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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다.
찌는 석실에 갇혀 있다.
어깻죽지에서 침입하는 열은, 세포를 먹는 극히 작은 벌레 같다.
어깨. 팔이 있었던 곳에는 벌꿀이 치덕치덕 발라져, 융단처럼 무리를 이룬 벌레(개미)가 모여들고 있는 듯.
————뜨겁다.
몸이 안쪽에서 탄다.
찌는 석실이라고 하기보다, 뚜껑을 덮은 프라이팬이다.
치익치익 소리를 내며, 긴장을 푸니 어느 새 새까맣게 타 있다.
——————뜨겁다.
열은, 몸이 아니라 마음을 녹인다.
지글지글 화악화악.
유전자를 태우고, 다시 쓰는 것처럼, 열은 강하고 신중하게 퍼져 간다.
……그, 나쁜 꿈이 드디어 끝나는 건가.
——————뜨겁다.
벌레를 놓치지 않겠다며, 뚫려 있던 구멍에 뚜껑이 닫혔다.
———뜨겁다.
———뜨겁다.
———뜨겁다.
———뜨겁다.
———뜨겁다뜨겁다뜨겁다뜨겁다………… ! ! ! ! !
구멍이라는 건 어깨다.
어째서인지 깨끗이 없어진 왼팔이 입구가 돼서, 벌레는 거리낌없이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 입구———녀석들을 밖으로 내보내야 할 구멍이, 자신 이외의 살점으로 막혔다———!
변해 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으로 변해 간다.
들어온다.
알 리 없는 지식이 들어온다.
그건 녀석의 전투경험이며, 전투정보이기도 하다.
「하———아, 커———!」
그것이 그 녀석의 보구였다.
단검 한 쌍이 그렇다는 게, 아니다.
간장 막야.
옛 명공이 만들어낸 보검을 애용하는 그 녀석은, 마찬가지로 대장장이를 생업으로 삼는 영령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만든다.
눈으로 본 것, 이해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복제한다.
아니.
그건 복제가 아니라 투영.
술사의 창조이념이 진짜를 재현하는 특수한 마술.
그걸——자유자재로 다루라고, 마음을 태우는 열이 말했다.
「하———아, 아———!」
말 같잖은 소리 하지 마. 무리다. 그런 건 다 안 들어가.
투영 따위 몰라. 나는 아직 그 영역에 도달하지 않았어. 그런 지름길은 반드시 이 몸을 파멸시킨다.
애초에, 나는 나 혼자로 힘에 겹다구, 그런 다른 곳의 것을 보여줘도 배울 수 없고 구사할 수 없어.
무엇보다 그 정도 힘이 없고 너와 나는 생판 남이라 아무런 접점도 없으니까 몸이 잘 융합될 리가 없어,
아니, 만약 잘 융합됐다 해도 어떻게 된다는 거야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어,
시간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선 안돼 질서를 어지럽혀선 안돼 네가 나에게 힘을 빌려주다니,
그런 짓을 해도 나에겐 다룰 수 있는 기량이 없어———
「—————」
……천천히 의식이 돌아온다.
나는 모르는 방에서, 익숙하지 않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라」
몸을 일으킨다.
나는 분명히———숲에서 세이버와 만나서, 토오사카와 도망치고, 그리고, 이리야를———
「………………」
딱, 눈이 마주친다.
이리야는 침대 바로 옆에 있으면서,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무사했구나, 이리야」
후우, 하고 가슴을 쓸어 내린다.
상황은 파악할 수 없지만, 이리야가 무사한 건 정말로 기쁘다.
「만세에! 눈을 떴구나, 시로!」
「에———잠까, 이리야……!」
이리야는 똑바로 이쪽으로 돌입한다.
「읏차」
「다행이야……다행이야아, 시로……!」
덥썩, 머리부터 이쪽 가슴에 뛰어들어와서, 이리야는 “다행이야”를 되풀이한다.
「—————」
……곤란하다.
상황은 정말로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울며 매달리면 얌전히 있을 수 밖에 없다.
「상처는 안 아파?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금방 대신할 걸 붙이게 할 테니까!」
「……? 응, 딱히 아픈 데 같은 거 없어. 그것보다 이리야,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설명———」
해 줘, 라고 말하다 말고,
「익———!?」
몸을, 긴 날붙이로 관통 당했나, 라고 생각했다.
「하———이, 윽———!」
아픔을 견디다 못해, 오른팔로 가슴을 쥐어뜯는다.
「시로……!? 진정해, 참는 게 아니라 왼팔을 억누르는 거야……!」
「아———왼, 팔…………?」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아픔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하아, 하———아」
……마음을 진정시킨다.
눈을 감고 명상하면, 이상한 부분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아픔의 근원, 이물질이 무엇인지 알면 다소는 컨트롤할 수 있다.
요는 관문을 만들어서, 이물질이 본체에 섞이지 않도록 힘쓰면 될 뿐이다.
「———후우. 괜찮아, 진정됐어, 이리야」
「응, 나도 알아. 어떻게 되나 했지만, 일단 서로 반발하지는 않는 것 같아」
「……?」
이리야는 지금 그 아픔이 무엇에서 오는 것인지 알고 있는 듯 하다.
「……음?」
문득 자신의 모습을 보자, 헐렁헐렁한 환자복이 입혀져 있었다.
……아니, 이건 환자복이라고 하기 보단 스트레이트 재킷이다.
그 증거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오른팔뿐. 그 이외의 곳은 벨트로 꽉 고정되어 있어서, 혼자서는 벗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뭐야 이거. 이리야, 어째서 이런 거 입고 있는 거야, 나?」
「에……에에, 그건」
말하기 거북한 듯이 시선을 돌린다.
「그 뒤의 설명은 내가 하지, 에미야 시로」
……그 때.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이 나타났다.
「저쪽도 회복했다. 이쪽은 사후설명뿐이니까 말이지, 볼일이 없으면 퇴실하게」
「……흥, 어떤지 모르지. 나는 시로랑 같이 밖에 나갈 거야.
당신이 정말로 아무 짓도 안 한다면, 내가 여기에 있어도 문제는 없잖아?」
「과연, 확실히 문제는 없군. 하지만 설명은 간결하게 끝내고 싶다. 방해를 하지 않는다면, 구석에 얌전히 앉아 있어라」
「그래. 그럼, 그렇게 할게」
이리야는 코토미네의 옆을 빠져나가 벽 가로 걸어간다.
「———자. 상황설명 전에, 아까 그 의문에 대답해 두지. 너무 놀라지 마라, 에미야 시로」
코토미네의 팔이 뻗어 온다.
신부는 스트레이트 재킷의 벨트를 풀고, 간단히 나를 벗겼다.
「뭐———」
거기에 있는 팔은, 에미야 시로의 팔이 아니었다.
몇 겹이나 감긴 천 위에서도 알 수 있다.
……지금 왼팔이 돼 있는 것은, 자신 이외의 무언가.
그건 본래 있어서는 안 되는 것, 자연의 섭리를 억지로 구부리면서까지 단 “이물”이었다.
「코토미네, 이, 건」
「아쳐의 왼팔이다. 아쳐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그의 유체로부터 너에게 이식했다」
「아쳐의 의사를 존중……? 아니, 그것보다 유체라니, 그 녀석은」
「이식이 끝난 뒤, 소멸했다. 여기에 옮겨진 시점에서 죽은 몸이었지만, 잘도 끝날 때까지 버텼지.
아쳐가 가진 단독행동 때문이겠지만 말이지」
「………………」
아쳐가, 소멸했다.
그럼, 이걸로 남은 서번트는 조켄의 어새신과, 사쿠라의 라이더와……
……아니.
그렇게 되어 버린 그녀를, 서번트라고 부르는 건 잘못된 것 같다.
「……잠깐. 아쳐는 사라졌잖아. 그럼, 그 녀석 팔이 남아있는 건 이상하지 않냐」
「이식이 끝나기 전에 소멸했다면, 그 왼팔도 사라졌겠지.
그러나 네 그것은 아쳐가 현세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에 떼어내, 네 몸에 이식한 거다.
에미야 시로의 마술회로와 연결되어, 너 자신의 마력으로 현세에 수육시키고 있는 영령의 살점.
……그 수술이 된 시점에서, 그건 네 육체가 됐다. 그 뒤라면 아쳐가 사라지더라도 왼팔은 남지.
그 왼팔은 이미 네 팔이니까 말이야」
「그럼 정말로……이건, 그 녀석 팔인 거냐」
「그래. 그대로 가면 너도 아쳐도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아쳐는 이 세상에 묶어두는 영핵이 부서져 있었고, 너도 한쪽 팔을 잃어,
상처 자국에서 생명활동에 필요한 내용물을 잃은 상태였지.
다행히, 아쳐의 몸에 상처는 적었으니까 말이지.
그는 너에게 유일하게 무사한 육체를 제공하는 걸 통해, 죽어가는 너를 살린 거다」
「—————」
……녹아버린 왼팔.
정신을 침범해 간 열과, 이렇게 타인의 것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왼팔.
그 모든 것이, 그 사건이 사실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그 숲에서 쓰러져.
그 뒤, 아쳐에게 구해진 건가.
「……하지만, 서번트의 몸을 인간에게 이식하다니, 가능한 거냐」
「그저 연결만 하는 거라면 안 될 것도 없어.
영매 의사는 육체가 아니라 혼을 치료하는 거라고 하고, 거기 신부는 외견과는 다르게 진짜였다는 거지」
「빈말은 받겠지만, 그렇게 무조건 기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른 영체끼리 접합하는 것은 금주로 불리지. 그도 그럴 것이, 해봐야 절대로 실패하기 때문이다.
영체……혼의 소생, 복원은 마술로는 다룰 수 없는 신비지.
그렇기에 이번도, 모양만 성공한 뒤에 쇼크사할 거라 생각했는데———」
「……시로랑 아쳐는 특별해. 나도 아까 알았어. 이 둘이라면, 연결만 하면 회복한다고」
「?」
이리야는 시선을 돌리고, 왠지 모르게 슬픈 듯이 시선이 허공을 맴돈다.
