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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4일(수)
* 시작 기도
주님...
엘리 제사장 시대에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하였습니다.
1차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사가 4천 명이 죽었는데 장로들이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패하게 하셨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상의 끝에 언약궤를 가져오지 않아서 졌다고 하면서 실로 성소에서 언약궤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그 언약궤가 진에 들어올 때 군사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전쟁에 이길 것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반대로 블레셋 진영은 여호와의 궤가 이스라엘에 들어온 것을 알고 기가 죽어 힘이 무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2차 전쟁이 나자 전쟁의 결과는 이스라엘의 군사가 3만 명이 죽어나가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게다가 언약궤마저 블레셋에게 빼앗겼습니다.
이들이 전쟁에서 패배한 이유는 언약궤 때문도 아니고 그들이 전쟁할 능력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이는 전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이미 실로의 성소에서 떠나셨기 때문입니다(시 78:58-60).
주님을 존재로 알지 않고 언약궤를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섬겼던 그들의 우상 숭배가 결국 하나님을 성소에서 떠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종도 이렇게 우매한 자임을 고백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이 하루도 주님과 말씀으로 깊은 교제 속에서 사귐이 있기 원하오니 나를 장악하여 주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세상의 존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주만 바라보오니 이 종에게 긍휼을 베추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23:10-20
제목 : 빻아서 가루로 만들고 제하여 버리고 불사르고 쏟아버리고 해골로 채웠더라.
10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떤 사람도 몰렉에게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11 또 유다 여러 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내시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12 유다 여러 왕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제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세운 제단들을 왕이 다 헐고 거기서 빻아 내려서 그것들의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쏟아 버리고
13 또 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세운 산당들을 왕이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
14 왕이 또 석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고 사람의 해골로 그 곳에 채웠더라.
15 또한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16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17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하니 성읍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되 왕께서 벧엘의 제단에 대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하니라.
18 이르되 그대로 두고 그의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의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
19 전에 이스라엘 여러 왕이 사마리아 각 성읍에 지어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산당을 요시야가 다 제거하되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대로 행하고
20 또 거기 있는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제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 나의 묵상
남유다의 요시야는 8세에 왕이 되어 31년간 다스렸다(BC 640-609년).
그는 재위 18년째 되던 해, 성전수리를 명하였고 그 과정에서 율법 책을 발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하셨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은 언약 당사자가 관계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의’를 통해 유지된다.
곧 이스라엘은 말씀에 순종하는 쉐마를 통해 언약적 의를 이루고, 그 때 하나님은 그들을 특별한 보화로 삼으신다(출 19:5).
또한 이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며,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출 19:6).
그런데 이들은 광야에서 끊임없이 불순종하였고, 이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이 바라다 보이는 모압에서 저주를 경고하는 내용을 덧붙인 언약을 갱신하신다(신 29장).
그로부터 요시야 시절까지 800여년이 지난 때, 이스라엘에게 언약은 아련한 기억이 되었다.
특히 솔로몬 성전이 지어진후, 예루살렘 성전제의가 신앙의 핵심내용이 되면서 더욱 그리하였다.
사실 솔로몬 성전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유지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인데 말이다(왕상 9:3-9).
한편 예루살렘 성전제의는 유다가 앗수르의 봉신국이 됨으로써 훼손되고 말았다.
유다는 BC 735년 아하스가 왕이 된 이후로 급격히 세력이 확장된 앗수르의 봉신국이 되었다.
그로부터 앗수르가 숭배한 여러 가지 우상들을 여호와의 성전에 두고 경배하였다(왕하 16:10-18).
그러나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는 하나님과 연합되어 반앗수르 정책을 펼쳤다.
동시에 아하스가 훼손한 여호와의 성전을 보수하고, 산당들을 다 없애는 개혁을 단행하였다(대하 29장).
그런데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 때 모든 것은 아하스의 시절로 돌아가고 말았다.
물론 이 때는 앗수르가 애굽까지 정복하여 그 힘이 막강한 탓도 있었지만, 므낫세는 하나님만을 절대 신앙하는 대신 현실적인 세력 앞에 무릎 꿇고 말았던 것이다.
