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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엘리엇의 '황무지'를 다시 읽어보는 까닭
20세기 인류를 강타했던 엘리엇(1888~1965)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1922)의 충격은 아직도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죽고싶다'는 인용 제사(題詞)로 시작해서, "평화,평화,평화"(샨티, 샨티, 샨티)로 끝난다. 황무지는 자본주의가 태동하는 시절의 거대한 스트레스를 드러낸다. 그에게 4월은 무엇이었을까.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많은 시인들이 그토록 예찬했던 봄날의 절정은, 그
에게는 진저리를 칠 만큼 다시 살아내야 하는 시간
일 뿐이었다. 그냥 죽어 있으면 좋겠는데 왜 다시
살아나야 한단 말인가. 죽음의 평화를 왜 조물주는
빼앗는가. 이 봄날의 '생기'라는 저주를 통해서?
시의 첫부분에 나오는 '쿠마에의 무당 여인' 스토리
는, 엘리어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강렬하게
웅변한다.
"그런데 쿠마의 시빌이 새장 속에 매달려 있는 걸
난 정말 내 눈으로 보았어. 그녀에게 애들이 '시빌,
뭘 하고 싶니?'하고 조롱했지. 그녀는 '난 죽고 싶
어'하고 대답했어."
쿠마에 무녀(Cumaean Sibyl)는 이탈리아 나폴리
근처의 쿠마에에서 살고 있었다. 이곳은 당시 그리
스의 식민지였다고 한다. 이 무녀는 구세주의 등장
을 예언할만큼 뛰어난 지혜를 지니고 있었다. 아폴
론 신은 그녀를 몹시 사랑했기에 한 가지 소원을 들
어주겠다고 했다.그녀는 신에게 한 줌의 모래를 들
고 와서, 이 모래의 숫자만큼 생일을 갖게 해달라고
말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이야
기다.
무녀는 오랜 생명만을 요구했지 젊음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죽지 않았고
계속 육체의 크기만 줄어들었다. 마침내 목소리만
남았다고 한다. 영원의 축복은 그녀에게 가장 견딜
수 없는 저주가 되었다.
시빌은 예언자 혹은 무녀의 대명사가 된다. 영생을
꿈꾸는 인간에게 그녀는 통렬한 풍자의 주인공이
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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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 (시)
《황무지》(The Waste Land)는 모더니즘 시인인 T. S. 엘리엇이 1922년에 출간한 434줄의 시이다. 이것은 “20세기 시 중 가장 중요한 시중의 하나”라는 찬사를 받았다.[1] 이 시는 난해함이 지배하는 시로, 문화화 문학에서 넓고, 부조화스럽게 나타나는 풍자와 예언의 전환, 그 분열과 화자의 알려지지 않은 변화들, 위치와 시간, 애수적이지만, 으르는 호출 등이 나타나는 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현대 문학의 시금석이 되었다. 그 유명한 싯구들 중에 첫 행의 “4월은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 “손안에 든 먼지만큼이나 공포를 보여주마”(I will show you fear in a handful of dust), 그리고 마지막 줄에 산스크리트어로 된 주문인 “샨티 샨티 샨티”(Shantih shantih shantih)는 유명한 구절들이다. 또한 성배 전설과 피셔 킹의 전설 을 결합하여 재구성한 작품이다.
내용
쿠마에 무녀, Andrea del Castagno
황무지(荒蕪地)
한번은 쿠마에 무녀[2] 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어.
"죽고 싶어"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요.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습니다.
여름은 우릴 놀라게 했어요, 슈타른베르크호[3] 너머로 와서
소나기를 뿌리고는, 우리는 주랑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4]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촌 대공의 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 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사람의 아들아[5], 너는 말하기는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 곳엔 해가 쪼아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6]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르는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 주리라.
한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를 보여 주리라.[7]
<바람은 상쾌하게 Frisch weht der Wind
고향으로 불어요 Der Heimat zu
아일랜드의 님아 Mein Irisch Kind,
어디서 날 기다려 주나? Wo weilest du?>
[8]
...
구조
황무지에 쓴 이 묘비명에는 라틴어, 그리스어, 영어, 이태리어가 섞여있다
이 시는 페트로니우스의 《사티리콘》에서 온 라틴어와 그리스어 묘비명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난 내 눈으로 항아리 안에 매달려 있는 쿠마에(Cumae, 나폴리 북서부) 무녀를 직접 보았어. 아이들이 무녀야, 뭘 원하니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어. - 죽고 싶어"라는 의미이다.
이 시는 다음과 같은 장들이 있다.
죽은 자의 매장(The Burial of the Dead)
체스 게임(A Game of Chess)
불의 설교(The Fire Sermon)
익사 (Death by Water)
천둥이 한 말 (What the Thunder Sa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