「호오. 뭐어, 그 이유는 모른다. 내가 아는 건 너희들의 상성이 좋았다, 라는 것뿐이지.
수술을 시작했을 때는 놀랐다고. 쌍둥이도 이렇게까지 빼 닮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말이지」
「—————」
코토미네의 말을 확인하듯이, 왼팔에 힘을 넣어봤다.
……감각 따위 전혀 없다.
단지 아픔이 없을 뿐이고, 거기에 있는 건 그저 덩어리였다.
무슨 짓을 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피의 순환이 멎어 마비된 팔과 마찬가지다.
이어져 있는데도 움직이지 않는다, 라는 감각은, 육체적인 아픔이 아니라 정신적인 두려움을 품게 했다.
……왼팔은, 그저 쇳덩이가 돼 있었다.
양철이 된 인간이 있다고 하면, 그건 이런 부자유한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전혀 안 움직여. 이런데 수술은 성공한 거냐」
「당찮은 소리 하지 마라. 막 연결한 참으론 그게 한계다. 며칠 지나면 융화되지.
아까도 말했지만, 너희들의 상성은 실로 좋다. 이 상태라면, 통상 생활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되겠지」
「그러나 주의해라. 내가 말하는 건, 그저 어디까지나 회로가 맞는다, 라는 거다.
아무리 상성이 좋다 해도, 그건 인간이 다룰 수 없는 영령의 팔.
아니, 팔이라고 하기보다는 병기군. 강력하긴 하지만, 쓰면 너도 역시 말려들겠지」
「——그건, 자멸한다는 거냐?」
「물론이지. 인간인 에미야 시로가 영령의 팔을 쓰면, 육체는 아쳐의 팔에 침식당하지.
아니, 날아가 버린다, 라는 표현 쪽이 올바르려나」
「영의 격에서, 에미야 시로의 육체는 아쳐의 팔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지.
한 번이라도 그 팔을 쓰면, 아쳐의 마술회로가 기동한다.
그렇게 됐을 때——네 몸은 아쳐의 마술행사에 견디지 못하고, 안쪽에서 붕괴되지.
알았나, 쓸 때마다 수명이 줄어들어 간다, 라는 게 아니다.
그 팔을 쓰면, 네 몸에 심어진 시한폭탄에 스위치가 넣어지는 거다」
「—————」
……뭐야, 그거.
요컨대 한 번이라도 아쳐의 흉내를 내면, 나는 절대로 죽는다는 거 아냐.
「……. 그럼, 이 천은 그 때문에……?」
「그래, 그 때문에 한 봉인이다. 그걸 감고 있는 한, 왼팔은 마술회로를 발현하지 않지.
네가 마술을 쓴다고 해도, 그 왼팔만은 다른 것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안심은 하지 마라. 마술행사를 하지 않아도, 살아있는 한 마력은 육체에 지나는 법이다.
그 때마다 왼팔에는 아픔과, 기동하려고 하는 반동이 일어나겠지.
그걸 막기 위해, 마력을 억제하는성해포로 왼팔을 씌우고 있지.
그 천을 감고 있는 한, 왼팔로부터 오는 침식은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을 거다」
「잠깐 기다려.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다니, 그럼 완전히 억누를 수는」
「없다. ……그래, 아쳐의 팔을 쓰든 쓰지 않든, 결국은 그 팔에 침식당한다.
오래 살고 싶다면, 팔과 길항할 정도 되는 마술사로 성장해라. 그렇게 되면 성해포를 감지 않고도 왼팔의 봉인은 가능하지」
「뭐, 내 진단으로는 왼팔에 다 먹힐 때까지 앞으로 10년. 그만큼 유예가 있는 거다.
제 몫을 하게 돼서 왼팔을 다루든지, 되지 못하고 자멸하든지. 그렇게 급한 이야기는 아니지」
「………………」
급하긴커녕, 이런 건 모르는 새에 개조 당한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불평을 해도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다.
본래 같으면, 나는 그 숲에서 죽었다.
그걸 살리기 위한 방법이 아쳐의 팔을 이식하는 것이었으니까, 불평을 한다는 건 살아난 목숨을 포기한다는 게 된다.
「———알았어. 일단 인사는 해 두지.
……또 신세 졌다, 코토미네 신부. 가능하면 네 번째가 없도록 기도해줘」
「실없는 소리를 할 수 있다면 걱정은 필요 없군. 그럼 밖에 나가라. 예배당에서 린이 기다리고 있다」
코토미네는 출구를 향해서 간다.
침대에서 내려와, 준비되어 있던 웃옷을 걸친다.
왼팔은 움직이지 않기에, 일단 걸쳤을 뿐이다.
「좋아, 주의하면 안 아프군. 이리야, 가자」
「아……응, 갈게」
……밖으로 나오자, 거기는 교회의 안뜰이었다.
하늘은 어두워, 어느 샌가 밤이 되어 있었다.
「말하는 걸 깜박했는데, 그 성해포는 풀려고 생각하면 간단히 풀 수 있다.
선택지는 항상 네게 있지. 아쳐의 힘을 쓰는 건 자유지만, 쓰면 목숨은 보장 못한다.
그걸 고려에 넣고 나서, 가능한 한 유리하게 행동해라」
예배당에 들어오자마자, 토오사카는 번뜩 이쪽을 노려봤다.
……저렇게 노려볼 만한 짓을 한 기억은 없지만, 일단 토오사카도 무사했다고 알고 안심한다.
「자. 이걸로 전원 치료는 끝났다.
에미야 시로는 잃었던 한쪽 팔을 이식하고, 린은 독소를 세정했지. 뭔가, 이 이상의 요구는 있나?」
「……있을 리 없지. 이 이상 당신한테 빚을 지면, 정말로 목숨을 담보로 잡힐지도 모르잖아」
「그런가. 그럼 이걸로 해산하게 되지만, 일단 감독으로서 물어보지.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냐, 린.
일이 이렇게 돼 버려서야 성배전쟁도 파탄 상태지.
남겨진 마스터가 이렇게나 다들 서번트가 없는 상태여서야, 이미 승패는 결정됐잖나」
욱, 하고 토오사카는 입을 다문다.
……코토미네 말대로, 승패는 거의 결정된 상태다.
서번트를 가진 마스터는 조켄과 사쿠라 뿐이다.
……본래 같으면 남은 둘이 싸워야 하지만, 사쿠라는 조켄에게 거역할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승패는 이미 결정돼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토 조켄으로선 마토 사쿠라를 되찾던지, 처리하든지 둘 중 한쪽이겠지.
이걸 막는 것은 어렵고, 너희들에겐 막을 의무도 없다.
여하튼 마토 조켄을 쓰러뜨려봐야, 너희들에게 이익은 없으니까 말이지」
「헤에. 서번트가 없는 마스터는, 성배를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거?」
「그렇다. 때문에 싸우는 의미는 없고, 이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하지.
이대로 얌전히 저택에 틀어박혀서, 성배전쟁의 끝을 기다리는 게 올바른 선택이겠지」
「——충고 고마워. 하지만 안 그만둘 거야, 나」
「——놀랐는걸. 성배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 라는 건가?」
「당연하지. 서번트가 없어져도, 나는 아직 마스터인걸. 혼자가 됐으니 싸움을 그만두겠지 라고, 멋대로 단정하지 말라구」
「호호오. 그런가, 확실히 그렇군.
서번트를 잃고도 어슬렁어슬렁 사지로 향했던 남자도 있지. 그렇게 간단히 백기는 들 수 없나」
「——흥, 시로는 관계 없어.
알겠어? 이건 어디까지나 내 판단이야.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고, 조켄을 승리자로 만들 생각도 없어.
그럼 어느 쪽이든 그 애가 살지 못하니까」
「———토오사카」
눈을 크게 뜨고 토오사카를 본다.
「뭐, 뭐야 기뻐 보이는 얼굴 하구. 마, 말해두는데, 네 흉내를 낸 게 아냐.
나는 승산이 있으니까 아직 그만두지 않는 거야. 너처럼, 승산도 없는데 남는 게 아니라구」
「——응, 그렇겠지. 토오사카 성격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
「…………어쩐지 그건 그거대로 납득이 안 가지만, 알았으면 됐어」
흥, 하며 얼굴을 돌려 딴 곳을 향한다.
토오사카는 정의감 때문에 조켄에게 성배를 넘기지 않겠다, 라고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조켄이 이겨봐야 사쿠라는 구해지지 않는다.
사쿠라를 구하고 싶다면, 그건 사쿠라가 성배를 손에 넣던지,
그렇지 않으면——사쿠라를 구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 성배를 손에 넣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어차피 이기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건 자신이나 사쿠라 둘 중 한쪽이라고 토오사카는 말한 것이다.
마토 조켄과 싸운다는 것은 그저 그것뿐.
이제 성배를 손에 넣을 수 없는 토오사카는, 이러쿵저러쿵 해도 여동생인 사쿠라를 구하고 싶어한다.
「흠. 그럼 너는 어떤가, 에미야 시로. 린과 마찬가지로, 아직 성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가?」
「그래, 싸움은 그만두지 않을 거야. 나도 목적은 있어. 이대로 조켄 마음대로 하게 놔둘 수 없지」
「……그런가. 싸운다고 하면 말리지는 않겠다. 절망적인 전력차지만, 마토 조켄은 잔챙이니까 말이지.
얼마간 책략은 있겠지」
「………………」
「………………」
그만, 서로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책략, 이라.
나 혼자선 그런 건 찾아낼 수 없지만, 토오사카와 둘이라면, 조켄을 쓰러뜨릴 방법 정도 찾아낼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끝났다.
치료는 끝나고, 보호를 받지 않는 전 마스터를 숨겨줄 이유는 없다, 라며 코토미네는 퇴거를 재촉했다.
