 곳에 머물때, 도를 깨닫게 됩니다.
본질 이야기 - 둘, 바다는 우리의 본성입니다.
바다에 파도가 출렁입니다.
파도에 물 입자 하나는 우리들에 "분리된 나 - 에고"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물입자는 자신이 원래는 바다 였음을 기억하며,
그 곳에 머물때, 도를 깨닫게 됩니다.
본질 이야기 - 셋, 물은 우리의 본성입니다.
물이 날씨가 추우면 얼음이 됩니다.
물이 고체가 된 얼음은 우리들의 "분리된 나-에고"입니다.
하지만, 얼음이 원래는 물이 였음을 기억하며,
그곳에 머물때, 도를 깨닫게 됩니다.
본질 이야기 - 넷, 바다는 우리의 본성입니다.
바다에 물고기가 헤엄을 칩니다.
바다에 물고기는 우리들에 "분리된 나-에고"입니다.
하지만, 물고기가 원래 바다에서 나왔음을 기억하며,
그 곳에 머물때, 도를 깨닫게 됩니다.
38
참 수행자의 기준은 2가지입니다.
첫째, "영원한것"에 대한 가치추구
둘째, "지금이순간"에 머물며,ㅡ
에고를 관찰하는 눈을 갖고,
동일시인 집착을 내려놓는것 입니다.
39
완전한 몰입을 하다가 그 주위로 서서히 일어나는
잔물결에 생각이란, 대칭을 붕괴를 관찰해야 합니다.
그것은 굉장히 시끄럽고, 비상식적인 형상 또는 끈임없이
반복적인 이미지 형태로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끈임없이 관찰하다보면, 서서히 생각에
대칭의 붕괴가 안정성을 찾아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림출처-만들기나라/노란잠수함]
40
몸과 동일시를 내려 놓는 것,
마음과의 동일시를 내려 놓는 것,
영혼과의 동일시를 내려 놓는 것
그 어느 것과도 동일시 하지 않을때
즉 모든것을 내려 놓을때,
우리는 본질을 깨닫게 됩니다.
(신과집으로인용글)
41
우리는 우리가 설정한 나를 알고 체험하기 위해 동일시를 창조했습니다.
본질에 나를 깨닫는 탁월한 방법은 참 자아 탐구를 통해 지극히
고요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존재-의식-지복에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42
17번째 명제는 위대한 진리입니다.
이 말은 오늘 하나의 본질에서 뻗어 나온 다차원에서 창조된
나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은 "지금이순간(here and now)"만이 존재합니다.
성부-성자-성령,
과거-현재-미래,
몸-마음-영혼,
의식-무의식-초월의식은
모두 하나라는 것입니다.
43
죽고 나면 너희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과
너희보다 앞서 죽은 사람들,
그리고 너희보다 뒤에 죽을 사람들
모두가 너희를 반길 것이다.
(신과집으로- 열일곱 번째명제)
44
시공간이 없다면 인과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를 체험하기 위해 영적인 목적으로 시공간을 창조했습니다.
45
모든 만물은 본질(공空)이란 근원에서 대칭의 붕괴를 통해
창조된 현상들입니다.
수없이 갈라지고 갈라져, 채워져 넘치는 공간은 비워있는
공간으로 또 반대로 계속해서 순환하며 돌아갑니다.
현대물리학에서 밝히는 빅뱅은 하나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빅뱅으로 그로인해 수없이 많은
다차원적 세계가 창조가 되었습니다.
본질에 하나의 " 나"로 부터 출발된 존재는
수없이 많은 "나"라는 존재로 갈라져,
하나를 인식 하기 보다는 그 갈라지고 분리된 "나"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느끼는 우리에 모습이며,
나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그래서 모든 만물이 "나" 인것 입니다.
46
다차원적으로 존재하는 평행우주는 막이라는 형태로
또 다른 나의 존재를 만나지 못하게 가로 막고 있습니다.
