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2일(월)
* 시작 기도
주님...
제사장이라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이 아닌 것은 엘리의 두 아들들을 보면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들은 제사장으로서 못할 짓을 하면서도 오직 자기들의 유익만을 위하여 산 자들입니다.
주께서 그들의 죄가 심히 크다고 하신 것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였기 때문입니다(삼상 2:12-17).
이 종은 목사요 선교사입니다.
이 직분이 나를 보호하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아니라 우리 주님 앞에서 한 사람의 성도로서 바르게 설 수 있도록 나를 장악하여 주소서.
내가 어긋난 길로 갈 때에 나를 쳐서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채찍질 하여 주소서.
주님의 심판은 언제나 옳습니다.
주일 이후 첫 날을 허락하시오니 이 하루가 주님과 연합하여 동행하는 주의 날 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내 안에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온갖 악을 저지르는 홉니와 비느하스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 나를 불쌍히 여기사 성령으로 장악하여 주소서.
나의 악함으로 행하는 죄악은 우리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씻어주시고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옵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주님과 늘 동행하는 자로 삼아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22:12-20
제목 : 내 앞에서 겸비하여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12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3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14 이에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여 선지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그는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로서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주하였더라. 그들이 그와 더불어 말하매
15 훌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말하기를
16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이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하리니
17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들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곳을 향하여 내린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18 너희를 보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들은 말들에 대하여는
19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20 그러므로 보라 내가 너로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 눈이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사자들이 왕에게 보고하니라.
* 나의 묵상
힐기야가 성전에서 찾은 율법책을 서기관 사반에게 주었고 사반은 그 율법책을 요시야 왕 앞에서 읽었다.
요시야 왕은 율법책의 말씀을 들을 때 그의 옷을 찢으며 통회 자복하였다
(왕하 22:11)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그후에 왕은 대제사장 힐기야를 비롯한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의 뜻을 물으라고 하였다.
그들이 찾아간 사람은 여선지자 훌다였다.
그녀는 왕의 옷을 관리하는 살룸의 아내이다.
훌다는 자기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하였다.
하나님께서 이 곳과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릴 것인데 너희가 읽은 율법책에 있는 말씀대로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가서 거기에 분향하며 그들의 손으로 행한 악이 나를 격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을 향한 여호와의 진노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 율법책을 읽고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여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또한 옷을 찢으며 통회 자복한 요시야 왕의 말을 내가 들었다.
따라서 그는 평안히 죽을 것이며 이 곳에 내릴 온갖 재앙을 그는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 66: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두려워하며 떨면서 통회 자복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땅과 백성에게 내리시는 진노의 재앙으로부터 그를 돌보시고 구원하셨다.
그러나 타성에 젖어 종교성으로 하나님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엄중하신 경고를 하신다.
그들은 율법에 나온 대로 소를 잡아 제사를 드리나 하나님은 이를 살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어린 양으로 제사하는 것은 개의 목을 꺾는 것이며, 그들이 드리는 예물은 돼지 피이고, 그들의 분향은 우상을 찬송하는 것이라고 평가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길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의 길을 택하였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가증한 것을 기뻐하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따라서 이제 그들로 하여금 죄와 악을 택할 수 있는 유혹을 그들이 선택하도록 할 것이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토록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고, 말하여도 듣는 자가 없으며, 하나님 앞에서 악만을 행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짓만 골라서 행하였기 때문이다.
(사 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므낫세와 아몬 왕 때에 왕을 비롯한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라 바알과 아세라 상을 세우고 그것들을 음란하게 섬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는 땅에 추락하고 말았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긴 사람이 율법책을 성전의 어느 한 곳에 숨겨놓았다.
므낫세와 아몬은 율법책에 관하여 관심조차도 없었다.
아몬을 이어 요시야가 왕이 되면서 그는 퇴락한 성전을 수리하는 작업을 단행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대제사장 힐기야가 율법책을 찾았고 요시야는 이 율법책을 읽으면서 자신과 조상들, 그리고 백성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통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말씀에 깨어 있는 자였다.
오늘 이 말씀이 나의 심장과 폐부를 찌르고 후벼 판다.
(17절)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아버지는 이런 자들을 살리기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우리는 끊임없이 아버지를 버리고 세상의 존재물과 또 다른 신들을 찾아 음란하게 섬기며 분향하고 즐겼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요시야와 같이 말씀 앞에서 복종하여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충성스런 아들이신데, 그런 아들이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그토록 모진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
가룟 유다가 돈에 눈이 멀어 스승인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팔아 넘겼고, 대제사장들은 교권에 눈이 멀어 빌라도에게 넘겼으며 빌라도는 하나님의 눈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군병들에게 내어주었다.
예수님은 그들 때문에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the fact)이지, 진리(the truth)는 아니다.
진리는 바로 내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어 못 박게 하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그보다 더 위대한 진리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신 것이다.
나는 나의 죄로 그분을 십자가에 내어 주었지만, 아버지는 당신의 사랑으로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
나는 나의 죄로 인하여 죽어 마땅한 자이다.
정말이지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나 그런 나를 하나님 아버지는 창세전 약속하신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이런 개 같은 나를 살리시고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걸어버리신 것이다.
세상에 이런 사랑이 또 어디 있을까?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사랑이 또 있을까?
이렇게 감당할 수 없고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죄를 먹고 마셨던 나는 죽어 마땅한 자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나를 친히 찾아 오셨다.
복음으로 찾아오신 주님은 말없이 나를 안으신다.
나를 그 너른 품에 품으시고 눈물을 흘리신다.
주님의 가슴에 묻혀 있는 나는 주님의 그 뜨거운 가슴의 사랑과 흘리시는 눈물로 나를 덮고 있던 모든 죄를 씻어낸다.
주님의 눈물은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이다.
나는 지금 이 묵상을 하면서 통곡을 한다.
뜨거운 눈물, 주님께 대하여 죄송한 마음과 면목 없음으로 흘리는 눈물이 눈앞을 가린다.
나는 더 이상 나의 자원으로 살지 않는다.
내 안에 계시는 주님으로 산다.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즉 통치권을 가지신 부활의 주님의 능력과 자원으로 산다.
나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 이제 내 안에 부활하신 주님이 사신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주를 위하여 산다.
나는 오늘도 주님 때문에 행복하다.
슬픔의 눈물은 기쁨의 눈물로 변하였다.
애통이 변하여 즐거움이 되었다.
(사 61:1-3)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겸비한 자,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사야의 찬송이 오늘 나의 찬송이 된다.
이는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회당에서 첫 설교를 하실 때 선포하신 말씀이기도 하다(눅 4:18-19).
이 말씀은 죄로부터 나를 자유케 하시는 주님의 선포이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자유케 하셨다.
따라서 나는 주님의 온전한 종이 되었다.
그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기 때문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죄와 악으로부터 참 자유를 얻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포로에서 해방시켜 자유를 주셨으며 옥에서 건져내시어 놓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주의 은혜의 해가 오늘도 강렬하게 비치나이다.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나의 소망이요 바로 당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붙잡아주심을 감사하나이다.
주님으로만 만족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