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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1일(주)
* 시작 기도
주님...
어리석은 자의 특징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입니다(시 14:1).
이 종은 나의 입이나 마음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며 실존하심을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리석은 자임을 고백합니다.
나의 삶 속에서 예수를 인정하며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항상성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믿음 역시 여상(如常)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자의 모습입니다.
나는 주의 심판에 딱 맞는 자입니다.
주님은 이런 나를 아주 진멸하지 않으시고 생명을 주시고자 징계하셨습니다.
그 징계가 나를 살렸습니다.
주님의 심판은 언제나 옳습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오늘은 주일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마다 성령께서 주장하시어 하늘의 신령한 예배가 온전히 드려지도록 붙잡아 주소서.
이 하루도 주님과 연합하여 동행하는 주의 자녀들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22:1-11
제목 :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1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8세라. 예루살렘에서 31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디다요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3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성전에 보내며 이르되
4 너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올라가서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은 곧 문 지킨 자가 수납한 은을 계산하여
5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감독자의 손에 넘겨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작업자에게 주어 성전에 부숴진 것을 수리하게 하되
6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성전을 수리하게 하라.
7 그러나 그들의 손에 맡긴 은을 회계하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진실하게 행함이니라.
8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9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 보고하여 이르되 왕의 신복들이 성전에서 찾아낸 돈을 쏟아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감독자의 손에 맡겼나이다 하고
10 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11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 나의 묵상
요시야는 8살에 왕이 되어서 31년간 다스렸으며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디다이다(1절).
요시야는 다윗의 길을 따라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등 여호와 앞에서 참으로 정직하게 행한 자이다(2절).
그는 왕이 된 지 18년에 서기관 사반에게 명령한다.
너는 성전에 가서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말하라.
성전 문 지키는 자들이 백성들로부터 받은 은을 계산하여 성전 감독관에게 주고 감독관은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어 필요한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성전의 부서진 곳을 고치도록 하였다(3-6절).
그러나 그들에게 맡긴 돈을 일일이 계산하여 보고할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성전의 일꾼들이 아주 정직하게 일하기 때문이다(7절).
한편 대제사장 힐기야는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여 서기관 사반에게 건네주었고 사반은 그 율법책을 읽었다(8절).
다 읽고 난 후에 사반은 왕에게 보고하기를 성전에서 가져온 돈은 다 성전 감독관에게 맡겼다고 하였다(9절).
그리고 대제사장 힐기야가 율법책을 주었다고 하면서 왕 앞에서 그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10절).
그러자 왕은 율법책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 옷을 찢었다(11절).
요시야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는 자가 되어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다윗의 길로 행하는 근래 보기 드문 왕이다.
히스기야 이후로 그의 아들 므낫세가 55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통치하고 이어서 아몬이 므낫세와 같이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하였었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긴 가뭄에 단비와 같은 왕을 하나님은 보셨다.
하나님 앞에서 왕이 정직하게 행하니까 그의 신하와 성전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도 함께 정직하게 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제사장 힐기야를 비롯하여 성전 문을 지키며 백성들에게 돈을 받는 자들이 그러하였다.
나아가 성전의 감독관과 심지어 성전을 수리하는 일꾼들조차 아주 정직하게 일하기 때문에 그들이 쓰는 돈에 대하여 회계보고를 할 필요조차 없다고 왕은 말하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요시야 왕이 그저 인간적으로 성품이 좋고 정직해서라기보다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 앞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역대하 34:3절 이하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대하 34:3-7)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8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제12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리매, 무리가 왕 앞에서 바알의 제단들을 헐었으며 왕이 또 그 제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였으며, 또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사면 황폐한 성읍들에도 그렇게 행하여, 제단들을 허물며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며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대제사장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을 사반이 왕 앞에서 읽을 때 왕은 그 말씀 앞에서 옷을 찢었다고 하였다.
(11절)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온갖 우상들을 척결하였으며 성전을 수리하고 그분의 말씀 앞에서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이처럼 왕의 선한 행실은 그의 신하들에게 선한 바이러스가 되어 전파되었다.
심지어 성전의 일꾼들까지도 정직히 행하여 탐심에 의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즉 코람데오를 실천하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으며 대학과 대학원은 기독교 계열인 전주대학과 대학원을 나왔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교회에서 찬양대 지휘를 하였으며 주일학교와 학생회 교사로 섬겼다.
직장생활을 거쳐 학원을 운영할 때는 ‘바른 지혜와 지식을 가르치는 학원’이라는 원훈을 정하고 코람데오를 실천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우리 학원에 오는 아이들을 전도하여 교회로 인도하기도 하였다.
또한 나의 오랜 꿈이었던 성악을 공부하기 위해서 고신대학교 성악과에 편입하였다.
그 후 고려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목사가 되기 위한 전문 과정을 밟았다.
고신대나 고신대학원의 슬로건은 ‘코람데오’이다.
나는 거의 평생 코람데오라는 슬로건 앞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내 자신을 뒤돌아보면 그 이름에 걸맞지 않은 삶을 살아왔음을 통감한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는 정직하고 진실한 것처럼 행동하였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는 그러질 못하였다.
항상 날 따라다니는 ‘코람데오’의 이름을 무시하였다.
나의 삶에 유익이 되지 않으면 코람데오의 이름을 가리곤 하였다.
에스더 9장에 보면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라는 문구가 3번이나 나온다.
