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의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정직한 영이 되어 생명의 말씀을 받아먹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1. 왕이 뭇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22.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23.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24.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26.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2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28. 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9. 요시야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인지라
30. 신복들이 그의 시체를 병거에 싣고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의 무덤에 장사하니 백성들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그에게 기름을 붓고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았더라
(본문 주해)
21~25절 : 요시야 왕 제18년에 유월절 절기를 회복시킨다.
사사시대에서부터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어느 시대에도 요시야 왕의 유월절과 같이 대대적인 규모로 지킨 적이 없었다.
요시야 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일하시는 그 언약의 절정이 유월절임을 안 것이다. 즉 여호와의 모든 언약은 이 유월절이 핵심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유월절 어린 양의 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 안에 있는 자만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백성 즉 성도가 된다.
그러므로 요시야의 유월절 회복은 너무나도 중요한 사건이다.
또한 요시야의 추가적인 개혁이 이어진다.
그것은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서 신접한 자와 박수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혐오스러운 것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다 없애 버린 것이다.
이와 같은 요시야의 열심을 열왕기 기자가 정리한다.
“이와 같이 마음을 다 기울이고 생명을 다하고 힘을 다 기울여 모세의 율법을 지키며 주님께로 돌이킨 왕은, 이전에도 없었고 그 뒤로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25절, 새번역)
26~28절 : 요시야의 이러한 개혁에도 불구하고 예고된 유다의 멸망은 진행된다.
요시야처럼 완벽하여 율법을 지켰지만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않으신다고 한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한 것같이, 남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할 것이다. 그렇게 하심으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여호와의 이름을 둘 것이라고 한 이 성전을 버리겠다고 하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러한 결정은 요시야의 개혁으로도 돌이킬 수가 없음을 말씀하신다.
29~30절 : 요시야의 죽음이다.
앗수르를 도우려는 애굽이 신흥 바벨론과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유다 땅을 지나가야 하는데, 이를 요시야 왕이 가로막아 나서다가 므깃도에서 전사하고 만다. (갈그미스 전투)
요시야는 자신이 여호와를 위한다는 그 열정으로 유다 땅 근처로 애굽 군대가 가지 못하도록 가로막아 나섰던 것이다. 왕의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변장까지 하고 나갔지만 적군의 화살에 맞아 죽게 된다.
예루살렘이 장차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하고 성전이 파괴되어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애굽은 미약해야 하고 앗수르도 망해야 한다.
그런데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율법을 지켰다는 요시야 왕이 자기도 모르게 이러한 하나님의 경영을 가로막고 나선 자가 되어 죽고만 것이다.
(나의 묵상)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25절)
유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은 왕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셨고, 왕이 하나님께 패역하면 이방나라를 채찍과 막대기로 동원하셔서 징계하신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요시야같이 하나님께 절절한 마음으로 헌신 된 왕이 이렇게 빨리, 그것도 애굽왕의 손에 허무하게 죽어버리니 당황스럽다.
나는 요시야의 죽음을 심판이나 징계의 의미로 보고 싶지 않다.
요시야는 망하기로 확정된 유다 역사 속에 등장한 인물로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나라와 백성들이 어떠해야 함을 확실히 보여준 인물이다.
그러므로 요시야의 죽음이란, 멸망으로 결정되어진 나라 즉 이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서 탈출시켜 주신 것이다.
성도의 삶이 이러한 것임을 생각한다.
25절처럼 역대급으로 멋진 평가를 받은 요시야가 애굽왕과의 전쟁에서 잠시 자기부인의 길을 놓친다. 요시야 왕은 지금까지 열심으로 이어진 자신의 행보가, 이번에는 여호와의 길을 가로막아 나선 것임을 알지 못한다.
예루살렘은 장차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성전이 파괴되어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애굽은 미약해야 하고 앗수르도 망해야 한다.
그런데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율법을 지켰다는 요시야 왕이 자기도 모르게 이러한 하나님의 경영을 가로막고 나선 자가 된다.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 죽이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내게 십자가의 길을 보이신 사건이다.
멸망으로 결정된 나라는 지금 눈에 보이는 이 세상,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다.
그러니 요시야 왕의 요절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세상에서 죽음을 당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로 이끄시는 것은 십자가에 연합되어 살아가야 하는 성도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구원 받은 존재로서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는 것보다 큰 은혜가 어디 있을까?
그러므로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에 대해서만 살아 반응하는 존재가 되길 소망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6:11)
(묵상 기도)
주님,
요시야의 죽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합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살게 하시고는 얄짤없이 데려 가십니다.
이 세상 속에서 저의 삶이 날마다 죽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요시야처럼 애굽에 대항하고자 하는 인간적인 의가 치솟아도
십자가 앞에서 죽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사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언제나 한 박자 늦게 깨닫는 우둔한 자이지만,
오직 유월절 어린 양의 피, 예수님의 보혈 안에 안전하게 거하는 존재가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