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의 원전》은 2,500년의 인류사를 총망라한 현장 기록, 역사의 크고 작은 사건을 직접 목격한 목격자들의 기록이다. BC 430년 아테네의 역병에 대한 투키디데스의 기록을 시작으로, 타키투스가 기록한 불타는 로마에 대한 기록,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처형 장면, 타이태닉호 침몰 장면, 아우슈비츠 가스실 현장 등 우리가 역사책 속에서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을 목격자들의 생생한 기록을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해준다. 2,50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발생한 ‘바로 그 시간 그 자리에 있던’ 현장의 기록 181개를 9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담은 것이다.
날것 그대로를 기록한 역사의 가치
무엇이 진짜 역사인가? 무엇이 가공되지 않은 실제 사건인가?
흔히 르포르타주란 보고기사(報告記事) 또는 기록문학으로 흔히 ‘르포’라고 줄여 말하는 장르다. 하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르포’라는 단순한 개념보다는 ‘현장 목격 문학’으로 좀 더 규모 있게 바라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이 책을 엮은 존 캐리는 “르포르타주란 목격자가 기록한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구경꾼, 여행가, 살인자, 희생자, 기자 등 다양한 필자들의 기록을 선별했다. 기록물의 특성답게 글쓰기를 전업으로 하는 작가들만이 아니라 순수 아마추어들의 온전한 기록이라는 점 등도 이 책의 가치를 한결 높인다. 플라톤, 투키디데스, 마크 트웨인, 샬럿 브론테 등과 같은 철학자나 문인과 함께, 전쟁에 참전한 소총병, 우연히 사건을 목격한 행인 등의 희로애락이 담긴 주관적 언급도 필수 불가결하게 드러난다. 이것이 이 책의 원전들이 일반 르포기사와는 뚜렷이 다른 목격 문학의 틀을 갖춘 점이다.
세계사 과목 암기의 대상으로 익숙했던 백년전쟁, 워털루전쟁, 프랑스 대혁명, 세계 양차 대전과 같은 대사건도, 막상 그로 인해 피와 눈물과 땀을 뿌려야 했던 실제 현장 속 주인공들의 증거 기록으로 만나게 되면 180도 전혀 다른 역사의 체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검은 스타킹에 모피 코트를 입고 당당히 사형장으로 걸어간 희대의 여성 마타 하리의 처형 장면(p.631), 독배를 마시고 온몸이 경직되는 소크라테스가 “수탉 한 마리 값을 치르지 않은 게 있으니 꼭 갚으라”고 제자들에게 부탁하는 최후(p.41), 원자폭탄을 싣고 나가사키로 향하는 폭격기 비행사가 폭탄투하 직전 동료와 나누는 아이러니한 대화(p.774) 등 인간과 삶과 역사라는 관계의 존재성을 다시금 되짚어보게 만든다.
역사 교과서에 소개될 법한 유명 사건 외 무명 기록자들의 사사로운 목격은 흔치 않은 읽을거리다. 토끼사냥에 맛을 들여가면서 ‘살해’라는 순결의 상실에 길들여지는 한 아이를 관찰한 기록(p.806), 쿠알라룸푸르 함락의 날 먹을 것을 찾으러 혈안이 되어 있던 한 걸인에게 발견된 깡통 속에서 튀어나온 슐레징어 테니스공(p.696) 등 소소한 하나의 장면이나 시선 등을 리얼하게 묘사한 기록에서도 또 다른 독서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역사는 이처럼 별것 아닌 시선 하나하나가 모여 진행된 것에 다름 아닐 테니까.
