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꽃과 오렌지색의 상징이 조금은 부러운 나라 네덜란드...
그러나 더욱 부러운 것은 수많은 월드클래스 축구스타들이 많다는 점이다. 네덜란드는 우리나라의 축구팬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이 보유한 나라이기도 하다.
2002 월드컵과 2006 월드컵을 치루면서 '히딩크'와 '아드보카트'라는 네덜란드의 명장이 우리나라 축구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맡게 되어서...또는 박지성, 이영표가 네덜란드라는 희망의 빅리그로 진출하게된 것이 계기라서 보다는...
70년대 요한 클루이프가 이끌었던 토털사커, 80년대 세리에 A무대에서 오렌지 삼총사로 명성을 떨치던 반바스텐, 굴리트, 리카르트 등의 화려한 공격축구...
그리고,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베르캄프, 오베르마스, 코쿠 등을 내세워 치욕의 5:0 패를 우리나라에게 비록 안겨줬지만, 쉴새없이 밀어붙이는 화끈한 공격축구는 이미 전세계에 명성을 떨치고 있었고, 월드클래스급 대형 스타플레이어들을 끊임없이 배출하는 등 축구 강국으로서의 매력이 그 어느 국가들보다도 크기 때문에 국내 축구팬을 가장 많이 흡수한 까닭으로 풀이되고 있다.
네덜란드는 수 많은 축구스타들을 끊임없이 배출하고 있는데 이들 중 네덜란드를 대표할 만한 스트라이커 몇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 ① 유트레흐트의 백조 ★
▲ 마르코 반 바스텐 (Marco Van Basten) 1964. 10. 31생, 188cm/ 80kg, FW
마르코 반 바스텐(Marco Van Basten)은 1964년 10월 31일 네덜란드의 유트레흐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고향의 자그마한 축구클럽인 Edilwijk에서 축구를 배웠고 이후 네덜란드 최고의 명문클럽인 아약스 유소년 팀에 입단했다.
이 당시부터 주위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던 16살의 반 바스텐은 80년 요한 크루이프가 아약스를 이끌고 친선 경기차 밀라노를 방문했을 당시 인터 밀란의 전설적인 영웅 산드로 마졸라(Sandro Mazzola)로부터 이러한 찬사를 듣기도 했다.
“그를 보라, 그는 새로운 크루이프의 출현이라 말할 만한 선수이다. 크루이프는 우리에게 반 바스텐이라는 유망주를 소개했고 우리는 즉시 그가 놀라운 재목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81/82 시즌 반 바스텐은 아약스에서 선수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데뷔 시즌 단 한경기, 니메겐(Nijmegen)과의 리그 경기에 출장했던 그는 그 경기에서 공교롭게도 네덜란드 최고의 축구영웅 요한 크루이프를 대신해 교체투입되어 성인무대 신고를 자축하는 데뷔골을 쏘아올리면서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어쩌면 이는 당시 축구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요한 크루이프를 이어 네덜란드 축구가 새로운 대들보를 맞이했던 대물림의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한데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아약스 시절 세 시즌 동안 매 시즌 20골 이상을 득점하는 괴력을 선보였던 그는 86/87 시즌에는 26경기에서 무려 37골을 폭발시키며 유럽 최고의 골잡이에게 수여되는 ‘European Golden Boot’를 수상하기에 이른다.
반바스텐은 아약스와 함께한 시간동안 129경기 127골이라는 경이적인 득점기록과 세차례의 자국 리그 타이틀, 한차례의 컵위너스 컵 우승의 영광을 아약스에 안겼던 네덜란드의 득점머신이다. 그를 탐내던 유럽의 많은 클럽 중 AC 밀란으로 향로를 결정한 반바스텐은 이탈리아 평정에 나서게 된다.
그와 더불어 오렌지 삼총사로 명명되는 대표팀 동료 굴리트(Ruud Gullit), 리카르트(Frank Rijkaard)와 함께 그는 AC 밀란에 통산 세번째와 네번째 챔피언스 컵과 세차례에 달하는 리그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었을 뿐더러 88년 유럽 선수권에서 자국 네덜란드에 역사상 최초의 메이저 타이틀을 안기면서 프랑스 풋볼이 선정하는 올해의 유럽 선수상을 3회나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전까지 3회 수상의 영광은 크루이프와 플라티니가 그 전부였다.
