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와나의 고향방
류희관추천 0조회 71 15.09.26 16:01
小畑 実 (1923~1979)
오바타 미노루 小畑実 (한국명 강영철)
小畑 實는 본명이 강영철(康永喆)이며 1923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고향을 뒤로 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14살때의 일이며 부모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그는 교토에서 고학을 하면서 일본고등음악학교에서 공부했다.
처음에는 오페라 가수를 꿈 꾸었으나 1941년 졸업과 함께 에구찌(江口夜詩)의 소개로 폴리도르에 입사해 <징기스칸>
으로 데뷰했다.
小畑 實는 그해 다시 빅타로 자리를 옮겨 10월에 <도쿄의 푸른 하늘>로 다시 데뷰했다.
기록에는 그가 대정12년생이며 아키다현(秋田縣) 출신으로 되어있는 것은 인기직업이 "조선인"이라면 발붙이기 어려운 당시 예능계의 실정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는 1943년 <勘太郞月夜唄>를 후지하라료코(藤原亮子)와 듀엣으로 불렀는데 이곡이 크게 히트를 쳤다.
당시 2차대전의 말기라 온 나라가 군가 일색으로 삭막한 무렵,부드럽고 달콤한 이 노래가 위안을 주었을 것이다.
1951년 콜럼비아를 거쳐 다시 빅터 레코드로 돌아온 小畑 實는 <高原の驛よちようなら>를 불렀다.
이밖에도 <비의 댄스파티>,<미풍의 비긴>, <산모퉁이에 달이 뜰 무렴>,<런던의 거리 모퉁이에서> 등 수많은 인기곡을 불렀다.
小畑 實는 1957년 그해 연말 NHK 紅白歌合戰에 나가 <高原の驛よちようなら>를 부르는 것으로 일본 가요계를 떠났다.
이에 앞서 1955년 그는 중매인의 소개로 재일 한국인 실업가 서갑호(徐甲虎)의 장녀와 결혼했다.
은퇴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라스베가스에서 호텔을 경영하고 있다고 전해졌으나 그 후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장인이 경영하는 사업을 도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小畑 實는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없어 일본에 머물면서 음악사무실을 차려놓고 작곡 활동과 후진양성에 나서는 한편 록본기(六本木 동경의 번화가)에 한국풍 레스토랑을 경영했다.
그는 이 무렵 그의 히트곡을 수록한 LP를 내어 쇠퇴하지않은 미성을 들려주었다.
1965년 10월 강영철이라는 본명으로 고국으로 돌아 온 그는 이듬해 1월 서울에서 리사이틀을 열었다.
그리고 영화 "불사조"에 특별출연과 동시에 그가 주제가를 녹음했는데 이미자의<동백아가씨>를 히트시킨 명콤비 한산도와 백영호가 작사,작곡을 맡았다.
그후 小畑 實는 장인 회사의 중역과 사카모토 방적의 몰락,다시 일본 가요계 복귀,지방공연 등 연예활동을 하다가 1979년 4월 24일 지바현 노다시에 있는 골프장에서 쓰러져 급성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향년 55세.
(박찬호의 한국가요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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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畵 "高原の駅よさようなら" あらすじ
1951年 大 히트한“高原の駅よさようなら”를 中川信夫 監督 (小畑実 出演)이映畵化한 것입니다.
映畵의 줄거리는 野村俊夫가 “高原의 病院”에 勤務하는 親舊 池島良寛를 만나러 옵니다.
거기서 野村俊夫는 野草(昆蟲인가?)를 採集하는데, 土地를 잘아는 看護婦(ユキ)를 同行케 합니다.
野村俊夫에게는 約婚者가 있습니다만 두 사람은 서로가 끌려서 사랑이 싹틉니다.
그런 어느 날 東京에서 約婚者가 찾아왔는데, 아아 看護婦(ユキ)와의 사랑은 어떻게 될 것인지・・・
다시 만날 날을 約束하고 밤汽車는 떠나는데, 달리는 汽車를 쫓아오며 傳送하는 看護婦(ユキ).
바로 그때 "しばし別れの 夜汽車の 窓よ・・・"로 시작되는 주제곡이 흘러나옵니다.