그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역사를 가능케 하는‘현장 기록’의 원전
“내 죽음은 고통이 아니거늘 왜 소란이냐.” 죽음의 문턱 앞에 이른 소크라테스는 울며 매달리는 제자들에게 오히려 호통을 친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할 때 불구덩이를 피하는 사람들 속에서 자연현상을 관찰하다 화산재에 매몰되어 죽은 대(大) 플리니우스,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는 풍습에 순응했던 인도 여인들, 멕시코에서 종교재판의 죄수들로 끌려온 영국인들의 처절한 고문담, 여자들이 발가벗고 목욕을 하러 가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순수 그 자체의 노르웨이 어민들, 거의 승리해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은 넬슨 장군의 최후는 조선 이순신의 그것과 너무나도 흡사하고, 신사의 나라로 정평이 난 영국 남자들이 매춘부를 어떻게 대하는지 적나라하게 고발한 프랑스인의 기록 등등…….
타이태닉호 침몰 순간, 구명정 보트에 탄 1급 귀족들은 보트에 자리가 넉넉함에도 바다 위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구하러 가지 않았고, 나가사키로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는 사명을 안고 비행 중인 미국인 조종사는 “이 한 방으로 전쟁이 끝났으면……” 하고 중얼거린다. 2차 대전 종전 후, 나치 독일을 이끌었던 10명의 전범들이 하나하나 교수형을 당하는 현장을 숨 막히게 담아낸 미국 기자의 보고, 월남전에서 친구가 된 베트남 소년을 죽음으로 떠나보낸 미국 병사, 한국전쟁 때 총 맞아 죽은 어미의 저고리를 헤쳐 젖을 무는 한 아기의 모습 등……. 《역사의 원전》은 어떤 소설책에서도, 어떤 역사책에서도, 어떤 회고록에서도 볼 수 없는, 혹은 그것들을 죄다 아우르는 독서의 즐거움을 충분히 전달해줄 것이다.
이제 경직이 사타구니에 이르렀을 때, 그때까지 얼굴을 덮고 있던 이불을 치우며 그분께서 말씀하셨다네. 이 세상에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셨지. “크리토여, 우리가 이스쿨라피우스에게 수탉 한 마리 값을 치르지 않은 것이 있다네. 잊지 않고 갚아주기 바라네.”
-온몸에 독기가 퍼져나가는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
그 흔쾌한 태도는 슬픔보다 기쁨을 느끼는 사람 같았다. 옷을 벗기는 데 협조적인 동작을 취했고, 벗겼던 토시를 손수 도로 꿰는 데는 그 서두르는 품이 마치 어서 떠나기를 바라는 사람 같았다. 즐거운 미소까지 지으며 이런 말을 했다. “이렇게 옷을 벗겨 주는 서방도 가진 적이 없었고, 이렇게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옷을 벗어본 적도 없었다.”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처형 직전
그 가엾은 여인들이 살해당한 것은 15일, 우리가 교량에서 반도들을 격퇴시킨 뒤였습니다. 그들의 살해를 명령한 두목 놈은 그저께 포로로 잡혔고, 지금은 길에서 200야드 벗어난 위치의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습니다. 밧줄 매듭을 잘못 매어서, 그가 떨어질 때 올가미가 그의 턱에 걸렸습니다. 두 사람이 그의 다리를 하나씩 붙잡고 목이 부러질 때까지 잡아챘습니다. 야만스러운 범죄에 대한 이 지상에서의 보답으로 합당한 것이었다고 제게는 생각됩니다.
-인도 ‘세포이 항쟁’ 당시, 영국 부녀자를 살해한 인도인을 처벌하는 모습
나는 비상갑판으로 달려 올라가 고무보트 하나를 중간갑판으로 던져 내리는 일을 거들었다. 이탈리아 여자 하나가 아기 둘을 안고 있는 것을 보고 아기 하나를 받아 안고 여자에게 바다로 뛰어들게 한 다음 나도 아기를 안은 채 물로 뛰어들었다. 수면 위로 올라와 보니 안고 있는 아기는 죽어 있었다.