「——그런 소리 안 해도 나갈 건데. 있잖아, 이리야는 갈 데 있어?」
「? 성은 아직 있고, 세라도 리즈도 부르면 나오니까 돌아갈 곳은 있는데……어째서 그런 거 묻는 거야, 시로?」
「아니, 혼자선 위험하잖아. 이리야만 괜찮다면 우리 집에 있어줬으면 하는데. 그쪽이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고 생각하고」
「상관없지만, 안 갈 거야. 시로 네에는 그 여자가 있는걸」
그러자.
이리야는, 무언가 이상한 대답을 했다.
「?」
상관없지만, 안 간다니 무슨 말일까, 라고 시선만 가지고 토오사카에게 묻는다.
아. 아무리 봐도 이쪽에 얘기를 가져오지 말라는 얼굴 하고 있군, 저 녀석.
「호오. 마토 사쿠라를 고른 건가, 에미야 시로」
「……코토미네?」
「이리야스필은 내가 맡아줄 수도 있는데. 이대로 성에 돌려보내서야 조켄에게 납치당할 뿐이니까 말이지」
「거절하겠어. 이리야는 내가 맡을 거야」
「거절이야. 이리야는 내가 빌릴 거야」
「거절할게. 나, 자기가 있을 곳은 스스로 정할 수 있는걸」
「………………………….
그건 유감이다. 그럼, 이리야스필은 토오사카 저택에 체재하는 거로군」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아인츠베른의 마스터는, 토오사카 가 따위에는 안 간다니까!」
「아 그래. 그럼 너 어디에 갈 거야. 시로 네도 싫다, 교회도 거절, 우리 집은 안 된다고 하면, 이제 성에 돌아갈 수 밖에 없어?」
「알아. 본래 거기가 내 공방이니까, 다른 마스터한테 신세 따위 안 져. 버서커가 없어도, 나는 혼자서 계속할 거야」
「어?머, 역시 그렇구나. 한 번 너에게 죽을 뻔 한 시로에게 구해졌으면서, 은혜도 못 느끼고 성으로 돌아가는 거네.
들었어, 에미야 군? 그렇게 구해줬는데도 미움 받네. 이 애, 네 집 따위 좁아서 사절이라는데?」
「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린!
나 그런 소리 한 마디도———」
「했잖아. 에미야 군의 집에 안 가는 건, 에미야 군이 의지할 수 없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안심할 수 있는 자신의 성에 돌아간다고 하는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하지만, 내가 성에 돌아가는 건, 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고———」
「에? 아, 그렇구나. 의지가 되고 안 되고 하기 전에, 애초에 에미야 군이 싫었던 거네. 뭐야, 그런 건 일찌감치 말해」
참으로 냉담하게 이리야를 마구 괴롭히는 토오사카.
「———아」
안 좋다.
이대로 가면 피로 피를 씻는 싸움이 되고 만다, 라 위구했을 때.
「그, 그렇지 않아! 나, 시로가 싫다는 소리 안 했는걸! 내가 싫은 건, 더 다른 거라니까……!」
「———그렇대. 대인기네, 에미야 군」
흐흥, 하고 평화롭게 웃는 토오사카와,
그걸 분한 듯이 노려보는 이리야.
「………………」
……에?에.
즉, 이리야는 누구 집에 가게 된 거지……?
결국, 이리야는 우리 집에 와 주게 됐다.
토오사카와 이리야는 말싸움을 하면서 예배당을 뒤로 한다.
저 두 사람의 경우, 저건 저거대로 사이가 좋다, 라고 봐야겠지.
「—————」
……이야기는 끝났다.
여기부터는 우리들의 문제고, 코토미네 신부와 이야기할 건 없다.
토오사카와 이리야보다 늦게 예배당을 뒤로 한다.
그 등에,
「잊지 마라, 에미야 시로. 너는 싸울 수 있는 몸이 아니다」
이미 단골메뉴가 된, 신부의 충고가 보내져 왔다.
「그럴 리 있냐. 왼팔을 못 쓸 뿐이야. 나는 아직 싸울 수 있어」
「그런가. 그런데 마토 사쿠라의 몸 상태는 어떠냐」
「사쿠라의 몸 상태……?」
……조금 의외다.
더 싫은 소리를 해 오나 했는데, 어째서 여기서 사쿠라의 몸 상태를 알고 싶어하는 거지.
「무슨 바람이 분 거야. 이제 와서, 당신이 사쿠라 걱정을 해서 뭐가 되지」
「모르고 있군. 나는 네 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다.
알겠나, 에미야 시로. 너도 위험한 몸이지만, 마토 사쿠라는 더욱 위태한 폭탄을 안고 있다.
너는 싸우지 않으면 무사하지만, 마토 사쿠라는 시시각각 붕괴되고 있지.
그렇기에 너는 싸움을 그만둘 수 없다. 전투가, 자신의 죽을 때를 앞당긴다고 잘 알면서」
「………………」
「마토 사쿠라를 구할 거라면, 에미야 시로는 싸우지 않을 수 없지.
하지만 지금 너에겐, 싸우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와 동등한 우행이다.
그러므로——마토 사쿠라를 구한다는 것은, 자신을 죽인다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겠지?」
「…………그게 어쨌다고. 그런 것도 네가 알 바 아니잖아」
사쿠라를 구하겠다고 결심했다.
자신의 몸이 어떤 상태가 되든지, 그 맹세는 변하지 않는다.
「——그런가. 목숨을 바칠 정도 헌신은 아름답지만 말이지.
그 애는 에미야 시로에게, 과연 그만큼 가치가 있을지 어떨지」
「뭐, 라고……?」
「마지막 충고다, 에미야 시로.
살린다고 하는 것은 욕망을 채운다는 것.
마토 사쿠라를 살리고 싶다면——그걸, 마지막까지 잊지 않도록 해라」
「………………」
밖으로 나온다.
광장에서는 토오사카와 이리야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리야는 추운 듯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고, 토오사카는 불만 있는 드읏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늦어. 키레랑 무슨 얘기 하고 있었던 거야, 시로」
「아니, 뭐라니 평소 하는 빈정거리는 소리 들었는데———」
그것보다, 아까부터 미묘하게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 일단 물어봐야 하는 걸까?
……토오사카.
너, 나를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 않냐……?
「……흥. 뭐어 좋아, 시간도 없으니 번거로운 건 그만둬 줄게.
사태는 심각하고, 따로따로 해도 승산은 낮으니. 화가 치밀지만, 어제 일은 없었던 걸로 해 줄 테니까 감사해」
잘난 듯이 가슴을 펴면서, 더 잘난 듯이 함부로 말하는 토오사카.
……에에. 굉장히 알기 힘들지만, 즉, 토오사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하면.
「토오사카. 그건, 즉」
「그래, 협력해 줘도 상관없다는 거야!
애초에 말야, 너 혼자면 마음 놓을 수 없잖아.
조켄을 쓰러뜨린다는 목적은 같으니, 그 때까지 손을 잡아줘도 상관없다는 거지!」
욱, 하고 불만 있어 보이는 시선으로 잇따라 쏘아붙인다.
「—————」
쾅, 하고 머리를 해머로 두들겨 맞은 느낌.
갑작스러운 요청은, 더할 나위 없을 정도의 행운이었다.
「으——응, 고마워, 은혜는 갚을게, 토오사카!
네가 있어 준다면 더한 도움은 없어……!」
토오사카의 손을 잡고, 붕붕 흔든다.
정말로 곤란하다.
자기도 들떠 있다고 알고 있는데도, 그래도 기쁜 마음을 완전히 억누를 수가 없다.
「잠까, 알았어, 감사는 됐으니까 잠깐 타임……!」
다다다, 황급히 후퇴하는 토오사카.
……그리고.
어째서인지, 토오사카는 내 왼팔을 빤히 본다.
「……그 전에 하나 묻는데. 너, 그 팔이 누구 건지 알고 있지」
「?」
그거야 당연하지, 하며 끄덕인다.
토오사카는 그걸 듣고, 흐읍, 하고 깊게 심호흡한 뒤.
「그럼 시로, 지금부터 너는 내 서번트야. 내 서번트 덕에 살아났으니까, 그 정도 당연하지」
라고, 딱 잘라 터무니 없는 소릴 했다.
「뭐———」
「———에 ?」
조금, 상당히, 의미를 알 수 없다.
토오사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싶어하는지 생각하자, 라며 기지를 발휘한다.
「무, 무슨 소리 하고 있는 거야, 너……! 그런 걸로 소유권이 있다고 말을 꺼내다니 바보 같은 거에도 정도가 있어!」
음. 이리야는 때로 정상적인 소리를 해 준다.
「애초에 린의 주장은 요점이 빗나갔어. 처음부터 시로는 내 거니까, 린한테 줄 수 있을 리 없잖아!」
……과연.
태클을 거는 포인트가 이미 어긋나 있었던 거군.
「음. 너야말로 큰소리 치잖아. 설마 한 번 봐 줬으니까 시로는 자기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렇다면 나도 마찬가지야.
학교에서 딱 만났을 때 같은 때는 정말로 열 받아서, 어떻게 해 줄까 하고 날뛰기 직전이었으니까」
「그런 건 린이 어른스럽지 못할 뿐이야. 나는 매일 봐 주고 있었으니까, 시로의 목숨은 당연히 내 거지.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나니까, 관계 없는 린은 물러나 있어」
「관계 없다구……!? 얕보지 말아줘, 관계 없는데 이렇게까지 관여하게 된다는 거야……!
아쳐 녀석이 부탁한다고 했으니까, 책임 지고 살아남게 할 거야!」
삐걱삐걱, 삐걱대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을 정도로 노려보는 두 사람.
「…………」
미간에 주름을 지으면서, 입 다물고 결판이 나는 걸 기다린다.
……뭐어.
어느 쪽이 이기든, 머리 아픈 결과가 될 건 변함없지만.
「「그래서, 결국 어느 쪽이야!?」」
말다툼으로는 결판이 안 난다고 판단했는지, 둘은 마지막 선택을 이쪽으로 돌렸다.