큰 신장에도 불구하고 ‘유트레흐트의 백조(Swan of Utrecht)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유연한 드리블링과 테크닉을 자랑했고, 문전에서의 파워와 결정력 등 반 바스텐은 스트라이커로서 갖춰야할 모든 조건을 두루 겸비했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그는 슈팅을 위해 오른발, 왼발의 구분이 따로 필요치 않았을 뿐더러 강력한 헤딩을 자랑했고 루이 코스타 혹은 지아니 리베라(Gianni Rivera)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한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던 만능 플레이어로 손꼽힌다.
▲ 반바스텐과 대표팀 동료들 (윗줄 왼쪽부터 8번 레이카르트, 9번 반바스텐, 7번 베르캄프, 4번 쿠만, 10번 굴리트, 아래줄 맨 오른쪽 끝이 17번 F.드부어)
하지만 축구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에게 불행은 너무 일찍 찾아들었다.
선수시절 내내 그를 괴롭힌 발목부상으로 인해 그는 월드컵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평가받는‘Flying Dutchman’ 반 바스텐은 갓 서른을 넘긴 아쉬움 많은 나이에 그라운드를 떠나 추억의 자리에 나앉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대표팀에서 1983년~ 1992년 까지 총 58경기 24득점의 아쉬운 기록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반 바스텐은 유트레흐트의 백조 외에도 스트라이커의 교과서, 스트라이커의 아버지, 무결점 스트라이커라는 수식어들이 그를 대변할 만큼 가장 현대적인 모습의 포워드였으며, 센터 포워드의 전형이라고 평가받은 선수이다. 그냥 공을 잘차는 선수가 아닌 포워드 전문직을 열어 젖힌 장본인이 바로 반 바스텐이다.
참고로 지금 세계 최고의 포워드 선수들이 달고 있는 9번이란 번호의 유래도 반 바스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그의 현역시절 등번호가 9번이었다.
★ ② 세계 최고의 더치마스터 ★
▲ 데니스 베르캄프 (Dennis Bergkamp) 1969. 5. 10생, 185cm/80kg, FW
데니스 베르캄프는 종종 '베르캄프'와 '베르캄프 이외의 모든 선수들'을 구분 짓게 만드는 매우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친다. 그리고 베르캄프의 이러한 창의성은 잉글랜드 명문 아스날을 수도 없이 위기에서 구해내며 프리미어쉽의 화제 거리로 떠오르곤 했다.
이안 라이트가 아스날FC에서 은퇴하기 전 베르캄프를 공격파트너로 맞아 자신의 최다골을 기록하였고, 윙포였던 앙리 역시 웽거감독의 권유로 최전방 공격수로 전향하여 프리미어쉽 최고의 스트라이커 반열에 오른 후 말하길 베르캄프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대표팀에서 베르캄프의 오랜 파트너였던 클루이베르트 역시 유로 2000 때 그의 패스가 없었다면 득점왕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위의 사례들은 베르캄프가 공격파트너의 재능을 효과적으로 이끄는 플레이가 매우 탁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한 부분이다. 그 스스로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골 스코어러(득점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난 내 자신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 난 내가 골 스코어러라기 보다는 어시스트를 해주는 도우미라고 본다."고 자신의 스타일을 피력한바 있다.
베르캄프의 넓은 시야와 경기를 장악하는 능력을 미드필더인 지단이나 토띠와 곧잘 비교하는 이유는 스트라이커임에도 공격을 조율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전개하며 팀을 이끌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스트라이커의 아버지라 불리는 반바스텐을 비롯하여 반 후이동크, 하셀바잉크, 클루이베르트 등에 이르기까지 베르캄프를 제외하고라도 수많은 월드 클래스급 스트라이커를 배출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그들과 번갈아 가며 호흡을 같이 한 선수는 베르캄프 뿐이었고 그것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이른바 쉐도우 스트라이커라는 플레이를 독보적으로 창출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베르캄프는 아약스 시절 총 239 게임에 출전했으며, 3회 연속 네덜란드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고, 2번 "네덜란드 올해의 선수의 선수" (1991-92 & 1992-93) 로 선정됐으며, 1번 "잉글랜드 올해의 선수" (1998)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97/98 시즌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성공시킨 그 유명한 '쓰리 터치 골'을 비롯, 뉴캐슬과의 01/02 FA컵에서 연출된 기가 막힌 턴 동작에 이은 피니쉬 등은 그야말로 '베르캄프가 아니면 연출해낼 수 없는' 명 장면들임이 분명하다.