-타이태닉호 침몰 당시 어느 화부(火夫)의 기록
지금 이 순간에는 목표로 선정된 몇 개의 도시 중 어느 것이 사라지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일본 상공의 바람이 결정을 내려줄 것이다. 만일 두터운 구름을 우리의 일차 목표지 위에 데려다 놓는다면 그 도시는 살아남을 것이다. 적어도 오늘은. 그 도시의 주민들은 얼마나 고마운 운명의 바람이 자기네 머리 위로 지나갔는지 영원히 모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바람이 다른 도시 하나에는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나가사키 투하 직전, 원자폭탄을 실어 나는 비행기 조종사의 기록
편저자의 ‘문헌 수집력’과 편역자의 ‘역사 지식’의 결합
《역사의 원전》이라는 두툼한 책 한 권을 완성시킨 것은 당연히 본문 역할을 하는 원전들 그 자체지만, 이 책에 또 하나의 가치를 부여한 것은, 바로 수많은 원전을 골라 엮은 편저자와, 그리고 국내판으로 옮기면서 번역과 동시에 원전 해설까지 맡은 편역자의 힘이다.
이 책을 구성하는 수많은 역사 원전들을 긴 세월에 걸쳐 찾아내고, 걸러내는 작업을 성공시킨 주인공은, 역시나 《지식의 원전》의 엮은이였던 옥스퍼드대 영문학과 명예교수 존 캐리다. 그는 국가나 언어권을 제한하지 않고 서양사 전체를 총망라하여 태산같이 쌓인 원전들을 수집하고, 검토하고, 선별했다.
존 캐리 교수는 이 책의 서문에서, 현장기록 원전을 선별했던 기준을 굉장히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가령, 글을 잘 쓰고 못 쓰고의 여부는 전혀 중요치 않다고 전제하며, 단 ‘정말 내 눈으로 직접 봤다’고 할 만한 믿을 수 있는 기록자의 신뢰성에 바탕을 두고 책에 실을 원전들을 뽑았다. 그리고 사건 현장의 다급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빠르고 숨이 차며, 단순하지만 사실감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문체의 힘이 팽배한 글들도 그의 손에 걸려든 원전들이다.
영국판 원서에는 원전마다 한 문장의 해설 또는 그마저도 없이 실려 있다. 국내판 작업에 앞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특별히 국내의 대표적인 역사학자 겸 번역가인 김기협 선생이 번역과 함께 원전의 역사적 배경 설명을 해설해주는 편역자로 참여했다. 이는 교양으로서의 역사 읽기, 독서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양의 지평을 충분히 넓혀주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의 몫으로 작용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하여 어쩌면 이 책 《역사의 원전》은, 당시 기록자들의 사실 목격담과 더불어, 후대 인물인 편저자와 편역자의 해설을 통해 시대에 따른 역사관의 변화된 양상까지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도 볼 수 있다. 흔히 ‘손가락을 보지 말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달을 보라’고 하지만, 이 책의 편역자는 ‘달보다는 가리키는 손가락을 들여다보는 것’ 즉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 그 자체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원전의 독자들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해에 이 병을 빼놓고 질병이 유난히 없었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바다. 어떤 병이라도 걸린 사람은 모두 이 병으로 옮겨 갔다. 혹은 건강하던 사람도 아무런 분명한 이유 없이 갑자기 이 병에 걸렸다. 처음에는 머리에 몹시 열이 나고 눈에 충혈과 염증을 일으키며 입안, 혀와 목구멍 양쪽 다 핏빛으로 붉게 변하고, 숨에서 부자연스럽고 고약한 냄새가 나게 된다.
-〈아테네의 역병〉, 본문 25쪽
바닷물이 해안에서 멀리 빠져나가자 많은 바다 동물들이 마른 모래밭에 널려 있었다. 육지 방향에서는 삼지창 모양으로 꿈틀대는 불길로부터 무시무시한 연기기둥이 솟아올랐다. 헤쳐질 때마다 거대한 혓바닥처럼 날름대는 불길을 드러내는 것이 마치 번갯불을 확대시켜 놓은 것 같았다.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 본문 57쪽
이스트 앙글리아에 한 마을이 있는데, 축복받은 왕이자 순교자 에드먼드의 고귀한 수도원으로부터 4~5마일 떨어진 곳이라 한다. 마을 근처에 ‘울피트’라 불리는 오래된 동굴이 몇 있다. 영어로 ‘늑대굴’이라는 뜻이고 이웃의 마을 하나[울펫]는 여기서 이름이 나왔다.
