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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거인과 동행해, 소녀는 성에서 빠져 나왔다.
그건 알 수 없는 도주였다.
본래, 몸을 지킨다면 최고의 장소인 성에서 도망쳐, 방어가 엷은 숲으로 도망친 것이다.
———위험이 닥쳐와 있다.
그, 피할 수 없는 사실을 감지한 건 소녀 쪽이 빨랐다.
…… “적” 이 천천히 성에 다가온다.
그것이 강대한 것이라고 감지하기에, 소녀는 성의 방벽을 최대로 하고, 나타날 “적” 에 대비해서 거인을 깨웠다.
검은 강철의 몸을 가진 거인, 버서커.
이성을 빼앗겨, 그저 소녀의 명령에 따르기만 하는 파괴의 화신.
그 호위와 성의 방어가 있다면, 어떠한 적이라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자신을 타이르면서, 소녀는 견뎌낼 수 없는 불안에 뚜껑을 덮었다.
그러나.
적이 가까이에 닥쳐왔을 때, 옆에서 거인은 고했다.
도망쳐라, 라고.
이성을 빼앗겨, 입을 닫았을 터인 광전사조차, 눈앞에 닥쳐온 “무언가” 에게는 이길 수 없다고 깨달은 것이다.
그 순간, 소녀는 달리고 있었다.
그런 건 알고 있다.
그런 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성의 외벽에 손을 댄 그것은, 자신들이 대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길한 그림자는 햇빛을 등에 지고 퍼지기 시작해, 그야말로 거대한 그림자가 되어, 손쉽게 외벽을 넘었다.
———진다.
자신은 어쨌든, 버서커는 저것에겐 이길 수 없다.
싸우면 틀림없이 져서, 버서커는 자신의 서번트가 아니게 된다.
그것이 불안의 정체다.
소녀는 패배가 아니라, 자신의 서번트를 잃는 것을 우려해서 성에서 도망쳤다.
검은 거인에게 안겨서 숲을 달린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보다 무게를 더해서 등을 덮쳐 눌러온다.
——도망칠 수 없다.
이 불안, 공포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다, 라고 소녀는 막연히 깨닫고———검은 거인은 발을 멈췄다.
「호오. 현명하군,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왔나」
눈앞에는 고목 같이 늙은 마술사.
그 옆에는, 흰 해골 가면을 쓴 암살자가 대기하고 있다.
마토 조켄.
그것이 고향의 성을 나올 때 들은,마키리의 마술사인 건 한눈에 알았다.
「——마토 조켄. 성배에 선택되지도 않은 것이, 마스터 흉내를 내고 있는 거네」
검은 거인에서 내려와, 소녀는 노인과 대치한다.
그 눈동자에 두려움은 없다.
소녀와 거인이 위협을 느낀 것은, 결코 눈앞의 적은 아니니까.
「호. 성배에 선택된다, 라니 하찮은 소리를. 성배는 마스터 따위 선택하지 않지. 성배라는 것은 받침그릇에 지나지 않는 것.
거기에 의사가 있고 성별(聖別)을 하다니, 너까지 교회의 선전에 쏘인 건가?」
「…………………………」
유쾌한 듯 웃는 노인을, 소녀는 냉담한 눈동자로 바라본다.
……확실히 노인의 말대로, 성배는 선택하지 않는다.
마스터는 성배에 선택되어, 서번트는 성배의 힘으로 형체를 부여 받아, 마스터에 의해 현세에 머무른다.
그 전제는, 의도적으로 왜곡되어 전해진 것이다.
성배전쟁의 목적이 거꾸로인 것을 소녀는 알고 있다.
성배는 그저 부어지는 것.
마스터는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의식의 일단으로서 준비되는 것.
그리고 서번트라는 것은, 그저 문을 열기 위한 것——
「……흥. 당신이야말로 뇌가 상한 거 아냐, 조켄.
그릇이 되는 성배에 의사는 없지만, 마스터를 고르는 대성배에는 의사가 있어.
본래 이 토지에 원형이 있기에, 당신들은 영령을 불러내서 성배를 채우려고 했지.
——뭐, 당사자인 당신이 그걸 잊어버릴 정도니까, 마키리의 피는 쇠퇴했겠지만」
소녀의 목소리는 차갑다.
틀림없이 조소인 그것을, 노인은 커커 웃으며 받아들인다.
「아니아니, 걱정할 필요는 없네. 마키리의 쇠퇴도 여기까지. 일은 이루어져 가고 있어서 말이지.
예정으로는 다음 의식에서 행할 터였지만, 이번은 운 좋게 좋은 말을 얻게 돼서 말일세.
나의 비원은 앞으로 한 수 쓰면 이루어지려 하고 있지」
「그래. 그럼 마음대로 해? 나, 당신에게 흥미는 없어.
나 이외의 그릇 따위 마음에 안 들지만, 어차피 실패할 테고.
방해는 안 할 테니까, 얌전히 땅속으로 돌아가면 어때?」
「그렇게 네가 말할 것도 없지. 이 늙은 몸에 해의 빛은 괴로워서 말이지, 일이 끝나면 서둘러 옛집으로 돌아갈 게다.
허나——역시 말이지, 이렇게나 너무 잘 되면 거꾸로 불안이 커지지. 만일의 사태를 위해, 네 몸을 받겠다.
