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京畿道) 북부권(의정부, 동두천, 연천, 포천)과 동부권(남양주, 가평, 양평)에는 기라
성 같은 계곡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 단연 으뜸이자 명성이 자자한 계곡은 아무래도 포천 백
운계곡이 아닐까 싶다.
이 계곡은 영평8경의 하나로 조선시대부터 썩 잘나갔던 명소였다. <선유담(仙遊潭)이 영평8경
의 일원임> 그 전통과 위엄은 여전히 녹슬지 않아 지금도 수도권의 이름난 계곡이자 피서의 성
지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것을 반영하듯 372번 지방도(포화로)와 나란히 흐르는 계곡
주변에는 식당과 숙박업소, 캠핑장이 즐비하며, 주말과 피서철에는 등산과 나들이, 피서 수요
가 급증해 여전히 2차선을 고수하고 있는 372번 지방도는 물론 인근 이동, 일동까지 차량들로
단단히 몸살을 앓는다.
백운계곡은 백운산 서쪽 자락에서 발원(發源)하여 흥룡사를 경유하는 계곡과
광덕고개 서남쪽
에서 발원하여 372번 지방도를 따라가는 물줄기('선유담계곡'이라고도 함)를 일컫는데, 이들은
백운교에서
하나가 되어 도평천(都坪川)이 되고, 수입리에서 수입천(水入川)과 합쳐져 영평천
(永平川)으로 간판을 바꾼 다음, 전곡 동쪽에서 한탄강(漢灘江)과 합쳐진다.
직행버스가 바퀴를 멈춘 백운동 정류장은 백운교에서 동쪽으로 약 230m 지점에 있는데, 여기서
찻길을 따라 백운교로 가는 것보다는 정류장 남쪽으로 난 다리를 건너 가기를 권한다. 차량 왕
래가 빈번해 그들의 눈칫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약한 매연까지 무심히 떠넘기고 가
버리니 청정한 계곡과 삼삼한 숲으로 이루어진 이곳까지 와서 그런 굴욕을 당하기는 싫다.
백운교 남쪽에는 이동갈비집이 쭉 늘어서 있는데, 그 남쪽에 차량들이 바퀴를 뻗으며 자는 주
차장이 넓게 자리한다. 허나 피서철 직전이고 주중이라 빈 공간이 90%를 넘으며, 식당들도 사
람보다 빈 자리가 훨씬 많아 매우 한산하다. 다들 피서철 대목을 꿈꾸고 있을텐데, 날씨가 그
들의 마음을 몰라주고 비를 마구 퍼부으니 그들도
참 속이 탈 것이다.
백운계곡 주차장을 지나면 삼삼한 숲에 묻힌 오솔길이 나온다. 그 길을 접어들면 채 2분도 안
되어 흥룡사 표석이 있는 흥룡사입구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서 왼쪽 계단길을 오르면 바로 흥
룡사 경내가 펼쳐진다. 이곳은 그 흔한 일주문(一柱門)도 아직 갖추지 못하였으나 계곡과 삼삼
한 숲이 속세의 기운을 털어버리기에 딱 그만이라 이것으로도 일주문의 대체 역할은 충분하다. |
흥룡사 경내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금빛 피부를 자랑하는 똥배 포대화상이 불전함을 들이밀며
돈을 요구한다. 어떻게 절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돈부터 요구하고 있는지 절에 대한 이미
지를 순식간에
부정적으로 몰아놓는다.
그런 포대화상을 지나치면 정면에 우람하게 생긴 대웅전이, 왼쪽에는 요사와 찻집이, 오른쪽에
는 샘터와 공양간이 자리해 있다.
그럼 여기서 잠시 흥룡사의 내력을 더듬어 보도록 하자.
※ 백운계곡을 옆에 낀 심산유곡의 절집, 세속화된 불교의 씁쓸한 흑역사를 보여주었던 현장,
~~ 백운산 흥룡사(白雲山 興龍寺)
부드러운 백운산 봉우리와 삼삼한 숲, 그리고 청결하고 수려한 경치의 백운계곡을 든든한
후광
(後光)으로 삼은 흥룡사는 백운산 자락에 둥지를 튼 조그만 산사(山寺)이다.
