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증유의 기후위기, 그 속에서 인간다움은 어떻게 가능한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초대형 산불이 호주 전역을 덮친 때, 4남매의 장녀이자 성공한 건축가 애나는 어머니 프랜시가 위중하다는 연락에 태즈메이니아 섬의 고향 호바트로 돌아온다. 고향에 머물며 어머니를 보살피던 둘째 토미는 무명 화가이자 말더듬이로, 늘 주눅 들어 있고 형제들에게 무시 당하지만 어머니에게 누구보다 헌신적인 인물이다. 그런가 하면 막내 터조는 벤처사업가로 부와 권력을 거머쥔 인물이며, 어머니를 놓아드리자고 소심하게 주장하는 토미와 갈피를 못 잡는 애나를 설득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머니의 연명치료를 밀어붙인다.
프랜시는 자신의 의사를 묵살당한 채 하루하루 생명을 유지하는 치료를 받으면서 병실 창밖에 펼쳐지는 백일몽, 외눈박이 CIA 요원과 마녀가 아른거리는 환상에 빠져든다. 한편 애나에게도 괴이한 일이 연달아 벌어진다. 신체 일부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손가락 하나가 사라지고 차례로 무릎, 가슴 한쪽이 차례로 사라지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러한 현상을 알아채지 못한다. 자신의 방에서 게임에만 몰두하는 아들 거스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 애나는 경악하지만 이 모든 불안과 불편함을 애써 외면하며 SNS에만 집착한다.
대멸종을 예감케 하는 자연 현상, 그리고 그와 정반대로 평온한 일상 사이의 불균형 위에 위태로이 서 있는 애나에게는 SNS 밖 세상에서 실감할 수 있는 희망이 간절하다. 애나는 멸종 직전에 처한 호주의 토종새 노랑배도라지앵무의 존재를 우연히 알게 된다. 그러면서 노랑배도라지앵무가 태즈메이니아에 몇마리나 돌아왔는지 살피는 일에 자원하게 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어머니 프랜시의 생과 애나 자신의 삶은 이제 점입가경의 국면으로 치닫는다.
소설은 생과 사를 오가면서 지속적으로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어머니 프랜시의 모습을 핍진하게 그려낸다. 그러한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애나 또한 고뇌한다. “어머님이 무엇을 바라시는지 아시나요?”라고 묻는 의료진 앞에서 어찌해야 할지 “그들은 전혀 몰랐다”(48면). 그러나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어머니를 연명시키자는 토미의 주장에 편승해 애나는 근본적인 고민으로부터 눈을 돌린다. “이런 감정들이 도망치고자 하는 욕망과 혼란스럽게 뒤섞였을 때, 애나는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이 사실은 두려움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나쁜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는 두려움,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는 두려움.”(175면) 이것이야말로 애나를 포함한 많은 현대인들이 직면한 지점이기도 할 터인데, 연명에 대한 섬뜩하기까지 한 토미의 집착과 그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남매들의 의식 기저에는 과거 비극적인 일을 겪고 세상을 등진 또다른 형제 로니의 죽음이 자리해 있다.
첨단 의료기술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심지어 자신의 뜻이 반영되지 못한 채로 생명이 유지되는 것을 과연 인간의 삶이라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어머니가 먹는 약을 생각해보면, 여섯알을 먹는 편이 열일곱알보다 낫고, 열일곱알이 스물한알보다 나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스물한알이라 해도 여전히 죽음보다는 낫다는 점이었다”(227면)라는 절박한 마음은 어떠한가. 이처럼 막중한 질문에 대해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수많은 걸작들을 우리말로 옮긴 김승욱의 섬세한 번역으로 더욱 빛이 발하기도 한 이 작품은 기후위기, 파편화된 인간관계, 말초적인 자기전시 등 지금 시대에 대한 중대한 문제의식들을 한 가족의 서사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끝내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진중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 앞에 당도한 이 작품을 읽는 모두에게 보편적인 울림을 가져다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비극을 모르는 이 시대의 비극. 읽는 자에게 구원 있으리라.”(정용준 추천사) 한편의 소설은 때로 잊기 힘든 잔상을 남긴다.
토미가 말한다. 그런 것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니 세상이 점점 사라지고 어쩌면 자신도 사라지는 것 같다고. 무당벌레도 사라졌고 딱정벌레 청파리도 사라졌고 한번도 보지 못한 집게벌레도 사라졌고 그들이 어렸을 때 그 번쩍거리는 금속 같은 껍데기를 모았던 아름답고 밝은 색의 풍뎅이도 사라졌고 날아다니는 개미떼도 사라졌고 (...) 넓은 해초 숲도 사라졌고 전복도 사라졌고 왕새우도 사라졌어! 사라졌어! 사라졌어!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그는 자기 몸 안에서 자라나는 질병만큼 고통으로 느꼈다. 점점 자라나서 점점 사라지는 가슴과 몸의 답답함과 가쁜 호흡,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 p.17
애나는 족히 일분 동안 손을 열심히 살펴보았다. 이상한 환상이나 망상이 아니었다. 정말로 약지가 없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엄지와 나머지 세 손가락을 꿈틀꿈틀 움직였다. 손가락이 할 일을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픈 곳도 없었다. 당장 어디가 아프거나 상실감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냥 뭔가가 사라졌을 뿐이었다.
--- p.28
애나는 항상 어머니를 만나러 오기가 싫었다.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에 화가 났다. 하지만 일단 여기에 와서 어머니 옆에 앉아 있으니 왠지 엄청난 안도감이 들었다. 뭔가를 삼킬 때처럼 움직이는 목, 늙은 피부,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 느슨해진 입, 건조하게 갈라져서 가늘게 떨리는 입술을 계속 지켜볼 생각이었다. 사는 것에 때로는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
--- p.78
터조는 이제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노력과 수단을 동원하면 프랜시의 건강도 제자리로 돌아와 프랜시가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마치 어머니와 관련된 모든 것 역시 여기에도 없고 저기에도 없고 스위스 은행 금고에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 p.159~60
모두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시선을 드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 각자 휴대폰만 바라보았다. 휴대폰 신호가 약하다 해도, 신호 막대가 한개만이라도 뜨는 구멍을 하늘에서 찾아낼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마치 저 밖에서 그들이 모두 기다리는 메시지가 이제 곧 전달될 참인 것 같았다.
--- p.278
가끔 밤에, 보름달이 뜬 밤에, 식구들은 바닷가에 모이곤 했다. 남자들은 부서지는 파도 너머 은색과 흰색 물속으로 긴 후릿그물을 던져 해변과 직각으로 질질 끌고 가다가 크게 반원을 그리며 잡아채서 여자들과 아이들이 양동이를 들고 기다리는 해변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로니의 손을 잡고 그 광경을 지켜보며, 항상 그 기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텅 빈 물속에서 마법처럼 나타난 생명. 해변으로 돌아온 그물 속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수많은 먹거리가 우글거렸다. 그 즐거움과 기쁨과 풍요, 바다의 축복이 한번도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 p.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