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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금 나는 깨어있다 원문보기 글쓴이: 추공
표지설명 : 타피리챠 (Tapihritsa)는 티벳 티송데첸왕 시대의 뵌교의 대성취자이다
그는 히말라야 카일라쉬에서 9년을 수행하였고, 무지개 몸(칠채화신)을 성취하셨다
삼신(법신, 보신, 화신)을 증득하여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족첸수행자들을 돕는 수호본존이다.
결가부좌 명상상태로 옷을 벗고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것은 궁극적인 경지에 들어있음을 상징한다.
<뵌교 그리고 ‘족첸(大究竟)’에 대한 해제(解題)>
-해설: 다정 김규현 거사 -
1. 머리말
2. 티베트의 토착종교, 뵌교
3. 뵌교의 본거지, 샹슝왕국
4. 뵌교의 흥망성쇄
5. 뵌교의 교리, 그 ‘위대한 완성’ ‘족첸’
1. 머리말
설역고원(雪域高原) 티베트에 샤머니즘적 원시종교가 있었다. 그들은 티베트의 사대 불교학파와 가르침, 수행, 교리가 같으면서도, 자신들을 불교도라고 하지 않으며, 불교의 싯다르타의 계보를 좇지도 않으며 또 다른 붓다(Buddha), 즉 톤빠(Tonpa)의 가르침을 따른다. 바로 ‘뵌교(Bon敎)’ 또는 ‘뵌뽀교(Bon Po)’라는 이름으로 불린 종교로 본서의 추천사를 써주신 제14대 달라이라마 성하께서도 다음과 같이 인정하셨다.
“뵌교는 티베트에서 가장 오래된 종파이다. 그리고 그 고유한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티베트 토착문화의 근원으로서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어서 성하께서는, 중국에 의한 티베트본토 침공으로 불교뿐만 아니라 뵌교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고, 하시면서 뵌교의 전통적인 수행법도 잘 보전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도서출판 <다래헌>으로부터, 본서의 해제문(解題文)을 부탁하며 보내온 두툼한 번역문의 원고를 차분히 읽어가면서 본 해제자는 몇날며칠을 아주 인상적인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우선은 원저자의 특이한 수행담과 또한 원문이 가진 맛을 잘 살린 번역자의 범상치 않은 내공에 고개가 수그러지면서 본서의 본론에 다가가면서는 놀라움을 금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도 그간 오리무중이었던 뵌교의 정통적인 수행법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선뜻 해제문을 쓰겠다고 대답하기가 어려웠지만,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번역자의 뜻처럼, 소수의 간화행자(看話行者)들이 나눠 읽기 위해 번역된 것이라는 부분에서 공감을 느낄 수 있었기에, 원저자와 번역자의 시은에 누가 될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이렇게 과욕을 부려 해제문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본서의 큰 물줄기인 ‘족첸’에 대해서는 본서의 내용을 요약하는 선으로 대신하고, 다만 국내에서는 생소한 뵌교에 대해서는 좀 긴 사족을 부쳐보기로 하였다. 본디 ‘사족’이란 쓸모없는 물건이긴 해도, 어찌 보면 방편론적으로 나름대로의 효용이 있기 때문이니까….
사실 해제자도 지난 20여 년간 강쩬 즉 티베트를 들락거리면서 그들의 정신과 종교와 문화를 이해한다고 자부했지만, 사실 아직도 ‘코끼리다리 더듬기’라는 것을 늘 자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티베트학(Tibetanlogy)’이란 난공불락의 그것 자체였지만, 특히 그중에서 난제중의 난제가 바로 뵌교였다.
