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레콘키스타들이 톨레도를 정복한 때와 비슷한 시기에 기독교도들의 십자군전쟁이 시작된다. 신흥 이슬람세력인 셀주크투르크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것을 핑계로 로마교황이 세속과의 권력투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일으킨 전쟁인데 1096년에서 1221년까지 5차례의 대규모 원정이 있었고 그 사이에 작은 규모의 원정은 거의 끊임없이 있어왔다. 북동쪽에서 밀려온 셀주크투르크족이 동로마제국을 공격하여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동로마군을 궤멸시키자 다급해진 동로마황제 알렉시우스 1세는 로마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교황 우르바노스 2세는 교황의 권위를 되찾을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십자군원정을 결행하는데 십자군원정은 신앙이 전부였던 중세유럽사회의 뜨거운 호응을 받아 귀족의 자식,의용군,용병,모험가,심지어 어린아이,王까지 직접 나선 대규모 원정단이 꾸려진다. 이들은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서 전쟁터로 가다 보니 전쟁에서 죽는 사람보다 굶고 병들고 지쳐서 죽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성지회복을 목표로 한다던 전쟁은 약탈과 살육,도둑질과 파괴의 전쟁으로 변하고 말았고 중세의 깊은 어둠 속에 빠져 있던 십자군들은 이슬람 세계의 빛나는 문화를 접하자 닥치는 대로 빼앗고 부숴버렸다. 나중에 십자군전쟁에 대해서 다시 다룰 것이지만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십자군전쟁은 유럽에서만 큰 사건이고 이슬람과 아랍권에서는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의 서유럽은 이슬람 세계에 비해 극히 뒤떨어진 후진사회였고 이슬람세계가 주로 상대하던 동로마제국보다 작은 의미의 야만적인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슬람세계는 십자군의 잔인함과 무질서,무지에 대해 분노하긴 했으나 이 십자군운동을 이집트 등 이슬람세계의 변방에서 일어난 이교도의 침입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실질적으로도 이슬람 세계의 중심부에는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했다. 그냥 단순히 신흥 이슬람세력인 셀주크투르크와 기독교도들이 변방에서 싸운 전쟁으로만 취급하는 것이다. 이는 유럽중심으로 본 우리가 배웠던 세계사의 개념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스페인 영토에서 가장 남쪽지역이어서 아프리카북단에서 지중해를 통해 쉽게 이베리아반도로 진출할 수 있었던 지역 안달루시아. 스페인에서 이슬람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지역인 안달루시아는 711년에서 1010년까지는 코르도바.1010년 부터 1248년 까지는 세비야,1248년 부터 1492년 까지는 그라나다가 중심을 이루었다 이곳에서 그들은 당대 최고의 문화와 학문을 꽃피웠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