「어느 쪽이냐니, 뭐가」
「그러니까, 어느 쪽 서번트냐는 거야. 시로의 대답을 아직 안 들었으니, 여기서 확실히 해 두는 편이 좋잖아」
「그래. 시로가 싫어하고 있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린한테는 확실히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아.
자, 말해줘, 시로. 시로느은, 내 거가 되는 게 좋은 거지?」
「………………」
그런 거 생각할 필요도 없다.
명령권이 누구에게 있느냐 라고 하면
「——에에, 이리야 쪽일까」
머리에 떠오른 이름을 말한다.
「응응! 시로는 행운아?!」
덥썩, 기세 좋게 이쪽에 매달리는 이리야.
그 좋아하는 모습은 오빠로서 무조건적으로 기쁘지만,
이렇게, 장난 아닐 정도로 화내고 있는 토오사카로 기쁨도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아니 오히려 마이너스로 기울고 있는 듯한.
「……흥. 어린애 비위 맞추다니, 꽤나 부지런하네, 에미야 군은, 뭐야, 혹시 작은 애가 좋다든가, 그런 취향?」
아우……일부러 불쾌해지라고『에미야 군』을 강조하는 토오사카.
그 눈이 에에, 아무리 봐도 사회적 약자를 비난하는 듯 해서 위가 아프다.
「흐흐?응이다, 꼴사나워 린. 채였다고 해서 화풀이라니, 레이디에게 있을 수 없는 행실이야.
그런 꼴이니까아, 린은 시로가 싫어하는 거에요오」
「윽……!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이 조숙꼬마……!
나는 사회 일반적인 상식을 말했을 뿐이고, 뭣보다, 누가, 누구한테 채였다는 거야……!」
쿠아, 하고 울부짖는 토오사카.
이리야는 꺅꺅 웃으면서, 더욱 나에게 달라붙는다.
「봐아, 린은 무섭지, 시로?
하지만 안심해, 린이 무슨 짓 하면, 이제부터는 내가 지켜줄 테니까!」
활짝, 최상의 웃는 얼굴로 매달려 오는 이리야.
그건 기쁘다.
아까보다 200% 업으로 기쁘지만,
……저 녀석의 시선이, 이미 변명의 여지를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걸 어떻게든 해 줘.
「뭐야. 뭔가 불만 있으면 말해」
「별로. 에미야 군이 어떤 취향이든 나한테는 관계 없는걸. 불만은 있지만 말로는 안 하겠어.
———그것보다, 어째서 그쪽이야」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허나, 하지만.
「아니. 어째서라니……어째서지?」
직감으로 대답했다고 할까, 자신도 이리야를 고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어이없어. 뭐야, 정말로 그쪽 취향인 거야, 너?」
「그, 그럴 리가 있냐 바보?! 아아, 아까 그건 왠지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말했을 따름이라고 할까,
나는 이리야의 보호자가 됐으니까 이리야를 택하는 건 당연하지, 불만 있냐……!」
아우, 내가 한 소리지만 엉망진창인 논리전개.
「응! 시로는 내 서번트지?!」
토오사카는 어이없어하지, 이리야는 여기저기 뛰며 돌아다니지 해서 대혼란이다.
「…………핀치에 몰려서 뻔뻔스러워졌네. 뭐어, 그렇게까지 말하면 인정해줄 수도 있지만, 사쿠라도 고생이네」
「—————」
신경 쓰인다.
뭘 인정하려 하고 있는 건지, 그 부분이 굉장히 신경 쓰인다구, 토오사카.
「하지만 잊지 마. 비록 쓰지 않아도, 시로의 팔은 내 팔이야.
——너에겐 아쳐의 역할을 대신할 의무가 있어. 그 몸은, 이제 너 혼자의 것이 아냐」
「—————」
그건, 그 말이 맞다.
토오사카는 아쳐를 잃고, 아쳐의 팔로 나는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나는, 없어져버린 그 녀석 대신에 토오사카를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 그렇지. 서번트 운운은 내버려 두더라도, 이후의 방침은 토오사카에게 일임할게.
내 생각으론 한계가 있으니, 토오사카가 지혜를 내 준다면 그 쪽이 확실해」
「그런 거야. 내가 생각하는 역할이고, 시로는 실행하는 역할. 우리들은 운명공동체니까, 이후엔 야무지게 일해줘야 돼」
그렇다.
경위는 어떻든, 내 왼팔은 아쳐에 의해 보충됐다.
그 아쳐가 토오사카와 계약한 채 사라졌다면, 그 녀석이 다하지 못했던 약속을, 내가 대신 이어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 일단 여기서 작별이네. 집에 돌아가서 짐을 가지고 올 테니까, 시로는 먼저 가 있어」
「……? 짐을 가지고 온다니, 혹시 토오사카, 우리 집에 올 생각이야?」
「당연하지. 이제부터 공동전선을 칠 거니까, 같이 안 있고 어쩌자는 거야.
우리 집은 이리야가 싫어하고, 그쪽에는 사쿠라도 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본거지는 네 집이잖아」
「아. 그래, 듣고 보면 그렇구나」
「……정말. 익숙해졌나 했더니 왠지 얼빠졌다니까. 약간 선택 미스한 걸까?」
야단스럽게 한숨을 쉬면서, 토오사카는 반대편 비탈길로 향한다.
「……? 이리야, 우리 집은 이쪽이야? 어째서 토오사카한테 따라가는 거야?」
「응, 좀 그럴 일이 있어. 린이 도와줬으면 한다고 하니까 도와줄 거야. 끝나면 바로 갈 테니까, 시로는 먼저 돌아가 있어」
「?」
돕다니, 이리야가 토오사카를……?
「토오사카, 정말이야?」
「정말이야. 상황이 상황이니까, 이쪽도 비밀병기 하나 둘은 필요하잖아.
나 혼자로는 열리지 않는 뚜껑도, 아인츠베른의 마술사가 함께라면 열릴지도 몰라.
……하지만, 가능하면 찾아내고 싶지 않아.
토오사카의 유산, 대사부가 남긴 선물이 상상한 물건 그대로라면, 나 혼자선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까」
「그럼, 나도 갈게. 토오사카의 스승이 남긴 유산 따위에 흥미는 없지만,
키슈아.젤.슈바인오그가 썼었던 보물상자는 예쁠 것 같고」
빙글, 스커트를 휘날리며 이리야는 달려간다.
「………키슈아. 젤. 슈바인오그?」
하아, 하며 머리를 갸웃한다.
들은 적이 없는 명칭인데, 남 못지 않은 마술사에겐 유명한 단어일까, 지금 그거.
손님은 떠났다.
예배당은 이전의 정숙으로 돌아가고, 신부는 그저 홀로 우상을 올려다본다.
「———되는 거냐, 성배를 놔 줘도」
그 목소리는 등뒤에서.
지금까지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금발 청년은 즐기는 듯이 신부에게 묻는다.
「상관없다. 처음부터 집착이 있었던 게 아니지. 성배가 그들에게 향한다면 말리지는 않아」
「그랬었지. 처음부터 나에게 소망은 없다———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성배를 억지로 머물게 하는 건 도리에 안 맞지」
큭큭 청년은 웃는다.
신부의 말.
소망은 없다, 라고 고한 말을 놀리듯이.
「—————」
물론, 그건 거짓이 아니다.
금발 청년이 이해할 수 없을 뿐이고, 본디 이 남자에게 소망 따위 없는 것이다.
성배의 힘 따위, 사실, 코토미네 키레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는 것은, 그저 철저한 “추구”뿐.
성배는 자신의 소망에 그저 응하는 것.
자신에게 생겨난 의문에, 자신이 긍정하는 답밖에 낳지 않는 소망을 이루는 장치다.
그러한 “자신이 원한 답” 따위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코토미네. 거듭 묻지만, 정말로 성배에 흥미는 없다는 건가?」
「소원을 들어주는 장치에 볼일은 없다. 그건 너도 역시 마찬가지잖나, 길가메쉬.
네 목적도 내 목적도, 기실 자신의 소원이 아니지. 단지 그렇게 하는 쪽이 재미있으니까, 라는 쾌락추구일 뿐이다.
그런 것은 식사와 마찬가지지. 소원이라는 것은 자신을 이루는 것.
허나 스스로 소원을 이루어서야, 인간은 애쓰는 보람이 없지」
신부는 우상을 계속해서 올려다본다.
———그 저편.
이미 10년 이상이나 과거가 된, 아직 소망인지 하는 것을 가지고 있었던 시대를.
남자는 1967년, 부친이 순례 중에 얻은 아이였다.
키레라는 이름은 기원하는 말이라고 한다.
맑고 아름답게 되어라, 라고 빌며 부친은 아이에게 이름 붙였다.
아이는 그 기원대로 성장해서, 어려서 도덕과 양식을 가지고, 조숙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견식이 깊었다.
아버지는 좋은 후계자를 얻었다고 기뻐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기쁨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들이 뛰어난 것은, 부모로서 기뻐할 일이다. 그래서 이 남자는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거겠지.
——그렇게 이해하고, 소년은 아버지의 이상대로 성장해 간다.
거기에 의문은 없었다.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과, 아버지의 기대에 응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키레라고 이름 지어진 소년은 건전하게 성장해 간다.
……단 한 점.
아버지가 말하는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그것만은 이해할 수 없다고 머리를 갸웃하면서.
——그 어긋남을 깨달은 것은, 어느 날 아침이었다.
눈이 뜨여서 몸을 일으키고, 얼굴을 들었을 때에 깨달았다.
어째서 그 때 알고 말았는지,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어째서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건가 고민해야겠지.
어쨌든, 그는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버지는 아름다워지라고 기원하며, 키레라고 하는 이름을 붙였다.
그것이 주욱 의문이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
그것을———소년은, 단 한 번도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저 그것에 지나지 않는 사연이다.
그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비가 아니라 나방이며,
장미가 아니라 독초며,
선이 아니라 악이었다.
남들 정도로 양식을 가지고, 도덕을 믿고, 선인 것이 올바르다고 이해하고 있으면서.
