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나라의 만원 버스
전홍구
대한민국은
반도체 칩 위에 태극기를 꽂고
조선소의 불꽃으로 밤바다를 용접하는데
만원 버스 안에서는
예의 한 장면을 찾을 수 없다
젊은 웃음은 넓게 좌석을 차지하고
앞에 노인이 서 있건 말건 다리를 떨고
허리 굽은 어르신은 언제나 자리가 날까
손잡이에 매달려 흔들리는데
휴대전화 속 세상은 만세를 부른다
지하철 객차는
말소리보다 큰 스피커는 떠들썩 시장통
귓속까지 밀고 들어온 타인의 하루가
국가 기밀처럼 울려 퍼지고
침묵은 마스크 속으로 숨는다
우리 공장에서 만든 운동복과 운동화는
바다 건너 세계를 걷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외국 글자 하나를 목에 걸고
개처럼 혀를 내민 브랜드를 자랑처럼 달고
빈 자존심의 지퍼만 올린다
거리마다 영어 간판이 피어나
한글은 골목 끝 국밥집 처마 밑으로 밀려나고
세종대왕의 혀끝에서는
훈민정음 몇 자가 먼지처럼 흩날리며
바람도“오케이”하며 손 흔들며 지나간다
여의도의 하얀 집 복도에 외래 문자 빛나고
양복보다 가벼운 말들이 걸어 다니고
국민의 밥숟가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구겨진 셔츠 아닌 외제 상표 느러트린 채
정치보다 폼 잡고 사진 찍는 법을 더 배운다
그래도 이상하다
이 나라는 아직 무너지지 않는다
새벽 청소부의 빗자루 끝에서
컵라면으로 끼니 잇는 경비원의 눈빛에서
꺼져가는 양심 몇 점이 별처럼 버티고 빛난다
어쩌면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라는 간판보다
버스에서 먼저 일어나는 사람으로 완성되는 나라
반도체보다 작은 예의 하나하나가
무너진 마음의 회로를 다시 켜는 나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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