-〈초록색 아이들〉, 본문 73쪽
‘리저드로부터 130마일 지점…… 런던 지하실 살인사건의 범인 크리펜과 그 공범이 1등 승객 중에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매우 강하게 듦……(생략)…… 공범은 소년으로 분장하고 있으나 목소리, 태도, 체격이 여성임에 틀림없음.’
-〈크리펜 박사의 체포〉, 본문 525-526쪽
됭케르크는 이제 검은 물감과 붉은 물감만으로 그린 연습작품 모양이었다. 불길, 연기, 그리고 밤 그 자체가 뒤얽혀 죽음과 파괴의 무시무시한 풍경을 빚어내고 있었다. 온통 적과 흑이었다. 왼쪽 오른쪽 몇 마일 밖, 칼레와 니외포르의 해안포대에서 이 도시로 대형 포탄을 쏘아 올리는 하얀 빛이 이따금씩 번득여 변조(變調)를 만들어줄 뿐이었다.
-〈됭케르크 해안〉, 본문 664-665쪽
얼마 지나자 물에 가라앉을 것 같았다. 너무나 추웠다. 어떤 종류인지 보트 하나가 가까이 있는 것을 보고 전력을 다해 그리로 헤엄쳐 갔다. 엄청나게 힘들었다. 거의 탈진한 상태에서 손 하나가 보트 위에서 뻗쳐와 끌어올려줬다.
-〈타이태닉호 2〉, 본문 542쪽
매스컴 시대 이전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는지? 르포르타주가 거의 모든 사람에게 공급되지 못하던 그 시절에 과연 무엇이 그 역활을 대신하고 있었는지 굳이 묻는다면, 가장 그럴싸한 대답은 종교다.
르포르타주는 현대인이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하는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파악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준다. 또한 현대인에게 시시한 일상사에서 벗어날 기회와 함께 자신보다 더 큰 현실에 소통하고 있다는 환상을 부여한다.
이처럼 르포르타주가 종교의 자연스러운 후계자라고 본다면, 왜 르포르타주가 죽음이라는 주제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종교는 전통적으로 죽음에 대한 인간의 대응책으로서, 여러 형태의 영원성을 약속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혐오감과 공포심을 줄이거나 심지어 없애주는 역활을 해 왔다.
종래의 사관이 문명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었음에 반해, 근대의 사관은 정치적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되었고, 정치적 입장의 대립을 반영하는 사관의 대립이 일어났다. 이 대립으로부터 역사를 적극적, 투쟁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나타난 것이다.
민족 간의 대립, 계급 간의 대립을 뒷받침하는 목적의 역사 연구와 서술만이 국가와 사회의 지원을 받아 하나의 방대한 역사 산업으로 발전한 것이 근대역사학이다.
정치적 메시지, 특히 대립 지형의 메시지를 뽑아내는 것이 역사학의 수명이 되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라는 것은 민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지키는 내용과 막는 대상이 무엇이냐 차이가 있을 뿐, 절대적 신념과 결의를 울타리를 쳐서 사람들의 관점이 편협한 방향으로 묶어놓고 외부와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역할을 역사교육이 맡아왔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다른 자세를 모색해 볼 계기를 맞고 있다. 근대 세계의 양대 모순 중 계급 모순은 장래가 아직 불투명하지만 민족 모순은 해소되어 가는 것이 분명하다.
많은 학자들이 연구와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역사학의 집단 식중독에서 사람들이 벗어날 수 있는 효과적 처방이 나오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의 원전 같은 책이 치료의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해설ㆍ옮김 김기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