여기서 성배를 확보해두면, 나의 비원은 반석이지」
——노인에게 귀기가 켜진다.
하얀 해골이 흔들 하고 일어나지만, 노인의 의사에 반해 움직임을 멈췄다.
「—————」
보면 안다.
흰 가면의 암살자는, 소녀를 지키는 거인에게 압도당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힘으로는 쓰러뜨릴 수 없다.
공격해 들어가면, 칼질 한 번에 양단된다———
그렇게 확신했기에, 암살자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흥. 주인이랑 닮아서 겁쟁이 서번트네. 그렇게 죽는 게 무서우면 안 싸우면 되는데.
너도 그렇고 조켄도 그렇고, 그렇게 자기 목숨이 소중해?」
「—————」
대답은 없다.
해골 가면은 말을 하지 않고, 대신에, 그의 주인이 소리 높이 웃음을 터뜨린다.
「아아, 소중하고말고! 나의 소망은 불로불사, 이 녀석의 소망도 영겁에 새겨지는 자신의 이름이라 말이지.
우리들은 같은 목적을 위해, 이렇게 매진하고 있다는 거다」
「……제정신이야, 당신? 성배에 거는 소망이 불로불사라고?」
소녀의 눈동자에 혐오가 깃든다.
노인의 입가는 더욱 비틀린다.
그 매도. 그 매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라고 하기라도 하는 듯이.
「당연하지. 보라 이 육체를. 시시각각 썩어, 썩은 내를 내고, 살뿐 아니라 뼈도 녹이고,
이러고 있는 지금도 뇌수는 열화되어 쌓은 지식을 잃어가는 게다.
———그 아픔. 살아있으면서 썩는 괴로움을 네가 알겠나?」
「……자업자득이잖아. 사람의 몸은 백 년의 시간을 견뎌낼 수 없어. 그걸 넘으려 하는 거니까, 대가는 필요해.
그거에 견뎌낼 수 없다면 사라지면 돼. 괴롭다면, 죽으면 편해질 수 있는 거 아냐?」
「—————커」
노체가 떤다.
마술사를 기침을 하듯이 등을 떤 뒤.
「커커, 커커커커커……! 역시 그렇게 나왔나, 아인츠베른!
네놈들도 역시 천 년을 계속 같은 사상이지! 필경은 인형, 역시 인간에겐 다가갈 수 없군!」
그렇게, 진심으로 우스운 듯이 홍소를 터뜨렸다.
「……뭐라고?」
「———천치. 잘 듣도록 해라, 겨울의 딸이여.
사람의 몸에, 죽음보다 더한 원통함 따위 없다.
부패되어 구더기의 묘판이 되는 육의 아픔 따위, 자신의 죽음에 비하면 뇌장의 고름이나 같지.
자기의 존재야말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진리. 죽으면 편하게 된다니, 그거야말로 살아있지 않은 증거가 아닌가.
그렇기에 너는 인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급조된 몸으로는 앞으로 1년도 가동하지 못하겠지.
단명으로 운명 지어진 인조는, 인간의 번뇌는 이해할 수 없다는 거다……!」
「——그래, 이해할 수 없어. 당신은 인간 중에서도 특례인걸.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서, 자신의 수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다니, 미쳤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아.
이봐. 당신,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아?」
「물론. 나는 죽을 수는 없지. 이대로 죽고 싶지는 않다. 아직 세상에 머물러, 생을 잇지 않으면 안 되지.
허나 그것도 이미 한계. 그렇기에 썩지 않는 몸, 영겁불멸의 그릇을 원한다.
———그걸 위해」
「그걸 위해 성배를 손에 넣으려는 거야? 죽음이 두려우니까, 성배를 구하는 거야?」
「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인간이 있나?
잘 들어라, 어떠한 진리, 어떠한 경지에 도달한다 해도 헛수고. 자기의 소멸, 세계의 종언을 극복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알아둬라. 눈앞에 살아남는 수단이 있고, 손을 뻗으면 닿는다고 하면
——누구를, 설령 세계 자체를 희생으로 삼아서라도 손에 넣는 것이 인간이라고 말이지……!」
「——그럼, 당신은 자신이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 다른 인간을 전부 희생으로 삼는다는 거야?」
「물론이지. 그걸 통해 나의 소망이 이루어진다면, 온 세계의 인간을 한 명 한 명 죽이며 돌아다니고 있겠지.
——인간의 탐욕은 다하지 않는 것.
너도 역시 나무들 한 그루 한 그루가 수명을 연장하는 묘약이라고 하면, 이 숲 따위 눈깜짝할 사이에 먹어 치우겠지.
비록 그것이, 겨우 하루에도 미치지 못하는 연명이라고 해도 말이지.
자신의 하루를 위해 세계의 일부를 죽여간다.
그 소망은, 이 숲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온 세계의 나무들을 죽이게 되겠지」
「그 벌채에 의해 세계가 멸망하든 알 바 아니지.
당연하잖나? 본래, 인간이라는 것은 그렇게 해서 이렇게까지 퍼지고, 자라고, 늘어, 번영하고 완전히 비만이 된 유상무상.
거기에, 이미 연쇄해야 할 법칙 따위 성립하지 않는다.
