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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336) - 즐겁게 다녀온 일본의 걷기행사
지난주에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걷기대회에 다녀왔다. 도쿄 인근의 히가시마츠야마(東松山)에서 매년 11월 1일부터 3일까지 JAPAN 3-DAY MARCH는 금년 들어 37회 째, 아시아에서 가장 큰 걷기행사로 일본은 물론 유럽과 한국, 중국에서도 연 10만여 명의 걷기동호인들이 몰려드는 축제다. 한국체육진흥회가 주선한 일행 14명은 10월 31일에 출발, 5박6일의 일정을 잘 마치고 11월 5일에 무사히 귀국하였다. 성대하게 치른 행사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 소회를 정리한다.
11월 2일, 무사시노 삼림공원에서 점심을 함께 든 한일 걷기동호인들
1. 전야제로 열린 환영 파티와 첫날의 빗속 걷기
10월 31일 오후 1시 경에 도쿄의 나리타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입국수속을 마치고 곧바로 현지여행사에서 마련한 전세버스에 올라 대회가 열리는 히가시마쓰야마로 향하였다. 트래픽이 심한 도쿄를 통과하여 서북쪽으로 60여km 떨어진 히가시마쓰야마의 숙소(오래된 여관)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약간 지났다. 숙소에 가방만 내려놓고 인근호텔에서 5시부터 열리는 환영 파티에 서둘러 입장하니 이미 분위기가 무르익은 상황, 200여명의 외국 참가자들을 초청한 전야제의 분위기가 흥겹다.
환영파티장의 연단에 오른 한국 참가자들, 가운데 명찰 단 이는 모리타 고이치 시장
파티장소에서 한 시간여 머물다가 일본의 지인들이 머문 아사히도장으로 옮기니 조선통신사걷기일본대표인 엔도 야스오 씨를 비롯한 여러분들이 따뜻하게 맞아준다. 엔도 대표가 환영인사를 한 후 귀한 어른을 소개한다. 걷기대회의 고문이기도 한 92세의 다구찌 옹으로 히가시 마츠야마시 교육장으로 재임할 때 학생들이 대회에 참가하도록 적극 유도한 분이기도 하다. 그는 일본이 과거에 한국을 통해 선진문화를 전수받은 일을 상기하며 조선통신사걷기모임이 한일우호의 전통을 이어가는 좋은 사례라고 강조하기도.
걷기 첫날인 11월 1일, 종일 비가 내린다. 걷기코스는 5, 10, 20, 30, 50km. 한국참가자중 베테랑 5명이 새벽 6시부터 50km에 도전하고 나머지는 8시에 출발하는 20km를 택하였다. 출발장소는 시청 옆 광장, 우중에도 행사장 주변은 인파로 북적이고 걷기관련 용품매장들도 한 목을 노린다. 여러 차례 한국 팀과 같이 걸은 나카무라 스스무 씨가 코스를 안내하는 가운데 한 시간 반 쯤 걸으니 들판의 휴게소에서 따뜻한 차를 대접한다. 빗속을 계속 걸어 한적한 곳에 자리한 사이타마현 역사박물관에 이르니 많은 이들이 넓은 현관에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든다. 우리는 다음 휴게소에서 들기로 하고 지나친다. 가을비 맞으며 걷는 시골길이 운치 있어라.
사이타마현 역사박물관 옆에서 차를 따라 주는 봉사자들과 빗속을 걷는 이들
시내로 들어오니 보쉬라는 큰 엔진부품회사에서 도너츠를 나눠주고 연도의 주민들이 깃발을 흔들며 환영해주어 빗길에 짓눌린 기분이 환하게 밝아진다. 도착지에서 20km 완보 확인카드를 받아들고 숙소에 돌아와 따뜻한 탕에 몸을 담그니 낙원이 따로 없구나.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후 5시부터 조선통신사 걷기모임이 마련한 저녁 식사자리에 이르니 핀란드, 이탈리아, 덴마크, 스위스 등 유럽에서 온 걷기 동호인들도 합석하여 국제간의 우의를 다지는 유쾌한 만찬이 되었다.
