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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소식과 이에 따른 정치권의 다툼에 언론의 관심이 쏠려 있는 사이, 우크라이나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전황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아군의 거센 공세에 우크라이나군의 주요 방어선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가 즐겨 읽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 식으로 표현하면,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에게 돈바스에서 성(城)을 하나씩 빼앗기며 퇴각하는 중이다.
우크라이나 최전선의 주요 도시를 삼국지의 '성'에 비유한 것은, 2014년 내전 발발 이후 친러 분리주의 반군(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으로 독립했다가 2022년 9월 러시아 연방으로 편입/편집자)과의 전쟁 와중에 도시 주변에 지뢰밭과 대전차 장애물 등을 깔고 고층건물에는 중화기를 배치하는 등 요새화했기 때문이다. 바흐무트 등 소위 그동안 '격전지'로 불린 일부 도시를 러시아군이 점령하는데 큰 손실을 본 이유이기도 하다.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한 바흐무트 도심을 향해 전격하는 러시아군 탱크/텔레그램 영상 캡처
◇돈바스 전선의 전황은
러-우크라군이 격전을 벌이는 돈바스 전선은 크게 우크라이나의 하리코프(하르키우)주(州)로 향하는 루간스크 전선과 드네프르주, 자포로제(자포리자)시(市)로 나아가는 도네츠크 전선으로 나뉜다.
루간스크 전선은, 러시아군이 2022년 2월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와 함께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갔던 지역이다. 루간스크주 자체를 거의 장악한 뒤 하르코프주 공략에 나섰다가 그해 가을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밀려 패퇴했다. 이후 루간스크주 점령지 일부를 우크라이나군에게 내주기는 했지만, 러시아군은 여전히 거의 전 지역을 통제하고 있다. 잠잠하던 이 곳은 러시아군이 지난 5월 하르코프주 공략에 새로 나서면서 뜨거워진 상태다.
러시아군이 총공세에 나선 곳은 도네츠크 전선이다.
알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은 2일 "우크라이나군이 전쟁 발발 이후 가장 강력한 러시아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정 전선에는 지속적으로 지원을 확충해야 한다"고도 말해 현지 상황이 만만치 않음을 인정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따르면 시르스키 총참모장이 지목한 곳은 '쿠라호보' 방어선으로 추정된다. 러시아군은 폭이 최대 65㎞에 이를 만큼 공격 범위를 넓혀 쿠라호보를 포위해가고 있다고 뉴스위크는 전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3일 "러시아군은 동쪽과 북동쪽, 북서쪽, 남서쪽 등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쿠라호보를 공격하고 있다"며 "북서쪽과 남서쪽에서 러시아군이 방어망을 뚫으면, 쿠라호보는 소위 '가마솥'(포위망) 안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함락된 것으로 알려진 (쿠라호보 북부의) 셀리보도에서 남쪽의 벨리카야 노보셀카에 이르는 거대한 전선(최대 폭 65㎞)에서 파도가 몰려가듯 러시아군이 쿠라호보로 향하는 모양새다.
러시아군은 조만간 자포로제와 도네츠크시를 잇는 H15 고속도로에 접근해 이 지역의 주요 물류 루트를 차단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르면 연말까지 쿠라호보를 점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도네츠크주의 주도 도네츠크시(맨 오른쪽)에서 서쪽으로 일렬로 선 듯한 최전선 주요 도시들. 위로부터 포크로프스크, 셀리도보(표식), 쿠라호보, 브글레다르/얀덱스 지도 캡처
지도에서 보듯이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주 방어선을 이루는 주요 도시 중 우글레다르는 지난 10월 초, 셀리도보는 최근 러시아군에 함락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러시아군의 공세는 지난 2월 도네츠크주의 주도인 도네츠크시 인근의 아브데예프카(아이디우카)를 점령한 뒤 급속도로 가팔라졌다. 아브데에프카 점령군은 오체레티노를 거쳐 포크로프스크를 향하고 있다.
포크로프스크는 도네츠크시를 겨냥한 우크라이나판 '철의 삼각지대' (아브데예프카, 포크로프스크, 차소프 야르) 중에서 최서단 요새다. 그러나 철의 삼각지대 중 아브데예프카는 이미 러시아군의 수중에 떨어졌고, 차소프 야르도 함락 위기에 처해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포크로프스크와 차소프 야르가 도네츠크주를 완전 점령하려는 모스크바에게는 마지막 난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차소프 야르로 진격하는 러시아군은 최고난도의 지형적 장애물인 북(北)도네츠크-돈바스 운하를 이미 건넌 것으로 전해졌다. 친우크라 텔레그램 채널 '딥스테이트'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운하를 앞에 두고 항전해온 우크라이나군의 방어막은 지난달(10월) 중순 무너졌다. 뒤이어 러시아군이 차소프 야르의 도심 지역으로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일간지 빌트의 군사전문가 율리안 뢰프케는 소셜 미디어 '엑스'(X, 옛 트위트)를 통해 러시아군이 5개월 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운하 건너편 2.5㎞ 지점에 있는 건물에 삼색기를 꽂았다고 알렸다.