결국 파탄이 올 거라면, 나 한 사람이 발을 맞추지 않아도 누구도 이론(異論)을 들어 참견할 수 없지……!」
기쁘게 노인은 이야기한다.
그걸 놀란 눈으로 바라본 뒤.
「——기막혀. 그렇게까지 잃어버린 거야, 마키리」
소녀는, 소녀의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뭣, 이?」
「생각해 내. 우리들의 비원, 기적에 이르려고 하는 갈망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 사람의 몸으로 있는 것에 구애되며,
사람의 몸인 채, 사람에 속하지 않은 지점에 도달하려고 하고 있었는지를」
「—————」
홍소가 멎는다.
노마술사는, 무언가, 먼 하늘을 올려다보는 듯이 뚫어지게 눈을 뜨고.
유스티치아
「——흥, 인형 따위가 잘도 말했다. 선조의 흉내도, 이미 각인됐다는 건가」
추악하게 형상을 일그러뜨리고, 흰 소녀를 응시했다.
「———이제 됐다. 장난은 여기까지다. 네 몸은 필요하지만, 마음 따위에 볼일은 없지.
아인츠베른의 성배, 이 마키리 조켄이 받겠다」
「—————」
노인의 그림자가 지면을 긴다.
……그것에 응해서, 소녀를 덮쳐 누르고 있었던 중압이 증대되어 간다.
검은 거인은, 소녀의 명을 기다리지 않고 출진했다.
「안 돼……! 돌아와, 버서커……!」
소녀의 목소리는 닿지 않고.
검은 거인은 선풍을 동반하고, 덮쳐 누르는 그림자를 후려쳤으나———
바람소리가 난다.
나무들을 떨게 만들며 숲을 질주하는 그것은, 어딘가에서 들은 기억이 있는 바람 우는 소리다.
「—————」
점점 땅울림이 커진다.
……발신원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숲의 저편.
이미 눈앞에 닥쳐온, 깊게 겹쳐진 나무들 저편에서, 최강을 다투는 싸움이 행해지고 있다———
「!」
발이 멎는다.
나무들이 없는, 트인 광장에 나가려고 한 순간, 온 힘을 다해 발을 멈추고 몸을 숨겼다.
「버서커……!?」
토오사카도 나무그늘에 몸을 숨기고, 광장의 참상을 직시하고 있다.
——광장은, 말 그대로 전장이었다.
칼날을 주고 받고 있는 서번트는 셋.
한 명은 검은 거인, 버서커.
또 하나는 흰 해골 가면의 암살자, 어새신.
그리고 또 한 명———또, 한 명은.
「……잠깐. 저거, 설마」
토오사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
……잘 들리지 않는다.
바로 옆에서 속삭여지고 있을 터인 목소리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세 명째 서번트.
검은 갑주로 몸을 감싼 그것은, 처음 보는 상대다.
하지만, 그것은,
「———그런, 일이」
동시에, 내가 잘 알고 있는 녀석을 연상시켰다.
검은 거인이 우렁차게 외친다.
바위산도 부수는 일격은 헛되이 허공을 가르고, 지면을 날려버린다.
「—————」
그것은 어지러이 나는 흙덩이에 기가 꺾이지도 않는다.
거칠게 부는 바람의 원흉은 저 검은 검사인 건지,
검은 갑주는 버서커의 대검과 흙덩이를 빠져나가, 무방비한 몸을 한 번 긋는다.
고통스런 소리는 거인의 것이다.
모든 공격을 무효화할 듯한 강철의 육체.
그걸, 검은 검사는 어렵지 않게 절단한다.
무명(無明)의 어둠이 빛을 삼키듯이, 검은 버서커의 옆구리를 검정으로 덮어 갔다.
「안 돼, 도망치는 거야, 버서커……! 그 녀석에게 당하면 돌아올 수 없게 돼……! 이제 안 싸워도 되니까, 빨리……!」
우는 듯한 이리야의 목소리.
「헛수고다 헛수고. 그 녀석에게 붙잡혀서야 이미 벗어날 수 없지.
2대 1이라면 또 모르되, 3대 1로는 그 같은 대영웅도 여기까지겠지」
조소하는 목소리는 마토 조켄의 것인가.
이리야와 조켄——두 마스터는 서로의 서번트를 방패 삼아 마주하고 있다.
조켄 앞에는 버서커에게 패했을 어새신.
이리야의 앞에는, 전신을 검은 것에 침식당한 버서커.
……그 발치는 검은 늪이 되어 있었다.
지면은 흙이 아니라, 바닥 없는 늪이 되어 버서커의 움직임을 봉하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라, 늪에서는 검은 덩굴이 뻗어, 거인의 손발마저 구속하고 있었다.
……알고 있다.
저건 틀림없는 그 “검은 그림자”다.
그런데도, 한 순간
「………………」
무언가,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 듯한 생각이 든다.
「———!」
한층 높은 검극에 눈이 뜨인다.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버서커는 강하다.
저 “검은 그림자”에 삼켜지려 하고 있는데도, 검은 검사와 호각으로 싸우고 있는 거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
검은 검사는 힘 안 들이고 지면을 달려, 버서커에게 일검을 날린다.
서번트로서의 실력은 호각이나 그 이상이라고 해도, 버서커는 시시각각 자유를 빼앗겨 간다.
……그렇다면.
그 백중한 실력은, 초 단위로 검은 검사에게로 기울어갈 뿐이다.
