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탸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축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웅앙응앙 울을 것이다
<시 읽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백석
항간에 떠도는 백석의 사진이 보여주듯, 그는 언론사에서 근무하다 고등학교 영어교사를 했던 전형적인 지식인 모던보이였지요. 그가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것이 그의 말년의 불우를 이미 예정했던 걸까요.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간 백석은 남북의 왕래가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게 된 이후 북한의 사람을 살아야 했지요. 50세 이후 일체의 창작활동이 중단된 채 83세에 죽었다고 알려진 백석. 해사한 꽃미남같은 그 사진 속 얼굴과 쓰고 싶은 것들을 맘껏 쓰지 못한 채 말년을 맞은 노인 백석이 함께 떠올라 쓸쓸해집니다.
한해의 마지막 달 마지막 주에 백석을 배달합니다. 가난힌 나와 아름다운 나타샤의 대조가 주는 묘하고 아름다운 비감이 있는 시이지요. 푹푹 눈이 나립니다. 백석의 이 시가 아니었다면 “눈이 푹푹 나린다”는 표현은 아직껏 없었을도 모릅니다. 나는 가난하여 아름다운 나타샤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할 수 없습니다. 나타샤와 함께 출출이(새 이름입니다. 흔히 뱁새라고 한다지요.^^) 우는 산골로 가 살자고 말하고 싶지만, 가난한 나는 자신이 없어 소주나 마십니다. 그런 내 마음속에 나타샤가 다가와 시인보다 더 대담하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그래 우리 산골로 가. 산골로 가는 게 세상한테 지는 건 아냐.” 시인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나타샤의 입을 통해 하고 있군요. 그의 간절한 마음이 읽혀집니다. “흥,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거야.” 세상에 버려지지 말고 우리가 먼저 더러운 세상을 버리자고, 그렇게 우리의 사랑을 지키자고 말하는 이 마음. 이들이 사랑을 축복하듯 어디서 흰 당나귀도 응앙응앙 웁니다. ‘응앙응앙’ 우는 흰당나귀라니, 이 역시 백석이 없었다면 아직껏 우리 시에서 드러난 적 없는 표현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마가리(오두막집)로 가지 못했습니다. 현실과 꿈의 괴리, 그것은 백석에게 짐 지워진 운명이었을까요. 백석을 떠올릴 때 늘 함께 떠오르는 사람, 자야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들은 초강력 콩깍지가 씐 듯 사랑했지만 백석은 북한에서 죽과 남한에서 엄청난 돈을 번 그녀는 천억 원대의 재산을 법정스님께 시주해 오늘날의 길상사가 세워졌다지요.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자야여사가 죽기 며칠 전 기자가 묻는 이 말에 자야여사의 대답은 이랬답니다. 천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를 쓸거야.
알고 계시지요? 천 억이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숨결 한 줄보다 못하다는 것을.
―김선우, 『어느 하루 구름극장에서』, 단비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