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를 탄생시킨 주범
마크 베이트슨은 켄트주 의회 자료보관실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와 “삼림헌장”을 발견했다. 이 초기 필사본은 1/3가량이 소실됐지만 1천만 파운드(167억4500만원)의 가치가 있다고 中世史 전문가인 니콜라스 빈센트 교수가 말했다.
삼림헌장은 1215년 6월 존 왕이 마그나 카르타를 제정할 당시 함께 선포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왕이나 귀족들이 소유하고 있는 땅(삼림)이 많았는데 그 땅에 대한 권한을 적어놓은 것이 삼림헌장이다.
예를 들면, 성 미카엘 축일로부터 성 마르틴 축일까지는 왕의 삼림이나 귀족들의 삼림이라 할지라도 서민들이 양 떼나 돼지 떼를 몰고 가서 방목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서민들에게 “경제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준 것이 바로 삼림헌장이었다. 이 헌장은 영국 전 영토의 절반에 적용되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왕과 귀족들이 자기의 땅(삼림)의 재산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너도나도 울타리를 치기 시작했다. “여기는 내 땅이니 들어오지 마라”는 인클로저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영국은 유럽의 최대 羊毛 생산국이었는데 인클로저 운동이 일어나면서 방목으로 먹고살던 서민들의 생계가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인클로저 운동과 함께 사유 재산권을 보호해주는 법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법은 누가 만들었을까? 당연히 국회의원들이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국회의원들이 바로 그 땅(삼림)의 주인들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은 그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졌다.
“인클로저 法”으로 생계가 막막해진 서민들은 도시로 흘러 들어가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마르크스는 독일계 유대인이었지만 공산당 운동을 하다가 독일과 프랑스에서 추방당해 영국 런던으로 이주했다. 그는 아르바이트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절친이었던 엥겔스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아야만 했다.
산업혁명 현장에서는 저임금과 밤늦게까지 일하는 과한 노동으로 일찍 병들어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더군다나 저임금은 어린아이들까지 일하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이런 자본주의의 惡弊를 본 마르크스는 그의 저서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의 원리와 악폐를 파헤쳤다.
가난과 매연(煤煙)으로 마르크스는 8살 장남과 차남 그리고 갓난아기였던 셋째 딸을 잃었다. 그는 아이들의 시신을 땅에 묻으며 “이놈의 세상, 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는 비참한 사람들을 프롤레타리아트라고 불렀다. 엥겔스도 “그들의 모습은 쓰레기더미와 진흙탕에서 자라는 돼지만큼이나 더러웠다”고 묘사했다.
마르크스의 할아버지는 유대교 랍비였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도 토라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다”(신10:14)를 “땅의 주인은 국가다”로 바꾸어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를 통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탐욕은 인간의 理念보다 강하고, 正義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그의 실패는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
인클로저 운동, 즉 울타리 치기와 개인 소유권 강화는 공산주의를 탄생시킨 주범이 되었다. 개인의 부는 이웃과 함께 나눌 때 평화로운 세상이 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괜히 하신 말씀이 아니다.
p.s.
동기들 간의 빈부 격차가 심하다. 예수님의 말씀 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이것은 내 것이다”와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라는 생각은 그 사람의 신앙을 갈라놓는다. 곧 “믿음 생활”과 “종교 놀이”로 갈라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