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할미새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은이_박희선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1. 10. 22
●전체페이지_136쪽 ●ISBN 979-11-91914-05-4 03810/신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2,000원
고향의 자연과 함께 사는 상생과 공생의 시학
박희선 시인의 신작시집 『할미새한테서 전화가 왔다』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박희선 시인의 시는 고향 산천을 닮아 있다. 그가 태어난 백화산 자락을 닮아 있고, 그가 일구는 비알밭을 닮아 있고, 그 산천에 기대어 사는 고라니 멧돼지 딱새 할미새 뻐꾸기 곤줄박이 도리지꽃 족두리꽃을 닮아 있다. 고향 산천의 자연을 닮아가다가 더 닮을 것이 없어, 그대로 고향 산천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사는 시인. 순한 백성의 선량함이 시 곳곳에 짙게 배어 있다. 시인의 눈빛 깊숙이 어떤 남모를 애잔한 슬픔이나 처연한 그리움 같은 게 어려 있기도 한데 어쩌면 그것이 시를 쓰는 힘인 듯 보인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고향이 없는 사람조차도 미지의 어느 고향을 동경하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시에 물들어 고향의 가을하늘처럼 넉넉하고 풍성하게 깊어지게 된다.
내 고향에서 제일 높은 산
백화산을 머리에 이고
할머니께서 서울역에 내리셨다
높고 무거운 산을 머리에 이고 오시느라
노루처럼 가는 목이 많이 불편해 보이셨다
땀에 젖은 무명저고리 밑에는
까만 포도알 두 개
오래된 젖무덤이 외롭고 슬펐다
할머니께서 이고 오신
백화산 포도작목반 종이 상자에서
내 귀에 익은 솔바람 소리가 시원하고
산골짜기에 흐르는 맑은 물소리에
정든 뻐꾹새 울음이 떠내려왔다
잿빛 산토끼 한 마리
낮잠에서 깨어나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백화산 포도 상자 안에서
묵은 김치 국물이 조금씩 밖으로 번져 나오고
참기름 냄새도 답답해서 못 참겠다고 고물거리었다
내일 모레는 입추
산을 머리에 인 등 굽은 할머니가
외롭고 낯선 찬비를 젖으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홍은동 가는 버스 타는 곳을 물으셨다
―「산을 머리에 이고」 전문
“백화산을 머리에 이고”, “노루처럼 가는 목이 많이 불편”해도 할머니는 고향을 이고 서울역으로 향하신다. “묵은 김치 국물”과 “참기름 냄새”에 담긴 할머니의 사랑이, 고향의 정겨움이 시 곳곳에 짙게 배어 있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잃어버린 고향이 생생하게 살아오고, 고향이 없는 사람조차도 미지의 어느 고향을 동경하게 만든다.
새벽에는 멧돼지 아버지가
아침 양식을 구하여 마을에 내려오다가
승용차에 치여 돌아가시었다
딸린 식구가 다섯이나 된다는 이야기를
문상 온 부엉이 영감한테 들었다
―「겨울밤 자정」 부분
배고픈 산비둘기 형제가
엄나무 잎새 뒤에 숨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병든 강아지
눈치만 살피고 있네
―「가을마당」 부분
한여름 대낮 봉선화 그늘에
깨어진 똥장군 밑에 사는
두꺼비 내외가 누워 있었다
―「두꺼비를 위하여」 부분
"멧돼지 아버지", "산비둘기 형제", "두꺼비 내외" 말고도 까치 영감, 꾀꼬리 처녀, 들쥐 할멈, 부엉이 영감, 자두나무 자매 등 주위의 동식물과도 거리낌 없이 한 가족을 이루며 소통한다. 가족같이 부르는 동식물과의 소통과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한다.