뵌교란 고산준령을 넘기 전에는 티베트학의 중심부에 접근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뵌교가 티베트문화 내지 티베트불교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큰 것이 사실이지만, 두 종파는 오랜 세월 서로 상극하고 융합하였기에, 현재로써는 그 몫을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 사실 티베트불교 속에서 북방 또는 대승적 전통과 인도적인 후기불교적인 딴뜨리즘(Tantrisim)과 본토의 원시신앙인 뵌뽀이즘(BonPoism)을 가려내는 일은 난제중의 난제이다. 더구나 모든 종교의 에센스가 담겨있는 방편문(方便門)인 수행법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기에 뵌교의 최상승의 법문이며 실천적인 수행법인 ‘족첸(rdzogs chen)’에 대한 희귀하고 방대한 자료 앞에서 해제자는 흥분을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2. 티베트의 토착종교 뵌교
뵌교는 티베트 서부의 샹슝(象雄:zhang zhung)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던 무속신앙의 한 형태였다. 그들은 해, 달, 별, 호수, 설산, 나무 등의 정령을 숭배하고, 그것들과 교감하여 영적 에너지를 끌어내려 하였는데, 전설화된 역사로는 1만7천년이란 유구한 세월을 인구에 회자되어 내려왔다고 하지만, 실증적인 역사로는 2세기 B.C.까지 그 기원을 소급할 수 있다.
<불교의 영향을 받은 후대의 뵌까르뽀(Bonn dkarpo:白笨)의 뵌교의 교조 톤빠센랍의 초상>
뵌교의 창시자는 톤빠 센랍 미오체(gŚen rab. Miboche:辛繞米沃)라는 인물로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나 중생의 복락을 위해 3개 대륙에 영향력을 미치며 중생을 교화한 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지고 있다.
대개 모든 종교의 창시자는 신비의 구름에 가려있기 마련인 듯, 센랍도 설화적인 민간전기에 의하면, 13살 때 마귀에게 납치되어 생사를 몰랐다가 13년 후에 돌연히 나타났는데, 이때 이미 그는 신통력을 자유자재로 부렸기에 자연스럽게 마을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다가 어떤 부름에 응하여 31살에 다시 출가하여 12단계의 성취를 얻은 끝에 마침내 ‘촉첸’의 경지에 들어 초월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가르침은 그의 후예들에 의해 조직화되어 한편으로는 동물희생제들을 금지하는 등의 개혁을 거치며 하나의 종교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후에 불교에 대항하기 위해 교리를 보강하면서 몇 단계의 변천을 거듭하여 내려왔다.
그래서 이 초기 샤먼적인 종파를 융둥뵌(gYuṅ druṅ Bon:雍仲:逆卍字笨)이라고도 하고, 불교의 영향을 받은 후대의 종파를 뵌까르뽀(Bonn dkarpo:白笨)이라고 부른다. 또 이와는 달리 인도의 쉬바교의 학설을 받아들여서 동물의 순장제(殉葬祭)를 행하는 수구적인 종파를 캬르뵌(ḥKhyar Bon:黑笨)이라고 부르며, 또 후세에 불경을 모방해서 그들의 경전을 만들어 신앙하는 일파를 규르뵌(bsGyur Bon:改革笨)이라고 크게 나누어진다.
이렇게 샤먼적인 민간신앙에서 점차 종교의 형태를 갖추어간 뵌교는 어느날 하루 중앙티베트의 얄룽계곡에서 열두 부족장들에 의해 임금이 추대되며 얄룽왕조가 열리면서 티베트 청사의 한 페이지를 수놓기 시작한다. 바로 투뵈(吐蕃)왕조의 첫 왕인 냐티짼뽀(B.C.117- ?)의 등장을 말한다.