▲ 베르캄프가 필받으면 5~6명의 수비를 관광시킨다.(좌측 = 98월드컵 때 對 한국戰)
▲ 유로 2000 때의 베르캄프 (우측)
오래도록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의 에이스로서 명성을 떨쳐 온 베르캄프는 94' 미국 월드컵,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각각 3골씩을 터뜨렸다. 고국에서 열린 2000' 유럽 선수권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했고, 2006년 7월 현역을 마감하는 은퇴식에는 클루이프, 반바스텐, 다비즈, 앙리 등 한 시대를 대표할만한 전․현직 축구스타들이 대거 참여하여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받기도 했다.
탁월한 골 결정력은 물론, 절묘한 패싱 감각과 골키퍼를 농락하는 슈팅 기술, 창의적인 두뇌를 겸비한 베르캄프는 현대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대표적인 공격수로 평가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 ③ 네덜란드의 해결사 ★
▲ 피에르 반 후이동크 ( Pierre Van Hooijdonk ) 1969. 11. 29생, 193cm/88kg, FW
2001~2002 시즌 페예노르트 시절 에레디비지의 빛나는 득점왕을 차지할 때만해도 그의 전성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듯했었다.
그가 브레다, 셀틱, 글래스코, 노팅엄, 포레스트, 비센테, 아른햄, 벤피카, 리스본, 페예노르트, 페네르바체, 이스타불 등에서 흘린 엄청난 땀의 양은 얼마나 될지 계산하기가 쉽지 않다.
반후이동크는 193cm이라는 장신의 제공권 장악에 의한 헤딩력을 갖추었지만 오히려 예리한 킥력이 주무기인 선수이다. 그는 탁월한 득점감각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동갑내기 베르캄프를 비롯하여 후배들인 하셀바잉크, 마카이, 반니스텔루이, 클루이베르트 라는 걸출한 골잡이들에게 밀려 A매치는 항상 서브나 벤치의 대기멤버였지만 조커로 투입하여 해결사 역할을 해왔었고 37세의 나이로 은퇴할 때까지 대표팀의 큰형님이자 정신적 지주였었다.
네덜란드가 유로 2004를 마치고 아드보카트 후임으로 반바스텐을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했을 당시 공격수 반니스텔루이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2006 독일 월드컵 지역예선 첫 경기를 치뤘던 적이 있었다.
이 때 대표팀의 세대교체 의지를 분명히 했던 반바스텐은 강력한 첫 상대인 체코전에서 팬들의 바램과는 달리 해결사적인 면모가 강한 35세의 베테랑 반후이동크를 기용하여 2-0 승리를 거머쥔다. 당시 기록한 골은 모두 반후이동크가 기록해 감독의 부응에 기대했음은 물론이었고 기세를 탄 네덜란드는 세대교체의 추진력을 얻어 2006 독일 월드컵을 준비 할 수 있었다.
▲ 유로 2004 지역 예선 때 골을 기록한 반니스텔루이를 반후이동크가 끌어 안은채 마카이, 클루이베르트, 로벤 등과 함께 축하 해주고 있다.(좌측)
▲ 2004 월드컵 지역 예선 체코전에서 두골을 기록한 반 후이동크(우측)
그러나 2006 독일월드컵 예선전을 끝으로 은퇴한 반 후이동크...
클루이프, 반바스텐, 다비즈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현직 축구스타들이 대거 참여하여 축하 해주었던 2006년 7월의 베르캄프 은퇴경기에 비하면 그는 너무 초라하게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진 것이다.
'검은표범' 하셀바잉크 그는 96~97 시즌 포르투갈의 보아비스타에서 29경기 출전 20골의 골 폭풍을 비롯, 다음 두시즌 동안 리즈에서 69경기 출전, 34골 등 2002~2003 시즌 첼시에서 활약하기 까지 유럽의 각 리그를 오가며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한 골잡이이다.