점령지 건물 위에 꽂아놓은 러시아 국기/영상 캡처
맨왼쪽 위에 드녜프르시, 아래쪽에 자포로제시가 위치해 있다. 표식은 셀리도보로, 그 아래 쿠라호보, 우글레다르가 보인다. 셀리보도와 쿠라호보, 우글레다르를 장악한 러시아군은 드넓은 초원지대를 거쳐 드녜프르와 자포로제로 곧장 달려갈 수 있다/얀덱스 지도 캡처
지도에서 보듯이 셀리보도에 이어 쿠라호보가 무너지면 러시아군은 서쪽으로 드네프르와 자포로제로 향하는 출구가 활짝 열린다. 안타깝게도 지난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군이 구축한 요새는 쿠라호보 서쪽 지역에는 거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우글레다르에 이어 셀리도보까지 무너뜨린 러시아군은 앞으로 쿠라호보를 넘어 광활한 초원지대를 통해 서쪽으로 치닫을 수 있다.
쿠퍈스크의 위치(표식). 쿠퍈스크를 거쳐 왼쪽의 하르코프(하르키우)로 진격할 수 있다. 맨 아래 오른쪽이 루간스크주 주도인 루간스크시/얀덱스 지도 캡처
러시아군은 루간스크 전선에서도 2022년 후퇴했던 쿠퍈스크를 향해 북진중이다. 암호명(우리 식으로는 ID) 스카우트는 현지에서 "우리(우크라이나)는 쿠판스크 방향으로도 상당히 어렵다"고 했고, 암호명 아이다르는 "적군(러시아군)은 전차(탱크)부대와 기계화 부대를 동원해 공격해오고 있으며, 최종 목표는 쿠퍈스크 진입"이라고 밝혔다. 쿠퍈스크는 북쪽으로는 강으로 막혀 있어, 러시아군은 남쪽과 동쪽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공격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안팎의 군사 전문가들은 "이제는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새로운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유지할 수 있을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위에서 아래까지 지치고 힘든 우크라이나
돈바스 방어진의 붕괴 등과 겹쳐 젤렌스키 우크라아나 대통령은 지치고 잔뜩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고 미국 뉴욕 타임스(NYT)가 2일 보도했다. NYT는 "최근 키예프(키이우)를 방문한 미국 관리들이 그의 달라진 모습에 주목했다"며 "그는 우크라이나군의 사기가 떨어지고, 서방의 지원이 중단될까 두려워하고 있으며, 미국 대선의 불확실성으로 큰 압박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키고 힘든 모습을 보였다는 미 NYT 보도/캡처
스트라나.ua도 NYT 기사를 인용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나토(NATO)와의 합의에 따라 전투기를 제공하기로 한 폴란드가 이를 거부한 데 대해 비난했다"고 밝혔다. 또 프랑스 언론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서방 파트너와의 대화에서 인내심을 잃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 워싱턴 포스트(WP)는 지난(10월) 30일 "우크라이나군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내년에는 러시아가 원하는 '승리 시나리오'로 흘러갈 수 있다"고 전망하는 칼럼을 실었다. 칼럼은 "키예프 군대가 동부 전선에서 방어에 필사적이지만, 계속 땅을 빼앗기고 있으며, 승리를 담보할 서방의 지지도 약해지고 있다"며 "영토를 양보하고 국가 안보를 얻는 방식(한국전 종전 방식)으로 러시아와 타협할 가능성이 점점 더 현실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군의 승기를 잡은 요인은?
승기를 잡은 러시아군이 최근 더욱 기세를 올리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우크라이나군의 병력 부족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10월) 30일 "우리는 주요 전선에서 병력 부족으로 후퇴하고 있다"며 “특정 전선에서 러시아군과 비교해 병력 규모가 1대8이라면 사수하느냐, 후퇴하는냐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데, 이때 병사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후퇴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도 최근 함락된 셀리도보의 경우, 이전의 격전지 바흐무트와는 같이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을 당하기도 전에 우크라이나군이 스스로 물러난 것으로 본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후퇴했다'는 주장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또 우크라이나군 각 부대의 전투 준비가 부족하고, 새로 동원된 병사들의 낮은 사기도 주요 전선의 방어망이 허물어지는 원인이라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그러나 현지 군사 전문가인 콘스탄틴 마쇼베츠는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러시아의 최근 승리는 전략적 패러다임의 전환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러시아 지휘부가 전장에서의 강점을 파악한 뒤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전략과 전술을 도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주목한 러시아의 강점은 역시 군사력의 우위와 재정·경제·산업적인 잠재력이다. 이를 최대한 살리기 위한 방향으로 러시아는 전쟁 수행 전략을 바꿨다는 것인데, 전쟁 초기에 우크라이나 영토로 깊숙이 진격했다가 실패하고 물러나는 식의 작전을 포기하고, 긴 전선을 따라 지속적이고 느린 공격으로 유리한 공격 지점을 확보하는 전략이 대표적이다. 이는 병력과 무기 부문에서 우위에 있는 군대만 가능하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2022년 가을과 2023년 부분적으로 성공했던 분산형 전쟁 방식을 어떤 이유에서인지 포기하고, 옛 소련식의 전투 매뉴얼로 돌아가는 바람에 러시아의 작전에 말려드는 결과를 낳았다고 마쇼베츠는 분석했다. 그가 러-우크라군의 서로 다른 전략과 작전을 어떻게 평가하든, 우크라이나군의 전력은 근본적으로 러시아군에게 밀릴 수 밖에 없다.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우크라이나의 경제적 타격은 어느 정도?