그 뒤 뵌교는 투뵈왕조의 국교로 자리 잡고 왕권의 깊숙한 곳까지 관여하면서 대략 7백 년 동안 내려왔지만, 불교가 티베트에 전래되면서 그 자리를 불교에 내어주고는, 그 뒤로 역사의 뒤안길로 숨어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00년 뚠황에서 출토된 <토번고문서(吐蕃古文書)> 중에는 불교뿐만 아니라 뵌교에 대한 자료들도 다수 발견되면서 서구학자들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어 그간 오리무중이었던, 뵌교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그 한 예로, 프랑스의 티베트학자 카메이(S.G.Karmay)가 편찬한 『뵌뽀교의 역사』에는 궁금했던 뵌교 사제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이에 초자연적인 신통력과 뚜렷한 깨달음을 성취한 승려들에게 국왕은 3가지 특권을 주어 고귀한 신분을 표시하게 하였다. 첫째 머리를 깍지 않고 머리에 비단두건을 쓰고 독수리 깃털을 꽂게 하였으며…
“흰 두건을 쓰고 깃털을 꽂은 모습”은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동북아시아․일본 그리고 한반도로 이어지는 알타이무당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어서 관심을 끄는 구절이다. 또한 호푸만(Hoffmann)의 『뵌교의 의상과 북』에서는, 그가 직접 본 뵌뽀들의 모습을, “머리에 독수리 깃을 꽂고 넓은 리본이 달린 모자를 쓰고 방패와 창을 든 모습”이라 묘사하고 있다.
이를 보면 그들의 모습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학자들에 의해 조사, 보고된 알타이, 시베리아, 몽골 그리고 한반도의 샤먼들의 모습과 일치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하겠다.
비중 있는 고대역사서『샹뵈끼로귀띠쎄외(古代象雄与吐藩史)』에 의하면, 얄룽왕조의 첫 왕인 냐티짼뽀에서 제32대 남리쏭짼에 이르는 기간에, 국왕의 꾸쎈(sKu gśen:笨敎師)과 그들이 임명한 쌔카르가 왕궁에 상주하면서 뵌교의 경전을 독송하고 왕의 수복강녕을 기원하는 등의 국사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뵌교의 전통적인 사서「뵌뽀史;嘉言寶藏」에 의하면 교조 센랍 미오체는 전생에 스라와(Slawa)라고 불렸으며 두 형제인 닥빠(Dagpa)와 세빠(Shepa)와 함께 시드빠 예상(Sidpa Yesang) 천계에서 뵌교의 선인 지도 아래 뵌의 교리를 수행하고는 3형제는 하늘의 신인 센라 오카르 (Shenlha Okar)를 방문하여 어떻게 하면 중생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센라 오카르신은 그들에게 시대를 이어가며 사람들을 제도하도록 조언했다. 큰 형인 닥빠는 과거 시대의 스승이었으며, 센랍 미오체로 알려져 있는 스라와는 현 시대의 스승이며 동생 세빠는 미래 시대의 스승으로 오게 될 것이다.
<센랍 미오체의 초기의 초상화: 인도와 중앙아시아적 인상이 짙다.>
톤빠 센랍은 천계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두 제자인 마로(Malo)와 유로(Yulo)와 함께 목서년(木鼠年:B.C.1857년) 여덟째 날의 새벽에 메루(Meru)산의 기슭 융둥굿섹(Yungdrung Gutseg) 산의 남쪽 궁전 불가사의한 꽃으로 가득한 빛나는 정원에서 걀토카르(Gyal Tokar)왕과 장아린굼(Janga Ringum) 왕비의 왕자로 태어났다고 한다.
아무튼 그 뒤 센랍왕자는 인상적인 성장기를 거치며 젊을 때 결혼을 하여 자녀까지 두었지만, 서른한 살 때 세속생활을 포기하고 엄격한 수행을 시작하여 깨달음을 얻고는 중생들을 위해 뵌의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센랍의 생애가, 한 눈에도, 싯다르타태자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는데, 이는 뵌교가 불교와의 헤게모니쟁탈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쳤나를 짐작하게 해준다.
하여간, 다시 센랍의 후반기 생애를 마저 읽어 보기로 하자.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에 기울인 센랍의 노력은 악의 화신 캽빠락링(Khyabpa Lagring)에 의해 일생동안 방해를 받았다고 하지만, 그도 결국에는 교화되어 센랍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일화를 하나 들어보자. 어느 때 캭빠가 센랍의 말을 훔쳐 달아났는데, 센랍은 샹슝을 거쳐서 티베트 남쪽까지 그를 쫓아가서 공뽀(Kongpo)산을 가로질러 티베트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것이 센랍에게 있어서 단 한 번의 티베트 방문이었다. 그때 티베트 사람들은 산 제물을 희생시키는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센랍은 지신을 제압하고, 산 제물 대신 동물의 모양을 한 케이크로 제사를 지내도록 가르쳤다.