골과 파워에 있어선 그 어떠한 선수에게도 뒤지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는 사나이 그는
상상하기 힘든 각도와 거리에서 한 마디로 '장관'의 골을 터뜨리는 것이 특기. 다소 '이기적'이라는 평가가 있으나 본인은 그것을 단호히 부인하기도 한다.
1998 월드컵 때는 히딩크가 이끄는 대표팀에 발탁되어 조별예선 2경기에 출전했지만 당시 베르캄프, 클루이베르트, 반후이동크 등에 밀려 출장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2002 월드컵 대표팀에도 발탁되었으나 충격의 지역예선 탈락으로 월드컵 무대에서 그를 볼 수가 없었다.
2003년 여름'거부 클럽'으로 거듭나며 멤버가 크게 팽창한 첼시에 입단하여 팀이 새로운 강호로 도약하는데 일조를 하다가 2003~2004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 선수로 풀려 미들스브로에 입단한다.
▲ 검은표범 하셀바잉크의 골세레머니
그러나 유로 2004 대표팀에는 명단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는다. 당시 대표팀에는 새롭게 골잡이로 자리잡은 반니스텔루이를 비롯, 클루이베르트. 마카이, 반후이동크까지 공격수들이 줄을 있고 있었다.
미들스브로 이적 첫 시즌 팀내 최다인 16골의 상종가를 치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UEFA컵 결승전을 견인 하기도 했으나 2005~2006 시즌에는 그도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듯 아예그베니 야쿠부 등 신예 공격수들에게 밀려 17경기 출전에 그쳤다.
결국 미들스브로의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하셀바잉크와 재계약을 포기했고 이에 실망감을 들어낸 하셀바잉크는 찰튼 애슬래틱으로 새로운 둥지를 옮겼다. 대런 벤트와 함께 신구 조합을 이룬 30대 중반의 이 걸출한 골게터의 생존 여부를 지켜보자.
★ ⑤ 영혼의 투톱 ★
▲ 루드 반 니스텔루이 (Ruud van Nistelrooy) 1976. 7. 1생, 188cm/80kg, FW
▲ 패트릭 클루이베르트 (PatrickKluivert) 1976. 7. 1생, 189cm/81kg, FW
수많은 축구 스타들 중 스트라이커를 논할 때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이름이 있는데 80년대부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무결점의 스트라이커 '마르코 반 바스텐'이 바로 그다. 반 바스텐은 골을 추구하기 위한 우아한 플레이를 끊임없이 연출하는 전형적인 골잡이다.
이런 거대한 그림자 때문에 클루이베르트와 반니스텔루이는 월드클래스급 스트라이커임에도 불구하고 '검은 반바스텐'과 '제2의 반바스텐'으로 칭하는데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같은날에 태어났고 또한 비슷한 신체조건과 타켓맨형 스트라이커라는 점까지 매우 유사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들이 세계 톱클래스의 축구스타로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은 그들의 흑백 피부 색갈 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반니스텔루이'는 네덜란드 남부의 오스에서 '클루이베르트'는 암스테르담에서 1976년 7월 1일 운명의 장난처럼 같은 날에 태어났다.
운명의 장난...
후에 일어날 일들은 이 두사람에게 가히 운명의 장난이라 할만 할 일들이 벌어진다.
90년대 중반부터 약관의 나이로 홀연히 출연해서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검은 반바스텐'으로 불리우는 클루이베르트였다.
공중볼에 능하고 강력한 헤딩슛이 주무기인 클루이베르트는 유로 96부터 베르캄프와 짝을 이뤄 98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팀을 4강으로 이끌며 승승장구했을 때,
당시 아인트호벤 소속의 반 니스텔루이는 센터포워드로 변신하여 98-99시즌 31골을 기록하면서 비로서 골 게터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도 유로 2000 본선 준비과정에서 당시 대표팀 감독인 레이카르트는 아스날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베르캄프 대신 연일 상종가를 기록하고 있는 반니스텔루이를 클루이베르트와 함께 주전 투톱으로 기용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2000년 4월 반니스텔루이는 헤딩 연습을 하던 도중, 무릎을 다쳤고, 그는 곧 콜로라도에서 무릎 수술을 해야했고, 이 두 스타의 만남은 이루어 지지 못한채 반니스텔루이는 유로 2000도 TV로 지켜봐야만 했다.