창건 시기에 대해서는 신라 말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여 내원사(內院寺)라
했다고 우
기고 있는데, 믿거나 말거나 창건 설화에 따르면 도선은 절 자리를 잡고자 나무로
3마리의 새
를 만들어 날려 보냈고 그중 하나가 앉은 자리가 마음에 들어 절을 세웠다는 것이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절에서 지은 설화일 뿐이며, 조선 초기까지 적당한 기록과
유물이 전혀
없어 도선국사 창건설의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그나마 오래된 유물은 17세기 승탑이고, 몇줄
전해오는 조선 초기 기록도 딱히 신빙성은 떨어져 보이니 아마도 조선 초/중기에
조촐한 암자
나 수행처 수준으로 법등(法燈)을 연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고려 태조 때 비보사찰로 창건되
었다는 설도 있으나 역시나 물음표일 따름..)
조선 초에는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중창했다고 하며, 1407년에는 왕실의 복을 비는 88개 자복
사(資福寺)의 하나로 선정되었는데, 이때 잠시 천태종(天台宗)의 일원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
한
세조는 그의 어필족자(御筆簇子)를 하사했다고 하나 아쉽게도 그 족자는 어느 세월이 잡아
갔는지 전하지 않는다.
그나마 기록과 유물이 보다 확실해지는 시기는 조선 중기 이후이다. 1638년 무영(無影)이 제자
시십(時什), 인해(印海) 등과 법당과 시왕전 등 14채, 500여 칸의 건물을 중건했다고 하며, 불
상을 개금(改金)하고 종을 만들어 창건 당시보다 절이 컸다고 전한다.
1639년에는 무영의 제자
지혜(智惠)가 100여 칸의 상선암(上禪庵)을 지었으며, 1648년에는 청암(淸巖)이 50여 칸의 보
문암(普門庵)을 지었고, 1786년에는 태천(泰天)이 절을 중건하고 이름을 백운사(白雲寺)로 갈
았다.
1922년 설하(渫河)가 대웅전을 중수하고 흑룡사로 이름을 고쳤다가 얼마 안가서 흥룡사로 갈았
으며, 6.25때 절이 잿더미가 된 것을 1957년 지금의 위치에 관음전을 지어 절을 재건했다. 이
후 1982년에
백운당을, 1987년에는 대웅전을 중건했으며, 1990년에 요사인 원각당을 새로 지었
다. 그리고 1993년에는 기존의 대웅전과 백운당을 싹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너른 크기의 대웅
전을 지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평범한 내력을 지녔구나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우려
하는 종교의 지나친 세속화, 그리고 종교 단체들의 지나친 재물 욕심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
적인 사건이 바로 이곳에서 터져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자고로 승려란 부처와 관음보살,
지장보살의 뜻에 따라 자신을 불태우며 중생을 챙기고 깨달음을 향한 수행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거늘 그것을 역행하는 땡중과 절이 너무 많다.
때는 1987년, 절 주변이 백운계곡 관광지로 지정되자 흥룡사 주지는 크게 돈 욕심을 내며 종단
(宗團)의 승인 없이 멋대로 개발업자와 손을 잡고 그들에게 절 땅을 빌려주었다. 허나 개발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개발업자 또한 하나 같이 비리비리하여 개발 주체가 계속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절과 개발업자와의 손실과 갈등이 커지면서 2015년까지 무려 30여 건의 소송에 휘
말렸고, 개발 실패에 따른 손실이 무려 11억에 이르렀다.
