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음을 부끄러워할 줄 안다면 부끄러워할 일이 없느니라.
- 맹자 -
맹자
전국시대의 철학자, 정치사상가로 본명은 맹가(孟軻)이다. 맹자는 의(義)를강조하여 인(仁)의 위치에 같이 놓아둠으로써 공자의 사상을 보충하고 발전시켰다.
우리는 사람답지 못한 행동을 봤을 때, 차마 저렇게까지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만약 권력자가 사람답지 못한 행동을 해서 백성들을 크게 괴롭한다면, 백성들은 그런 윗사람을 끌어 내려도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권력자는 백성들을 위해 정치해야 되고, 백성들은 부당한 권력을 휘두르는 권력자에게 저항한다'는 의로움(義)의 개념은, 사람다움(仁)을 지키기 위해 마땅히 가야할 길로 여겨져서 맹자를 대표하는 핵심 사상이 된다.
주자는 그를 진(秦)나라 이전 유학의 마지막 적통으로 평가했는데, 그 영향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흔히 공자와 묶여 공맹(孔孟)으로 언급되어 유교의 대표 인사로 꼽히고 있다. 때문에 그를 표현하는 호칭 역시 공자에 준하는 '아성(亞聖)'으로 불린다.
원 문종 3년(지순至順 원년, 1330년)에 추국아성공(鄒國亞聖公)으로 추봉(追封)되었고, 이것이 현재 성균관 대성전 등지의 공문 사당(孔門祠堂) 위패에 표기되는 공식 존호이다. 그의 대표적인 제자로는 만장과 공손추 등이 있다.
부당한 권력에 대한 백성의 저항을 옹호하고, "왕의 권력은 백성들이 부여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등 그가 살았던 시대에 비해 매우 진보적인 주장을 하였다.
맹자의 이러한 사상은 계몽주의 이후에 나타나는 사회계약론과 굉장히 닮아 있다. 사실상 근대 서양에서 사회계약론이 태어나기 수천 년 전에 선행해서 등장한 민(民) 본위의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공자가 사망하고 백여년 후 쯤 산둥성 쩌우청에서 맹가가 태어났다.
맹가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어서 편모가정에서 자랐다. 맹가의 어머니 장씨는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이사를 세 번 했다는 바로 그 맹모삼천지교와 맹모단기지교로 유명한 현모였고 맹가는 이런 어머니에게 큰 영향을 받아 학교 수업을 마친 뒤 공자의 고향 노나라로 가서 공자의 손자 자사의 문인에게서 공자가 편찬한 육경을 배웠다.
편모가정임에도 자식 교육을 위해서 노력하는 훌륭한 어머니와 좋은 환경 덕분에 그의 재능이 썩지 않을 수 있었으니 축복받은 어린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장성한 맹가는 제자백가 시대에 돌입한 당대에 묵자와 양주의 사상과 경쟁하여 유가 사상을 확립했다. 불혹 이후에 '인정'과 '왕도정치(王道政治)' 주창하며 천하를 유력했다. 법가나 종횡가가 득세하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은퇴했다.
맹가의 육순 이후의 삶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출처:나무위키]
첫댓글 맹자님을 봅니다.^^
맹자를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맹자의 仁,義를 배웁니다~^^
맹자 말씀을 익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