반면 클루이베르트는 이 대회의 득점왕을 차지, 그의 존재를 전 세계에 과시하면서 네덜란드를 아쉬운 4강으로 이끈다. 하지만 4강에서 탈락한 네덜란드에게 반니스텔루이의 부상은 큰 아쉬움이었고 비운이었다.
그 무렵, 남미의 축구 강대국 아르헨티나에도 '바티스투타-크레스포'라는 환상의 공격라인이 있었으나 비엘사 감독은 이들을 동시 기용한 사례가 한 차례도 없었고 이들 투톱을 활용할 의사가 없어 보였기 때문에 당시의 '반니스텔루이-클루이베르트'는 세계 최강으로 기대되는 투톱이었다.
▲ 세계 최고의 투톱으로 기대되었던 '루드 반니스텔루이'와 '패트릭 클루이베르트'가 함께 출전한 장면들...
어째튼 반니스텔루이는 2001년 3월 근 1년만에 부상에서 돌아왔고, 4월엔 다시 대표팀에도 뽑혀서 유로 2000을 끝으로 은퇴한 베르캄프의 공백을 메꾸며 클루이베르트와 함께 2002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2002 한․일 월드컵의 기대했던 '반니스텔루이-클루이베르트' 투톱라인은 다시 무산되고야 만다. 조별예선에서 포르투갈, 아일랜드와 죽음의 조에 편성되면서 네덜란드의 불운이 시작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투톱을 갖고 있다는 네덜란드는 예선 마지막 경기인 아일랜드전에서 '클루이베르트-반니스텔루이' 투톱을 기용하고도 득점을 올리지 못한채 패하고 결국 2002 월드컵 본선진출 실패라는 참담한 결과만 남는다.
네덜란드가 2002 월드컵 예선탈락의 원인으로는 드부어와 다비즈의 약물 복용문제와 스탐의 부상 공백, 그리고 유로 2000을 끝으로 대표팀을 은퇴한 베르캄프의 공백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아일랜드전에서 '반 갈'감독의 용병술 또한 예선탈락을 하게 한 가장 큰 요인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 후 유로 2004 예선에서 네덜란드의 지휘봉을 잡은 '아드보카트' 감독은 '반니스텔루이-클루이베르트' 투톱을 스코틀랜드와의 1차전 때 기용했으나 또다시 득점을 하지 못하고 1-0으로 패한다. 이 때부터 클루이베르트와 반니스텔루이는 유로 2000 전의 상황과 정 반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스코틀랜드와의 2차전에서는 '반니스텔루이-클루이베르트' 투톱체제를 버리고 반니스텔루이를 원톱으로 하는 4-2-3-1의 전술로 6-0 대승을 거두며 반니스텔루이는 확고한 자리 매김의 기회를 붙잡았던 것이다.
유로 2004는 반니스텔루이가 승승장구하며 네덜란드를 4강으로 이끈 대회였다. 더구나 반니스텔루이와 클루이베르트 못지않는 '마카이'라는 걸출한 또 하나의 골게터가 존재하므로 클루이베르트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결국 유로 2004 대회에서 클루이베르트는 단 한차례도 그라운드를 밟아보지 못하고 벤치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유로 2000 때 반니스텔루이가 TV로 지켜봐야만 했던 4년전과는 정 반대의 상황이 된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반니스텔루이는 결과적으로 클루이베르트를 대표팀에서 밀어내는 역할을 하면서 2006 월드컵 지역 예선을 통과하며 본선무대를 밟는데 성공한다.
그 세월속에서 반니스텔루이도 어언 3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2006 월드컵 16강에서 만난 포르투갈전 때부터 반페르시, 카이트, 로벤 등의 젊은 선수들에 의해 벤치로 밀려나더니, 마침내 대표팀의 반바스텐 감독으로부터 부름을 받지 못하는 신세에 이른다.
