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 바라라
한번은 목회자 기도회에서 같은 조에 편성된 목회자들이 가진 문제가 다 심각하였습니다.
한 분은 개척한지 오래되었지만 교인이 다 떠나간 교회 담임목사였습니다.
한분은 늦은 나이에 이제 교회를 개척한 담임목사였습니다.
한 분은 적은 수의 청년부를 부흥시켜야 할 책임맡은 부목사였습니다.
한 분은 부흥하는 교구 옆 교구를 맡게된 부목사였습니다.
한 분은 부흥을 일으킨 목사의 후임으로 가게 된 목사였습니다.
서로 기도제목을 나눈 후 ‘우리가 중 누가 제일 어려운가?’하는 웃지 못할 질문이 생겼습니다.
정답은‘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목사가 가장 어려운 사람이다’였습니다.
예레미야 13장에 보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묶고 있는 띠가 썩어서 묶을 수 없는 띠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과 하나님이 묶여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실제로 그 끈이 얼마나 튼튼한지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울 왕이 그러했습니다.
대상 10장에서 사울 왕의 비참한 죽음에 대한 이유를 말씀하는데, ‘신접한 자에게는 묻되, 하나님께는 묻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31장을 읽어보면 사울 왕은 하나님께 다급하게 기도하였으나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왜 사울 왕이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고 하였을까요?
하나님과 사울 왕을 묶고 있던 끈이 이미 끊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다급한 마음에 기도하였지만 기도가 될리 없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평생 하나님과의 끈이 든든했습니다.
말할 수 없이 다급하고 두려운 순간에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시 62:5)
하나님과의 끈이 든든한지 아닌지는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는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구덩이 던져지기도 했고 노예로 팔려가기도 했고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기도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요셉의 삶이 형통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은 가는 곳 마다 따라다니시면서 하는 일마다 잘 되게 해주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요셉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요셉과 하나님 사이의 끈이 튼튼하였다는 말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교만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정말 조심하여야 할 일입니다.
예수동행일기를 쓰기 시작하였을 때 받은 충격은 하루 종일 예수님을 의식하지 못한 채 지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산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끈이 끊어진 채 살면서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교회 학부모 기도회에 나오는 교인들을 보면 영유아 자녀를 둔 교인이나 청소년을 자녀로 둔 교인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 양육할 때는 모르는 것이 많고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생 쯤 되면 아이가 말귀도 알아듣고, 양육하는 일도 익숙해져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식어집니다.
그러다가 자녀들이 사춘기되면 자녀 양육이 혼돈으로 빠져들게 되어 다시 주님 앞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겸손하여야 합니다.
항상 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 길입니다.
시 62: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