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아프리카의 타조 사냥 이야기
타조를 잡으려면, 타조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쫓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 타조와 쫓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유지되는 일정한 간격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존재하게 되는데, 쫓고 쫓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쫓기는 쪽의 긴장감은 커지기만 한다.
타조가 쫓기고 쫓기다가 긴장감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면
도망가는 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머리를 뜨거운 모래땅에 처박는다.
사람들은 그냥 가서 꼼짝 않고 대가리를 박고 있는 타조를 잡아오면 된다.
타조들은 다 그래왔고, 또 다른 타조들도 그렇게 잡혀 죽었다.
그런데 한 타조가, 다른 타조들을 따라서 머리를 처박지 않고
무리에서 이탈하여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쫓아오는 사람들을 노려보는 일을 저질렀다.
DNA에 박혀 있는 일정한 방향을 지키다가 돌발적으로 선회(旋回)하여
습관적이고 집단적으로 공유하던 방향을 혼자서 바꾼 것이다.
인간과 세계 사이에서, 인간은 타조처럼 쫓기고, 세계는 인간을 쫓아간다.
그러니까 세계는 인간에게 항상 무엇인가 반응을 강요한다.
우리 삶은 모두 그 강요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응일 뿐이다.
선회는 도전이고, 여기서 필요한 것이 용기이고,
그 결과로 변화가 일어나면 새로운 문화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화적 삶의 시작은, 과거의 답습踏襲이 아니라, 탈주하는 것이다.
내내 쫓기기만 해왔던 무리에서 이탈한 어떤 한 타조가 뒤를 돌아보고,
갑자기 이전에는 있어 본 적이 없는 전혀 다른 반응을 시도했다면,
이것이 바로 새로운 문화에 대한 도전이다.
일단 되돌아보면(선회하면),
그 이전의 관행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시도될 것이고,
그것은 세계에다가 이전에 있어본 적이 없는 어떤 무늬를 그리게 될 것이다.
문화적 활동의 결과를 수용하던 타조가
주도적으로 문화적 활동을 하는 타조로 변해,
창의적인 타조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