하나의 천하에 주인은 둘이 될 수 없다 했던가? 클루이베르트가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다면 반니스텔루이는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네덜란드 간판 공격수로 확실하게 자리 매김 했다고 평할 수 있겠다. 결국 두 선수는 네덜란드 축구사에 있어서 20세기와 21세기 사이 약 10년의 세월을 반분하여 네덜란드 축구대표팀의 골잡이 역할을 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할 것 같았던 '반니스텔루이-클루이베르트' 황금투톱은 이렇게 메이저 대회에서 한번도 호흡을 같이 해보지 못한 채 영혼의 투톱으로 사라질 것인가...?
그러나 2006년 현재의 나이 30 이라면 아직 축구선수로서의 끝은 아닐 것이다. 네덜란드가 여전히 딕 카이트, 반페르시, 얀 훈텔라르 등 재능있는 새로운 스트라이커들을 배출하고 있지만 이 두 동갑내기가 호흡을 맞출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해 본다.
참고로 신비스러운 네덜란드 대표팀에는 프랑크 드부어(DF)와 로날드 드부어(MF)라는 70. 5. 15 생의 유명한 쌍둥이 선수가 오랫동안 호흡을 같이 해왔고, 세인들의 관심은 집중되지 않았지만 필립 코쿠(MF)와 에드윈 반데사르(GK)도 70. 10. 29 생의 같은날에 태어난 선수들로서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기나긴 세월 동안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먺었던 백전노장의 베테랑들이다.
98년 월드컵 때 반니스텔루이가 대표팀에 선발되었더라면...유로 2000 때 그가 무릎 부상만 없었더라면...2002 한일 월드컵 때 네덜란드 대표팀이 지역 예선을 통과했더라면... 유로 2004 때 R. 드부어가 대표팀에 계속 선발 되었더라면...만약 그렇게 되었더라면 반니스텔루이와 클루이베르트가 대표팀에서 공존함과 더불어 저 70년생의 레전드들과 함께 세 쌍둥이(?) 그룹이 오렌지 대표팀에서 함께하는 사상 초유의 흥미진진한 상황이 벌어질 뻔했었다.
▲ 일란성 쌍둥이 프랑크, 로날드 형제와 동갑내기에 생일까지 같은 코쿠와 반 데 사르
★ ⑥ 그라운드의 팬텀기 ★
▲ 로이 마카이 (roy makaay) 1975. 3. 9생, 188cm/75kg, FW
Phantom(팬텀) - 이는 독일 언론에서 마카이를 지칭하는 수식어다. 한마디로 유령이라는 뜻이다.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 골을 성공시키는 그를 빗댄말이다. 경기 내내 볼을 몇번 잡지 못하다가 경기 막판 마치 농구의 버저비터와 같이 골을 성공시키며 승부를 내버리는 그에게 어쩌면 딱 들어 맞는 별명인지 모른다.
마카이는 놀라운 기회 포착력과 순도 높은 골결정력을 갖춘 감각적인 스트라이커다. 그는 미드필더들이 좋은 패스를 해줄 수 있도록 적절한 위치로 빠져들어가는 움직임이 매우 탁월하다. 장신을 이용한 헤딩력, 아크 근방에서 구사하는 과감한 중거리 슈팅, 수비수 1~2명을 제칠 수 있는 개인기등 여러모로 출중한 재능을 갖추고 있으며, 오른쪽 윙어 포지션 또한 소화해낼 수 있다.
네덜란드의 비테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마카이는 테네리페로 이적해오면서 프리메라 리가에 첫걸음을 내딛었다. 98/99 시즌,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그는 렌도이로 구단주의 찬사와 함께 99년 여름에 데포르티보의 유니폼을 입었고, 이적 첫시즌만에 22골을 터뜨리는 괴력을 과시하며 팀이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선봉장 역할을 해냈다.
이후 꾸준히 높은 수준의 득점력을 과시하던 마카이는 트리스탄의 급성장으로 인해 오른쪽 윙-포워드로 포지션을 변경하기도 했으나 02/03 시즌, 다시금 부동의 센터포워드자리를 꿰차면서 피치치(프리메라 리가 득점왕)와 유러피언 골든붓(유럽 리그 전체 득점왕)을 동시에 차지하기도 했다.
99/00 시즌의 맹활약과 함께 유로 2000 네덜란드 대표팀에 합류한 마카이는 트레이닝 도중 당한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경기에 뛰어보지도 못한채 대회를 마감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는 2002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도 대표팀 멤버로 활약했으나 네덜란드가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첫 월드컵 진출의 꿈이 무산됐다.