소년은, 그 정반대에 속한 것밖에, 선천적으로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그 고뇌는, 누가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키레 본인마저, 그것이 고뇌인지 어떤지조차 판단이 되지 않았다.
다만, 노력은 했다.
맑고 아름답게 되라고, 처음부터 없었던 마음을 계속 추구했다.
피부를 깎고, 살을 찢고, 뼈를 떼어내.
마음 속에 없다면, 몸 어딘가에 들어갈 곳이 있을 거라고 찾은 적도 있다.
아버지는 십여 년을 들여서, 가시밭길을 걸으며 성지를 순례했다.
새긴 걸음으로 말하자면, 그 거리는 달에조차 닿겠지.
육체적인 고통을 원해서가 아니다. 애초에, 신도에게 중요한 것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정신적 고행이다.
그 공덕 속, 소년은 식사를 끊었다.
자신이 타고난 죄인이라면, 그 정도 벌이 없으면 세계와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그가 믿었던 도덕이 가르친 것이다.
그리고 더욱 10년.
계속해서 찾았던 마음은 얻지 못하고, 대신 얻은 것은 결론이었다.
별것 아니다.
요컨대, 그에겐 선천적으로 “보통 사람의 행복실감”이 없었을 뿐이다.
사람이 행복을 실감하는, 좋다고 여겨지는 정(正)의 것.
박애, 신뢰, 영광, 안전.
그러한 것에 기쁨을 찾아내지 못하는, 선천적으로 결함을 가진 자였을 뿐.
소년이 “즐겁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의 괴로움뿐이다.
타인에 의한 살해, 타인에 의한 애증, 타인이 가지는 전락.
그런 부(負)의 것에서밖에, 소년은 “행복”을 실감할 수 없었다.
……그에게 불행이었던 것은, 그런 사고회로면서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도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릴 무렵, 절대로 자신이 상식(세계)과 맞물리지 않는다고 깨달은 소년은, 모든 마음을 기울여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결함이 있는 자인 자신을 포기하고, 자기 나름의 이상쾌락으로 치우치지 않고.
보통 사람과 같은 것으로 행복을 얻지 못하는 자신을, 남들 정도로 되돌려, 어떻게든 구하려고 한 것이다.
그 길이 신앙이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신부로서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신은 모든 것을 사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신 같은 “선천적으로 가지지 못한 자”도 구원하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허나, 결과는 무참했다.
신의 가르침을 지키고, 규율에 따라, 소박하게 살긴 했지만, 그에겐 “타인의 괴로움”보다 더한 기쁨을 찾아낼 수 없었다.
배덕을 금하는 교회의 가르침을 굳게 믿고서도, 그에겐 배덕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거기에 괴로움은 없었다.
처음부터 없는 것을 찾은 것이다.
손에 넣고 있었던 것을 잃은 것이 아니니, 한탄할 이유 따위 있을 수 없다.
성인이 되어, 신부가 된 남자를 따라다닌 것은, “왜” 라는 의문뿐이다.
그렇다——모든 인생의 기로에서.
범죄에 의한 열락.
죄를 범하고, 그 배덕에 취하는 것을 통해 이상자인 자신을 즐긴다면 이해한다.
악덕에 의한 부.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을 계략에 빠뜨리고, 그 이익에 의해 더한 부를 얻으려고 한다면 도리에 맞는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그 “선에서 악으로 변한다” 라는 선택조차 가지지 못한다, 라는 것은 어인 일인가.
처음부터 규격 밖의 자로서 생을 받아, 세계로부터 단절된 채 죽음에 이르는 것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부서진 것, 세계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전제로서 태어난 것이 아닌가.
양식의 이야기.
도덕의 풀이.
정의의 심판.
그것들이 전부, 악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인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왜, 그런 것이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그렇다.
처음부터 결함이 있다면, 애초에 태어나지 않으면 된다.
세계는 악을 미워하고, 잘못을 배제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바라지 않은 것”이 태어나,
그저 죽기 위해서, 그저 미움 받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있다.
———남자는, 그 죄의 소재를 계속해서 물었다.
오랜 고뇌, 맹목적 신앙 끝에 얻은 것은 구원이 아니다.
그저, 왜, 라는.
그것은 괴로움이 아니라 순수한 의문이며, 무언가에 대한, 내리칠 길 없는 분노였다.
「그럼, 어째서 마스터 따위가 됐나? 소망이 없다면, 성배 따위 필요 없을 텐데」
「—————」
청년의 물음에 의식을 되돌린다.
신부——코토미네 키레는, 확실히, 라며 자조하는 듯이 끄덕였다.
「성배는 필요 없었다. 그저, 그 안에 든 것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지.
10년 전 성배를 구한 것도, 성배가 존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성배가 무엇이든, 태어나려고 하는 것을 축복한다. 그것이 내 일이니까 말이지」
「흥. 그건, 태어나는 것에 조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말인가?」
「……물론이지. 저번 성배전쟁에서조차, 나는 성배에도 그 안에 든 것에도 관심은 없었다.
그 때 있었던 것은, 나와 정반대인 남자에 대한 불쾌감뿐이었지」
그러나, 라고 신부는 생각한다.
타인의 괴로움에서밖에 기쁨을 찾아내지 못했던 코토미네 키레는, 이번 결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마토 조켄의 암약.
태어나고 있는 또 다른 성배.
“이 세상 모든 악”이라는, 사람들이 낳았으면서, 사람들이 바라지 않았던 누군가.
혹시, 정말로 그런 것을 수태한다면,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선악의 소재. 껍질에 채워 넣어졌으면서, 부화하지 못했던 것」
성배로 답은 낼 수 없다.
소원을 이루는 장치는 소유자의 소망을 현실화하는 것.
따라서, 소망이 없는 자가 들어봐야 손에 들어오는 하늘의 계시 따위 없다.
그러나———
「답을 내는 것이 아니라. 답을 낼 수 있는 것을, 성배로부터 낳는다고 하면 어떻게 되지」
「뭐라고……?」
청년의 눈이 가늘어진다.
신부는, 우상 앞에서 웃고 있었다.
「————코토미네」
그 웃음은 죽어가는 여자가 띄우는 것이다.
모든 것에 무관심한 이 남자가, 설마 그런 표정을 지을 줄이야.
「……답은 가깝다. 만약, 이 의문이 신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상을 올려다보는 눈은 웃고 있지는 않다.
신부는, 땅에 떨어진 세라핌처럼,
「——신의 앞에서.
이 모든 마음을 기울여, 내 주마저 물음을 던져 죽이리———」
저주를 담은 눈으로, 높고 먼 하늘을 봤다.
비탈길을 올라간다.
도시에는 활기가 없다.
아직 8시나 9시 근처일 텐데, 인기척도 없거니와, 사람이 살고 있는 열기조차도 사라진 상태다.
「———, 윽———」
무의식 중에, 발을 멈추고 담에 기대고 있었다.
왼팔이 뜨겁다.
혼자가 돼서 긴장이 풀렸는지,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하고 나서 왼팔이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윽———그야, 그렇지. 다른 데 팔을 억지로 붙이고 있으니까, 아프지 않을 리가 없지」
……호흡이 좀처럼 정돈되지 않는다.
걸을 때마다 왼팔은 열을 띠어, 조금씩 온도를 올려간다.
그것이 평상시 체온을 크게 일탈한 순간, 푹, 하고 어깻죽지로부터 가슴에 아픔이 꽂힌다.
「아?……아픈 건 팔이 아니라 이쪽인 건가」
담에 등을 기대고, 하아, 하고 크게 심호흡을 한다.
……아픔이 오는 시스템이 어떤 것인지는 대강 이해했다.
요컨대 냉각하고 있는 거다.
무슨 이유인지, 왼팔은 움직일 때마다 열을 띠어간다.
그것이 왼팔 안에 쌓이고 쌓여서 꽉 찼을 때, 다 처리하지 못하는 열을 몸 쪽으로 놓친다.
「윽———」
이 아픔은, 열이 몸을 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열의 삽입감은 예리해서, 가열이라고 하기보다는 참격에 가깝다.
이 붉은 현기증이 일어날 때마다, 어깨로부터 긴 날붙이가 꽂혀, 몸 안을 으득으득 휘저어진다고 착각한다.
「으———하아, 하———, 윽……!」
……솔직히, 그렇게 몇 번이고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버서커에게 배가 통째로 뜯겨나갔던 적도, 라이더에게 늑골이 부서진 적도 있다.
그런 대미지를 경험하고서도, 자신의 팔에 자신의 몸이 “꿰뚫리는” 것은 오한이 들었다.
「괜찮아, 진정해———체온을 올리지 않으면, 팔도 얌전해져———」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토오사카, 이리야와 헤어지고 나서 벌써 20분.
본래 같으면 진작에 에미야 저택에 도착했겠지만, 이렇게 땀투성이가 된 얼굴을 사쿠라에게 보여줄 수 있을 리는 없다.
……왼팔의 이상은 나 한 사람 안에 담아둬야 하는 것이다.
「——제길. 코토미네 녀석, 뭐가 실생활에 지장은 없다, 야. 이 녀석에 익숙해지는 건, 보통 방법으론 안 된다구——」
왼쪽 어깨에 손을 대고, 붉은 천으로 둘둘 말린 팔을 누른다.
왼팔은 꿈쩍도 하지 않고, 쇠처럼 단단하다.
……자.
땀도 말랐고 호흡도 정돈됐다.
시간도 늦었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건강한 모습으로, 사쿠라에게 다녀왔다고 말해야지———
「다녀왔어?」
심호흡을 한 뒤, 크게 소리를 내며 현관에 들어간다.
「……아……다녀오셨어요, 선, 배」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지, 현관에는 사쿠라의 모습이 있었다.
「? 뭐야, 힘이 없네. 마중 나와준 건 기쁘지만, 그런 얼굴이어서야 순수하게 좋아할 수 없다구」
신발을 벗고 복도에 올라간다.