高原の驛よ さようなら(고원역이여 안녕)
小畑實(오바타미노루)
<作詩 : 佐伯孝夫 / 作曲 : 佐佐木俊一 / 昭和26年>
https://www.youtube.com/watch?v=YpUH4nGQ0ZI
昭和二十六年発売。
香川京子、水島道太郎、田崎潤。
~1~
しばし 別の 夜汽車の 窓よ / 言わず 語らずに 心と こころ
시바시 와카레노 요기샤노 마도요 / 이와즈 카타라즈니 코코로토 코코로
잠깐 이별하는 밤기차의 창이여 / 말없이 말하지 않고 마음과 마음으로
またの 逢う日を 目と目で 誓い / 淚 見せずに さようなら
마타노 아우히오 메토메데 치카이 /나미다 미세즈니 사요우나라
또 다시 만날 날을 눈과 눈으로 맹세해/ 눈물 보이지 않고 안녕..
~2~
旅の お人と 恨まで おくれ / 二人 いだいて 眺めた 月を
타비노 오히토토 우라마데 오쿠레 / 후타리 이다이테 나가메타 쓰기오
나그네라고 원망은 말아주 / 둘이서 껴안고 바라본 달님을
はなれはなれて 相呼ぶ 夜は / 男 なみだで くもらせる
하나레 하나레테 아이요부 요루와 / 오토코 나미다데 쿠모라세루
떨어져 떨어어져 서로 부르는 밤은 / 사나이 눈물로 흐려지네
~3~
わかりましたわ わかってくれた / あとは 言うまい 聞かずに おくれ
와카리마시타와 와카ㅊ테 쿠레타 / 아토와 이우마이 키카즈니 오쿠레
알았어요 알아주신 / 후에는 말하지 않으리 묻지 말아주
想い 切なく 手に 手を とれば / 笛(ふえ)が ひびくよ 高原の驛
오모이 세츠나쿠 데니 테오 토레바 / 후에가 히비쿠요 고오겐노 에키
사모의 정 안타까워 손에 손을 잡으니 / 기적 소리 울려 퍼지네 고원의 역이여
강영철 불사조
https://www.youtube.com/watch?v=Xs2VdRf6zYg
불사조
1966
한산도 작사 , 백영호 작곡, 강영철 노래
1. 이목숨 바칠 것을 다짐한 사랑 이세상 다하도록 맹세한 사랑
두갈래 갈림길에 서성거리며 한없는 그리움에 가슴태우는
음~ 음~ 내 사랑은 불사조 변함없는 불사조
2. 헤어져 살더라도 내가 왜 잊어 긴세월 부른데로 내가 왜 잊어
마음과 마음으로 궂게 맺어진 그대는 나의아내 영원한다네
음~ 음~ 내 사랑은 불사조 변함없는 불사조
백영호 작곡집 (영화)불사조''최후전선180리"주제가
(1966) 강영철, 문주란 외 - 영화 최후전선 180리 주제가(백영호 작곡집)
정규 12인치LP 1966 지구 LM 120112
강영철(康永喆, 1923년 4월 30일 ~ 1979년 4월 24일)은 일본에서 활동했던 재일 한국인 가수로,
일본어 이름은 오바타 미노루(일본어: 小畑実 (おばた みのる))이며 평안남도 평양 출신이다
그는 작은소리로 감정을실어 속삭이는 창법인 크루너창법의 가수인 바 유시마의 흰매화, 고원의역이여 안녕,등을 취입했는데 1941년 포리돌서 징기스칸을 데뷔곡으로 그해 빅터로옮겨 도쿄의 푸른하늘로 재데뷔 합니다
1942년경 한국의 이인권과 비슷한 제목의 부계도의 노래 를 후지와라 료코와 듀엣으로불러 그의 가요인생 최초의 힛트를합니다
강영철은 1923년 평양에서 태어나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일본고등음악학교에서 공부를 했으며.
처음에는 오페라가수에 뜻을 두었으나 41년 음악학교 졸업과 함께 포리도루에서 <칭기스칸>으로 데뷔하여 그해 10월에는 빅터로 이적하여 <도쿄의 푸른 하늘>을 불러 인기를 얻었으며 '고바다께'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
57년 12월 31일 NHK에서 <고원의 역이여 안녕>을 끝으로 가요계에서 은퇴, 미국으로 가서 사업을 하기도 했으며, 65년 '강영철'이라는 이름으로 귀국하여 영화 '불사조'에 출연 불사조 주제가를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취입하여 그의 노래 실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실업가 서민호씨의 사위이기도 했으나, 79년4월 24일 골프 도중에 쓰러져 급성신부전증으로 55세의 일기로 세상을 마감했다. 그는 타고난 미성으로 한때 가요계를 풍미했으나 말년은 그리 순탄치는 못했다.
<고바다께 마꼬도>라는 일본 명으로 활약했으나 이민족이라는 갈등을 겼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