서방과 우크라이나 일각에서 지금이라도 최전선에서 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더 지체하다가는 주요 산업지대인 도네츠크주를 러시아에게 모두 빼앗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돈바스 전선의 붕괴는 곧 우크라이나 철강 산업의 몰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영국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10월) 13일 우크라이나 철강산업의 붕괴가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군에게 포크로프스크를 내줄 경우, 그나마 남아 있는 제철소용 석탄 광산마저 잃게 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옛 체절소에는 포크로프스크에서 나오는 석탄이 반드시 필요한데, 포크로프스크 함락→석탄 채굴 중단→제철소 조업 중단→철강산업 붕괴라는 길을 가게 될 게 뻔하다.
철강 제품은 전쟁전 우크라이나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2021년 철강 생산 부문에서 세계 14위를 차지했던 우크라이나는 이미 2023년 24위로 떨어진 상태다. 포크로프스크마저 러시아에게 빼앗길 경우, 우크라이나의 철강 산업 붕괴는 곧바로 코 앞에 닥칠 것이라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진단이다.
미국의 외교전문 잡지 포린 폴리스(Foreign Policy)도 러시아군의 포크로프스크 점령이 우크라이나 철강 산업에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했고, 철강기업인 우크르멘탈루르그프롬의 알렉산드르 칼렌코프 회장은 지난 9월 포크로프스크가 함락되면 제철용 석탄의 생산 부족으로 철강 생산량이 반토막 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부분의 돈바스 제철용 석탄 탄광은 이미 러시아가 점령한 상태다.
우크라이나의 주요 산업지대를 하나씩 점령해가고 있는 러시아는 '전시경제'의 과열 조짐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수년간 더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10월) 27일 예측했다.
WP는 러시아산 원유의 가격 상한제 등 서방의 가혹한 대러 제재 실패 등으로 러시아는 향후 몇 년 정도는 더 전비를 감당할 경제적 여력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경제의 과열에도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 능력을 갖고 있다는 미 WP 보도/캡처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는 지난 8월 31일 러시아의 전시 경제는 향후 5~6년간의 전쟁을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르 몽드는 "군수 산업에 대한 막대한 투자와 근로자의 임금, 전사자 사망 수당이 전시 경제의 성장 요인"이라며 "죽은 30~35세 남성이 남은 가족들에게 더 많은 수입을 안겨주는 이상한 경제 모델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전쟁터에 간 남성이 전사하면 위로금과 보험금 등 최대 1,100만 루블(약 1억5천만원)이 가족의 통장에 꼽힌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르몽드는 또 "러시아 경제 성장률은 대부분의 주요 선진국들보다 높다"며 러시아의 독립 여론조사기관 레베다의 여론 조사를 인용, "지난 30년 동안 러시아 경제에 대한 국민 정서가 이처럼 좋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러시아인들은 늘어난 소득으로 자동차나 소파와 같은 가구를 새로 구매하고, 코냑이나 샴페인의 수입도 코로나 사태 이전(2019년)보다도 각각 18%, 80% 늘어났다고 했다.
물론 이같은 '전시 경제'가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속도로 보면 러시아의 재정은 약 5년 안에 고갈될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은 그 전에 전쟁에서 승리해야 할 것"이라고 썼다.
우크라이나는 어떨까?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NYT는 1일 우크라이나는 6~12개월 동안 러시아와 싸울 수 있는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이후에는 심각한 부족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NYT는 "미군 당국과 정보기관들은 러시아군의 거센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전선이 더 이상 교착 상태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전반적으로 사기가 떨어지고 있으며, 동부에서 영토를 빼앗기고, 러시아 쿠르스크 전투에서는 부분적으로 후퇴했다고 이 신문은 밝혔다.
전쟁에서 사망한 우크라이나 군인 수는 약 5만7,000명으로 러시아군의 손실이 비하면 절반에 불과하지만, 러시아와의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게 NYT의 분석이다.
우크라이나의 NGO인 '빅토리 드론'(Victory Drones)의 마리아 벨린스카야 대표가 2일 이제는 여성 동원도 필요하다고 주장한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항복할 수 밖에 없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나아가 아이들도 5~6학년(초중고 과정이 11학년제)부터 드론을 조종하고 프로그래밍하는 법을 배워 미래 전투력에 대비해야 한다고도 했다. 전쟁이 길어질 수록 더욱 슬픈 우크라이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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