이후부터 티베트 사람들이 동물을 제물로 삼는 의식을 그만두게 되었다. 센랍은 그 땅이 더 높은 뵌 교리인 ‘과(果)’의 다섯 가지 길을 받아들일 만큼은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인(因)’의 네 가지 길을 가르쳤다. 인의 네 가지 길에서 강조되는 것은 수호신의 가피력과 자연 환경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 악령을 쫓아낸다든지 부정한 것들을 몰아내는 것 등이다. 또 향을 피운다든지, 목욕재계 하는 등의 정화의식을 가르쳤고, 상서로운 기와 복을 비는 방법으로 깃발을 사용하는 기도를 소개했다. 그리고 티베트를 떠나기 전에, 시간이 지나면 티베트에서 그의 가르침이 번창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3. 뵌교의 본거지, 샹슝왕국
뵌교의 교조인 톤빠 센랍은 올모룽링(俄莫隆仁Olmo Lungring)이란 신성한 땅에서 최초로 가르침을 폈다고 하는데, 그곳은 현 세상의 1/3을 차지하고 있으며, 여덟 개의 살을 가진 바퀴처럼 생긴 하늘 아래 여덟 잎의 연꽃과 같이 생겼고 그곳의 중앙에는 융둥굿섹(Yungdrung Gutseg), 즉 “아홉 개의 만자(卍字) 피라미드 모양의 산”이 자리 잡고 있다. ‘만자’는 영원함과 파괴되지 않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쌓아올린 아홉 개의 만자는 뵌의 ‘아홉 가지 길’을 나타낸다. 융둥굿섹 산으로부터 동서남북으로 흐르는 네 개의 강이 생겼다.
<뵌의 본거지 올모룽링으로 가는 길을 묘사한 아홉길의 만다라:逆卍字(시계반대방향)로 진행한다.>
이런 묘사로 인하여 여러 학자들은 이 산이 카일라스(Kailash)산과 동일한 곳이고, 올모룽링은 서부티베트 안에 있는 카일라스 산 인근에 있는 지방이며, 티베트 문명의 요람인 샹슝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게 하였다. 그 산에는 사원과 부락 그리고 공원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곳으로 통하는 통로는 ‘화살길’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 이름은 티베트를 방문하기 전에 톤빠 센랍이 화살을 쏘아서 산맥을 관통해 통로를 만든 것 때문에 생겼다.
샹슝왕국은 중앙집권의 통일왕국이라기 보다는 부족연합형태로 카일라스 산과 마나사로바(Manasarovar)호수로 둘러싸인 서부 티베트 전체, 즉 응아리지방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나라의 수도는 ‘금시조 계곡의 은의 궁전’이라는 뜻을 가진, 큥룽눌까르(琼隆銀官:KhyunglungNulkhar)였는데, 최근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서 그 궁궐 유지가 카일라스산의 남서쪽의 랑첸카밥, 즉 슈트레지(Sutlej) 계곡 안에서 발견되었다.
<샹슝왕국의 본거지 스투레지강가의 큥룽눌까르 궁전유지>
샹슝사람들은 티베트-버마어(Tibeto-burmese) 언어를 썼으며, 8세기에 투뵈 제38대 임금인 티송테?(Trisong Detsen)왕 대에 이르러 릭민차(Ligmincha)왕을 마지막으로 투뵈왕국에 합병되었다. 이 샹슝왕국은 중국의 구법승들의 여행기에 그리고 우리의 혜초의『왕오천축국전』에 양동국(羊同國)으로 나타나는 곳이다.