「———흠, 승부가 났군.
뒤는 맡기겠다, 어새신. 이 이상 여기에 있으면 말려들지도 모르지.
버서커가 삼켜지는 대로, 아인츠베른의 딸을 잡아서 돌아오도록 해라」
조켄의 모습이 흐릿해진다.
녀석은 어새신을 남기고 이 숲에서 멀어져 간다.
「……알겠나. 그 녀석은 눈에 띄는 것이라면 분별 없이 삼킨다.
그게 마력 덩어리라면 더욱 그렇지. 아인츠베른의 딸, 쉽사리 삼켜지지 않도록 해라」
……모습만이 아니라, 기척까지 엷어져 간다.
조켄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어새신과 버서커.
그리고, 검을 드높이 쳐든, 검은 검사의 모습이었다.
「———안 돼. 그러면, 버서커라도 죽어버려. 그러니까, 이제 도망쳐, 버서커」
멍하니,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이리야는 말을 입 밖에 낸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검은 거인은, 포효와 함께 전진했다.
「뭐———」
그 전진은, 폭풍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버서커는 지면을, 무릎까지 잠긴 검은 그림자를 차서 흩으면서 돌진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다.
버서커를 봉하고 있는 건 발치의 늪만이 아니라, 검은 그림자는 온몸에 휘감겨 거인을 속박하고 있다.
나아갈 수 없다.
검은 그림자에 몸을 침식당한 버서커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그렇기에, 거인은 그 몸을 찢었다.
한 손으로 가슴을 잡고, 으직, 소리를 내며, 검은 그림자를 잡아 뗐다.
——휘감긴 살째로, 뼈가 들여다보일 정도까지, 자신의 살을 벗긴 것이다.
거구가 달린다.
선풍을 동반한 일격은, 이번에야말로 검은 검사를 깨부순다.
아마도 최후의 일격.
자신의 살을 벗기고, 빈사가 되면서도 뿜어낸 일도가 필살이 아닐 리가 없다.
그걸.
검사는, 최강의 일격으로 받아 친다.
「싫어———그만둬, 버서커……!」
이리야가 달린다.
거인의 발치에 펼쳐진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것에만 몰두해서 버서커에게로 달리기 시작한다.
「이리야………!」
여기서 나가도 아무것도 안 된다.
저 “검은 그림자”에게도 검은 검사에게도 이길 가망 따위 없다.
그래도———지금은, 이리야를 말려야 해……!
「돌아와, 안 돼 이리야———!」
나무그늘에서 뛰쳐나간다.
버서커에게로 달려가는 이리야를, 바로 옆에서 꽉 껴안는다.
……긴장으로 마비된 귀에는, 광전사의 포효와, 강한 바람 우는 소리와,
시각조차 덮을 정도, 폭음이 흘러 들었다.
이리야를 껴안고, 폭풍에 견뎌내지 못하고 지면에 쓰러진다.
시야는 하얀 상태고, 일어서지조차 못한다.
……아니.
일어서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
……몸이 뜨겁다.
에미야 시로의 중심, 심지에 잠든 것이, 지금 그 번뜩임에 공명하고 있다.
정체는 알지 못하고 이유도 확실하지 않지만, 이 열은 지금 그 보구와 공명한 거라고 감지할 수 있었다.
「—————정말」
시야가 죽어 있는 것처럼, 호흡도 죽어 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안구에 저 검이 새겨져 있는 한, 인간다운 기능 따위 돌아오지 않는다.
「—————말도 안 돼」
홀려 있다.
단 한 순간, 살짝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에, 정말로 마음을 빼앗겼다.
……수많은 보구 중에서도, 저것은 현격히 다른 환상이다.
세세한 조형, 정교하게 단련된 철로 말하자면, 웃도는 보구는 많이 있겠지.
그러나, 저것의 아름다움은 외관이 아니다.
아니, 아름답다 따위의 형용으로는, 저 검을 더럽힐 뿐이다.
검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오로지 존귀했다.
사람들의 상념, 희망만으로 엮인 전설.
신화에 의지하지 않고, 사람의 것이 아닌 업에도 속하지 않고,
그저 마음만으로 단련된 결정이기에——저 검은 공상의 몸으로, 계속해서 최강의 자리에 존재한다.
——시력이 돌아온다.
하늘은 검붉은 불꽃에 비춰져, 한밤중처럼 어둡다.
숲을 양단한 빛은, 기실 어둠 그 자체였던 것인가.
불꽃은 소리도 없이 계속 타고 있는데도, 공기는 의연히 차가운 상태.
저것은 산소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얼리는 것인가.
어둡게 비춰지면서도, 숲은 더욱 기온이 내려간다.
「—————」
그, 검은 불꽃을 등에 지고, 검사가 서 있었다.
한 손에 이리야를 껴안은 채, 들이대진 검을 노려본다.
검사로부터는 살기도 적의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때문에 죽임을 당한다고 공포에 빠지고, 동시에, 분해서 이를 깨물었다.
——이건 다르다.
이래서야 다른 사람이다.
살기와 적의만이 아니다.
……그녀에게는.
이전 그렇게나 느껴졌던 높은 품격마저, 전무했다.
투구가 깨진다.
버서커의 마지막 일격 때문이겠지.
