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보편 교회의 통시성과 공시성지상의 교회는 거룩한 보편 교회의 통시성과 공시성을 함께 추구해야한다.그렇다고 하면 거룩한 보편 교회의 통시성이란 무엇이고 공시성이란 무엇인가?그것은 거룩한 보편 교회가 지상에서 존재할때에 가져야 하는 보편성을 의미한다.그렇다고하면 보편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특정한 조건이나 환경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성격을 의미한다. 먼저는 거룩한 보편 교회의 통시성에 대하여서 알아보고자 한다.거룩한 보편 교회의 통시성이란 무엇인가?그것은 거룩한 보편 교회의 통시적 보편성을 의미한다.그렇다고 하면 통시성이란 무엇인가?어떤 시기를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하면 통시적 보편성이란 무엇인가?어떤 시기를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볼때에 시대와 변화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보편적 진리를 의미한다. 거룩한 보편 교회의 역사에서 통시적 보편성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그것은 사도와 선지자들의 유산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다. 신구약 성경은 거룩한 보편 교회 역사 가운데 통시적 보편성의 토대를 이룬다.그렇다고하면 신구약 성경 외에는 통시적 보편성이라고할 만한 것이 없는가?그렇지 않다. 거룩한 보편 교회의 역사 가운데 통시적 보편성을 갖는 것이 있다.그것은 정통 교리이다. 사도 시대 이후로 거룩한 보편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전수하고 가르치며 보존하는 일에 힘써 왔다.그것이 정통 교부 시대의 여러 정통 교부들의 신학적 문헌들이다. 정통 교부 시대에 정통 교부들의 신학적 문헌들은 신구약 성경 다음으로 거룩한 보편 교회의 통시적 보편성을 갖는데 중요한 토대가 된다. 왜냐하면 정통 교부 시대에 정통 교부들의 신학적 문헌들은 거의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구약 성경을 해설하고 가르치고 보존하는 일에 수고한 문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독교 공인 이후에 발생한 거룩한 보편 교회의 공적 선포로서 공의회의 법인 신조와 신앙고백서들이다.이러한 공의회의 결정으로서 에큐메니칼 신조들은 거룩한 보편 교회가 추구해야할 신앙의 지침이 된다. 그리고 개신교에 있어서 거룩한 보편 교회의 통시적 보편성을 갖는 공의회의 법들이 있다.그것이 도르트 총회에서 결정한 토르트 신경과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과 벨직 신앙 고백서 등이다.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결정한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거룩한 보편 교회의 통시적 보편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바탕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보편 교회가 통시적 보편성을 가지려고 하면 정통 교부 시대의 공의회의 법과 종교 개혁 시대에 공의회의 결정들을 따라 가야 한다. 거룩한 보편 교회는 정통 교부 시대의 정통 신학과 종교 개혁 시대의 개혁 신학을 따라서 거룩한 보편 교회의 통시적 보편성을 갖는다. 이제 다음으로 거룩한 보편 교회의 공시성에 대하여서 살펴 보고자 한다.공시성이란 무엇인가?그것은 같은 시대에 속한 상황들에 보편성을 의미한다. 그렇다고하면 거룩한 보편 교회의 공시적 보편성이란 무엇인가?거룩한 보편 교회의 공시적 보편성은 거룩한 보편 교회가 그 시대에 상황에 조화를 이루어서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거룩한 보편 교회가 공시적 보편성을 갖게되면 일반 사람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되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들 수 있는 잇점이 있다.그래서 그 시대에 신속하게 여러 지교회들을 세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일반 사람들이 기독교가 교훈하는 선포에 관심을 기울이고 들으려고 하고 더욱 힘써 그 기독교 진리를 알아가려고 한다. 그것이 거룩한 보편 교회가 공시적 보편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 반대의 상황도 일어날 수 있다.거룩한 보편 교회가 공시적 보편성을 상실하는 순간 기독교는 일반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또한 한편으로 밀리게 되며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외면하고 무관심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이는 거룩한 보편 교회가 공시적 보편성을 상실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러므로 거룩한 보편 교회는 통시적 보편성을 가지고 공시적 보편성을 추구해야한다.그래서 거룩한 보편 교회는 통시적 보편성과 공시적 보편성이 조화를 이루어서 세워져야 한다. 항상 그 당시의 기독교는 거룩한 보편 교회의 통시적 보편성과 공시적 보편성을 함께 아울러서 가야 한다. 그런데 만약 통시적 보편성과 공시적 보편성이 충돌을 일으킬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그래서 어느 한쪽을 반드시 희생해야 할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그것은 분명하다. 거룩한 보편 교회는 여하한 경우에도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세운 터 위에 세워져야 한다.그러므로 거룩한 보편 교회의 통시성과 공시성이 극심하게 충돌하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된다면 기독교는 거룩한 보편 교회의 통시적 보편성을 우선적으로 추구해야한다.거룩한 보편 교회의 통시적 보편성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교훈 위에 세워지는 기독교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만약 거룩한 보편 교회가 통시적 보편성을 상실해 버리면 기독교는 세속화 되며 더욱 부패하여서 몰락하게 된다.많은 일반 사람들을 얻지 못한다고 하여도 거룩한 보편 교회는 통시적 보편성의 토대 위에서 공시적 보편성을 추구해야한다.주님께서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신 바를 증거함으로서 마치려 한다.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출처: 개혁주의 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gr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