우선, 지금은 몸을 쉬게 하고 싶다.
사쿠라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하는 건 거실에 돌아가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나서 하자.
「……아, 그렇게 할 수도 없나. 차 마시기 전에 사정을 얘기해 둬야지」
곧 토오사카가 온다.
그 전에 사건의 전말을 설명해두지 않으면, 사쿠라가 토오사카를 경계하고 만다.
「사쿠라, 오늘 일 말인데」
「……선배. 아무 말도, 안 하시는 건가요」
……그러자.
더듬더듬거리는 말투로, 사쿠라는 그런 말을 했다.
「아무 말도 라니, 뭐가」
「……………………」
사쿠라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그 시선은 내 왼팔에 향해져 있었다.
「아아, 이거 말이야. 그렇지, 겉보기가 이래서야 보통 놀라지」
여하튼 붕대라고도 할 수 없는 두꺼운 천으로 둘둘 말려있다. 사정을 모르는 사쿠라라도, 첫눈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깨닫지.
「응, 좀 다쳤어. 하지만 문제 없이 움직이고,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사실은 이런 천도 그저 방해될 뿐이지만, 코토미네 녀석이 풀지 말라고 시끄러워서 말야.
뭐어, 치료 받은 체면도 있으니, 얌전히 하는 말은 들어둘 건데」
통, 왼팔을 두들겨서 무사함을 알린다.
……그런데도, 사쿠라는 더더욱 입을 다물어버렸다.
「사쿠라……? 아니, 정말로 괜찮다구? 이런 건 야단을 부렸을 뿐이고, 그냥 찰과상이라니까.
이런 거 금방 나을 테니, 사쿠라가 신경 쓸만한 일이——」
「차, 찰과상일 리가 없잖아요……! 선배 팔, 이미 없어졌다구요!? 그런데도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건가요……!
아무리 저라고 해도, 그런 뻔히 보이는 거짓말 같은 거에 안 속아요!
그렇지 않으면 선배는, 저한테 이야기해봐야 헛수고니까 말 안 하는 건가요……!?」
「—————」
그건, 불 같은 반발이었다.
……자신의 바보 같은 생각에 말을 잃는다.
오늘 하루, 혼자 이 저택에서 계속 기다렸던 사쿠라의 마음을, 나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사쿠라」
「아……죄, 죄송해요 선배. 비, 비난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저, 저는 그저, 선배가 너무 무리를 해서, 선배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주지 않는 게, 저」
「——아냐. 아니, 사쿠라 말이 맞지만 아냐.
나, 소리 질러서 화난 게 아냐. ……에, 진지하게 화난 사쿠라를 본 건 처음이니까, 놀라서, 반성했어」
「에……반성했다니, 선배, 가……?」
「응. 확실히 허세를 부리는 건 좋지 않아. 그게 사쿠라라면 더더욱 그렇지.
……틀림없이, 나는 사쿠라에게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허세를 부려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어.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쪽이 꼴사납지. 사쿠라가 화내는 것도 당연해」
「아……아뇨, 선배가 꼴사납다니, 절대, 그렇지 않은, 데요」
아니, 꼴사납다.
……진짜, 뭐가 사쿠라를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말 안 하고 있자, 냐.
나는 단지, 사쿠라에게 허영을 부려서 강한 척 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응. 미안 사쿠라. 나, 져 버렸어.
팔은 어떻게든 됐지만, 사쿠라의 도움이 되지는 못했어」
「아——그, 그렇지 않아요……! 선배는 당당했어요! 저, 저는 보지 못했지만, 굉장히 멋있었어요!」
「으……아니, 이게 지인짜?로 한심해서, 그런 말을 하면 괴로워.
제대로 이리야도 구해내지 못했고, 그저 도망쳐 돌아올 뿐이었으니」
「……아뇨. 그래도, 약속한 대로 돌아와줬어요. 선배가 약속을 지켜줘서, 저는 굉장히 기뻐요」
「아———응. 그건, 다행이야」
긁적긁적 머리를 긁는다.
……뭐어, 그래도.
사쿠라가 그렇게 말해주는 건 멋쩍지만 기쁘다고 할까 뭐라고 할까.
「……그렇지. 일단, 살아있는 것만 가지고 합격점이지」
「———네. 선배는 멋있어요. 저 다시 반해버렸어요」
「—————윽」
어, 어쩐지 굉장히 기분이 좋아졌는지, 사쿠라는 엄청난 말을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한다.
「아…………으」
그런 말을 들으면, 이쪽은 뭐라고 답하면 좋을지 몰라서, 그만,
「에에, 이런 때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은 걸까, 토오사카」
「글쎄? 내 의견으론, 너무 현관 앞에서 시시덕거리지 말아줬으면 한다는 것 정도야」
바로 뒤에 있는 토오사카에게 말을 돌려버렸다.
「「———에?」」
엉겁결에 목소리가 하모니를 이룬다.
나와 사쿠라는 파밧 동시에 반 발자국 후퇴하고,
「토, 토오사카 언제부터 거기에———!?」
「토오사카 선배, 어째서 이 집에 있는 건가요……!?」
또 같은 리액션을 하고 말았다.
「언제부터 거기에, 라니. 이미 얘기가 됐나 했더니 둘이서 사이 좋게 싸우고 있고. 정말,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알아, 시로?」
턱, 현관 입구에 커다란 보스턴 백을 놓는 토오사카.
그 뒤에는
묘한 긴박감을 띠고 입을 다문 이리야의 모습도 있었다.
「토, 토오사카 선배. 어젯밤에 하던 걸 계속할 거라면, 저는 상관없어요.
선배가 지켜주는 이상, 저도 마토의 마술사로서, 온 힘을 다해 당신과 싸울 거에요」
사쿠라는 꾹 손을 쥐고, 토오사카와 서로 노려본다.
……아니, 서로 노려본다고 하기보다는,
뱀이 개구리를 노려보고 있고 개구리는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라는 분위기지만.
「……후우. 그것도 아직 안 들었구나.
잘 들어, 사쿠라. 일단 네 처치는 보류할 거야. 내 최우선사항은 조켄을 쓰러뜨리는 것. 너와 결판을 내는 건 그 뒤야.
……뭐, 조켄만 쓰러뜨려버리면 너랑 싸울 이유도 없어지니까, 잘 되면 조켄을 쓰러뜨리는 거 하나로 상황은 끝나는 거지만」
「에———그럼, 토오사카 선배는」
「너——아니, 시로와 협력해서 조켄 퇴치를 한다는 거지. 그래서, 그렇게 되면 떨어져서 지내는 건 아깝잖아?
그래서 오늘밤부터 여기서 생활하며, 시로를 단련시키기로 했어.
단시간에 전력이 돼 주기 위해서는 스파르타밖에 없으니 말야」
「그런 사정이니까 당분간 시로를 빌리겠어. 과감한 조치지만 문제 없지, 둘 다」
「「뭐———」」
태연하게, 나조차 들은 적이 없는 스케줄을 입에 올리는 토오사카 린.
「자, 잠깐 토오사카. 그런 소리 갑자기———」
「그, 그런 거 안 돼욧……!
언……아니, 토오사카 선배는 무슨 권리가 있어서 그런 소리 하는 건가욧!」
「…………해도, 말야. 에, 마음의 준비라든가, 그런 거 있잖냐」
더듬더듬 저항한다.
물론, 내 의견 같은 건 사쿠라의 목소리와 토오사카의 일별로 깨끗이 각하됐다.
「어머, 권리만 있으면 돼? 그럼 더더욱 문제 없네. 그가 살아있는 건 내 덕분인걸.
그 빚을 갚을 때까지, 시로는 내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어.
살 곳을 비워달라고 하면 비워줄 테고, 세 끼 식사 빠짐없이 제공하라고 하면 해 줄 거지이?」
「—————」
토오사카. 그 설명은, 확실히 오해를 부른다고 생각하는데.
「그럴 수가……저, 정말인가요, 선배……?」
「——그래. 토오사카의 발언에는 여기저기 반론하고 싶지만, 하는 말은 사실이야」
「———」
「거기다 동료는 많은 편이 좋잖아. 조켄이 사쿠라를 노리고 있는 건 확실해.
토오사카가 있어 준다면, 확실하게 사쿠라를 지킬 수 있어」
……거기다, 토오사카는 사쿠라의 언니고.
가능하면 같이 있으며, 싸우는 상황 따위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알았어요. 선배가 그렇다면, 납득할게요」
시선을 돌리고 사쿠라는 말한다.
「결정됐네. 그럼 들어갈게.
자 시로, 객실로 안내해. 전에 들어왔을 때, 별채의 객실을 찍어 놨으니까. 아, 이리야는 어디가 좋아?」
「별로 어디라도 상관없지만, 저 여자 근처는 싫어」
「그래? 그럼 이리야는 다다미방이네」
이미 애칭으로 부를 정도로 친밀해진 건지, 토오사카와 이리야는 스스럼없이 말을 주고받고 있다.
「아, 그래. 사쿠라, 이쪽 애가 이리야.
버서커는 죽어버렸지만, 간신히 이리야만은 구할 수 있었어.
토오사카와 마찬가지로, 이제부터 우리 집에서 맡을 건데 사이 좋게 지내줘」
사쿠라에게 이리야를 소개하면서, 이리야에게도 사쿠라를 소개한다.
「잘 부탁해, 사쿠라. 마키리의 딸이라지만, 경멸은 하지 않아줄게.
일단 시로의 지인인 듯 하니, 특별히 인간 취급해 주겠어」
「……그렇군요. 그럼, 저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행동하겠어요」
「?」
둘의 인사는 그것뿐이었다.
이리야는 토오사카의 뒤를 따라 거실로 걸어간다.
그 등을
「—————」
사쿠라는, 어딘가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녁 식사는 폭풍처럼 지나갔다.
……아아 아니, 폭풍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다.
그건 어느 쪽인가 하면 바람이 멎었다고 할까, 무풍이기에 시간을 느끼지 못하고 눈깜짝할 사이에 어느 샌가 끝나 있었다고 할까.