그러나 모든 자료를 종합해보면 뵌교의 고향은 티베트가 아니라 중앙아시아 타지크스탄이라는 것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또한 초기 뵌뽀교는 B.C 6세기에 출현한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타교(Zoroaster) 즉 배화교(拜火敎)의 영향을 받았다는 가설도 제기되고 있는데, 그 배경으로는 두 종교는 빛을 숭배하였고 지리적으로 근접한 지방에서 출현하였고 그리고 배화교의 전성기인 2세기, 페르시아의 샤산왕조 시기에 센랍 미오체가 나타났다는 사실과 이론적으로 이원론을 주장하고 있다는 등의 모티브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티베트문자와 샹슝문자의 대조표>
4. 뵌교의 부침
대략 7백년 이상 투뵈왕조의 국교 노릇을 하던 뵌교는 티베트의 전륜성왕이라는 제38대 티쏭데쩬 왕과 그 후 연이어 친불교적 왕들이 등극하면서 불교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게 되자, 자연히 두 세력 간에 피할 수 없는 마찰과 충돌이 일어나게 되면서 뵌교는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그 일련의 투쟁과정들을 비중 있는 불교측 역사서『최중캐빼가뙨(智者喜宴)』과『빼마까탕(蓮花遺敎)』에서는 각각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 뒤 불법을 건립하는 집이 닥마르(Brag dmar)에 세워지고 바쌜낭이 수장으로 임명되었다. 그 때 왕비인 쪽로싸(Cog ro ḥzaḥ)와 대신 딱다루공(sTag sgra klu goṅ) 등이 주동이 된 뵌교의 대신들과 신자들이 불법을 버리고 다시 뵌교의 가르침을 따르자고 격렬하게 저항하고 나섰다.
이에 친교사 보디싸따(Śāntarakṣita:寂護)가 말하되, “한 나라에 종교가 둘씩이나 있는 것은 좋지 않으니, 차라리 우리들이 서로 논쟁을 해서 승리하는 쪽을 따르도록 하자.”라고 제안하였다.
그래서 신해년(辛亥年, 771년)에 왕이 임시왕궁인 쑤르퓌?부챌(Zur phud rkyaṅ bu tshal) 에 거주할 때 논쟁의 법석이 마련되었다, 이 때 불교 측의 대표로는 대신인 샹냐쌍(Shaṅ na bzaṅ)를 비롯한 4명을 친교사 보디싸따의 보좌 겸 논쟁자로 선정하였고, 뵌교 측에서는 대역술가 ?뽀둠축(Khuṅ po dum tshugs)을 비롯한 4명을 논쟁자로 선출하였다.
그러나 논쟁의 결과, 뵌교는 연원이 신성하지 못한데다 논리가 부족하고, 불교는 광대하고 심원한데다가 뛰어나고 날카로운 탓에 뵌교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에 이후로는 뵌교를 행하지 말도록 왕이 판결을 내리면서 뵌교의 병폐인 망자를 위하여 산동물의 희생제를 하지 못하게 하고 왕의 수복강녕과 액막이를 하기 위해서 흉신들에게 철마다 행하는 제사도 금지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뵌교의 전적들을 강물에 떠내려 보냈고 나머지들은 뒷날 땅에다 묻고 흑탑(黑塔)을 세워서 눌러놓았다.
또한『빼마까탕(蓮花遺敎)』에도 비슷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티쏭데짼왕이 인도와 네팔, 중국 등지에서 초청한 31명의 고승들과 샹슝에서 초청한 6명의 뵌교의 사제들을 쌈예사원의 아랴빠로이링(聖觀音院)에 함께 머물게 하면서 뵌교의 전적들도 티베트어로 번역하도록 하게 하자, 마침내 서로간에 피할 수 없는 마찰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서 마침내 왕이 뵌교를 축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이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그 때 왕의 수복강녕을 비는 기도를 올릴 때, 뵌교 측에서 사슴의 큰 머리 뿔이 필요하다고 해서 사슴을 산채로 끌고 와서 잡은 뒤 축수를 행하고 공물이 필요하다고 해서 야크소와 양들을 죽여서 제물로 받쳤다. 이와 같은 피비린내 나는 뵌교의 의식을 지켜 본 외국의 고승들이 놀라서 역경사들을 통해서 국왕에게 진정하였다.