박희선 시인의 이번 시집 『할미새한테서 전화가 왔다』는 이름 그대로 자연 친화적이면서 더불어 함께 사는 공생(共生)과 상생(相生)의 모습을 보여주는 문안의 시집이다. 시집의 시편들에서 들꽃 향기가 피어난다. 달면서도 시원한 산바람 맛이 나는 시인의 시집에는 근원적인 고향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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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시인의 말·05
제1부
쌀 씻는 소리·13
가을마당·14
겨울밤, 빈 깡통 우는 소리·16
내 가슴속 금시계·18
눈 내리는 날은·20
할미꽃·21
감기에 대한 생각·22
감나무에 카세트 걸어두고·23
거울 앞에서·24
때 묻은 이름·26
소원 한 가지·28
매천리에서 1·30
빈 의자 하나·32
삼거리 주막·24
할미새한테서 전화가 왔다·36
제2부
비알밭에서·41
감나무 그늘에 누워·42
개비름꽃·43
고라니 영감님께·44
까치 영감댁 집들이·46
걷기운동·48
고요함에 대하여·50
그림자를 업고·51
들깨 타작·52
고구마밭에서·54
이팝나무 그늘·55
자갈논에서 1·56
자갈논에서 2·58
자두나무 두 그루·60
백운사 종소리·62
제3부
겨울밤 자정·67
그림자를 찾아서·68
내 등에 업혀라·70
두꺼비를 위하여·72
외로운 늑대·73
들고양이 한 마리·74
매천리에서 2·76
몽순이 집 앞에서·78
변명(辨明)·79
열쇠 하나·80
진달래꽃은 언제 피나·82
자갈밭에 콩 심기·84
금곡동에서·85
내가 사랑하는 희망이·86
버리는 연습·88
제4부
살구나무 아래·93
내 고향은·94
백운동에서·96
봄밤 자정에는·98
족두리꽃·99
봉식 아제 결혼·100
산을 머리에 이고·102
『심청전』을 읽는 밤·104
왼손에 대하여·106
자갈논에서 3·108
찬비 내리는 아침·110
황간이용원에 가면·112
별 하나·114
쇠고기라면·116
중독·118
시인의 산문·119
■ 시집 속의 시 한 편
늙은 소나무에 세 들어 사는
할미새 할미한테서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왜 보름째나 밭에 올라오지 않느냐
몹시 궁금해서 전화를 했단다
아내가 몸이 안 좋다고 했더니
지난봄에 큰 수술한 곳이
지금도 많이 아프냐고 되물었다
감나무와 호두나무 대추나무들
고라니와 멧돼지,
곤줄박이와 콩새 산비둘기까지도
내가 보고 싶어 모두 안달이 났다고
하얀 거짓말까지 보탰다
우리 보리밭은 잘 있느냐고 물었더니
며칠 전에 고라니 큰삼촌이 돌아가셔서
온 집안이 조용히 보낸다고 말했다
지난 장날부터 호두나무 옆에
도라지꽃들이 만발했는데
자기는 보랏빛 꽃보다
흰 꽃이 더 예쁘다면서 혼자 웃었다
―「할미새한테서 전화가 왔다」 전문
■ 시인의 말
며칠 전에 입추가 지나갔다.
거만한 겨울이 지축을 울리면서 뒤따르고 있다.
내가 다스리는 작은 나라에 사는 푸른 목숨들은 서둘러 열매를 익히는 중이다.
지난여름은 얼마나 목마르고 그립고 뼈아팠던가.
땡볕 아래서 쇠스랑으로 밭을 갈고, 씨 뿌리고 거름을 주는 일, 무서운 병충해와 싸우면서 살아남았다.
잎이 떨어지고 눈보라가 칠 것이다.
삭막한 땅을 햇솜 같은 흰 눈이 덮어줄 것이다.
멍든 희망을 끌어안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다시 잠들 것이다.
겉보리 씨 한 바가지 부드러운 땅에 묻는다.
여기 거룩한 곳에 엉금엉금 기어 다니면서 아직도 살아 있음을 하느님께 알릴 것이다.
흰 눈밭에 파란 보리싹, 그 질긴 뿌리를 언 땅에 내리고 한 백 년만 더 살고 싶다.
2021년 가을
박희선
■ 표4(약평)
박희선 시인은 두 눈을 감아야 잘 보이는 고향이야기를, 가난한 시절의 눈물겨운 산골 풍정을, 섬세한 정서와 정갈한 감각으로 그려낸다. 새 한 마리, 풀꽃 하나 생활 주변의 소소한 사물들이 저마다 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소통과 사랑으로 넉넉한 자적(自適)의 삶을 노래한 순수시의 제전이 풍성하다. 『할미새한테서 전화가 왔다』는 이름 그대로 자연 친화적이면서 더불어 함께 사는 공생(共生)과 상생(相生)의 모습을 보여주는 문안의 시편들이다. 특히 괴질의 시대에 인간의 아집과 자만을 반성케 하는 생태적인 시가 들꽃 향기로 피어난다. 달면서도 시원한 산바람 맛이 난다._박찬선(시인)
박희선 시인의 시는 겸손하다. 눈밭에 숨어 있는 보리싹 같다. 그러나 봄이 오면 순식간에 온 들판을 푸르게 뒤덮는다. 그가 뿌린 시어(詩語)가 정갈하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산비둘기 형제, 까치 영감, 꾀꼬리 처녀, 들쥐 할멈, 부엉이 영감, 두꺼비 내외, 들고양이, 개비름꽃, 자두나무 자매 등 주위의 동식물과도 거리낌 없이 한 가족을 이루며 소통한다. “하얀 쌀밥에 따뜻한 소고기국 한 그릇/배가 부르니까 시가 쓰여지지 않는다”는 박희선 시인, “밤새도록 꽁꽁 얼어붙은/푸른 잉크를 입김으로 녹이며/시를 쓰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시인의 각오가 아직도 절절하다._박천호(시인)
■ 박희선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1966년 『문학춘추』 로 등단하였다. 시집 『연옥의 바다』, 『빈 마을에 뻐꾹새가 운다』, 『백운리 종점』, 『녹슨 남포등』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