막에 가로 막혀 전체의 "나"를 인식할 수 없는 "나"는
마음이란 형태를 통해 인과 즉 시공간 속에 과거-현재-미래를 창조했으면,
그 창조에 이유는 자신이 세운 영적인 계획들을 체험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작은 한계에 체험에서 벗어나 전체의 나를 인식하며
이 막에 실체를 통찰할 수 있는 방법은 참자아 탐구(나는 누구인가?)로
"오직 주시자"가 되어 나라고 규정지었던 감각들을 하나하나 알아채는 것입니다.
지극히 고요해지면, 부분적인 관념 속에"나"에서 벗어나 많은 다차원을 창조한
근원의 "나"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체의 나는 동시적이며,
부분의 나는(평행우주의나) 연속적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연동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신과집으로인용)
세상은 초기에 대칭의 붕괴로 부터 진화 되었고,
순간에 다 창조되었습니다.
둘 다에 창조론은 연동적이며, 진실입니다.
47
느낌은 본질의 첫 번째 생각,
말은 느낌을 개념화한 본질의 두 번째 생각,
행동은 말을 형상화한 본질의 세 번째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신과집으로인용)
뇌 과학과 깨달음의 상관성에 연구로 이 같은 개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뇌간에 생명은 본질의 율동이라고 보았을 때,
구피질(변연계)는 본질의 첫번째 생각인 느낌(감정)입니다.
신피질(대뇌피질)은 두번째와 세번째 생각인 말과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피질(기능-가상부풀리기)에 기능인 시각화는 본질을 들여다 보는데는
유한적 요소들이 많고, 개념화된 생각입니다.
일시적으로는 효과를 줄 때가 많고
필터(왜곡,일반화,삭제)로작용할때가 많습니다.
느낌은 이와는 다르게 본질에 더욱 더 가까운
왜곡되지 않은 언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각자들은 느낌이 일어나면, 느낌과 함께 있을 뿐입니다.
그다음 생각인 말과 행동으로 이어 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필요에 의해 그럴 수 있지만, 대부분 그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혼의 언어이자, 본질에 첫 번째 생각인 "느낌"을 바라보며
본질에 머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48
우리 그리 중요하지 않은 많은 일들로 일상들을 가득가득 채웁니다.
성인은 그것을 "꿈 속에 집안일 하기"라고 하셨습니다.
오감적 차원에 물질적 삶에 묶여 있는 동안에
우린 아무것도 창조한 적이 없으며, 끈임 없이
업에 반복만을 되풀이 했을 뿐입니다.
100m로 결승전에 들어가면, 빨리 도착할 수 있는데,
우린 그리 중요하지 않은 꿈속에 집안일을 하느라,
1000m 달리기로 여기저기 기웃 거리다, 목적지를 잃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에 감각이 깨어나면 깨어 날 수록,
여행에 종착점은 더욱 더 가까워 집니다.
49
돈, 명예, 성욕 모두 신기루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행복과 깨달음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없이 많은 사람에 에너지와
업이 뒤섞여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질에 모든 것을 내려 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모든것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물질은 한낱 신기루에 불구 합니다.
그것을 불이 타면 없어지고, 사고가 생기면, 해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건,
영원한 것에 가치를 두고 끈임 없는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림출처-만들기나라/노란잠수함]
50
순간순간에 감정에 대한 대칭의 붕괴는 우주 형상을 창조하며,
그 감정의 집착은 평행우주에 한 부분을 강하게 형상화 합니다.
우리는 감정이 떠 오를때 수없이 많은 감정에 우주가 존재하며
그것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수많은 선택에서 우리는 그 선택하는 나를 집념을 통해 집요하게
추격해 나가며, 지켜봐야 합니다.
전쟁에서 한명에 병사가 나타날 때 마다 족속 쳐부서야 합니다.
그럴때 형상에 속지 않으며, 어느 방향에 평행우주속에도 있지않고,
그 평행우주를 선택하는 나를 지켜볼 뿐입니다.
칼날 위에서 서있는 섬세한 마음으로 철저한 주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선택이며, 깨달음입니다.