▲ 마카이의 골퍼레이드 장면
2006년 현재 마카이의 나이 31세지만 거칠것 없는 현재 진행형이다. 반니스텔루이와 클루이베르트의 벽이 과거에는 높아보였지만 현재부터는 누가 더 높아질지 아무도 모른다.
★ ⑦ 네덜란드 최고의 포스트플레이어 ★
▲ 얀 베네호르 오브 하셀링크 (Jan Vennegoor of Hesselink), 1978. 11. 7생, 191cm/92kg, FW
하셀링크는 96년 FC 트벤테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2000/2001 시즌을 끝으로 PSV 아인트호벤으로 이적해서 그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이전 공격수였던 루드 반 니스텔루이를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을 깨고, 첫 시즌부터 22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차지한다. 그렇지만 마테야 케즈만의 득점력을 살리기 위해 포스트플레이와 스크린플레이에 주력하는 등 팀을 위해 헌신적인 모습도 보여주었다.
아인트호벤에서 지난 5년간 156경기에서 72골을 넣으며 아인트호벤의 공격을 주도했던 하셀링크는 전형적인 타켓형 공격수로 케즈만이 아인트호벤을 떠났을 때 그 공백을 훌륭히 메우며 꾸준한 활약을 펼쳐왔다.
04/05시즌 19골을 기록하며 클럽의 챔피언스 리그 4강과 리그 우승, 암스텔담컵 우승을 이끄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05/06 시즌 역시 11골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일조했다.
신체조건의 우위를 바탕으로 공중볼 다툼에 강점을 보여, 미드필드진의 득점력을 높이는 데 능숙하다. 과거에 비해 득점력이 떨어진 모습이지만, 여전히 골문 근처에서의 헤딩 및 슈팅능력은 무시할 수 없다.
하셀링크는 국가대표팀에 오르락 내리락을 되풀이 했으나 반니스텔루이와 클루이베르트에게 밀려 좀처럼 선발 기회가 없었던 점은 반후이동크, 하셀바잉크, 마카이 등과 유사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하셀링크는 독일 월드컵 때도 대표팀에 승선했지만 주로 조커나 벤치멤버였었다.
▲ 국가 대표팀의 하셀링크(오른쪽은 2006 독일 월드컵 때)
대표팀에서 하셀링크를 계속 필요로 한다면 그것은 그가 최고의 포스트플레이를 구사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주로 후반 조커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셀링크는 독일 월드컵이 끝난 후 8월 스코틀랜드의 셀틱으로 이적하는데 합의했다. 한편 셀틱은 하셀링크와 더불어 울버햄튼의 레프트백 리 나일러를 추가로 영입하여 전력보강에 박차를 가했다.
이제 하셀링크가 셀틱에서 또는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그의 육중한 신체를 무기로 어떤 활약을 펼칠지 두고 볼 일이다.
★ ⑧ 네덜란드의 신성 ★
▲ 클라스 얀 훈텔라르 (Klaas Jan Huntelaar), 1983년 8월 12일, 186cm/80kg, FW
클루이프, 반바스텐, 베르캄프, 반니스텔루이...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바로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공격수라는 점이다. 최근 이들의 계보를 이을 네덜란드의 신예 스타가 등장해 주목을 받고 있다.
훈텔라르는 1998년 15살 때 네덜란드 리그의 데 그라프 샤프 청소년 클럽에 입단을 계기로 축구선수의 생활을 시작한다. 그가 17살이 되던 2000년 PSV 아인트호벤 청소년 클럽으로 이적하게 되고 2002년 PSV 아인트호벤의 1군 선수로서의 생활을 하게 된다. 아인트호벤에서의 그의생활은 순탄치 못했고 그해에 결국 데 그라프샤프로 재 임대된다.