므낫세가 55년을 다스리고 그의 아들 아몬이 왕이 되었으나, 아몬은 신하들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그리고 아몬의 아들 요시야가 왕이 된 것이다.
요시야가 왕이 된 후 초기 상황에 대해서는 성경의 기록이 없다.
그가 여호와를 경외하고 본격적인 종교개혁을 한 것은 재위 12년째 이후이다(대하 34:3).
그리고 재위 18년째 되던 해, 성전수리를 명령하였다.
이즈음 앗수르는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왕자들 간에 권력투쟁이 치열하였고 그 국력은 급격히 쇠락하였다.
요시야는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옷을 찢으며 통회 자복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겸비함을 귀히 보시고 재앙을 유보시켰다.
이것을 알게 된 요시야는 모든 관리와 제사장, 그리고 백성들을 불러 모아 언약을 갱신하였다.
나아가 여호와의 성전을 청결하게 하고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산당들을 다 척결하였다.
오늘 말씀은 여호와의 성전에 이어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산당들을 제거한 내용이다.
요시야는 힌놈의 골짜기에 있던 도벳을 더럽게 하였다.
몰렉을 섬기는 이들은 도벳에 있는 제단에 자기 아들이나 딸들을 몰렉에게 제물로 바치곤 하였다.
이에 도벳의 제단을 더럽게 함으로써 아무도 그곳에서 자기 아들이나 딸을 바칠 수 없게 한 것이다.
또한 요시야는 성전의 입구에 놓아둔 말들을 다 없애버렸다.
그 말들은 태양에게 바치기 위한 것들로서 내시인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없애버렸고 태양을 섬길 때 쓰는 병거들도 없애버렸다.
BC 9세기부터 성행해온 태양 숭배는 태양이 속죄를 가져온다는 사상에서 기인되었으며 이때는 바로 므낫세와 아몬 시절에 태양을 숭배한 것과 같은 시기이다.
또한 요시야는 여러 왕들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제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성전 안 두 뜰에 만들어 놓은 제단들도 부수고 그 재를 기드론 골짜기에 뿌렸다.
지붕 위의 제단은 바알에게 희생제물을 바치는 장소이다(렘 32:29).
다시 요시야는 ‘멸망의 산’ 오른쪽에 있던 산당들을 더럽혔다.
그 산당들은 솔로몬 왕이 시돈 사람들의 역겨운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역겨운 신 그모스와 암몬 사람들의 역겨운 신 밀곰을 위해 세운 것이다.
멸망의 산은 기름의 산을 뜻한다.
곧 요시야는 예루살렘 동편의 올리브 나무로 가득한 감람산 남쪽에 있던 산당들을 다 없앤 것이다.
요시야는 돌 우상들을 부수고 아세라 목상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 그곳을 죽은 사람의 뼈로 덮어 부정하게 만들어버렸다.
요시야는 북이스라엘의 초대왕 여로보암이 세운 벧엘의 제단도 헐어버렸다.
여로보암은 그곳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백성들로 하여금 그것들을 하나님으로 섬기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대대로 죄를 짓게 만들었다.
요시야는 그곳을 불태우고 제단의 돌들을 부수어 가루로 만들었고 아세라 상도 그리하였다.
그러면 여로보암이 만들었던 금송아지는 어디로 갔는가?
그것들은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정복하였을 때 자기 나라로 가져갔다.
(호 10:5-6) 사마리아 주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로 말미암아 두려워할 것이라 그 백성이 슬퍼하며 그것을 기뻐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하리니 이는 그의 영광이 떠나감이며, 그 송아지는 앗수르로 옮겨다가 예물로 야렙 왕에게 드리리니 에브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계책을 부끄러워할 것이며.
그뿐 아니라 요시야는 산위의 무덤들에서 뼈를 꺼내게 하고 그 뼈를 제단 위에서 태워 제단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하신 말씀을 모두 이루었다.
전에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에게 이 일을 미리 예언하였다.
(왕상 13:2-3)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그리고 이 예언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고 하였다.