어쨌든, 무서운 긴장감에 지배된 저녁 식사였던 거다.
「저녁밥은 내가 만들까? 이사 온 뒤에 돌리는 소바 같은 거니까」
토오사카는 그렇게 말하고 저녁밥을 혼자서 했고, 그 맛은 분하지만 참패였으며,
간신히 사쿠라가 자신 있어 하는 양식이라면 호각일지도, 라는 정도였다.
「———토, 토오사카 선배. 요리, 잘하네요」
쇼크로 기력을 잃은 사쿠라는, 그 말을 끝으로 묵묵히 요리를 입으로 가져가고만 있게 됐다.
이쪽은 이쪽대로 토오사카가 직접 한 요리라든가 토오사카와 밥을 먹고 있다든가
사쿠라의 낙담한 모습이라든가 이리야와 사쿠라의 묘한 긴장감이라든가, 많은 것이 신경 쓰여서,
더 이상 움직임은 취할 수 없었다.
결과, 그 정도로 훌륭했던 토오사카의 요리를 맛있다고는 느끼지 못하고,
그저 토오사카 린이 공수 모두 빈틈없는 우등생이라고 뼈저리게 느낀 한 시간이었던 거다.
———그리고.
「그럼, 나는 방 준비가 있으니까 물러날게.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아침에 할 테니까, 오늘 밤은 이제 쉬어」
설거지까지 완벽하게 끝내고, 토오사카는 자리를 뜬다.
「나도 방에 가 있을게. 오늘 숲에 갔던 사람은 전부 피곤하니까, 일찌감치 자지 않으면 몸이 못 버텨」
……저택에 있었던 사쿠라가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이리야는 사쿠라를 보지 않고 그런 소리를 하며 자리를 뜬다.
「……하아. 어쨌다는 거야, 진짜」
어떤 의미로 토오사카는 예상대로지만, 이리야의 태도는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이리야의 사쿠라를 대하는 태도는, 처음 만났을 때의 냉혹한 이리야에 가깝다.
「이리야, 사쿠라와는 첫 대면이면서 어째서 그렇게 시비를 거는 걸까. 역시 아인츠베른과 마키리는 사이가 나쁜 걸까」
코토미네의 이야기로는, 아인츠베른과 마키리, 거기다 토오사카는 성배전쟁을 시작한 마도의 명문이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게 아인츠베른이라고 하니까,
이리야로선 토오사카도 사쿠라도 아랫사람 취급이겠지만.
「……하아. 오해하지 말아줘, 사쿠라. 이리야는 성미가 까다로우니까 저런 소리 하고 있지만,
좀 이야기하면 금방 사이 좋게 될 수 있어.
저 녀석, 단지 사람 낯을 심하게 가릴 뿐……어, 사쿠라?」
사쿠라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꾸벅꾸벅 흔들리는 머리는, 그대로 아무렇게나 뒤로 쓰러지려고 하고——
「사쿠라……!」
어깨를 안아서 사쿠라를 세운다.
「……어라, 선배? 왜 그래요,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고」
……사쿠라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지금 자신이 쓰러질 뻔 했던 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쪽을 마주 바라본다.
「———아니. 별로, 대단한 거 아냐」
사쿠라의 어깨에서 손을 뗀다.
「아……」
그것 때문에 깨닫고 말았는지.
「……죄송해요. 조금 피곤해서, 잠들어 버렸어요」
그런, 자신도 알지도 못했던 걸, 고개 숙이고 사과했다.
「……그래. 어제 오늘 일이고, 사쿠라는 안정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지.
토오사카도 그렇게 말했으니, 오늘은 이제 자자. 무리하게 깨 있을 필요는 없어」
「그, 그러네요, 그럼 그 말대로 할게요. 오늘밤 푹 자면, 틀림없이 내일은 건강해져 있을 테고.
오늘밤은 토오사카 선배한테 대접 받았으니까, 내일 아침은 제가 맡을게요. 선배한테 배운 아침 식사로 보복해 줄 거에요」
장난스럽게 웃고, 사쿠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발걸음은 똑바르다.
여기서 객실까지 따라가는 건 역효과다.
사쿠라가 활기차게 행동하고 있으니, 이쪽은 그걸 믿어줘야지.
「그렇지. 얻어먹는 토오사카의 콧대를 꺾어줘. 사쿠라가 최후의 보루야.
솔직히, 여기서 토오사카한테 한 방 먹여두지 않으면 물러설 데가 없어」
「네, 맡겨주세요. 반드시 원 펀치 먹여 보일 테니까」
「믿음직스러운데. ……응, 그럼 미력하나마, 나도 뭔가 돕게 해 줘.
오늘밤은 빨리 자고, 내일 아침 6시에 부엌에 집합하는 거면 될까?」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선배」
꾸벅, 인사를 하고 툇마루로 떠나가는 사쿠라.
………그리고.
「——저, 선배. 아까 그거, 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등을 돌린 채 돌아보지 않고, 어딘가 긴장한 목소리로 사쿠라는 말했다.
「응. 그저 존 거니까, 토오사카한테 말할 만한 게 아니잖아」
「———네. 안녕히 주무세요, 선배」
……장지가 닫힌다.
사쿠라는 돌아보지 않고 별채로 떠나갔다.
「—————」
말하지 말아 달라, 라는 건 아까 그거겠지.
사쿠라의 몸은, 사쿠라가 생각하고 있는 정도로 회복되지는 않았다.
코토미네는 며칠 버티지 못한다고 했다.
조켄이 사쿠라를 어떻게 다룰지는 차치하고라도, 사쿠라는 그 사실 하나만 가지고 불안정하다.
그렇기에, 사쿠라는 활기차게 행동하려고 하고 있다.
자신은 괜찮다.
괜찮으니까, 이제 우리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을 거라고 주장하는 듯이.
「……언니, 라」
사쿠라가 그렇게 말하는 건, 반드시 나와 단 둘일 때뿐이다.
그것도 사쿠라가 나약해져 있을 때.
……도와줬으면 한다는 마음의 목소리를 다 죽이지 못했을 때, 사쿠라는 토오사카를 “언니”라고 부른다.
그건 복잡한 둘의 성장이 만들어버린, 언니와 동생 틈에 막아서는 벽이다.
그 벽만 부숴버리면, 둘은 평범한 자매로 돌아갈 수 있다.
그건——내가 해 줄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사쿠라의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응. 둘 다 어색해하고 있지만 가망은 있으니」
예기치 못한 이런 상황이 돼 버렸지만, 이건 의외로, 둘의 벽을 부술 좋은 기회인지도 모른다.
「—————, 뜨거」
자기 힘들어서 눈이 뜨였다.
파자마는 땀을 빨아들여서 무겁고, 덮는 이불은 발에 채여서 날아가 있다.
이마를 닦자, 철퍽, 소리가 나며 걸레를 짠 듯이 땀이 나 있었다.
「—————」
……잘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한여름 열대야 같은 더위에 뇌가 더위 먹었는지.
아무리 이성을 짜내도, 지금이 언제고 여기가 어디인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
「—————」
뜰에 나왔다.
어쨌든, 이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 싶었다.
……그 방이 더운 건지, 자신이 몸이 뜨거운 건지.
생각하는 것도 귀찮으니, 오늘밤은 광에서 자자.
거기라면 우선 춥다.
덥든지 뜨겁든지 관계는 없
「큭———, 아———!」
갑작스러운 통각에 꿰뚫려, 지면에 무릎을 꿇었다.
「———, 아, 야아———」
하아하아하고 호흡이 흐트러진 상태로, 잠시 웅크리고 있는다.
……눈이 뜨였다.
열과 아픔의 원흉인 왼팔을 꾸욱 쥔다.
성해포는 감긴 상태 그대로다.
빈틈없이 팔을 구속한 붉은 천.
움직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꽉 조여지면 혈액 순환이 나빠진다.
그래서 문득, 이 천이야말로 왼팔을 아프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의외로, 천을풀면 이전 상태 그대로라든가」
입에 담은 망상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애초에, 자신은 날아간 팔도 이식된 팔도 본 적이 없다.
그 신부의 말을 신용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 녀석에게도 실수는 있을 테고.
사실은 내 팔은 아무렇지도 않아서, 이 천을 풀면, 친숙한 자신의 팔이 있다.
내 팔은 결코 쇠 따위가 아니다.
팔을 움직이지 않게 만들고 있는 건 이 천이고, 이것만 풀어버리면, 틀림없이———
잠깐 무슨생각을 하는거지?나는
「—————후우」
폐에 쌓인 우울을 토해낸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건 있을 수 없다.
자신에게만 좋은 망상을 믿어서 어쩌자는 건가.
이런 모습, 토오사카가 보면 웃어넘기기 전에 진짜로 화낼 것 같다.
「……괜찮아. 그저 팔이 움직이지 않을 뿐이니, 별 것 아냐. 고민할 거면 다른 걸 생각하라구」
문제는 내 팔 같은 것보다 사쿠라 쪽이다.
지금은 건강해 보이지만, 언제 쓰러질지 알 수 없다.
그 전에 조켄을 쓰러뜨리고 성배를 손에 넣는다.
고민할 거라면 그 방법에 대해서 해야 한다.
한쪽 팔로 조켄과 어새신을 쓰러뜨린다.
……아니, 적은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들 앞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이 있다.
「—————」
사정은 알 수 없다.
그 “검은 그림자”가 무엇인지, 세이버가 조켄의 서번트가 됐는지도 알 수 없다.
아는 건, 그녀가 적이 됐다고 하는 것뿐이다.
「………………」
……사실은 알고 있다.
승산 따위 어디에도 없다고.
팔의 둔통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자신도 알 수 없다.
전력차는 압도적이고, 나는 자신조차 확실하지 않다.
이런 상태로, 언제까지 사쿠라를 지킬 수 있을까———
「————!」
발소리를 듣고 몸을 일으킨다.
뒤에 있는 상대……다가온 상대가 누구인지는 돌아보지 않고도 알고 있었다.
