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daum.net/gumboil/10039948 [1975 '아도니스'(김성호, 박진섭)의 '다정한 연인'] : 블로그 폐쇄됨.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7257347 [1977 '서울대트리오'의 제1회 대학가요제 공연 영상]
대학가요제에 나왔던 노래 중 많은 곡들이 이른바 빅 히트를 쳤던 시절이 있었죠.
그 많은 히트곡 중 저는 77년 제1회 대학가요제에서 동상을 받았던 서울대트리오의 '젊은 연인들'을 가장 좋아합니다.
혼자 부르기보다는 기타 치면서 여럿이 화음을 맞쳐 불러야 더 맛을 낼 수 노래...
역대 대학가요제 출품작 중 저는 개인적으로 이 '젊은 연인들'을 최고의 곡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77년 대학가요제 직후 이 노래를 통기타로 연주하는 것이 전국적인 유행으로 번졌습니다.
그랑프리를 받았던 서울대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도 인기가 대단했지만, 대학생은 물론이고 중고생들까지 이 곡을 서울대트리오의 기타 연주와 똑같이(처음에 ~솔라시도~ 아시죠?) 연주하려고 기타 공부 많이 했었죠.
골목마다 저 노래를 연주하는 기타 소리가 울려 퍼질 정도로 광풍이 일었습니다.
저도 그 당시 고딩이었는데 저 노래를 연주하기 위해 기타를 다시 잡았던 기억이 나요.
중학교 때 기타가 너무 배우고 싶어 그만 엄마 지갑을 슬쩍해서 기타 학원에 다녔는데 아무리 연습해도 바가지 긁는 소리밖에 나지 않아 2주일인가 다니다가 때려치웠거든요.
77년 대학가요제에서 샌드페블즈가 부른 '나 어떡해'가 그랑프리를 받았지만 본공연 전 그러니까 예선전 때까지만 해도 참가자 모두가 '젊은 연인들'이 그랑프리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세 청년이 만들어 내는 기타 연주와 화음이 장난이 아니었죠?
그러나 본공연 직전 '서울대트리오' 멤버 중 한 사람의 기타줄이 그만 다 늘어졌는데 그걸 다시 맞추질 못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결국 기타 한 대는 다른 두 기타와 다른 음정으로 소리를 내야 했고 그 여파로 본공연 때는 예선전 때와는 달리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했다네요.
샌드페블즈에서 보컬을 맡았던 여병섭 님이 7080 콘서트에선가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서울대트리오' 멤버는 같은 학교인 '샌드페블즈' 멤버보다 더 선배였다고 합니다.
아련한 추억의 동영상을 보면 그 당시 풋풋했던 대학생 '서울대트리오' 세 분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어떤 분이 민병호 님인지...)
저 세 분이 다시 모여 화음을 맞춰서 부르는 '젊은 연인들'을 한번 보는 게 소원입니다.
세 분 중 한 분은 지금 건축소 소장님이시고 다른 두 분은 모두 대학교 교수님이라고 하시네요.
그렇다면 대학가요제 출품곡 중 최고의 명곡으로 생각하고 있는 저 노래는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요?
저는 당연히 '서울대트리오'의 멤버 세 사람이 같이 만들었거나 누군가 한 사람이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조금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연결된 블로그를 통해서 확인해 보세요.
75년 '아도니스'가 부른 노래는 77년 '서울대트리오'가 부른 노래와는 완전히 다른 색다른 맛이 있네요.
'아도니스' 앨범 뒷면에 있는 풀롯을 부는 사진의 주인공은 작곡가인 정성조 님입니다.
'젊은 연인들' 계보(?)
1971 '훅스'(민병무, 방희준)의 '젊은 연인들' ----------------- 음반 미발표
1975 '아도니스'(김성호, 박진섭)의 '다정한 연인' ------------- 음반 발표
1977 '서울대트리오'(민병호, 정연택, 민경식)의 '젊은 연인들' --- 제1회 대학가요제 출전 동상 수상
'젊은 연인들'과 관련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야기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
한 대학교 동아리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4학년 선배들이 마지막 겨울방학을 후배들과 지내고 싶어 여행을 계획했다.