(왕상 13:31-32) 그 사람(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후에 그가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요시야는 여로보암에게 예언한 유다에서 온 선지자의 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의 묘에서는 뼈를 꺼내지 않도록 함으로써 그를 존중하였다.
그래서 그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를 보존하였다.
요시야는 마지막으로 사마리아에 세워진 산당의 신전들을 다 파괴하였다.
이곳들은 이스라엘 왕들이 만들어서 여호와의 진노를 초래했던 곳이다.
그는 그런 산당의 제사장들을 제단 위에서 다 죽였다.
그리고 그들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태우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대대적이며 전국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앗수르의 속국인 북이스라엘에게까지 개혁이 단행되었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였다.
이는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된 재앙의 말씀을 보아 알 수 있다.
결국 요시야는 애굽과의 전쟁에서 죽고, 유다는 급속히 쇠락하여 50년도 채 안되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다.
사실 성전수리나 우상의 척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약의 회복이었다.
요시야는 이 언약을 갱신하였으나 결국 백성들은 따르지 아니하였다.
곧 이스라엘에게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언약적 의를 이루는 것이 관건이었다.
하나님은 언약적 의에 끝까지 불순종한 이들을 심판하시고 새 언약을 약속하셨다(렘 31:31-34).
이 새 언약은 장차 다윗의 가지로 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다(렘 33:14-15).
새 언약시대 신앙의 본질 역시 언약적 의를 이루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 진입한 자는 언약 안에 머물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징계와 채찍질이 가해지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언약적 의를 회복하게 하기 위함이다.
언약 안에 머무는 것은 날마다 아들을 통해 아버지 품에 나아가는 규례를 순종하는 것 곧 언약을 이루기 위한 조건의 규정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 나아가는 파레시아(특권, 담대함)’를 버리지 말라고 촉구하였다.
(히 10: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오늘날 성전은 아들의 생명을 얻은 성도 각자이다.
그리고 성전 수리는 보혈로 죄를 씻고 정결케 하여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이에 모든 우상을 척결해야 하며, 유사 신앙을 몰아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면 결국 유다의 결말에 이르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새 언약 백성으로서 언약적 의를 지키는 것이다.
곧 큰 자나 작은 자나 날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사귐에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날마다 말씀 앞에 나아가는 일을 경홀히 하면 아무리 성전수리를 하고 우상을 타파해도 징계는 피할 수 없다.
오늘 말씀처럼 말씀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한, 곧 유사 신앙으로 계속 가면 반드시 파멸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나는 요시야 왕처럼 성전을 수리하고 우상을 타파하며 내면에 있는 온갖 종교성을 개혁하고자 애를 썼다.
하지만 말씀에 근거하여 그대로 살아보려고 애를 써도 시간이 좀 지나면 나의 모습은 어느 새 도로 그 자리에 와 있는 것을 본다.
그것은 요시야와 같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할지라도 보다 근본적인 언약적 의를 위한 쉐마가 함께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약 안에 들어왔으면 그 언약 안에 머물러야 한다.
이는 곧 말씀을 날마다 생명의 양식으로 삼고 그 양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이 때 그 양식이 하나님 품 안에 거하는 존재가 되게 한다.
나는 이 진리를 알지 못하고 그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으로 무언가 해보려 했던 자이다.
그렇기에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바로 알지 못하고 그저 남의 다리만 긁었던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징계를 받고 복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날마다 주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는다.
이 일이 목사요 선교사인 나에게는 삶의 최우선 순위이다.
내가 아무리 몸으로 마음으로 무언가를 이룬다 해도 주님과의 영적 교제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아님을 알아 오늘도 주의 말씀을 먼저 얻어먹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 좋아보이고 멋져보일지라도 그것이 생명을 줄 수는 없습니다.
생명은 오직 주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얻을 수 있습니다.
그 교제와 사귐이란 말씀의 영적 교제이오니 목숨 걸고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나를 장악하여 주소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박수 받는 일을 할지라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오니 오직 주님 안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생명의 교제, 말씀의 교제가 이어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목숨에 연연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인 영생에 나의 모든 것을 걸게 하소서.
그것은 오직 주님의 손에 있사오니 나를 강하게 붙드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