불도와 어긋나는 뵌교의 제례는 보통의 죄악과는 차원을 넘어선 것이니, 이와 같은 악행을 방치한다면 우리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하나의 종교에 교조가 둘이 있을 수 없고 하나의 종파에 두 가지 법도를 행하지 않으며 하나의 왕도에 두 왕이 존립하지 않듯이 악자와는 영원히 벗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국왕이 답하되,
뵌교와 불교는 원수가 만난 듯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티베트에서는 불교는 미약하고 뵌교의 세력이 강성해서 역경사가 쫓겨나는 불행한 일이 생겼습니다. 두 종교를 함께 흥성케 하고자 하니 대사들은 가지 말고 머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외국의 고승들은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으며, 불법을 강설하여주길 청하여도 누구도 법을 설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국왕은 마침내 일부 뵌사제들을 변방으로 추방하면서 쎈뵌(gŚen bon, 뵌교의 일파)들에게는 나귀들을, 융둥뵌(gYuṅ druṅ bon, 뵌교의 일파)들에게는 소들을 타고가게 하였고 또한 그 교도들은 짱뙤의 제마융둥으로 보냈다. 또한 국왕은 영토 안의 모든 뵌교의 사제들을 소집해서 뵌뽀의 편발에 파조(Pha jo:父)라는 이름을 붙이고 머리에는 여우털모자를, 손에는 반월형 작은 북을 들리고, 의복은 청색 옷을, 음식은 조식(粗食)을 주고 뵌교의 악습을 고치게 하여 세간의 액난을 소멸하는 뵌교의 술법은 남겨두되 제사에는 산 동물 대신에 나무로 만든 형사이나 그림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또한『현대서장불교(現代西藏佛敎)』에서도 뵌교의 정리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티쏭데짼왕이 전 뵌교의 사제들 소집해서 그들에게, 첫째는 신앙을 바꾸어서 불교의 승려가 되거나, 둘째는 뵌교의 사제직을 버리고 평민이 되거나, 셋째는 변방으로 이주할 것 등을 제시한 뒤, 각자의 진로를 결정하도록 했다. 그리고 서기 791년에 불교를 티베트의 국교로 선포하였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티쏭데짼(742-797)왕은 쏭짼감뽀(629-650)왕 이래 약 150년 간 이어져온 뵌교와의 오랜 마찰을 종식시키고, 불교를 국교로 선포하는 동시에 불교라는 새로운 정신문화를 통해서 밝은 역사의 지평을 열어 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뵌교로써는 9세기 내지 10세기까지 심한 박해를 받았으나 그래도 많은 학자들에 의해 두루샤(Drusha)언어로 된 뵌교 경전을 번역하여 파괴되지 않고 미래의 순조로운 시기에 재발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깊숙이 숨겨놓았기에 뵌이 다소나마 소생될 먼 훗날 때까지 경전들을 보존할 수 있었다.
티베트 참도지역 뗑첸의 '쩨쫄'(Zezhol) 뵌교 사원
약 3,000년 전에 지어져 14세기 재보수해 현재까지 전해 내려져 오는 사원은 지역내에서 뵌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비롭게 생긴 산 봉우리 사이에 지어진 암자가 참 인상적입니다. 집이 무너
질까봐 잠이 안와 명상은 참 잘될 것 같습니다.
5. 뵌교의 교리, 그 위대한 완성 ‘족첸(大究竟)’
티베트불교의 다른 종파에서도 족첸 수행자들이 몇몇 있기는 하지만, 족첸 가르침의 주된 계보는 티베트의 토속종교인 뵌교 그리고 유서 깊은 닝마빠 종파(Nyingmapa)에서 발견되고 있다.
