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4일 사흘간 러시아 타타르스탄공화국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담에는 35개 국가와 6개 국제기구의 정상및 정상급 대표단이 참가했다. 브릭스 회원국 확대 이후 첫 정상회의를 주재한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에 따른 서방의 가혹한 대러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뿌듯함을 느낄 만했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영연방 소속 국가 정상들이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의 영연방 정상회의 초대를 뿌리치고 카잔으로 왔으니 말이다.
특히 주목을 끈 것은 주요 행사 후 반드시 갖는 푸틴 대통령의 기자회견. 그는 24일 서방 외신 기자들의 돌직구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주요 이슈로 떠오른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서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푸틴 대통령의 카잔 기자회견 장면/사진출처:크렘린.ru
가제타 등 러시아 매체와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위성 사진 등으로 확인되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 이로 인한 확전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심각한 것(вещь серьёзная)이며, 사진이 있다면 그것은 뭔가를 반영한다는 뜻(Если есть снимки, значит, они что-то отражают)"이라며 우크라이나 사태의 확전 원인 쪽으로 말을 돌렸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키운 것은 러시아의 행동이 아니었다”며 우크라이나 분쟁의 (전쟁 발발전 8년간) 진행 과정을 설명한 뒤 "나토(NATO)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분쟁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에이태큼스, 영국의 스톰 섀도 장거리 미사일을 운용할때 나토 국가 장교들이 직접 참여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오늘(24알) 북러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이 국가두마(하원)에서 비준됐다"며 (상호 군사지원을 규정한) 조약 4조의 존재를 짚은 뒤, "북한 지도부가 이 조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의심해본 적이 없으며, 조약의 틀 내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든, 그것은 우리의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약 4조의 이행과 관련해 (북한 측과) 적절한 협상을 해야 하는데, 북한 측과 접촉하고 있으며, 이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약 4조는 “어느 한쪽이 무력 공격을 받아 전쟁 상태에 놓이게 되면, 다른 쪽은 즉각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군사 지원을 제공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의 답변 전체를 뜯어보면, 파병 여부에 대해 직답을 피하면서 △상호 군사지원을 규정한 조약 4조가 존재하고 △이 조약은 오늘 의회에서 비준됐으며 △ 조약 이행에는 북한과의 협상이 필요한데, 이미 접촉 중이라고 밝혔다. 여차하면 조약 4조를 발동(상호 군사 지원, 사실상 파병)할 수도 있다는 위협이다. 그리고 그것은 두 나라(북한과 러시아)의 내부 문제이니 (내정)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쯤되면 푸틴 대통령이 북한의 파병설을 인정했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러시아의 국가 기반이 위협받을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핵 협박'과 비슷한 맥락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푸틴 대통령의 답변을 "북한군이 이미 러시아에 주둔하고 있으며, 적대 행위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확인했거나, 그 가능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이 매체는 또 우크라이나군 총참모국(GUR)이 '북한군은 이미 전투에 투입되었으며,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로 향하고 있다'는 발표에 주목, "쿠르스크주(州)는 러시아의 영토로, 향후 크렘린이 (공개적으로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경우) 북한군의 파병을 국제법의 규범에 따른 것이라고 정당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러시아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우리의 영토(쿠르스크주)가 외국군(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받았으므로 북러 조약에 따라 방어를 위해 (북한 측에) 군사 지원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서방 어느 쪽도 이 해명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지만,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국가들)와 한국과 국제정세를 논의할 때, 모스크바는 이 주장을 유효하게 써먹을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 기자회견/사진출처:크렘린.ru
북한군의 파병을 제외한 푸틴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을 정리한다/편집자.
◇ 쿠르스크 전투
"러시아 쿠르스크주(州)를 공격한 우크라이나군의 일부(약 2천명)가 이미 포위됐다. 그들은 포위망을 뚫기 위해 안팎에서 시도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성공하지 못했다. 러시아군은 진압 작전을 시작했다. 그들은 지금 끔찍한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군을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 서두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쿠르스크 공격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투자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를 위해 자국 군인들의 희생 등 어떤 대가도 감수하고 있다. 키예프(키이우) 당국은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대선에 개입하려는 행위로 본다.”