51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가능성은 우리 주변에 충분히 존재 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듯, 세상에 존재하는 주체는 오로지 "나"뿐이 없습니다.
내가 선택한대로 세상에 일들이 생겨나고, 상황들이 창조됩니다.
수많은 우주들에 수없이 많은 소립자들은 그 형상들로 모양을 만들어
우리 눈 앞에 보여 집니다.
우리가 겪는 수없이 많은 상황과 사람들은 사실 자신입니다.
대상은 내 마음이 만들어 낸 형상에 일부로 내 눈앞에 나타납니다.
형상에 속지 않는 철저한 자기성찰을 통한 내려놓음,
참자아 탐구에 대한 지독한 정성과 간절한 마음이
우리에게는 진정 필요합니다.
52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또 인정 하고,
즉 모든 걸 용서할 때, 우리는 진정 모든 걸 내려 놓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도에 길입니다.
53
성부(聖父)·성자(聖子) 성령(聖靈)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몸과 마음 영혼이 따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라,
삼위일체로 하나로 통합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54
모든 집착을 버리고, 나아가라!!
55
모든 상황에서 늘 관념이 일어납니다.
관념에 생각의 힘을 실어주면, 그건 아상이 됩니다.
아상이 반복되면 그건 습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고정 관념입니다.
수행에 가장 중요한 것이 고정관념에서 깨는 것입니다.
고정관념을 깨는 좋은 방법은 지식이아니라
"오직 한마음을 통한 정성" 뿐입니다.
지식은 단지 유지 할 뿐입니다.
정성은 고정관념을 깨 부시고, 영을 성장시킵니다.
56
스승님은 깨달은 사람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깨달은 사람에게는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관념이나 상으로 남아 있지 않고,
물 흐르듯 흐르기 때문입니다.
오직 현재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57
만약 그대가 모든 걸 내려 놓았다면,
그 누구도 당신을 그 사람들에 에고드라마 속에 포함시킬 수 없습니다.
모든 에고드라마는 에너지가 공명할 때 만들어지는 현상들입니다.
모든 것은 환상입니다.
무(無)인 영원성을 취하는 것이
수행의 핵심입니다.
58
⟡ 에고드라마 내려놓기
게임이란, 서로 욕심을 부리고, 머리를 써서 어떻게든 상대를
이겨 자신의 존재감을 키워야 그 게임은 성립됩니다.
그로인해 우리가 말하는 인과와 희로애락의 현상들이 생겨납니다.
인생이란 게임에서도 게임에 성공과 실패,
이김과 짐 승부에 모두를 포기하고, 모든 걸 내려 놓는다면
그에게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통과 즐거움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게임에서 진거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삶의 의미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가장 수지 맞은 일은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의 길을 걸어 갈 때 입니다.
59
부정적인 감정이 떠오르면
그 느낌들을 개념화된 생각과 말로 포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 합니다.
[그림출처-만들기나라/노란잠수함]
60
선인은 모든 상황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습니다.
"화"라는 것은 동일시에서 생겨 납니다.
그 화를 내는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그 나라고 알고 있는 나는 모두가 환상입니다.
우린 화가 나면 수없이 많은 생각과 감정이 일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본질의 바탕에 느낌이 있고, 느낌위에 마음이 있습니다.
선인은 느낌을 넘어 마음에 형태와 있지 않기 때문에
말과 행동을 창조해 내지 않습니다.
마음인 말과 행동은 늘 왜곡된 평행우주를 만들어 냅니다.
에고인 마음은 늘 본질을 못보도록 가리는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그래서 선인은 늘 가장 순수한 1차적 에너지인 느낌을 "그저 바라볼 뿐"입니다.
61
자연은 늘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잡초 한 포기를 유심히 바라 봅니다.
잡초는 관리되지 않았으며, 스스로 존재하는
바람, 비, 태양에 법칙속에 자신에 태어난 본분을 다 합니다.
사람또한 이와 같아 그냥 있는 그대로 나두면 알아서,
잡초처럼 잘 자라고, 의식은 자연스럽게 자유로워집니다.