뵌교와 닝마파 둘 다 똑같이 그들의 가르침을 ‘아홉 가지 길’로 분류하면서 양쪽 모두 족첸이 아홉 번째이며 최상승법으로 분류하면서 그 비중을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오늘날에는 티베트의 모든 종파의 지도자들이 족첸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최근에는 ‘족첸’이 영어본으로 번역, 출판되고 티베트불교사원이 서구에 속속 세워져 티베트불교의 포교가 가속도를 받음에 따라 서양에서도 족첸수행이 거의 하나의 신드롬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본서의 저자는 뵌의 가르침이 세 단계로 설명된다고 요약하고 있다. 첫 번째로 ‘아홉 가지 길’을 설했으며, 그런 뒤 ‘네 가지 관문과 한 개의 보물’을 가르쳤고, 마지막으로 ‘내적 가르침, 외적 가르침, 비밀한 가르침’을 폈다고 했다.
그리고 뵌 교리의 에센스를 ‘족첸’이라 강조하면서, 족첸은 그 스스로의 관(觀:view:), 수(修:meditation), 행(行:behavior)을 갖추고 있는 완벽한 가르침이며, 그것이 어떤 문헌과 분류방식에 의해 표현되든지 간에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것이라고 했다.
본서는 원저자와 번역자의 말대로, 주로 수행자를 염두에 두고 주제를 다루었다고 했다. 그래서 역사적이거나 기술적인 것들을 다루기보다는 가르침의 실질적 내용에 비중을 두었고 전문용어와 티베트 경전의 표현에 의지하지 않고, 너무 무겁지 않은 현대의 영어로 족첸의 주요한 본질을 포착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약간의 티베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했으나, 자주 쓰는 용어로 옮기고 설명하려고 애썼다고 했다.
뵌의 아홉 가지 방편에는 실용적인 가르침, 즉 문법, 점성술, 의학, 예언, 천도 등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가르침, 즉 인식론, 형이상학, 색다른 차원의 딴뜨라 그리고 ‘위대한 완성’의 완전한 계보가 포함되어 있다.
족첸의 기본적인 교의는 개체를 포함한 모든 실체는 이미 완전하며 완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딴뜨라에서 처럼 변환되어져야 할 것도, 경전에서처럼 비워야 할 것도 없으며, 오직 참성품을 깨우치기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족첸의 핵심수행은 자해탈(自-解脫:self-liberation)로써 개념적인 마음으로 다듬지 않고 취사분별하지 않고 부딪치는 모든 경계를 있는바 그대로 두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해제자는 전생에 게을렀던 탓인지, 이생에 온전한 근기의 그릇으로 타고나지 못한 탓으로 수행에 전념하지 못해서 최상승 법문인 ‘촉첸’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그럼으로 더 이상의 언어의 유희는 정말로 사족이 될 것이기에 이쯤에서 “따시 로싸르~”라고 새해인사를 드리며 회향하고자 한다.
<辛卯年 正初 흰 눈이 소담스레 내리는 洪川江 水里齋에서 다정거사(茶汀居士)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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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설명 : 타피리챠 (Tapihritsa)는 티벳 티송데첸왕 시대의 뵌교의 대성취자이다
그는 히말라야 카일라쉬에서 9년을 수행하였고, 무지개 몸(칠채화신)을 성취하셨다
삼신(법신, 보신, 화신)을 증득하여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족첸수행자들을 돕는 수호본존이다.
결가부좌 명상상태로 옷을 벗고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것은 궁극적인 경지에 들어있음을 상징한다.