2 화창한 날씨에 순후한 인심이 고맙다
11월 2일, 비가 그치고 화창한 날씨다. 전날에 이어 베테랑 3명이 50km에 도전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30km 코스를 택하였다. 오전 8시에 출발하여 한 시간 쯤 걸어 시내를 벗어나니 방공호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산언덕이 나타난다. 요시미 햐쿠아나(吉見百穴)라는 국가지정사적지, 그 아래 동굴에 2차 대전 말기에 비행기 엔진부품을 제작하는 큰 공장에서 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 3,000여명이 일하였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한국을 100여 차례 방문한 가와타 시게루 씨가 들려가기를 권유한다. 잠시 숙연한 마음으로 동굴 안을 살핀 후 다시 걷기, 때에 맞춰 자위대의 편대 훈련이 있는지 여러 대의 비행기가 머리 위로 지나간다.
한 시간 쯤 더 걸으니 히가시히라(東平) 배조합 회원들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배를 수북이 가지고 나와 일행들이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길게 배열한 진열대 위에 잔뜩 쌓아놓는다. 8월 상순부터 10월 하순까지 수확하는 여러 종류의 배 가운데는 한국에서 유명한 나주의 신고(新高) 배와 같은 수종도 포함되어 있다. 가와타 씨가 나주 배만큼 맛있느냐 묻는데 세계적으로 맛좋은 나주 배를 따라오기는 좀,,, 조금 더 가니 네덜란드 풍차가 세워진 휴게소에서 맛있는 고구마를 나눠준다. 그곳에서 반가운 일본인을 만났다. 작년 4월 조선통신사 걷기행사로 오사카~교토 구간을 걸을 때 함께 하였던 나카우치 가오리와 미노리 모녀, 오사카 인근의 히메지에서 왔다는 초등학교 6학년 딸과 젊은 어머니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기행록에 적었는데 멀리 이곳까지 찾아와 연 3일간 30km씩 걷는 중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모녀야, 씩씩하게 걸으시라.
히가시하라 배조합에서 배를 들고 있는 걷기 동호인들
11월 3일, 걷기 3일째 날씨는 맑고 바람 불어 좋은 날이다. 베테랑 3인(남 1, 여 2)은 연속 50km 도전이고 아내와 나는 마지막 날 여유를 갖자며 10km.를 택했다. 출발지점에서 6, 7km쯤 지나도 20, 30km 코스와 같아서 의아하게 여겼더니 도착지에서 실제 걸은 거리가 12km라고 적어준다. 중간휴게지점에서는 땅콩을 손아귀에 들어갈 만큼 집어가라 하고 마지막 휴게지점에서는 현장에서 구운 고구마를 한 조각 씩 들고가게 한다.(이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오오시마 도시하루 씨는 온 들판이 고구마 밭이었다고 회상한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 초중학교 학생들은 물론 보육원 명찰을 단 3,4세 어린이들도 걷기행렬에 끼어 있다. 첫날 2만 3천, 둘 째 날 3만 4천이라던데 3일째는 몇 만이나 참가했을까?
11시 반 경에 걷기를 마치고 광장에 들어선 가게들과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여러 단체들의 행렬을 지켜본 후 광장 옆 시 청사에 들렀다. 11월 3일은 문화의 날로 휴일, 사무실은 닫혀 있어 입구의 진열대에 꽃인 히가시마츠야마 역사자료와 직원명부를 살펴보고 나왔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기는 마찬 가지, 이를 소중히 간직하고 관리하는 일이 중요할 터. 걷는 코스 중에 고분군과 사적지들이 있는 것을 살폈는데 역사자료에서 다시 이를 확인하기도. 히가시마츠야마 시는 인구 10만 여명에 시제(市制)가 시행된 지 60년, 직원 명단 첫 번째에 적힌 시장 모리타 고이치 씨와는 환영 파티장에서 인사를 나누고 시의회 의장 오야마 요시카즈 씨는 걷기 도중 한글이름을 적은 명함을 받으며 담소하였다.
화덕에 고구마를 굽고 있는 주민들
오후 5시, 3일간의 걷기행사를 마친 일행은 히가시마츠야마역에서 기차를 타고 도쿄의 신주꾸에 있는 HUNDRED STAY 호텔로 향하였다. 나카무라 스스무 씨와 가미조 메이코 씨가 안내를 맡아 동행하고.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6시 반, 아내와 편지를 주고받는 후카사와 마리 씨가 호텔 옆의 카페에서 기다리다가 부리나케 뛰어나온다. 일행과 함께 인근의 한국음식점에서 삼겹살과 김치찌개로 저녁을 들고 일본인들은 집으로, 우리 일행은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먼 길 안내하고 찾아준 벗들이여, 안녕.