그런데 후배들이 바쁘다며 다 빠지고 한 후배만 가게 되었다.
선배들은 서운했겠지만 이를 감추고 함께 여행을 떠났다.
때는 겨울이었지만 날씨가 좋아서 간단한 음식과 방한장비만 챙긴 채 산에 올랐다.
그런데 산중턱쯤 올랐을 무렵 갑자기 날씨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산에 오르던 다른 등산객들은 하산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 후배는 선배들과 가는 마지막 여행에 미련이 컸다.
빨리 올라갔다 내려오자며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갈수록 날씨가 나빠지면서 슬슬 내리던 눈은 이내 눈보라로 바뀌어 버렸다.
길은 정상에 가까워 있었지만 우선 눈보라를 피해야 할 상황.
겨우 산 여기저기를 헤매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조그만 산장을 찾았다.
산장에는 땔감은커녕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다.
눈보라가 너무 심하게 불어 밖으로 땔감을 구하러 가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라디오에서는 눈이 더 계속 내린다는 방송만 내보낼 뿐이었다.
4학년 선배들은 제비뽑기를 해 한 명을 뽑아 내려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뽑힌 사람에게는 방한 장비와 음식들을 모두 주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 역시 위험했기 때문이다.
제비뽑기는 동그라미가 표시된 종이를 뽑는 사람으로 하기로 했다.
각자 종이를 하나씩 뽑았는데 후배인 그가 먼저 종이를 펼쳐 보였다.
그런데 그가 펼친 종이에는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선배들은 약속대로 그 후배에게 두터운 옷과 음식을 챙겨줬다.
그 후배는 산 속을 하루가 넘도록 헤매다 겨우 아래 인가에 내려가 구조 요청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산장의 정확한 위치도 모르고 눈보라도 너무 심하게 불어서 날씨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그 친구는 혼자서라도 다시 올라가겠다고 했지만 탈진한 상태라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4일 정도가 지난 후에 날씨가 좋아지자 구조대원들과 그 후배는 산으로 선배들을 찾으러 갔다.
저녁쯤 되어서야 그들은 산 정상 부근의 허름한 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장에 있던 선배들은 몸들을 꼭 붙인 채 불 주위에 몰려 있었다.
그리고 불을 지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태우며 서로 손을 잡은 채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불은 꺼진 지 오래였고, 그들은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구조대원들이 시신을 옮기기 위해 손들을 떼어 놓는데 그들 손에는 종이가 하나씩 접혀 있었다.
그 종이에는 모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젊은 연인들'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라고 한다.
첫댓글 '대연각 화재 사건'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기억나게 하는....에 파티를 하다가...대연각 화재로 안타까운 죽음에 이른...이 곡을 만든 민병무 형님을 기리면서 부른 그런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요
노래를 부른 민병호님
그리고 방희준님의
그 전에 이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아 그렇군요. 그런 슬픈 전설도 깃들어 있군요...
대연각 때 고인이 된 두사람이 저의 고등학교 동창이랍니다.
잘생긴 친구들이죠.
고등학교때 소풍가면 항ㅅ강 인기였던 친구들인데 'sea of heartbreaker' 를 즐겨 불렀죠
아! 레오님... 민병진 선생님, 처음 뵙겠습니다... 허걱! 동창!!! 세상이 좁은 것인가요? '훅스' 두 분 모두 돌아가신 거군요... 저 노래 별로 안 좋아하시겠어요... 슬픈 기억이 떠오르실테니...
잘 읽고 갑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결된 블로그의 주인장 '신용산'님도 우리 4월과 5월 카페의 가족(회원)이셨습니다.
카페 활동도 열심히 하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지금은 고인이 되셨어요.
'4월과 5월 게시판'을 둘러보다가 2007년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4월과 5월'과 관련된 옛날 자료를 많이 올려 주셨더군요.
뒤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인생이 무상함을 실감합니다.
sophee님이 '젊은 연인들'과 관련된 내용을 예전에 이미 올려 주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