맨 얼굴을 드러낸 적은, 딴판으로 변해 있어도, 틀림없는 그녀였다.
「세이, 버」
「—————」
대답은 없다.
금색으로 변색된 눈동자는 아무것도 나타내지 않고, 그저, 엎어진 적을 내려다보고 있다.
「———시로」
이리야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다.
눈앞에 검이 들이대지고, 세이버의 등뒤에서는, 버서커의 유해 같은 것이, 검은 그림자에 가라앉고 있었다.
자기 서번트의 패배와, 목전에 닥친 죽음.
그것에, 어린 소녀가 무서워하지 않을 리가 없다.
「—————세이버」
쓸데없는 감정을 뿌리친다.
이리야를 한층 세게 안고, 남은 오른팔에 힘을 넣는다.
———지금은 멍해져 있을 때가 아니다.
이리야를 구한다.
이리야를 구해서, 에미야 가에 돌아간다.
그렇다면, 여기서 겁내면서 죽음을 기다릴 수는———!
「———!」
세이버의 검이 다시 돌아와 벤다.
그녀는 일어서려고 한 나를 베려 하고, 순간——옆에서 소사된 화살 3연발을 튕겨내고 있었다.
「아쳐……!?」
이리야를 안은 채 일어선다.
「멈추지 마라! 이리야를 데리고 잽싸게 도망가라!」
부딪치는 검과 검.
아쳐는 세이버를 저격하고, 지체 없이 베어 들어갔다.
「윽…………… ! 」
「————」
그러나, 그것도 위안에 지나지 않는다.
신속하게 파고들어 뿜어낸 아쳐의 두 칼은, 손쉽게 세이버에게 튕겨졌다.
「큭……!」
아쳐의 기색이 이상하다.
보니 저 녀석의 발치에도, 검은 그림자가 휘감기기 시작하고 있었다.
「——꼴사납군, 아쳐.
정순한 영령은, 저것의 주계층(呪界層)에는 거스를 수 없지. 지금의 네놈은, 이 숲에 가득 찬 원령과 큰 차이가 없다」
……냉담한 목소리는, 틀림없이 세이버의 것이다.
그녀는 수월하게 검은 그림자를 밟아 부수고, 그대로
「큭……!」
손쉽게, 아쳐를 등뒤의 숲까지 날려버렸다.
「뭐———」
저 그림자에 발목을 잡혀 있었다고는 해도, 쌍검으로 방어에 들어간 아쳐를, 방어 위에서 어렵지 않게 베어, 날려버리다니.
「—————」
……그리고, 또 반복이다.
세이버는 입을 다문 채 우리들과 대치한다.
——그 눈이.
이리야를 넘기지 않으면 죽인다, 라는 절대적인 의사를 말하고 있었다.
「……시로」
팔에 감긴 이리야의 손이 떨어진다.
그것이——자신을 내줘도 괜찮다, 라고 하는 것 같아서, 마지막 스위치가 들어갔다.
「———물러나 있어. 숲까지 가면 토오사카가 있어. 거기까지 가면 어떻게든 돼」
이리야를 뒤로 밀어젖히고, 자유로워진 왼손을 목도에 댄다.
……자세는 정안(正眼).
세이버가 파고들어 오는 것과 동시에, 모든 힘과 마력을 때려 넣어준다.
「—————」
지금은 그것뿐이다.
나에겐 세이버에게 할 말 따위 없다.
사과 따위 할 수 없고, 돌아오라고도 할 수 없다.
그녀가 입을 다물고 있는 이상, 그건,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세이버는 적으로서 눈앞에 있다.
그렇다면, 온 힘을 다해 싸우는 것 정도밖에, 그녀에게 응할 방법은 없다.
「윽………………」
……조준을 맞춘다.
동귀어진 따위 노리지 않는다. 그런 전법은 통용되지 않는다고 세이버 자신에게 배웠다.
자신의 죽음을 전제로 한 일격은, 실력이 백중하는 자에게만 통하는 것.
나와 세이버의 역량으로 봐서는 동귀어진 따위 고급스러운 건 노릴 수 없다.
따라서, 노리는 건 단 일격.
투구가 깨졌다, 라는 건 두부에 다소 대미지를 입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 시도한다.
자신은 살아남고 적을 쓰러뜨린다.
그, 절대적인 이미지 아래서 싸우지 않으면, 세이버와는 승부도 못 된다—!
「—————」
온다……!
피해라, 피해라, 피해라, 피해라……!
꼴사나워도 좋다, 지면을 기어도 상관없다, 우선 이 일격을 피하지 못하면, 이리야를 지키는 것도———
「아」
——죽었다.
어설프게 세이버와 시합을 한 만큼, 그게 1점 뺏기는 거라고 몸으로 알았다.
매 같은 일검은 좌측 상단으로부터.
벼 이삭을 베는 날카로운 일격이, 에미야 시로의 무방비한 목을 후려친다.
……그러나.
목은, 언제까지고 붙은 상태였다.
세이버의 검은, 내 표피 한 장 파고든 곳에서 멈춰 있다.
「—————」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는, 역시 여전히 아무 말 없이 검을 집어넣고, 몸을 돌렸다.
「———!」
……설마, 세이버가 검을 멈춘 이유라는 건 저건가.
지면에 펼쳐진 검은 늪.
