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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신년사]
올해 신년사에서 대화와 통일 강조, 왜?
김일성 부자도 ‘통일의 해’ 선정 전례 있어 권력기반 강화·주민 통제용 선전술책일 뿐 대화 강조하면서 한미군사연습 중단 요구 北 오랜 양면성 감안하면 안보 방심 위험
■ 1995년을 ‘통일의 해’로 정하기도 북한이 통일 관련 해(年)를 선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김일성이 살아있을 당시인 1980년대 ‘통일의 해’로 1995년을 정한 바 있다. 탈북 외교관 고영환은 1995년이 통일의 해가 된 배경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했다. 다만 김일성 대(代)에 통일을 이뤄야 하고, 20세기 내에 마쳐야 하며, ‘정주년’, 즉 5의 배수인 해에 이뤄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뿐이라고 한다. 고영환은 김일성 부자가 ‘통일의 해’를 정한 것이 고도의 ‘선전술책’이라고 평가했다. ‘통일의 해’까지 정해놓고 빈번히 통일행사를 치르고, 여기에 반미행사를 곁들임으로써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과 갈증,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함께 자극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주민들이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김일성 부자를 따르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2015년을 왜 ‘통일대전 완성의 해’로 정했을까? 1995년이 선정된 배경을 고려하면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첫째, 1995년과 마찬가지로 북한이 강조하는 이른바 ‘꺾어지는 해’ 측면에서 2015년만큼 좋은 해는 없다. 2015년은 광복·분단·당창건 70주년이자 끝자리가 5로 끝나는 해다. 둘째, 김정일 3년 탈상 이후 처음 맞이하는 해인 만큼 실질적인 김정은 시대의 첫해다. 김정일도 김일성 3년상을 마치고 처음 맞이한 1998년에 국가주석제를 폐지하고 국방위원장을 최고지도자로 하는 헌법 개정을 통해 실질적인 김정일 시대를 열었던 경험이 있다. 이 점에서 김정은도 2015년에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셋째, 권력기반을 다져가는 중인 김정은 입장에서 ‘통일’이란 의제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었을 것이다. 통일이란 앞서 고영환의 증언처럼 주민들에 대한 ‘선전술책’으로 효과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 북한은 자신들이 불리한 상황에 처했을 때 통일문제를 들고 나온 바 있었다. 이 점에서 김정은에게 통일은 대내외적으로 대단히 효과적인 카드였던 것이다. ■ 통일 강조 이면에 국방력 강화 촉구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지난해를 군대의 전투력이 강화되고 국방력이 튼튼히 다져졌다고 평가했다. 북한식의 ‘다양한 군사적 타격수단들이 완성되어 혁명무력의 질적 강화도 이루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올해도 선군정치와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을 변함없이 견지해 나가겠다고 했다. 현 국제정세에서 핵개발도 정당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말한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이란 2013년 3월 31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김정은 시대 북한의 전략이다. 북한은 이 노선이 1960년대 김일성이 제시한 ‘경제·국방 병진노선’의 ‘계승’이자 ‘심화발전’이라고 선전한다. 김일성은 경제발전에서 일부 제약을 받더라도 국방력을 강화하겠다며 병진노선을 채택한 바 있다. 이를 구체화한 것이 이른바 4대 군사노선이었다 그러나 김일성이 제시했던 병진노선은 실패한 전략이었다. 당시 북한은 이 노선을 추진하면서 10%대였던 국방비를 1967년에는 30%대로 대폭 증액했다. 그 결과 이때부터 북한 경제는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주민들은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북한은 김정은의 병진노선이 핵 개발만큼 경제건설을 중요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말을 곧이 들을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애당초 이 병진노선은 불가능한 것이며, 스스로 고립만 자초할 것이라는 공통된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결국 겉으로 남북대화와 통일을 언급하면서 그 이면에서 ‘통일대전’을 내세우며 국방력 강화를 강조하는 것은 북한의 오래된 양면성이다. ■ 튼튼한 안보가 더없이 중요한 2015년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남북대화와 통일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섣불리 낙관하기에는 여러 면에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어 보인다. 먼저, 북한은 남북대화를 강조하면서 전제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한미군사연습 중단이다. 북한은 한미군사연습을 ‘핵전쟁의 위협을 몰아오는 주된 화근’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신의 있는 대화’도 없고, 남북관계도 ‘전진’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이 진정으로 대화를 원한다면 조건 없이 회담장에 나와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 보여준 북한의 행태 또한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북한은 2013년 8월 남북적십자 실무접촉에서 이산가족상봉에 합의한 지 한 달도 못 돼 이를 연기시켰다. 2014년 10월에는 ‘실세 3인방’을 아시안게임에 보내 고위급 회담에 합의했지만 대북전단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무산시킨 바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자주통일’에 대한 의미도 명확히 살펴봐야 한다. 남북이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통해 합의한 이른바 ‘통일3원칙’의 첫 번째가 ‘자주’였다. 여기서 ‘자주’는 민족자결의 취지에서 남북 당사자 해결 원칙을 말하는 것이지만, 북한은 외세 배격을 강조하며 주한미군 철수와 유엔사 해체의 근거로 악용하곤 했다. 이번 신년사에서도 미국을 외세로 규정하며 비난하고 있다. 올해는 우리에게 광복·분단 7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그러나 북한은 이보다는 당 창건 70주년에 더 비중을 두는 것 같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올해 모든 정책을 당 창건 기념일에 맞추고 있다. 당 창건 기념일인 10월 10일을 ‘10월의 대축전장’이라며, 모두가 ‘자랑찬 선물을 안고 대축전장에 떳떳이 들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전 분야에서 ‘총공격전’을 전개하라고도 했다. 과연 그 ‘자랑찬 선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혹여 ‘통일대전 완성의 해’라는 얼토당토않은 선전과 그것을 위한 무력도발로 ‘선물’을 얻으려는 생각은 아닐까. 여러모로 2015년은 그 어느 해보다 우리의 튼튼한 안보가 필요한 해가 될 것이다. 튼튼한 안보 위에서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 보자. 이신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북한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