[차례]
달라이라마 추천사
저자서문
다정 김규현 해설
1. 나의 삶과 가르침에 대한 경험
부모와 유년시절
도란지에서의 삶
샹슝낭규의 가르침을 받음
로뾘 뗀진남닥과의 삶
강원생활
암흑무문관수행
서양에서의 경험
서양에 대한 그 후의 회고
첫 번째 미국방문
미래의 계획
2. 쫑빠셰랍미오체와 뵌의 역사
셰랍미오
뵌교의 기원과 역사에 관한 신화
뵌교의 그 이후 역사
3. 뵌의 교리
뵌 가르침의 상이한 표현들
첫 번째 단계 : 아홉 가지 길
두번째 단계 : 네 가지 관문과 한 개의 보물
마지막 단계 : 외적, 내적, 그리고 비밀한 가르침
경전, 탄트라, 족첸
4. 뵌교 족첸
족첸
뵌 수행에서 보는 족첸
뵌과 닝마빠에서의 족첸
뵌에서의 족첸의 세 가지 유형
타피리차
타피리차에게 바치는 냑샤뢰뽀의 기도
타피리차의 마지막 설법
5. 수행하는 이유와 수행 방법
결심
길의 선택
수행에 관한 혼란에 대처하기
올바른 순서
족첸 수행의 시작
집중 수행에서의 마음 묶어두기
족첸으로의 인도
오류와 장애에 대한 대처
수행의 진전
수행의 장애들
수행의 궁극적 목표
6. 선정
집중 수행
<아>자를 통한 선정 수행
문제들에 대한 대처
영적 진전의 표시들
본성자리로의 인도
7. 관조
족첸에서 관조의 의미
집중과 관조
마음과 관조
마음의 성품과 마음
관조의 방법
생각과 관조
관조 상태에서의 경험의 세 가지 유형
족첸에서의 실재
관조 안의 영지
8. 합일
합일의 중요성
동정일여수행-실재와 행위를 합일시킴
모든 상황과 욕망을 실재와 합일함
합일의 세 가지 수준
해탈의 세 가지 길
합일에 대한 수행상의 조언
9. 만유의 본체, 근본바탕
쿤지와 개인적 경험
10. 어머니(Ma)
어머니(Ma), 아들(Bu) 그리고 작용(Tsal)
허공과 같은 성질과 모습
하늘을 응시하는 수행
어머니의 네 가지 성질
모든 존재의 어머니
좌선에서 어머니의 경험
11. 아들(Bu)
아들의 성질
각성에 있어서의 어머니, 아들의 관계
릭빠(rigpa)의 세 가지 종류
하늘을 응시하는 수행
12. 작용(Tsal)
삼대영상
삼대영상의 출현
수행에서 소리, 빛, 광선의 경험
샹슝낭규로부터의 네 가지 비유
삼대영상을 경험하기
현상적 삶과 수행
젤부(Zerbu)
13. 오대순수광
청정광명
다섯 가지 빛의 발전
다섯 가지 빛에 대한 두 가지 족첸의 가르침
다섯 가지 지혜와 무명에서 벗어남
오대순수광과 몸
다섯 가지 신(神), 능력, 과(果), 만다라
열반과 윤회
윤회의 과정
밝은 마음의 거울
14. 삼신(三身)
삼신의 원리
작용과 삼신
개체 안의 삼신
바탕부처(법신), 과정부처(보신) 결과부처(화신)
경전, 탄트라, 족첸 안에서의 삼신
욕망과 삼신
15. 떽쬐(Trekchö) 그리고 뙤겔(Tögel)
떽쬐(Trekchö)와 뙤겔(Tögel) 수행에 대한 조언
뙤겔(Tögel)
뙤겔(Tögel) 수행의 네 가지 단계
16. 경전과 족첸
경전과 족첸의 절대진리
경전의 법인과 족첸
공적의 깨우침
17. 바르도(죽음과 중음의 상태)
죽음을 위한 준비
죽음과 잠의 유사함
잠과 꿈 수행
죽음의 진전
여섯 가지 밝은 지견과 여섯 가지 회상
바르도 영상
뵌교 장례 의례
바르도
근본 바탕 바르도
청정광명의 바르도
바르도를 위한 떽쬐(Trekchö)와 뙤겔(Tögel) 수행
개체의 바르도
세 가지 바르도와 수행자의 세 가지 수준
윤회와 열반
바르도 수행에 대한 충고
역자발문
옮긴이 : 무명거사 / 달라이라마 추천 / 다정거사 김규현 해설 /
펴낸이 : 현장스님 / 편집 : 나 무 / 펴낸 곳 : 도서출판 다래헌 / 정가 12,000원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white1642&logNo=220693817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