거기에서, 그 “그림자”가 기어 나오려 하고 있다.
……틀림없다.
저건 이전, 공원에서 봤던,
저주 덩어리라고밖에 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존재다——
「내 역할은 끝났다. 나머지는 귀공에게 맡기지」
「고맙군. 손쉬운 일이다, 광인에게 패한 실점을 되찾을 수 있지」
세이버는 검은 늪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버서커와 마찬가지로, 철벅철벅 소리를 내며, 검은 그림자에 잠겨갔다.
「—————」
그걸, 마지막까지 지켜봤다.
——어째서 그녀가 이 세상에 남아있는 건지, 어째서 적으로 돌아선 건지는, 내가 알 바가 아니다.
서로 적이 된 이상 싸울 뿐.
원래 이 싸움은 그런 것이었다.
「—————」
……다만, 그래도.
그날 밤, 내가 더 강했다면——그녀를 저런, 검고 탁한 모습으로 만들지 않아도 됐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에미야 군……!」
「———윽」
토오사카의 목소리를 듣고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눈앞에는 물결치듯 서서히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와, 해골 가면을 웃음으로 일그러뜨린 어새신이 있다.
「도망치자, 이리야……!」
이리야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한다.
「—————」
이리야는 버서커가 삼켜진 늪을 슬프게 일별한 뒤, 눈물을 참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숲을 달린다.
앞에는 선행하는 토오사카의 등.
등뒤에는, 나무들 틈을 빠져 나와 쫓아오는 어새신의 기척.
「에미야 군, 뒤……!」
우리들이 신경 쓰이는지, 이미 도망쳤을 터인 토오사카는 속도를 늦추고 돌아본다.
「윽……!」
바로 뒤에 적이 육박해 있는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뿌리칠 수 없다.
추적자는 서번트 어새신이다.
이리야를 데리고 있는 상태에선 어떻게 뿌리치———
「———거기까지다. 너는 필요 없어」
「에……?」
바로 귓가에서, 불길한 목소리가 났다.
시선을 옆으로 옮기자, 거기에는
단검을 핥으며 웃는, 흰 해골 가면이 있었다.
「즈———!?」
흰 해골이 날아간다.
우리들의 바로 옆에 나란히 달리고 있었던 어새신은, 그 옆구리에 발차기를 맞고 튕겨져 나간 것이다.
「……흥. 기습이 아니면 애송이 목도 떨구지 못하는 거냐, 삼류」
말하면서, 아쳐는 발을 멈추지 않는다.
「후미는 맡겠다. 너는 이리야를 데리고 도망쳐라.
——서둘러라, 저것에 따라 잡히면 끝이다」
아쳐의 시선은 어새신과, 그 안에서 다가오는 무언가에 향해져 있다.
「—————」
……쫓아오고 있다.
저 그림자는, 지면을 검게 침식하면서 우리들을 쫓아오고 있다———!
「아쳐, 저건……!?」
「전의(詮議)는 나중이다. 달려라 애송이. 이리야의 손을 잡은 이상, 마지막까지 지켜내라」
아쳐는 약간 속도를 늦추고, 우리들의 뒤에 붙는다.
……그 한 순간.
달려가기 직전, 아쳐는 매우 미안한 듯한 눈으로, 이리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항하는 검극을 뒤로 하고 숲을 빠져나간다.
등뒤에서는 우리들을 쫓아오는 어새신과, 그걸 저지하는 아쳐가 계속해서 대결하고 있었다.
「으, 그———」
공격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몇 번째인가 후퇴를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어새신.
아쳐와의 대결은 호각.
틈을 봐서 나에게 던지는 단검도 맞고 떨궈져, 어새신은 아무리 봐도 공격을 해도 꺾이질 않아 애먹고 있다.
그러나, 그건 어새신이 약한 것이 아니다.
「하, 하압———!」
열 겹 스무 겹의 투검을 튕겨내는 아쳐.
그 기백은 이제까지와 비할 바가 아니다.
———승세는 아쳐에게 있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지금의 아쳐는 귀신 같이 강했다.
「으———네놈, 어째서 움직일 수 있지……!?」
혼신의 일격이 베어 떨궈져, 후퇴하면서 어새신은 목소리를 낸다.
그걸.
「뻔한 거지. 나는 다른 녀석들처럼 정통한 영웅이 아니다. 정순하지 않은 영령이라면 저 진흙과 동위.
즉———」
승기로 본 건지, 아쳐는 역주하는 형태로 파고들어,
「너 정도는 아니지만, 이 몸도 비틀린 영령이라는 거다…………!」
일도 하에, 흰 해골을 양단했다.
「기———!」
검은 옷이 여기저기로 흩어진다.
어새신은 깨진 가면을 손으로 누르면서 도주한다.
그건 재정비하기 위한 후퇴가 아니라,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도주다.
검은 서번트는 아쳐로부터 벗어나, 나무들의 어둠으로 모습을 감춘다.
「잘 됐군……! 이걸로 따라 잡힐 걱정도 없어졌다……!」
「수고했어, 아쳐. 지쳤지, 당분간 쉬어도 괜찮으니까 영체로 돌아가 있어」
완전히 안심한 얼굴로 토오사카는 말한다.
「———린!」
그, 등뒤에서.
「———, 토오」
나무들의 그늘에서 생겨나듯이, 그것이, 떠올라 있었다.
