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18]아홉 살 손자와의 일상
은행에 다니는 아들이 바레인지점 1년 파견근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제 식구들(며느리와 손자)과 같이 갔기에 1년 동안 만나지 못한 손자가 보고 싶어 울적한 적이 많았다. 물론 세상이 좋아서 영상통화를 가끔 했지만, 스킨십을 할 수 없는 건 차라리 고통인 셈이었다. 공항 도착출구에서 나와 제 할미를 보고 달려나오는 아홉 살 꼬맹이를 보자 순간 울컥했다. 아아-, 그놈의 핏줄이 무엇인지?
아무튼, 그 다음날부터 나의 ‘감옥살이’가 시작됐다. 그날부터 출퇴근하는 제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는 오후에 초등생 레슨을 하는 바람에 아이를 혼자 놓아둘 수는 없는 일. 시골의 일이 무슨 대수랴. 며칠은 오랜만에 조손祖孫끼리 있으니 좋을 수밖에. 하지만 시도때도 없이 심심해하는 아이를 어떻게 케어할 수 있으랴. 제 에미가 내준 숙제(초교 2년 국어-영어-수학)조차 안하려고 몽니를 부리고, 아이패드로 게임만 하려고 갖은 떼를 쓰는데 속수무책. 얼리고 달래는 것도 한계. 그저 제 부모와 할머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게 답답한 일과.
그나마 주말(금-토-일)엔 내가 없어도 되니, 그 사이 고향을 다녀오는 일상이 언제까지 될지도 기약이 없다. 2학기 시작되어 학교를 가고 학원을 다니면 ‘졸업’할지도 미지수이지만, 문제는 무조건 손자 돌봄이 우리집 ‘영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 불과 1년인데도 국제학교에서 영어수업을 하다보니, 영어가 제법 몸에 배인 게 신통방통하다. 우리말보다 영어로 말하는 게 더 편하고 쉽다는 게 아닌가. 할래비는 영어를 꼬박 10년(중고 6년, 영문과 4년)을 배웠는데도 영어로 소통을 못하는 판에 어찌 신기하지 않겠는가. 영어로 운을 떼어보았다. “How tall are you?" 했더니 "1 미러 투엔니 썸씽. 익제트리 아이 돈 노(one meter twenty something. exactly I don't know"라고 한다. 하래비 기죽이는 것도 여러 가지라며 웃었다.
그런데, 금세 저렇게 몸에 배인 영어도 초등학교 다니며 영어공부를 안하면 2년내 까마득히 잊어먹는다고 한다. 이왕 이렇게 된 것(고생해 배웠으니) ‘국제학교’에 다니는 것도 방법이겠으나, 1년 학비가 3천만원이고, 등하교 교통비도 1년에 300만원이라 한다. 누가 봐도 이건 지나친 일. 오후 영어학원만 좋은 곳 다니면 어지간히 유지될 거라는 판단으로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이 녀석이 아예 할아버지의 발음은 영 아니라면서 엄지손가락을 좌우로 흔든다. 하하.
친구들도 없다며 완전히 ‘집돌이’를 자처한 녀석은 도무지 밖에 나가기를 싫어하니 “대략 난감”. 어제 오후는 악착같이 꼬셔 광화문 교보문고 구경을 시켜줬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새겨진 교보문고앞 돌표지석에서 기념사진도 한창 찰칵. 모처럼 지하철를 이용하니, 어디서 어떻게 표를 사는지도 몰라 한참을 헤매었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연신 물어보는데 속시원히 대답을 못할 것도 많이 있다. 그래도 정말 바라만 보고 있어도 예쁜 게 손자인 것은 틀림없는 ‘진리’이다. 그러나, 2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이렇게 오후의 일상이 이럴진대, 걱정이 먼저 앞선다.
물론 주말에는 시골에 가 밭작물도 조금은 돌봐야 한다. 옥수수도 따야 하고, 논둑에 풀을 깎고 풀약(제초제)도 해야 한다. 처서가 오기 전에는 가족묘지 벌초도 해야 하고, 언제까지 고향집을 비워둘 수도 없는 일. ‘인기척’(사람 사는 기운)이 그렇게 중요한지, 사람이 살지 않으면 1주일도 안돼 처마 밑을 비롯해 거미들의 세상이 된다. 진퇴양난, 이것도 시간이 결국 해결할 문제일 터. 농한기인 겨울에는 나도 다른 친구들과 같이 ‘손자 사랑’에 나의 일상을 뺏길 것 같다. 손자는 집에 오면 반갑지만, 가면 더 반갑다는 말도 있다던데, 그 말이 곧 실감날 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이의 부모라면, 저희만큼은 아니겠지만, 핏줄인 까닭에 저희만큼 아이를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믿고 시골생활을 달포정도 허락할 것 같지만, 그건 우리의 꿈이지 어림도 없는 허황된 생각이리라. 요즘 세상에 어느 부모가 제 아이를 조부모 손에 맡겨 아무리 농촌 자연의 삶을 겪어보게 하겠는가. 학원도 보내야 하고, 잘 먹어야 하는데, 홀하래비 손에 맡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그저 가까이 살면서 자주 만나 시간을 갖게 하는 것만도 감지덕지, 고마울 일일 터.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도 핸드폰은 필수품, 디지털세상에 푹 빠져 사는 ‘신인류’가 아이던가.
그러거나 어쩌거나 나는 완벽한 ‘손자 바라기’‘손자바보’인 것을. 나를 닮아서일까? 그래도 책읽기를 좋아하니 좋은 일이다. 제 부모는 생각지도 않지만 우리 아이가 바둑학원을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6개월 후쯤에 나와 ‘수담’을 나눈다면 금상첨화일텐데. 흐흐. 네 이름의 뜻을 영어로 설명해줄 줄 아는 나의 (아직은) 하나 밖에 없는 윤슬아, 사랑한다. *윤슬: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강이나 호수의 잔물결. 용례: 윤슬이 참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