우리는 행복이니, 성공, 철학, 사상, 종교니 이름을 갖다 붙여두고,
마치 무언가 부족한 것을 관리 하듯, 있지도 않은 한계와 장애물을
넘기위해 부단히도 애를 씁니다.
그 에고(마음=저항)에 체험은 늘 불안정이며, 공허함입니다.
우리에 심장이 애를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명 활동이
이루어지듯 자연스런 있는 그대로 상태가 우리에 참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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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판적사고와 이성적 논리에 너무나 잘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맞냐? 안맞냐?에 논쟁을 벌이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 합니다.
지구에서 작용하는 중력의 법칙이 지구에서만 진실이듯,
우리가 벌이는 논쟁 또한, 그 차원에서만 진실로 통용 될 뿐입니다.
처음에 우리가 본질을 대한 지적 호기심을 가지기 위해서 나누는
대화는 유익할 수 있으나, 대부분에 언쟁들은 불필요 할 때가 많습니다.
불필요한 언쟁이 많아지면 많아 질 수록
우리는 점점 더 본질과 거리가 멀어 집니다
수행자가 피해야 할것 중 하나가 논쟁입니다.
말은 개념화된 관념임으로 실체를 보기에는
왜곡된 요소들이 많이 작용합니다.
말은 마음의 언어입니다.
마음은 늘 변덕 스럽고, 일시적일때가 많습니다.
수행자의 가치는 늘 영원한것에 두어야 합니다.
말은 마음을 왜곡 시키는 도구이며,
느낌은 영혼을 이해하는 도구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개념화 시킨 말을 하기 보다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에 의식을 집중해야 하며,
그것과 동일시를 내려 놓을 때
우리는 본질(지금이순간)에 머물게 됩니다.
63
바다를 헤엄치는 해녀는 물에 대한 두려움이없고, 물에 잘 적응되어 있기 때문에,
몸에 납을 차고 바닷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조개와 해산물을 땁니다.
일반사람들은 물에 대한 두려움이 커 물에 들어가면 허우적거리다
몸이 무거워져, 물에 빠져 죽고 맙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려 구 발버둥 치면,
물속을 빠져나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해녀처럼 모든 것을 바다에 맡기고,
있는그대로 물과 하나가 될 때 자유롭게 물속을 헤엄치고,
평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깨달음도 이와 같아 두려워 하고, 집착하면,
결국에는 물에 빠져 죽고 말지만,
본질에 모든 걸 내맡기고,
지금 이 순간에 "현존"하면, 참 평화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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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인 현존은 "빛"이며, 무의식은 빛이 비추어진 대상(물질)입니다.
무의식인 대상에 빛이 비추면 이 대상은 힘을 잃고 사라집니다.
하지만, 우린 의식의 빛을 제대로 비추어 본적이 없습니다.
늘 그냥 무의식적 대상 속 형상에 속고 살아갑니다.
의식의 빛은 현존이며, 고요한 관찰자이자 지켜 보는자입니다.
의식은 채워진 공간이 아니라, 현시되지 않은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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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과학은 우리 뇌와 깨달음에 관계를 밝히는데 많은 애를 쓰고 있다.
우리뇌는 전두엽(운동), 두정엽(감각), 후두엽(시각), 측두엽(청각)으로 나눈다.
명상을 하고, 뇌파가 고요히 떨어지면, 모든 뇌세포에 시냅스에 파동이 떨어진다.
우리 세상을 3차원으로 인지하고 있던 두정엽에 기능이 사라지면,
우리몸에 시/공간에 형체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깊은 명상 상태에서는 몸이 사라 진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점점 깊어 질 수록 몸을 형성했던, 이미지인 형상은 객관화 되고,
다른 차원에 그림을 보게 된다.
수없이 많은 다차원 우주에 공간 뒤에 본질을 깨달음으로써,
몸-마음-영혼 모두가 하나인 본질에
또 다른 표현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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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는 상황 생기면, 우린 2가지 방식 모두 자기 만에 세계를 창조합니다.