「에, 뭐야?」
뒤를 돌아본다.
동시에, 검은 그림자는 그 촉수를 뻗어———
「토오, 사카———」
달려도 제 때에 대지 못한다.
나는, 토오사카의 몸이 검은 촉수에 꿰뚫리는 걸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되려다,
「크———」
토오사카를 밀쳐내고 꼬챙이에 꿰인, 아쳐의 모습을 봤다.
「에……?」
나가 떨어진 토오사카는, 멍하니 아쳐를 올려다보고 있다.
「—————」
아쳐는, 끝나 있었다.
아직 숨은 붙어있고, 출혈도 적다.
몸을 꿰이던, 그게 급소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재생은 가능할 터.
……그래도, 아쳐는 이제 싸울 수 없다고 알아버렸다.
……저것은 서번트를 죽이는 것.
어떠한 강력한 영령이라고 해도, 그 몸이 서번트로서 소환된 이상, 저 “검은 그림자”는 당해낼 수 없다.
그걸, 이유도 없이 막연히 이해했다.
「거짓말……아쳐, 뭐, 하는 거야」
……토오사카도 감지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아쳐를 부르며, 안정되지 않은 발걸음으로 일어서서, 그대로———
「오지 마……! 빨리 도망쳐라, 바보……!」
아쳐의 질타에, 움찔 몸을 멈췄다.
——검은 그림자가 약동한다.
숲이 죽는다.
주위에 있는 모든 마력이 저 그림자에 빨려 간다.
「———」
얼빠지게도, 그게 물풍선 같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이미 꽉 차서 터질 것 같은 풍선에, 아직 물을 붓고 있다.
풍선은 한계 이상으로 부풀어 올라, 파열해서, 그 내용물을 밖으로 쏟아버릴 것 같은 좋지 않은 예감이———
「안———좋아」
말려 든다.
여기에 있으면 완전히 삼켜진다.
……아쳐는 몸에 꽂힌 촉수를 뽑고, 토오사카에게로 달리기 시작한다.
토오사카는 아쳐에게 맡기고 나는이리야를 지킨다.
이 자리에서 둘에게 손을 뻗을 수는 없다.
토오사카에게는 아쳐가 있고, 이리야에겐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버서커의 대리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리야, 엎드려……!」
억지로 이리야를 쓰러뜨린다.
그대로, 이리야를 가리듯이 위에서 감싼 순간.
시야와 지각이, 검정 일색으로 물들여졌다.
「아———」
뜨겁다.
몸이 날아가 버릴 것 같다.
응축되어, 해방된 마력의 파도는 폭풍이 되어 숲을 침범한다.
없다.
시야는 새카맣다.
이렇게 확실히 보이는데도 어둡다는 건, 검은 태양이라도 떨어져 온 건가.
몸이, 없다.
그러니, 틀림없이 태양의 열에 녹은 거다.
몸이 없다.
아픔보다, 촉각이 없는 상실감이 기분 나쁘다.
「하———아———아———」
하지만 그건 곤란하다.
몸이 없으면 이리야를 지킬 수 없다.
검은 그림자는 이리야를 데리고 가려고 한다.
거기에, 오른팔로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이리야의 몸을 오른손으로 안고, 여하튼 지면에 달라붙은 것이다.
「하———아」
그걸 통해, 간신히 알았다.
몸은 있다. 그것도 당연한 게 몸이 없으면 이리야는 지킬 수 없다.
……진짜, 야단스럽게 평정을 잃었군.
없어진 건 왼팔뿐.
치익, 소리를 내면서 깨끗하게 사라진 건 왼팔뿐이고, 몸은 분명히 남아 있다.
……다만, 그래도 상실감은 변함없다.
두 개 있었던 것 중 하나가 없어졌을 뿐인데도.
마치 몸이 없어져버렸다고 생각할 정도로, 큰 무언가가 빠져버렸다.
「—————」
……사라져 간다.
지금 그걸로 힘을 다 썼는지, “검은 그림자”는 흔적도 없이 녹아갔다.
……이리야는, 무사했다.
귀가 마비됐는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다.
토오사카는……어떻게 됐을, 까.
아쳐는……있었다.
붉은 외투를 새빨갛게 물들이고, 지금이라도 사라질 것 같을 정도로, 약해져 있다.
……이상하네.
어째서, 여기에 라이더가, 있는 걸까.
「———제정신인가요. 그런 짓을 하면, 당신은」
「생각할 필요도 없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건 둘이지만, 이식하면 확실하게 한 명은 산다.
……어차피 이 몸은 한계다. 이대로 사라질 거라면, 한쪽 팔을 베어내 봐야 다를 게 없지」
아쳐와, 라이더가, 이야기하고, 있다.
……뭐가 어떻게 돼 있는지.
그 녀석은, 마지막으로,
「보통이라면 죽겠지. 사람의 몸에 영체를 이어서야 살 수 없다.
그러나 나와 저 남자는 특례지. 린이 눈을 뜨면, 처치를 잘 해주겠지」
토오사카의 머리카락을, 단 한 번, 사랑스러운 듯 가지런히 해 주고 있었다.
———시야가 어두워져 간다.
숲에 검은 태양은 이제 없다.
그렇다면, 이건.
내 의식에, 검은 어둠이 드리워져 온 건가.