◇전쟁 손실
"우크라이나가 전차(탱크)의 사용을 줄이면서 탱크 손실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거짓말 하지 않고, 우크라이나군은 작년 여름의 반격 작전에서 1만8,000대의 군사 장비를 잃었는데, 이제 1,000대가 더 늘었다. 그러나 쿠르스크 전투에서는 탱크 손실이 100대가 안된다. 그만큼 덜 사용했기 때문인 것 같다. 러시아군은 독일의 레오파드 전차, 프랑스 바퀴형 장갑차, 미국의 장갑차 등을 성공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지난해 반격 작전에서 부상하고, 돌이킬 수 없는 정도의 손실(사망 혹은 중상자라는 뜻)이 약 1만6,000명에 달했다. 지난 한 달여 동안 쿠르스크 방향에서만 이미 2만6,000명의 손실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게 더 나을 테지만, 키예프 지도자들은 이를 원하지 않는다. 평화협상이 시작되면 계엄령이 해제되어야 하고, 그 직후에 대선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공은 이미 그들에게 가 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우리는 현실을 바탕으로 한 평화 협정에서 모든 옵션을 고려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외에 다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과의 관계
"(트럼프 전대통령이 모스크바 공격을 협박했다는 주장에 대해) 누구에게나 위협할 수 있다. 러시아를 위협하는 것은 우리에게 결의를 부추길 뿐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그런 대화를 나눈 기억은 없다. 미국의 대선 캠페인이 매우 심각한 국면에 있으므로 이런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본다. 전쟁의 조기 종식에 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은 내가 아는 한, 진심으로 보인다. 다만, 그런 발언이 누구에게서 나오든 상관없이 환영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비밀 접촉설은 1년 넘게 꾸준히 나온 내용이다. 우리도, 그도, 한때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의회를 비롯한 미국의 자체 조사에서도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선거 후 양국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지는 주로 미국에 달려 있다. 미국이 정상적인 관계 구축에 열려 있다면 우리도 그렇게 할 것이다. 원하지 않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이는 미래 정부를 위한 선택이다."
"우리는 서방 파트너로부터 다양한 신호를 받고 있다. 접촉 루트를 차단하지 않았다. 우리가 거절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거절하지 않으며, 거절한 적도 없고 지금도 거절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우리와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싶다면 우리도 반응에 나서지만, 굳이 우리가 먼저 나설 의향은 없다."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평화 협상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평화 협상은 대통령 선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튀르키예(터키) 대통령이 우리에게 우크라이나와 협상을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우리는 동의했지만, 이튿날 키예프는 대화를 거부했다고 들었다. 최근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의 보좌관이 뉴욕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 협상을 위한 새로운 제안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좋아요, 동의합니다'고 말했는데, 이튿날 키예프 정권의 수장(젤렌스키 대통령)은 갑자기 우리와 어떤 협상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는 터키 측에 '애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상대와 먼저 정리하십시오'라고 했다. 우리가 아는 한, 그는 최근 의회에서 평화를 위한 제안이 아니라, '승리 플랜'이라는 걸 설명했다."
"유엔 총회에서 중국과 브라질이 주도적으로 자체 평화안을 제시했다. 많은 브릭스 회원국들이 이를 지지하고 있으며, 우리도 해결 방법을 모색해 준 파트너들에게 감사드린다. 모든 사람이 우크라이나 분쟁을 가능한 한 빨리 종식시키겠다고 한다. 감사하다."
푸틴 대통령의 기자회견 /사진출처:크렘린.ru
◇러시아 안보 전략
"러시아의 안보는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러시아는 주권을 잃으면 존재할 수 없다. 러시아가 이 땅에서 경제, 금융, 군사 분야에서 주권과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것은, 우리의 안보를 강화하고 미래에 완전하고 자급자족하는 독립 국가로서 자신감 있는 발전을 위한 조건을 조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나토는 '동쪽으로 확장하지 말 것'을 끊임없이 호소한 우리의 요청을 수년 동안 무시해왔다. 이게 국가 안보 관점에서 공평하다고 생각하나? '확장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서 실제로는 확장하는 게 공평한 것인가? 러시아 남부 지역을 겨냥한 군사 기지 건설을 우크라이나에서 시작하는 것이 공평하고 공정한 것인가?"
◇ 브릭스 금융 결제 시스템
"(SWIFT와 그 대안과 관련해) 우리는 대안을 만들지 않았지만,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중 하나다. 결제 시스템으로는 러시아 중앙은행이 이미 만든 러시아 금융 정보 교환 시스템을 사용한다. 다른 브릭스 회원국에도 자체 시스템이 있다. 우리도 이를 사용할 것이며, 이미 사용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아직 별도의 시스템을 개발하지 않았다."
◇브릭스 확장 가능성
"실제로 많은 국가들이 브릭스 가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번 회의에서 회원국 확대를 위한 파트너 국가 목록을 추렸다. 이들 국가에게 브릭스 참여를 제안할 것이며, 긍정적인 응답을 받으면 그때 목록에 있는 파트너 국가들을 공개할 것이다. 답변을 받기 전에는 알려줄 수가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로 한정하면, 우리는 사우디 국왕과 왕세자와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대표들이 오늘 우리의 공동 작업에 참여했다. 우리는 회원국이 계속 늘어나기를 바란다."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우리는 이 지역의 분쟁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 분쟁 악화는 안된다. (이란에 대한 지원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는 이란 지도부와 긴밀히 접촉하고 있으며, 상황 해결을 위한 조건을 조성하고, 무엇보다도 상호 타협점을 찾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고 싶다."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지 않은 사람은 이 지구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4만 명이 넘는 사망자의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이였다. 해결 방법은 다 알려져 있다. 팔레스타인 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모든 결정을 조속히 이행해야 한다. 우리는 그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과 협력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갈등이 확대되거나 악화되도록 절제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테러 공격을 당했던 이스라엘과도 협력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부주의한 말이 이 과정에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한 마디 더 하기가 두려울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