욕심꾸러기
주지는 그 부채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고 법원은 절과 절 토지(약 20만 평)를 경매
에 넘기겠다고 통보를 했다. 그러자 주지는 울상이 되어 흥룡사를 관리하는 윗 사찰인 봉선사
(奉先寺)에 애걸을 했고,
봉선사는 절의 정상화를 위해 심사숙고 끝에 그 돈을 치뤄주고 절을
살렸다. (그 돈도 대부분 중생들이 내준 시주금임)
그런 흑역사를 겪은 흥룡사는 그렇게 벼랑 끝에서 살아났다. 땡중들의 돈 욕심에 중생들의 피
땀어린 시주로 이룩된 절이 자칫 홀라당 날라갈 뻔한 것이다.
조촐한 경내에는 법당(法堂)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원각당, 요사, 공양간, 청산다원 등 6~7동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은 포천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청암당승탑이 고작이다. 그외에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묘화당승탑이 있는데, 이들 승탑이 경내에서 그나마 가장 오래된 존재이
자 조선시대 유물로 그들 외에는 고색의 내음은 찾기 힘들다.
삼삼한 백운산 숲에 둘러싸여 청정한 기운이 가득하며, 백운계곡의 청아하고 낭랑한 계곡 소리
에
아무리 무서울 게 없다는 번뇌도 염통이 쫄깃해져 좌불안석이 된다. 첩첩한 산주름에 묻힌
깊은
산골의 절집으로 절 바로 밑에까지 식당과 숙박업소가 즐비하게 들어섰지만
그들 사이에
짧게나마 숲이 완충지대를 이루고 있어 산사의 분위기는 전혀 녹슬지 않았다. 또한
길손들을
위해 찻집과 쉼터 등을 갖추고 있어 백운계곡 나들이나 백운산 등산 때 잠시 두 발을 쉬어가기
에 좋으며, 원각당 옆에는 불교용품과 전통차를 파는 찻집이 있어 일다경(一茶頃)의 여유도 누
릴 수 있다.
※ 포천 백운계곡, 흥룡사 찾아가기 (2016년 7월 기준)
* 동서울터미널에서 이동 경유 사창리행 직행버스(30~60분 간격, 1일 20여 회 운행)를 타고 백
운동 하차 (흥룡사는 도보 6~7분 거리)
* 1호선 의정부역(4,5번 출구를 나와서 가능역 방면으로 도보 5분 거리에 정류장이 있음)과 의
정부터미널에서 138-5, 138-7번 좌석버스를 타고 이동이나 도평리에서 하차, 백운동으로 들
어가는 3번 시내버스(1일 5회)나 사창리행 직행버스로 환승
* 인천종합터미널, 안양(WK웨딩하우스 앞)에서 와수리행 직행버스(1일 8회)를 타고, 이동이나
도평리에서 사창리행 직행버스나 3번 시내버스로 환승
* 승용차로 가는 경우 (경내까지 접근 가능)
① 서울 → 의정부(민락로) → 포천 방면 43번 국도 → 만세교에서 37번 국도로 우회전 → 일
동교차로에서 이동 방면 47번 국도 → 도평교차로에서 우회전 → 도평3거리에서 좌회전 →
흥룡사입구(백운교)에서 우회전 → 흥룡사, 백운계곡
② 서울(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 퇴계원나들목에서 이동 방면 43번 국도 → 서파 → 도평교
차로에서 우회전 → 도평3거리에서 좌회전 → 흥룡사입구에서 우회전 → 흥룡사, 백운계곡
* 흥룡사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38 (포화로 236-73 ☎ 031-535-7363)
* 매년 겨울에 백운계곡에서 '백운계곡 동장군 축제'가 열린다. 보통 12월 말부터 2월 초까지
열리며, 눈썰매와 전통 썰매, 얼음성 놀이동산, 전통 팽이, 눈사람 만들기, 모닥불체험, 눈
조각 전시회, 얼음조각 전시회, 향토음식 체험관, 포천농특산물 판매 등의 행사가 있다.
(축제 문의 ☎ 031-535-7242, 동장군축제 홈페이지는 ☞
이곳을 쿨하게 클릭한다)
* 흥룡사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흔쾌히 클릭한다. |
첫댓글 아이쿠, 새끼 고양이 삼남매, 정말 평화로이 자네요.
흥룡사 순례기, 잘 읽었습니다. 마애불지기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