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17]오랜 벗에게 마늘을 부치며
지난 겨울 마늘을 5만원어치 사다 뒷밭에 심었다. 약 한번 변변히 하지 않았으나, 제법 잘 자랐는데, 막판에 잎들이 모두 희옇게 말라비틀어졌다. 한 친구는 잎마름병약을 하랬으나, 나는 하지 않았다. 동네 할매들은 시안(겨울)과 초봄에 ‘나쁜 비’가 많이 내려 그렇다고 했다. ‘나쁜 비’라니? 비도 여러 가지다. 단비, 약비도 있지만, 쓸데없이 오지 않아도 될 때 오는 비도 있고, 성분이 작물에 해를 끼치는 비도 있는 모양이다. 역시 농작물은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 맞으리라.
아무튼, 혼자 캐 씨가 굵은 것은 올 가을을 위해 한 접 남겨놓았고, 나머지는 50개씩 묶어 처마 밑에 달라놓으니 6-7접(1접 100개)은 되었다. 기타 ‘물짠 것(못냉이)’들은 묶을 것도 없고 줄기를 잘라 알맹이만 양파망에 넣어 매달아놓았다. 형과 동생네 몫으로 남겨놓았으나, 한 접도 못돼 미안하기도 했다. 어느 산 속에서 도를 닦고 사는 오랜 벗에게 마늘과 양파를 조금 넣어 택배로 보냈는데, 의외로 반색을 했다. 최근 항암치료를 받으며 끼니 때마다 겨우 생마늘 몇 통을 먹는다고 한다.
그 친구 이야기이다. 한 달 전 쯤에 의료기관(서울 삼성병원)에서 ‘시한부’라는 폭탄선언을 받았는데, 요리를 한 음식들은 어떤 것도 입에 들어가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에나, 이런 일이? 이 노릇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 이후, 정말로 6개월이나 1년 내에 고통으로 시달리다가 가뭇없이 사라진다는 말인가? 친구인 나도 멘붕이 와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그 친구는 어떨까 싶으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데, 첨단 의료진의 진단이라니, 믿을 수도 안믿을 수도 없는 사실이 아닌가. 이거, 정말 환장할 일이다. 소위 100세시대를 넘어섰다는데, 70도 안돼 병으로 생을 마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어쨌든, 도울 방법이 있다면, 그게 돈이든 정신적인 위로든 뭐든지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는데, 그나마 내가 농약도 안하고 기른 마늘이라도 억지로 씹어삼키고 있다니, 그 사실에 내가 위로를 받은 참이다. 하여, 오늘 다시 마늘 몇 통을 택배로 보내며, <마늘>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마늘의 효능이 이처럼 엄청난 지는 처음 알았다. 서양사람들이 우리 한국인의 마늘냄새 때문에 가까이 오려 하지 않는다는 말은 오래 전부터 들었지만, 우리는 요리를 하는데 생필품, 삼겹살 하면 마늘과 파슬이가 필수가 아니던가. 그 마늘이 항암에 효과가 있다니, 오호, 친구에게 <기적의 약>이 되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이련가. 나도 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데 효과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으니, 장기적으로 복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도 나의 은덕이 아니라 친구의 은덕이 아닐까 하며, 쪽지편지를 써 택배상자에 넣었다.
아아-, 반세기도 넘은 오랜 벗이여! 너 진짜 이렇게 가뭇없이 가면 안된다. 절대로. 생각하면 조물주가 얼마나 원망스러울 일이냐? 잔인한 일이다. 이제 평생 천직이었던 교육공무원을 은퇴한 이후, 휴식을 취한 게 불과 몇 년이란 말이냐? 65세에 정년퇴직한 영원한 교장선생님이었던 장인어른도 3년을 못넘기고 췌장암으로 고생하다 68세에 돌아가셨다. 그때 장인어른은 노년이었던 같은데, 우리는 지금 당당히 '청년'이지 않않은가. 친구야. 그 힘들다는 항암치료 6개월(3주에 한번씩)을 꿋꿋이 이겨내라. 나하고 수담(바둑)을 둘 날이 얼마나 창창하게 남았는데, 느닷없이 '듣보잡'인 암에 걸렸단 말이냐? 당사자인 너야말로 뛰다죽을 일이지만(왕년엔 축구선수로 운동장을 누볐건만, 이제 힘이 없어 뛰지도 못하다니), 나도 정신이 아득하기만 하다.
이제껏 귀향하여 5년여동안 1천여편의 생활글을 썼지만, 이렇게 비통한 마음으로 가슴 아프게 쓰는 생활글은 처음인 것같다(아니, 정확히는 1년 반 전쯤에 암치료 중이던 친구의 죽음에 대성통곡을 한 쓸쓸한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불쑥불쑥 아픔과 눈물을 가져오지만). 내가 너의 추도사를 써야 될 것인가? 사모곡이나 사부곡도 아니고 50년도 넘은 친구, 내 인생 최고의 도반(길동무)인 너의 고통스런 최근 소식에 어쩌란 말이냐? 이게 과연 인생이라는 것이냐? 이렇게 허무한 거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찌르락짜그락, 무엇을 다투고 무엇을 기뻐하며 살아온 것일까? 나는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 그래, 진정한 우정이라는 게 있다면, 나의 마늘 선물에 하늘이 감동하여 그 몹쓸 병마를 훌훌 털어 일어나기만을 빌고 또 빈다.
너는 무슨 도나 통한 듯 ‘일체유심조(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고 말했다만, 그것은 선지식들이나 하는 말이지, 우리같은 보통사람이 쓰는 말이 아님을 너도 잘 알 것이다. 부디, 부디, 네 특유의 ‘몸철학’으로 절망하지 말고, 힘내기 바란다. 네 몸은 네가 잘 알 것이므로. 나는 결코, 절대로 너의 ‘명복’을 빌지 않겠다. 마늘을 먹고 이겨 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