첫째는, 그 대상과의 처음 화가 난거라면,
과거에 유사한 경험을 찾아 상황을 왜곡하고,
그 세계를 이미지화 시켜 대상을 판단한다.
둘째, 그 대상과의 여러번 화가 난거라면,
과거에 지나간 대상과의 상황을 왜곡하고,
그 세계를 이미지화 시켜 대상을 판단한다.
수 없이 많은 다차원 세계의 탄생은 모두 내가 창조한 것이다.
대상에는 아무런 힘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상은 원래 없음으로..
[그림출처-만들기나라/노란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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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다고 해서 상대에게 화를 내면 삶의 목적은 상실 된 채
업이 소멸은 전혀 없고, 윤회를 되풀이 할 뿐입니다.
업인 윤회를 벗어나는 길은 "나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한
"완전한 받아 들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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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흔히 다시 태어난다는 말을 많이 씁니다.
이 말은 진리입니다.
우리는 생사 뿐 아니라, 한 생에서도 수없이 죽고 다시 태어납니다.
수없이 많은 평행우주에 수없이 많은 내가 존재합니다.
나의 계획과 선택을 통해 다른 차원 나에 모습으로
다시 살아가고 또 죽습니다.
모든 원인과 결과는 내가 창조한 것입니다.
이것이 "윤회"입니다.
이 윤회에서 벗어나, 참나가 되는 것이 깨달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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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 몸은 "의식" 없이는 존재 할 수 없습니다.
마음공부에서 말하는 의식은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의식과는 다릅니다.
현대의학에 의식은 그냥 생명활동이 이루어지면, 의식이 있다고 봅니다.
마음공부에서의 의식은 마음에너지가 집중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심기 혈정 ( 마음있는곳 기가 있고, 기가 있는 곳에
혈이 있고, 혈이 있는 곳에 정이 있다.)에 원리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 마음은 이리저리 잡념들로 가득하고,
늘 걱정하고 불안을 달고 삽니다.
그래서 오쇼는, 모두가 주인 없는 집에 살고 있다고 표현했으며,
성철스님은 살아있어도 송장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늘 본질에 대한 의식 상태를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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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에너지 파동이 떨어지면 떨어질 수록 마음이 창조해 낸
세계가 뚜렸이 인식되며, 시끄럽게 요동치며, 공간들은 왔다 갔다
하는 율동성인 양자의 세계를 인식하게 됩니다.
이 율동하는 양자는 단지 배경인 본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양자와에 동일시에서 벗어나, 양자를 있게 한 본질(완전한 침묵)에 머물때,
양자에 요동이 점차 힘을 잃고 사라집니다.
이 양자는 단지 지나가는 행렬에 불과 했습니다.
본질에 대한 완벽한 자각을 통해 합일이 이루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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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빈틈을 불안해 합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말이 끈기면,
그 공간을 상당히 어색하거나, 불안합니다.
우리가 내면의 변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과 할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내려놓고 고요해지고, 침묵하며,
빈 공간을 자각할 때
우리에 삶은 저절로 이루어 집니다.
그것이 참사랑과 행복이며,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전부입니다.
그것이상에 것은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에게 이 빈공간인
"지금 이 순간(현존)"이 있음을 기억하고
머물게 해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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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직선이 서로 만나지 않는 다는 건, 상식입니다.
하지만, 의식이 성장된 현대 과학에서는 이 직선이 언젠가는 만난다고 합니다.
이유는 시공간자체가 직선이 아닌, 아주 미세하지만 휘어 있다고 합니다.
사실 모든 물체는 꽉차있는 형태 같지만,
원자핵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전자와의 사이에는
빈 공간 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론 그 빈 공간 아주 작은 그물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빈 공간을 통해 물체는 율동하며 움직입니다.
우리의 뇌파가 떨어지고 고요해질 수록 이 빈 공간을 인식하게 됩니다.
물체(유)는 빈공간(무) 없이는 절대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빈공간을 "침묵"하므로써, 이 빈공간은 인식할 수 있습니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댓글달아주세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