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눈 팔지 않겠습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제17회 ‘임종국상’을 수상(사회부문)했습니다. 친일청산과 민족정기 회복을 위해 일생을 바쳐 연구해 오신 임종국 선생님의 발자취를 생각하면 너무 과분하고 무겁기만 합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2009년 3월 광주에서 결성된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양금덕 할머니 등 원고 8명이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2008년 11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했습니다. 이 무렵, 다큐멘터리 ‘14살 나고야로 끌려간 소녀들’(정우영 감독)을 통해 근로정신대 문제를 처음 접한 몇 몇 시민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피해 할머니들에게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 그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본에서 진행된 소송을 오랜 세월 동안 뜻있는 일본 시민들이 지원해 오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습니다.
단체를 결성할 무렵 만류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 문제는 이미 끝난 문제 아니냐’, ‘재판도 진 마당에 뭘 어떻게 할수 있겠느냐’, ‘국가 간 문제인데 서울도 아니고 지방에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약발도 안 먹힌다’, ‘남북이 통일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는 외면하기 어려웠습니다. 처음부터 어떤 가능성을 보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명예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습니다. 결국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무실 한 칸 없이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그동안 한국 사회에 여자근로정신대 문제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 왔습니다.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철수를 위한 208회 1인 시위(2009.10~2010.7), 13만 5천명에 이른 미쓰비시 사죄 촉구 서명운동(2010), 도쿄 삼배일보 시위 등을 통해, 2010년 결국 해방 이후 처음으로 미쓰비시중공업을 교섭 테이블로 끌어냈습니다. 비록 2년간의 교섭(2010.7~2012.7)은 결렬되었지만, 미쓰비시가 강제동원 문제에 관한 역사적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각인시키는 중요한 의미를 남겼습니다.
협상 결렬 후 2012년 10월 일본 소송에 참여했던 원고들을 중심으로 광주지방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정신대 소송은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에서 승소했지만, 판결 5년이 지난 현재까지 배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대법원에 계류돼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사건 2건, 광주지방법원에서 다툼을 진행 중인 사건 15건 등이 있습니다.
소송 이외에 제도적 지원에서 소외받고 있는 여자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에 실질적 지원을 위해 지방자치단체 조례 제정운동에 발 벗고 나섰습니다. 그 결과 2012년 광주에서 첫 피해자 지원 조례를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광주, 서울, 전남, 경기, 인천, 전북, 경남 등 현재 전국 7개 지방자치단체가 미성년 여성 노무동원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해 피해자들을 살피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조선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그 밖에 <국민의힘> 등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대해 ‘시민단체의 탈을 쓴 국고털이 이익집단’, ‘시민운동을 가장한 비즈니스이자 자신들의 일자리 창출의 도구’, ‘역사의 희생자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시민단체’ 라는 온갖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또 ‘자유대한호국단’이라는 단체는 우리 단체를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애초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피해자들에 대한 생계 지원을 목적으로 출발한 복지단체가 아닙니다. 애초 그렇게 할 여건도 안됩니다.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이 온갖 악담을 퍼부었지만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정부 보조금 한 푼 받아 본 적 없고, 오로지 십시일반 후원회원들의 회비로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덧붙여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정책은 본래 국가의 역할이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도리어 정부에 묻고 싶습니다. 지방의 작은 시민단체가 피해자들을 도와 대법원 승소를 이끌고, 발로 뛰어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동안, 정부는 무엇을 해 왔습니까?
윤석열 정권 들어 국격과 정의가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실 상근활동가 2명 밖에 없는 지방의 작은 시민단체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대법원판결을 뒤집으려는 윤석열 정권에 맞서 정면 대응하는 것은 참으로 버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악이라도 쓰고 버티겠습니다. 그것이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출발 이유이자 본래 책무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역사 정의를 위해 미력하나마 어떤 역할을 해 왔다면, 그것은 한결같이 믿고 애써주신 회원들, 그리고 곳곳에서 함께 손잡아주신 시민들과 언론인 여러분 덕분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23년 11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