하만의 궤계로 인하여 유다인들을 전멸시키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하만은 죽고 또한 유다인들을 죽이려고 했던 대적들을 유다인들이 진멸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유다인들이 그 대적들은 진멸하였지만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그들의 재산에 손을 대지는 않았던 것이다.
오늘 본문의 왕궁과 성전의 관리들이나 일선의 일꾼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하여 돈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개인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여 왕에게까지 신임을 받는 자가 되었다.
왕에게 신임을 받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신임을 받는 자이다.
큰 일을 하든 작은 일을 하든, 높은 자리에 있든지 낮은 자리에서 일을 하든지 상관없이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서 한다는 마음이 우리를 지배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회를 운영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배당을 짓는데 수십 억, 수백 억, 심지어 수천 억짜리 예배당을 짓고, 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마치 솔로몬 시대의 성전처럼 건물을 거룩함의 상징물로 대변하고 있다.
엄청난 거액의 빚을 지면서 예배당을 지은 후에 뒷감당을 못해서 교회가 부도가 나고 매물로 내놓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목사들의 삶의 내용은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너무 많다.
강단에서 성도들에게 설교할 때는 가장 거룩하고 진실 된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강단 아래에서의 삶은 세속적인 사람보다 못할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돈 문제, 여자 문제, 관계적인 문제 등을 뛰어넘지 못하고 거기에 걸려 넘어져 코람데오를 무색하게 만드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목사들 뿐 아니라 일반 평신도들의 삶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같은 삶의 중심에 바로 내가 서 있다는 것이 가장 비참한 현실이다.
겉으로는 코람데오를 외치나, 속으로는 이를 부정하는 자였다.
요시야 왕은 말씀 앞에서 자신의 옷을 찢으며 아버지의 마음을 마음 깊이 새겼다.
그런데 나는 옷을 찢기는커녕 가슴이 화석화되어 아버지의 마음에서 멀어져만 갔다.
이런 나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였다.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은 말씀의 검이 되어 찾아오셨다.
그런데 그 심판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나를 볼 줄 몰랐던 나에게 복음으로 오신 주님은 심판의 의미를 알게 해 주셨다.
말씀 앞에서 자신의 옷을 찢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하셨다.
(욜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말씀의 검으로 찾아오신 주님 앞에서 나는 마음을 찢어야만 했다.
그리고 말씀 앞에 잠잠히 머무를 때 나에게 주신 심판은 재앙이 아니라 회복과 은혜의 징계였음을 알게 되었다.
요시야 한 사람이 말씀 앞에서 바르게 설 때 그의 신하들까지도 바르고 정직한 사람들로 세워진 것처럼, 오늘 나 한 사람이 말씀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세워지면 주의 성도들이 주 앞에서 정직하게 행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신다.
창 11장의 ‘바벨’은 ‘흩어버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바벨은 곧 심판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바벨 안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담겨 있다.
바로 ‘하늘의 문’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흩어짐을 당한 이들이 그 심판을 통하여 하늘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음으로 받는 자는 공의가 세워지고 그 안에 진정한 평화가 임한다.
거짓 선지자요 삯군이었으며 거짓 목자였던 나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그 심판을 통하여 공의가 세워지므로 이제는 말씀 앞에서 성소를 지으며 주님과 참된 화평의 관계를 누린다.
이로 말미암아 누리는 영생의 기쁨은 말씀묵상을 통하여 오는 즐거움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줄기가 공중의 미세먼지를 깨끗이 씻어내듯 말씀으로부터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은 나의 영혼의 미세먼지를 깨끗하게 씻어내고 맑고 청결하게 해준다.
말씀이 나를 살린다.
말씀에 순종하여 쉐마할 때 주님과의 언약이 유지가 되고 주님은 나의 신랑이 되시며 나는 주님의 신부가 된다.
신랑과 신부는 아버지 품에 거할 때 벌거벗을지라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순전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나는 오늘 이 말씀묵상을 통하여 아버지 품인 창세전 만물 위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곳이 내가 거할 주소이며 주님과 함께 거할 나의 집이다.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영광과 기쁨은 빼앗길 수 없다.
끊임없이 죄의 세력은 나를 넘어지게 만들지만, 설령 넘어질지라도 나는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만물 위의 세계 곧 나의 거할 곳으로 나아갈 것이다.
오늘도 나는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영광을 본다.
주님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된다.
주님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요, 주님의 영광은 나의 영광이며, 주님의 생명은 나를 다시 깨우는 나의 생명이 되었다.
나를 거듭나게 하신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도 복음이 되어 나를 살린다.
내 안에 세포 하나하나까지 살아서 주를 찬양하며 주님과 함께 그 영광을 본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 영혼을 온전히 소성케 하옵소서.
오직 주의 것 되게 하소서.
나의 살점 하나라도 주의 것 되게 하시고, 내 안에 흐르는 피 한 방울이라도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내게 주신 말씀이 나를 살리셨사오니 그 말씀 앞에 잠잠히 머무르게 하소서.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게 하소서.
말씀을 즐거워하지 않는 자를 악인이라고 하셨사오니 내가 주님 앞에서 악인이 되지 않게 하소서.
참으로 복 있는 자는 말씀 앞에 머무는 자임을 뼛속 깊이 새기게 하소서.
그 안에 영생의 기쁨과 복락이 날마다 넘치게 하시고 그 기쁨으로 주님과 춤추게 하소서.
세상의 소욕도, 물질도, 어떤 욕심도 나를 주님에게서 빼앗아갈 수 없나이다.
나는 오직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