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
집은 작아도
마당은 넓어야 합니다.
일상은 단순하고 정갈해도
안목과 비전은
하늘에 닿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삶은
각자가 이해한 세상의 지평만큼
뻗어갑니다.
성실과 노력의 주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실과 노력은
이것이 작용할
마당의 크기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한계를 지닙니다.
작업의 완성도는
분명 성실에 의존하지만
안목의 지평은
완성도와는 관계없는 구조의 차원에
해당하지요.
건축에 비유하자면
안목은 설계이며
성실은 시공의 영역입니다.
일반적으로
성실과 노력을 많이 강조하지만
그런 초점이
대부분 성과를 내지 못함은
그가
어떤 안목과 비전을 가졌는지를
크게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좀, 열심히 하면 안되냐?"
이것은
자녀의 비전과 안목을 관리해주지
못한
부모에게 더 큰 책임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비전이 없으면
삶의 동기가 발생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무기력함은 하나의 천성처럼
자리잡지요.
대부분 20세를 전후하여
각자 비전의 크기가
확정되는 듯 합니다.
물론 그 나이에
자신의 비전을 언어로 뚜렷이 표현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말 못할 무엇이
깊은 곳에서
꿈틀대고 있음을 느끼고 있지요.
원인은 모르지만
비전을 가진 젊은이들은
그 지평의 끝에 닿고자 하는
에너지와 역량을
이미 지니고 있습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주위 사람들 눈에
금방 띈다는 뜻은 아닙니다.
역량은
천천히 드러납니다.
그가
지평의 끝을 향해 딛는 발걸음만큼
순차적으로 드러나지요.
이미 중년을 지나고 있는 이라면
자신의 비전을
소중히 간직해야 합니다.
집을 설계했다면
완공을 보아야지요.
자신의 집이
미술관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미술관을 짓는 이들은
이미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미술관은 몇 개면 충분하지요.
자신이 설계한 만큼
시공해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입니다.
비전이 넓다고
모두 화려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안목과 비전은
철학적 차원이며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성과와 무관합니다.
지금까지의 인간 문명이
사회적 환경에 쏠림이 강했기에
타인의 평가와 사회 기여도에
자기 삶의 가치를
의존해 왔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급격히 변하고 있으며
머지않은 시점에
인간과 세상에 대한 평가 기준이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인간에게서
생산성의 가치는 현저히 감소할
것이며
철학적 담론으로 현상을 해석하는
<의미의 시대>가
곧 도래합니다.
우리의 안목과 비전의 방향이
이것에
맞추어져야 하지요.
아무리 뛰어난 인간도
생산성에서 AI를 이길 수 없습니다.
기업과 공공기관은
값비싼 인간보다는
저렴한 AI를 채용할 것입니다.
집과 마당으로
다시 돌아오면
마당으로 표현된 안목과 비전은
구체적으로
목표 지향성과 맥락의 이해입니다.
현상 안에서
자신의 좌표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느냐를
항상 확인해야 합니다.
집은
매일 관리해야 할 정갈한 일상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제어하고
절제하며
동시에
구체적이고 실리를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실리란
사사로운 사회적 이익의 이미지가
아닌
매일 발생하는
손에 잡히는 자신의 성장을
가리킵니다.
구체성이 없으면
삶은 공허해집니다.
거창한 꿈만 꾸다
한 줌 재로 사라집니다.
우리는
감각적 차원은 물론
확장된 의미의 차원까지 하나로
꿰어야 합니다.
정갈한 수영장 적막 돌고
푸른 벽 선명히 담은 의도
채우지 못한 물의 깊은 꿈
하늘에 던져 경계를 넘네.
..250214小野
첫댓글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집은 적다라도
마당은
넓어야 한다
참 멋있는 말
인것
같습니다
음미해
볼만한 것
같아요
우주법계중생 지구촌사람 모두함께
법사님 빠른 쾌유를 소원합니다
아나타마
아닛짜 나무아미타불 마하반야바라밀
숙연의일대사인연 덕분입니다
현산김봉현 합장ㅅㅎㅅ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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