「———여기까진가. 잘 있어라, 토오사카」
그런 나 같은 목소리로, 아쳐는 이별을 고했다.
“그림자가” 흔들린다.
피에 젖은 붉은 기사와, 지면에 앉은 채 망연해 하는 토오사카 린.
거기서 5미터 정도 떨어진 장소에, 은발 소녀와, 손을 잡은 채 가만히 서 있는 에미야 시로의 모습이 있었다.
……그림자가 흔들린다.
그림자는 고목처럼 줄어든 뒤, 복어처럼 부풀어올랐다.
아니, 그 독살스러움은 더 추악한 심해어의 그것이겠지.
그림자의 팽창은 멈추지 않고, 수치를 모르게도 끝없이 부풀어올라, 숲을 새카맣게 물들였다.
———순간.
붉은 기사는 토오사카 린을 감싸고 절명하고, 에미야 시로는, 운 좋게도 살았다.
숲의 지면에 요철이 있었던 것이 좋게 작용한 것이다.
퍼지는 검은 그림자는 움푹 패인 곳에 있었던 에미야 시로를 피해서 지나갔다.
다만, 우묵한 곳에서 나와 있었던 왼팔만은, 그 행운을 받지 못하고——
「———!」
꿈에서 깼다.
라이더를 시로의 호위에 보내고 나서 한나절.
에미야 저택에서도 상황을 알 수 있도록, 서번트와 시야를 공유하고 있었던 마토 사쿠라는, 그 광경에 현실로 끌려 돌아왔다.
「하———아, 으…………!」
구역질이 난다.
서번트와 공유하고 있었던 시각을 억지로 끊었기 때문에, 시야는 실명한 것처럼 하얗게 탁해져 있다.
잠들어 있었던 몸은 땀을 흘리며, 조금이라도 숨을 들이쉬고는, 순간——
「윽……하, 아……!」
목덜미까지, 위 속에 든 것이 올라왔다.
탈의실에 달려들어간다.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호흡을 하지 않고 세면대에 달라붙어,
「우, 욱, 으…………!」
참지 못하고, 가슴 속에 소용돌이치고 있었던 걸 토해냈다.
「———아」
고개 숙인 채 어깨가 오르내린다.
긴 머리카락은 커튼처럼 흔들려, 거울로부터 얼굴을 숨긴다.
「……거짓말. 선배, 손이」
망연히, 아까 그 악몽을 다시 떠올린다.
……그 영상은 틀림없다.
에미야 시로는 은발 소녀를 감싸고, 왼팔을 잃었다.
그것도 어깻죽지부터, 흔적도 없을 정도로 용해됐다.
「———나, 무슨, 그런 생각을」
해 버렸던 거지, 라고 사쿠라는 자학한다.
등에는 오한과 묘한 고양감이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뭘 해야 하는지도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는 건, 자신이 싫다는 것뿐이다.
……이전, 그녀는 생각하고 만 적이 있다.
에미야 시로가 밖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다치면, 이제 위험한 처지에 놓이지 않아도 된다, 라고.
「잘못이야……그런 거, 잘못이었어」
그렇다, 잘못이었다.
그런 건 아무런 해결도 되지 않는다.
밖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다치면 된다, 라니, 얼마나 경솔한 소원이었던가.
그녀의 소원과는 관계없이, 에미야 시로는 상처를 입었다.
밖에 나갈 수 없기는커녕, 생명에 관계되는 상처를 입었다.
그 둘에 차이 따위 없다.
다친다, 라는 건 그런 것이다.
몸의 일부가 결손 된다는 그 불행을, 어떻게, 좋은 일인 양 소원하고 말았던 건지.
「윽———아, 으, 아…………!」
구역질은 가라앉지 않는다.
위 속에 든 것을 전부 토해내도 구토는 멈추지 않는다.
위액과 피.
잘게 다져지는 듯한 복부의 아픔과 목의 상처는, 자신을 책하는 벌 같다,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수십 분 뒤.
위액조차 말라, 겨우 구역질이 가라앉고, 그녀는 평정을 되찾았다.
하아하아 하는 목소리.
몹시 거친 호흡과, 괴롭게 오르내리는 어깨.
수십 km 계속된 마라톤을 마친 뒤처럼, 두 손을 세면대에 대고 숨을 가다듬으며,
「——하지만 이걸로, 이제 선배는 싸울 수 없어」
황홀한 목소리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입에 담았다.
짧은 중얼거림.
여전히 숨결이 거친 모습으로 얼굴을 든다.
거울에 비친 자신은, 죄악감에 눌려 찌부러져 있다.
죄송한 듯 고개 숙인 얼굴은, 에미야 시로의 안부를 염려하기에 그런 것이다.
그녀는 진심으로, 한 점의 거짓도 없이, 에미야 시로의 무사를 기원한다.
거울에는, 입가를 비틀며 웃는 옆얼굴이 비춰져 있었다.
첫댓글 흑화 세이버 등장~~! ㅎㅎ
잘보고갑니다
잘봐주셨어요^^
이런 사쿠라의 모습을 보고 사쿠라를 죽이려는 길가를 보고 감격한 1인
흑화 세이버 등장에 아쳐가 성해포를 주는군요 담편에는 시로 성해포달고 버석이랑싸울려나?
엇비슷한 시기일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