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28. 나무날. 날씨: 아침저녁 찬 기운이 돌지만 개나리가 활짝 폈다.
아침열기-수학-택견-점심-청소-감자 심기-글쓰기(텃밭일지)-마침회-5,6학년 영어-교사회의
[감자 심기와 텃밭농사]
감자를 심는다. 올해는 감자를 조금 더 많이 심는다. 가까운 텃밭과 양재천 텃밭에 심으니 두 패로 나눠 일을 하기로 했다. 2, 4, 6학년이 양재천 텃밭으로 가고, 1, 3, 5학년은 가까운 텃밭을 맡는다. 텃밭 일 가운데 구멍 파서 일정한 간격으로 넣는 감자심기는 금세 일이 끝나는 편이다. 양재천 텃밭은 4, 6학년이 먼저 심고, 2학년이 나중에 가서 마무리를 지었다. 씨감자를 미리 자르고 심어서 6월 하지쯤에 캐서 새참으로, 다양한 음식으로 해먹는 감자 농사는 고구마 농사와 함께 텃밭 농사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 봄에 심어 여름에 캐고, 그 자리에 콩과 팥을 심는 감자 농사, 봄에 심어 가을에 캐는 고구마 농사다. 자리를 잡을 때까지 풀 잡기만 잘 해 놓고 북주기를 더하면 크게 손이 가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더 웃거름을 주고 더 정성을 들이면 석달 안 되어 거두는 재미가 쏠쏠한 게 감자 농사다. 어린이 농부들이 캐는 재미를 크게 느낀다. 양재천 밭에는 마늘과 밀이 잘 올라오고 있다. 올해 풀을 잘 잡고 웃거름을 주면 풍년이겠다. 모종을 낸 녀석들도 쑥쑥 올라오고, 곧 씨앗을 뿌리고 옮겨 심으면 농사철이 본격으로 시작된다. 땀 흘려 일하는 기쁨과 풀매는 수고로움을 같이 아는 어린이들이기에 텃밭 농사를 그리 반기지 않는 편이지만 텃밭은 놀이터이자 교과통합 일놀이 교육의 큰 줄기이기도 하다.
인간은 스스로 몸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으니 식물에 의지해 살아왔다. 그래서 지구는 식물 행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주 오랜 시절부터 하늘과 땅을 살펴 인간은 먹을거리를 재배해 왔다. 알약 하나만으로 사는 미래 세계를 말하지만, 여전히 식물이 주는 영양분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 그런 면에서 식물을 길러 에너지를 섭취하는 인간의 삶은 지구인으로 사는 방식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소비의 시대, 자본의 논리가 교육 언어로 뒤바뀌어 사람들의 혼을 빼놓는 때에 생산하는 삶, 땀 흘리는 일의 가치를 말하는 텃밭 농사 교육은 어떤 뜻을 지닐까. 세계화 4.0, 제4차 산업혁명을 말하며 코딩이 미래 교육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때,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니 인간의 땀 흘리는 노동이 사라진다고 말하는 때에 텃밭 농사 교육은 어떤 뜻을 지닐까? 텃밭 농사 교육은 시대에 뒤떨어진 옛날 교육 방식으로 사라져야 할까?
오래전 여름휴가 때 시골에 사시는 어머니와 삼백 평이 넘는 밭에서 콩을 심으며 텃밭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농사짓기 전 그때 주말농장 다섯 평에 이것저것 심는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그냥 웃기만 하셨다. 지금은 오백 평쯤 되는 텃밭에서 콩, 밀, 조, 수수, 마늘, 고구마, 감자, 고추, 여러 텃밭 작물을 재배하는 셈이니 ‘선생이 무슨 농사를 그리 많이 짓느냐’고 정색하고 걱정하실지 모른다. 처음 텃밭 농사를 짓는 사람은 뭘 심을 건지에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조금 오래된 농사꾼이라면 땅심을 생각하게 되고, 거름부터 돌려짓기까지 생각을 키워가게 마련이다. 도시에서 농사짓기 17년째지만 여전히 초보 농사꾼 티를 낸다. 논농사도 9년째이건만 모두 도움을 받아서 하는 셈이니 초보 맞다.
작은 텃밭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다. 먹을거리도 주고, 땀 없이 살아가도 되는 도시에서 땀을 흘리게도 하며, 밭에서 자라는 식물을 돌보다 보면 어느새 자기 삶을 돌아보고 스스로 삶을 가꾸게도 한다. 또한 어린이들에게 텃밭은 귀한 곡식을 주고, 온갖 생명을 알게 하는 배움터요, 놀이터이다.
텃밭 농사를 지으며 우리가 자식 농사에 얼마나 더 정성을 쏟아야 하는지 알았다. 텃밭농사는 일 년에 한 번밖에 지을 수 없으니 무슨 농사철인지 제대로 알고 부지런해야 한다. 또한 둘레에서 관행농으로 텃밭 농사를 짓는 분을 만나면 고스란히 약과 화학비료를 주지 않는 농사가 아무 소용이 없게 되거나, 모든 벌레가 우리 텃밭으로 와서 작물을 모조리 초토화해버리는 경험도 많이 했다. 주말농장, 텃밭 어느 곳이나 함께 가꿀 게 있는 셈이다. 하물며 어린이 교육은 어떠하겠는가. 텃밭 농사는 내년에 다시 지을 수 있지만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걸 다시 생각한다.
힘을 합쳐 일하면 금세 일이 끝나고 함께 노래를 부르고 함께 맛있는 새참을 먹으며 웃고 놀면서 배우는 건 무엇일까. 자신을 스스로 자라게 하며 일하는 기쁨을 맛본다. 생산하는 삶을 실천한다. 생명을 살리는 먹을거리 교육이 이루어진다. 생명의 귀함을 배운다. 땅속 생물부터 식물에 기생하는 곤충과 벌레를 자연스레 만난다. 협력의 가치를 배운다. 아주 작은 땅이라도 함께 일하는 즐거움은 두 배가 된다. 더 넓은 땅은 말해 무엇 하랴.
더 크게는 텃밭 농사는 기후 변화 시대, 지구를 살리는 삶의 기술이다. 멀리 쿠바 도시 농업을 떠올릴 필요도 없다. 대도시 어느 곳을 가더라도 옥상에, 마을 골목 곳곳에 땅이 있는 곳이나 땅이 없으면 화분을 놓고라도 사람들은 뭔가를 심고 가꾸어 먹는다. 큰 가게에 가서 돈을 주고 사면 그만이라는 소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땅을 만지고 스스로 힘으로 뭔가를 가꾸고 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욕구는 훨씬 더 큰 선물을 받는다. 텃밭에 가면 땅과 바람과 하늘과 교감할 수 있고 순수하고 정직한 땀의 세상 속에서 명상과 정직을 그대로 경험할 수 있다. 순환농, 퍼머컬쳐가 기후 변화 시대 다시 주목받는 때 텃밭은 그 시작이 되기에 충분하다. 함께 미생물을 키우고, 땅 힘을 기르고, 식물을 길러 나누며, 함께 관계를 회복하는 전환이야말로 텃밭이 주는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