3. 우정과 정취를 흠뻑 누린 도쿄 탐방
11월 4일, 일본의 조선통신사걷기회원들과 도쿄 일원을 돌아보기로 약속하였다. 오전 8시 40분에 호텔을 나서 전철을 타고 황궁 인근에 있는 유락조역으로 향하였다. 역 앞의 시계탑에 엔도 야스오 대표를 비롯한 5명의 일본인들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황궁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황궁을 한 바퀴 도는 산책 코스가 5km 남짓. 주변에는 히비야 공원과 마이니치 신문사, 옛 육군본부, 국립극장 등 중요 건물들이 수두룩하고 조깅과 산책을 하는 이들이 꽤 많다. 두 시간 여 걷기 후 11시 반에 엔도 대표가 미리 예약한 식당으로 일행을 안내한다. 사전에 우리가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말하였으나 완강하게 뿌리치는 호의가 고맙다. 메뉴는 새우튀김과 화로에서 구운 돼지고기 정식, 모두들 맛있게 든다.
황궁 앞에서 기념촬영
오후에는 번화가인 긴자를 지나 옛 도쿄의 모습을 간직한 전통시장(기능장이 만드는 목공예가게와 전통반찬 가게도 들렀다), 도쿄만의 배들이 들락거리는 강변길이 쾌적하고 일본의 전통무예인 스모박물관등의 길을 걸으며 돌아보니 오후 4시가 가깝다. 엔도 대표와 나카무라 스스무 씨가 이날 걸은 15km를 일본걷기연맹의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겠다며 증서를 나눠주기도.
마지막 지점인 우에노에서 전철을 타고 유락조 역으로 돌아와 5시부터 생맥주를 곁들인 저녁식사 시간이다. 마리 씨가 아내에게 주려고 싸온 도시락을 저녁 식탁에 내 놓으니 마침 식사 코스에 밥이 빠져 적절한 메뉴가 되었다. 두 시간여 만찬을 즐기고 내년에 조선통신사 걷기 때 만나자며 작별을 고하였다. 헤어짐은 섭섭하나 다시 만난 날 기약 있으니 모두들 평안하시라.
마지막날(11월 5일) 오전 9시 반, 일본도착 때 이용한 전세버스에 탑승하여 도쿄도청으로 향하였다,. 45층 타워에서 도쿄 시내를 조망하는 관광 명소, 동서남북으로 평평하게 펼쳐진 대평원의 도쿄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시정홍보물을 진열한 한쪽 코너에 도쿄 도 감사위원의 2014감사보고서가 비치되어 있다. 감사의 관점을 합법성, 경제성, 효율성, 유효성이라고 밝힌 보고서를 2 부 집어 한 부는 순천시의 허유인 의원에게 건네주었다. 공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그런 내용을 알아두면 좋을 듯.
도쿄도청 타워에서 바라본 도쿄의 모습, 앞의 숲 쪽에 메이지 신궁이 있다
젊은 시절에 도쿄생활을 오래하여 지리가 밝은 백희선 씨의 안내로 실용적인 시장 아메요코에 들러 깔끔한 스시를 맛보고 시장을 한 바퀴 돌고나니 공항으로 갈 시간, 오후 5시에 출발하는 비행기 시간에 맞춰 나리타공항에 도착하여 대한항공으로 먼저 떠나는 일행들을 배웅하고 두 시간 늦게 출발하는 아시아나에 올라 인천공항으로 향하였다.
* 세 차례의 조선통신사 걷기와 두 차례의 한국일주 걷기에 함께한 일본 지인들이 수시로 음식을 대접하고 정성이 담긴 선물도 전해주는 등 환대해 준 것과 3일간 걷는 동안 열심히 성원해준 히가시마츠야마 시민들의 따뜻한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아내의 생일을 챙겨준 후지카와 마리 씨와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준 여러분들에게도. 이번 걷기에 참여한 한국인들은 걷기 베테랑들로 3일 연속 50km를 걸은 홍순언 씨는 체육진흥회가 인정한 걷기랭킹 1위 이은지 씨는 3위고 다른 분들도 대부분 상위 랭킹에 속한 분들이다. 일본 동호인들의 이야기로는 외국여성으로 연 3일 50km를 걸은 예는 이번이 처음 케이스일 것이라니 이에 도전한 정영달, 이은지 두 여성 참가자와 함께 한 일행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내의 생일 축하 케이크를 자르며
첫댓글 정말 재미있으셨겠어요. 동경은 제가 여러번 가본 경험이 있어서 글을 읽는데 수월하고 눈에 선~합니다. 동행하고싶은 충동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