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주일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높이 들리신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새 생명을 얻은 자,
더 이상 자기를 위해 살지 않으니 주님의 길을 따라, 주님을 위해 살아갑니다.
성령을 보내셔서 그 영원한 생명길을 기쁨으로 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정직한 영으로
진리를 보고 기뻐 춤추게 하옵소서.
성령님, 오늘도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2.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3.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14. 이에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여선지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그는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로서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주하였더라 그들이 그와 더불어 말하매
15. 훌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말하기를
16.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이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하리니
17.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들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곳을 향하여 내린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18. 너희를 보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들은 말들에 대하여는
19.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20. 그러므로 보라 내가 너로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 눈이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사자들이 왕에게 보고하니라
(본문 주해)
12~13절 : 서기관 사반이 읽은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옷을 찢은 요시야 왕(11절)은 이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행하지 않았기에 여호와의 진노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왕은 최측근 다섯 명의 신하를 시켜 율법책에 대해 여호와께 물으라고 명한다.
‘여호와께 묻는다’라는 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회개하며 여호와의 구원을 기대하는 태도이다. 즉 요시야는 옷을 찢는 슬픔이 있었으나, 이제라도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것이다.
14~20절 : 다섯 명의 신하는 살룸의 아내 훌다 선지자에게 갔다.
훌다는 여자 선지자였으나 왕이 예언을 요청할 정도로 권위가 있었다.
훌다가 예언한 것은 두 가지 내용이다.
첫 번째 예언은 유다의 멸망이다.(16~17절)
그 이유는 유다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들의 손의 모든 행위로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곳을 향한 여호와의 진노라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요시야 개인에 대해서 말씀하신다.(18~20절)
요시야가 유다가 황폐해지고 유다 백성들이 저주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깊이 뉘우치고, 여호와 앞에 겸비하게 무릎을 꿇고, 옷을 찢고, 통곡하였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요시야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이곳에 내리기로 한 모든 재앙을 요시야가 죽을 때까지는 내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가 조상에게로 돌아갈 때 평안히 무덤에 안장될 것을 말씀하신다.
(나의 묵상)
요시야 왕은 성전에서 율법책이 발견되자 그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옷을 찢었고, 또 그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훌다 선지자에게 물었다.
이러한 요시야의 태도를 하나님 앞에서 겸비함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요시야의 이 겸비함을 보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그러므로 내가 이 곳에 내리기로 한 모든 재앙을, 네가 죽을 때까지는 내리지 않겠다. 내가 너를 네 조상에게로 보낼 때에는, 네가 평안히 무덤에 안장되게 하겠다”(20a절, 새번역)
하나님의 응답은 요시야의 겸비함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멸망한다는 것이다. 다만 요시야로 하여금 평안히 죽어 재앙을 그의 눈으로 보지 않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요시야 왕은 8세에 등극하여 31년 간 다스렸으니, 39세에 죽은 것이다.
히스기야는 이 나이 즈음에 죽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면벽기도를 했었다.
그런데 요시야는 요절했다.
역대기에 보면 요시야는 공연히(?) 고집을 피워 애굽왕과의 전쟁에 나섰다가 죽고 만다.(대하35:20~25)
요시야가 애굽과의 전쟁에서 그렇게 죽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로 그렇게 요절하게 하신 것을 ‘평안히 무덤에 안장되게 한다’고 하신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의 죽음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23장에는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행하고, 있는 힘을 다해 백성들로 하여금 유월절을 지키도록 하게 한 요시야가 아니던가!
그런데 39세에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그것도 애굽 왕의 손에 죽는 요시야를 하나님께서 평안히 가게 하셨다고 말한다.
하나님 앞에 그토록 신실했던 이 젊은 왕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는 그를 요절시키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대로 유다를 멸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장수하거나 요절하거나, 또 사고로 죽든지 병 들어 죽든지 간에, 주님 안에서 죽는 것은 평안한 죽음인 것을 생각한다.
주님께 단 마음일 때 주님 곁으로 가는 것도 복이다.
하루를 더 살아봤자 내가 만들어내는 것은 죄뿐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말하는 것이 죄가 아닌 것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죽어 마땅한 자를 주님은 오늘도 살게 하신다.
그런데 그냥 살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안에서 매일 죽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물론 완벽하게 살아가지는 못하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매일 죽는 은혜를 두 눈 크게 뜨고 보게 하시고, 귀를 열어 듣게 하시는 것이 내게는 말할 수 없이 큰 은혜인 것이다.
요시야로 하여금 평안히 죽게 하신다는 말씀의 은혜를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나로 하여금 평안히 살고, 또 평안히 죽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십자가에 연합됨으로 살고, 십자가에 연합됨으로 죽는 일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묵상 기도)
주님,
요시야로 하여금 평안히 죽게 하신다는 말씀의 은혜를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어떻게 죽었는지를 말하지만
주님 안에 죽는 은혜가 최고입니다.
39년 동안 있는 힘을 다해 주님을 위해 살다가 간 요시야를 부러워합니다.
이미 요시야의 삶을 넘어도 훌쩍 넘은 세월을 살았기에 당황스럽고 부끄러움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붙들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십자가에 연합됨으로 살고, 십자가에 연합됨으로 죽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