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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산 뻐꾹나리의 운명 |
남도 숲 읽기 |
해발 516m의 작은 덩치에 비해 깊은 역사의 무게와 수많은 종류의 야생화를 품고 있는 불갑산은 9월 중순이면 영광의 불갑사 지구와 함평의 용천사 지구에서 경쟁적으로 열리는 꽃무릇 축제로 몸살을 앓는다. 주로 절 주변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꽃무릇(석산)은 이제 사람의 손에 의해 산중턱까지 올랐고 머잖아 정상까지 점령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다. 사람들이 꽃무릇에 홀려 있을 때 정작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보호를 받아야 할 진노랑상사화, 붉노랑상사화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한다. 불갑산은 작은 산에 비해 풍부하고 다양한 식생을 가지고 있어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다. 천연기념물 112호로 지정된 참식나무를 비롯하여, 비자나무, 동백나무가 난대 상록수림으로 번성하는 것을 경이적으로 바라보는 학자들이 있다. 이른 봄부터 끊임없이 피고 지는 야생화가 불갑산의 또 다른 보석이다. 귀여운 노루귀에서 시작한 꽃은 변산바람, 꿩의바람, 만주바람, 현호색, 산자고, 중의무릇, 고깔제비, 왜제비, 남산제비, 털괭이눈, 참꽃마리, 솜대, 하늘말나리 등 헤아리기조차 힘든 많은 풀꽃 친구들이 서로 자리를 물려가며 오손도손 정답게 살아가는 터전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위험이 닥치고 있다. 불갑사와 용천사 근처에는 산림청 지정 보호식물인 ‘뻐꾹나리<사진>’가 많다. 발검음을 할 때마다 꽃이 피면 얼마나 장관을 이룰까 기대하며, 싱싱하게 올라오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목을 내밀어 환희의 노래를 부르려 하는 찰나 무지한 예초기 강철 칼날이 그들을 도륙내버렸다. 축제를 위하여, 꽃무릇이 아닌 모든 풀꽃은 잡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목이 달아나고, 허리가 동강나고, 발목이 잘린 뻐꾹나리를 보는 순간 정말 가슴이 아팠다. 지난해도, 또 올해도…. 야생화는 사람을 좋아 한다. 어두운 숲 속보다는 사람을 따라, 밝은 등산로 변에 모여 산다. 그 길을 따라가면서 또다시 절망이 찾아드는 것을 어찌할까? 길섶을 따라 박혀있는 빨간 페인트칠을 한 말뚝, 분명 반드르한 길을 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꿩의바람꽃은 목이 메여 울지도 못할 것이다. 뻐꾹나리는 형체도 없이 한서린 울음을 토해낼 것이다. 2005년이면 완공되는 불갑사지구 국민관광단지 조성이 끝나기 전에, 더욱 부지런히 작은 풀꽃친구들이 거기에 살았다는 기록을 남기고 다시는 국민관광단지를 찾지 않을 것이다. 홍철희(영광 불갑 초등학교 교사, (사)광주·전남 숲해설가협회 정회원) |
첫댓글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이 글을 영광군청 홈페이지에도 불갑사 홈에도 올려주면 좋을거 같습니다. 그래서 퍼 와 봤구요.
덕분에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예! 영광군청.함평군청 홈피에도 올리겠습니다.
사람의 성급한 개입이 얼마나 큰 화를 자초하는 일이 되기 십상인가를 잘 보여주시는군요. 가슴 아픈 공감을 보냅니다. 형님의 통찰력과 표현력에 감사합니다. 늘 강건하시길...
국장님! 윗글 지우셨네요. 태그 소스를 약간 볼 수 있어서 퍼 왔는데 괜찮으시면 계속 퍼다 드릴까요? 물론 동시간대에 퍼 올수는 없지만~
섬초롱선생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테그를 올려놓으면 지금까지 사랑방에 실린 글들을 한눈에 쉽게 읽을수가 있어서 좋기는 하지만 약간은 번거로움을 감내해야 할것 같습니다.그래도 가끔씩은 이렇게 올려주실거죠! 섬초롱선생님!
홍철희 선생님이 정말 좋은 글 올려주셨네요. 지역에 살면서 영광군청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이 현실을 몇번인가 얘기했지만 항상 그대로이고, 불갑사 그사람들도 고로쇠 물받아 팔아먹겠다고 나무에 구멍을 내는 사람들인지라 얼마나 먹혀들어갈지 답답합니다.
고로쇠는 기가 막히지요. 올 해는 외지 사람에게 청부를 주어서 물만 빼먹고 구멍이고 호스고 그대로 두고 도망했더군요. 군청, 불갑사 홈피에 항의도 했지만 등산로 주변만 눈가림으로 치운척 했어요. 그 동네 사람들에게 맡겼으면 막보기로 하지는 않았을텐데.............
선생님! 생각이 깊어지는 글 감사합니다. 지난주 토요일 무등산의 뻐꾹나리를 보고왔습니다. 매미가 휩쓸고 간 자리에 간신히 안간힘을 다하여 피어있는 꽃을 보는 일이란....그렇게 한 생애 피고 지기도 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