검은 옷을 걸친 서번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본래 같으면 지금처럼 발소리는 내지 않을 텐데, 보란 듯이 낸 것은 나에게 신경을 써 줬기 때문이겠지.
「무슨 볼일 있어, 라이더?」
「…………………………」
라이더는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본다.
……음.
전혀 관계 없지만, 라이더는 키가 크다. 그런 걸 이제 와서 깨닫다니, 나도 정상이 아니다.
「——뭐가 우스운 건가요, 시로. 이쪽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요」
「에……? 아아, 지금 그건 아냐. 라이더, 나보다 키가 크잖아? 이미 꽤나 얼굴을 마주했는데, 이제 와서 깨달아서 말야. 나 스스로도 얼빠진 녀석이라고 웃은 거야」
「그런가요. 아까는 괴로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쓸데없는 배려였던 모양이군요」
?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라이더의 목소리는 약간 화내고 있는 듯 했다.
「아, 그것보다 라이더. 오늘 구해준 건 너야?
기억에 없지만, 그 숲에서 교회까지 옮겨다 준 건 라이더였던 듯한 생각이 드는데」
「……그래요. 당신들을 옮긴 건 접니다. 사쿠라는 당신을 지키라고 했어요. 저는 서번트로서, 그녀의 명에 따랐을 뿐이에요」
「——그래. 그건 고마운데, 라이더를 썼다는 건, 사쿠라도 마력을 썼다는 거지.
그럼———
「네. 얼마 남지 않은 사쿠라의 마력은, 더욱 줄어들었다는 겁니다.
오늘처럼 사쿠라가 저를 쓰면, 저는 사쿠라를 다 먹어 치워버리겠죠」
라이더는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사쿠라에 대한 증오도 동정도 없다.
라이더는 서번트로서, 당연한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라이더. 하나 물어봐도 돼?」
「상관없어요. 물을 게 있다면 먼저 물어보세요」
「……그럼 물어볼게. 라이더는, 사쿠라가 령주를 잃으면, 그대로 사쿠라를 죽일 거야?」
령주를 다 쓴 마스터는, 우선 자신의 서번트에게 노림을 받는다.
사쿠라와 라이더에게 신뢰관계가 없는 경우,
라이더는 용서 없이 사쿠라를 죽이고, 그 육체를 재계약까지 먹을 식량으로 삼아 존명한다.
……라이더는 어디까지나 서번트로서 사쿠라를 지키고 있다. 거기에 친애의 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여기서 라이더 본인의 의사를 확실히 들어두고 싶었다.
「—————」
「어때. 너는, 사쿠라를 죽일 거야?」
「네. 사쿠라가 그걸 원한다면, 제 손으로 편하게 해 주려고 생각하고는 있어요.
하지만 시로. 저는, 그녀의 생존을 바라고 있어요」
「 ! ———그럼 라이더는, 령주가 없어져도 사쿠라를 공격하지 않는 거지?」
「령주의 속박은 관계 없습니다. 저는 사쿠라가 마스터인 한, 자신의 의사로 그녀를 지킬 거에요. 저는 그녀가 좋으니까」
「에———정말?」
「네. 의외인가요, 시로. 제가 감정을 가지는 것이」
「아……아니, 미안, 착각하고 있었어. 그렇게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만」
「사과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사쿠라와 제대로 이야기한 적은 없고, 사쿠라도 저에겐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하지만 시로. 서번트는 자신에게 가까운 자에게 불리는 겁니다.
당신이 세이버를 소환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 혼의 모습이 가깝기 때문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와 사쿠라는 같은 자입니다.
본래 다변이 아니니, 대화가 없는 것도 당연하죠. 그런 것이 없어도, 우리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라이더의 목소리에는, 확실히 따뜻한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외견 때문에 그만 박정한 성격을 상상하고 말지만, 라이더, 사실은 굉장히 정숙한 성격인 게 아닐까.
「……그래. 응, 그건 다행이야. 라이더가 사쿠라 편으로 있어줘서, 정말 기뻐」
「그런가요. 그럼 제 차례로군요.
시로. 당신은 사쿠라가 어떤 고통에 견뎌왔는지 몰라요.
사쿠라가 마키리 가에 맡겨지고 나서 지금까지, 무엇에 견뎌왔는지 아나요?」
「———그, 건」
……알 리가 없다.
아니, 코토미네의 입에서 어떤 것이었는지는 이미 들었다.
「……몰라. 그러니, 그걸 입에 담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
……그래.
나도 마술사 나부랭이고, 조켄이 어떤 녀석인지는 알고 있다.
상상을 하는 건 손쉽고, 그건 진실에 가까운 명확함을 가지겠지.
그러나——그건 내가, 손쉽게 “안다” 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겠죠. 사쿠라는 당신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노력해 왔어요
. 그런 당신이 여기서 안다는 둥 말을 했다면, 저는 당신을 죽였을 겁니다」
「……그건, 사쿠라를 위해서?」
「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던 듯 하군요.
당신은 미숙하고 서툴지만,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은 신용하기에 충분해요. 그렇기에, 사쿠라에게 당신은 위안이었던 거겠죠」
「……오랫동안, 그녀 안에는 포기밖에 없었어요. 아픔도 괴로움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나날이었죠.
거기에 변화가 생긴 건 당신과 알게 된 뒤입니다, 시로.
당신은 사쿠라에게 포기 이외의, 잃고 있었던 여러 가지 감정을 되찾게 했어요.
그 중에서 가장 컸던 건 아픔과 괴로움이지만,
그래도 포기할 뿐이었던 그녀에게, 당신은 유일하게 확실한 위안이었던 겁니다」
「………………」
라이더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는 파악할 수 없다.
사쿠라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에 괴로워해 왔는지를 공유할 수 없는 나는, 나를 좋아하게 돼 준 이유조차 알 수 없다.
다만, 마스터인 사쿠라와 감각을 공유하는 라이더의 말은 틀림없는 진실이다.
라이더는 조용히.
마치, 사쿠라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시로. 당신은, 사쿠라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했지만.
사쿠라에게는, 이 2년간이야말로 행복이었어요」
조용한 슬픔과 감사를 담아서 그렇게 말했다.
「제가 묻고 싶었던 건 그것뿐입니다.
사쿠라의 행복은, 당신이 살아서 옆에 있어준다, 라는 것. 그 이외에 그녀가 바라는 것 같은 건 없어요」
라이더는 눈가리개 너머로, 나를 추궁한다.
……그 의미를 알고 있는 건가, 라고.
마토 사쿠라에게는, 에미야 시로가 싸운다고 하는 것 자체가, 그녀의 행복을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런 몸으로 이 이상 뭘 할 생각이냐, 라고 이쪽을 몰아세운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는 왼팔을 꾹 쥔다.
외팔이가 돼도 아직 싸울 수 있다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사쿠라를 구하겠다고 맹세했다.
싸움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쿠라만을 위해서 싸우겠다고 결심하고 말았다.
그러니——여기서 그걸 그만둬버리면, 나는 누구도 아니게 되어 버린다.
「—————」
……침묵이 드리워진다.
라이더는 입을 다물고,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이 없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지.
「…………당신은 사쿠라의 편인가요, 시로.
앞으로, 설령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
라이더의 질문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
에미야 시로는 마토 사쿠라의 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렇다면, 망설임도 없이 끄덕여서 라이더에게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
그렇게 알고 있어도, 확실히 마음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비록,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그 말의 의미가 뭘 가리키고 있는 건지, 마음 어딘가에서 깨닫고 말았으니까.
「……알았습니다. 여기서 무리를 하지 않아도, 답은 머지않아 나오겠죠. 그 때까지 각오를 해 두세요」
어둠에 녹듯이 라이더는 떠났다.
그걸 지켜보고, 의미도 없이 하늘을 우러러봤다.
「————제길」
……그래.
대답할 수 없었던 건, 깨닫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직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검은 그림자.
불안정한 왼팔.
이미 잘라 버렸을 터인, 지금까지의 자신이 목표하고 있었던 이상.
그 모든 것이 고하고 있는 거다.
성배를 손에 넣으면, 다른 어떤 소망도 이루어진다.
그러나——사쿠라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하는 소원만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환상이라고——
사육 상자에서 꿈을 꾼다.
알 껍질.
검은 색 노른자.
사랑의 바다의 기억은 없다.
태반에 태어난다.
라인은 첫 번부터 부재.
분만은 용납되지 않고 길러지며 사랑에 녹는다.
낙태의 기억은 없다.
서서히 산책한다.
흔들흔들하는 머리는 텅 비었고,
확실한 목적 같은 건 표면뿐.
벌벌 떨어서 고고.
바싹 마른 손발은 종이풍선처럼,
데굴데굴 지면을 굴러간다.
둥실둥실 나는 건 제대로 어른이 되고 나서.
붕붕.
붕붕.
붕붕.
「어이.학생 여기서 뭐하고있는거야?」
신경 건드리게 누군가가 다가온다.
「학생?집이어디야? 이러다감기 들어.」
사람이 다가온다.
「학생 전화번호는?부모님은?」
걱정이되는듯 뭇는소리.
고혹한 기억은 없어요.
걱정을끼쳤으니 돌아가죠.
터벅터벅 그사람은 쫓아옵니다.
새돼서 시끄럽게 울리기에,
꾸르륵 배가 소리를 냈습니다.
「—————— ! ! ! ! ? ? ? ?」
「잠———기——, 뭐, ——기?!?」
「히, 히야, ———도망치지 마, 야, 살려?어어어!」
「하, 하, 하, 뭐야, 당신 어디에 가———기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아야, 아야, 싫어, 미미, 미안해, 요, 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 ! ? ? ?」
사육상자의 꿈을 꾼다.
오늘밤.
벌레를 짓이겼다.
첫댓글 길가메시다~ ㅋㅋㅋ
사쿠라 무섭다 ㅇㅅㅇ.. 잘보고갑니다~!
아처 왼팔 갓다줫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