데 그라프 샤프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훈텔라르는 2003년 네덜란드의 클럽 AGOVV로 또한번 임대된다. 이 때부터 그의 이름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다. AGOVV에서 훈텔라르는 35 경기 26골이라는 엄청난 득점력을 과시하며 네덜란드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2004년 헤렌벤에 입단하게 된다. 헤렌벤으로 이적한 그는 첫 시즌 31경기 17골로 자신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05/06 시즌 그의 활약은 멈추지 않았다. 초반부터 연이은 득점포로 헤렌벤의 공격을 이끌어 나갔고 결국 15경기 출전 17골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그 해 겨울 이적시장에 네덜란드의 명문 아약스로 이적한다. 아약스에서도 그의 활약은 멈출줄 몰랐다. 아약스에서 그는 2번의 해트트릭을 포함해 17경기 16골을 기록했고, 결국 05/06시즌 총 32경기 33골을 작열시키며 경기당 한 골을 상회하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였다.
이 기록은 두 클럽에서의 기록을 반으로 나누어도 각각 리그 랭킹 5위안에 드는 기록이다. 또한 네덜란드의 전설이라고 부르는 요한 크라이프의 66/67 시즌 33골과 동률을 이루며 에레데비지 한 시즌 최다 득점 공동 10위에 랭크되며 전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훈텔라르는 타켓형 스트라이커로 볼 수 있겠다. 186센티미터의 장신과 가공할만한 점프력에 헤딩력과 골결정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제2의 반니스텔루이로 불리운다. 그러나 타켓형이라는 수식어만 붙기에는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의 유연한 몸놀림, 뛰어난 개인기와 빠른 스피드에 의한 돌파력이 있으므로 그를 올라운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자주 보여주는 오버헤드킥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21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 소속으로 네덜란드의 유럽 청소년 축구대회 우승을 이끌었던 훈텔라르의 A매치 데뷔는 그야말로 최고의 데뷔라 할 수 있겠다. 더블린에서 펼쳐진 아일랜드와 친선경기에서 처음 데뷔한 훈텔라르는 2골 1어시스트를 하는 맹활약을 펼치며 네덜란드의 4대0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지난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딕 쿠이트의 기대 이하의 모습에 시름에 잠겨있던 네덜란드 축구는 훈텔라르의 등장으로 또 한번의 도약을 할 수 있겠다.
▲ 청소년 대표와 유니버시아드 대표의 훈텔라르
훈텔라르는 네덜란드 최고의 공격수로 발돋움하고 있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반바스텐 감독의 유일한 실수는 클라스 얀 훈텔라르를 선발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훈텔라르는 향 후 네덜란드를 이끌어갈 재목으로서 그의 성장과 활약을 더욱 기대해 본다.
첫댓글 직접 쓰셨나요? 추천제도가 있었으면 추천이라도 해드리고 싶을정도의 대단한 글이네요.. ^^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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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클루이-반니 이부분은 제가 한 1년반정도 전에 본 글....;;
예 맞아요. 제가 전에 매니아 칼럼에 '영혼의 투톱'을 올린적이 있었죠. 오렌지 삼총사의 루드 굴리트, 그리고 베르캄프와 클루이베르트의 매력 때문에 네덜란드 축구에 젖어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아쉬어요. 감사합니다.
흠냐..쿠이트가 없네요..에레디비지에서 몇시즌동안 꾸준히 20골이상 넣어줬었고 현재 버풀에서도 잘 해주고 있는데..
훈텔 맨유 ㄱㄱ싱~
카이트가 없다는게 많이 아쉽다,,,
정리해보죠 스트라이커 계보는 크루이프-반바스텐-베르캄프-루드,클루이,마카이-헌터,카이트,페르시.......이거이거 네덜란드는 진짜 스트라이커 천국이내 ㅋㅋㅋㅋ
바르셀로나 감독도 계시네 ㅎㅎ
반바스텐때 스쿼드 정말 대단하네요
좋은자료네요.
반바스텐의 9번을 헌터가 물려받겠지?!!!!!!!!!!!!!!!!!!!!!!
반니랑 클루이베르트가 투톱한적이 별로 없나요? 이둘 투톱 2002월컵예선때 꾸준히 기용했다가 망한걸로 아는데
설명나와있어요 ㅋㅋㅋㅋㅋㅋ
끊임없이 천재들이 나오는구나..... 부럽다
우와.... 정말 잘쓰셨네요. 좋은 자료 잘읽었어용.^^
오베르마스는 무시하시나 -_-
오베르마스는 윙어 아닌가요;;
왼쪽 윙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