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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혼의 미학( Die hohe Kunst des Alterwerdens) : 안셀름 그륀
훌륭하게 나이 드는 일은 고도의 기술이다.
나이 드는 기술에 대한 기본 원칙이 몇 가지 있다.
‘받아들이기’, ‘놓아 버리기’, ‘자신을 넘어서기’다.
나이 드는 기술을 배우면서 가을과 겨울을 흉내 내면 어떨까?
아름답고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가을과 사랑의 온기로 가득 찬 평온하고 고요한 겨울이
되도록 노년의 삶을 가꾸는 것이다.
가을과 겨울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 혹독함도 받아들이는 것,
많은 일이 우리를 괴롭힌다 해도
삶의 모든 시간을 변화시키고 따뜻하게 해줄 사랑을 발견하는 것도 나이드는 기술이다.
노년의 의미
자신의 삶을 의식하며 산 사람, 삶의 그릇을 넘치도록 채운 사람만이 훌륭하게 늙을 수 있다.
젊어서 치열하게 살지 않은 사람은 늙어서도 참 삶을 살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일과 운명 때문에 우리 인생길은 늘 어긋나곤 한다.
그러면 고통스럽다.
그러나 바로 그렇게 구원이 일어난다.
바로 그렇게 우리는 구원되고 온전해진다.
지혜롭고 평화로워져서 다른 이들에게 축복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혜로운(sapiens)을 뜻하는 라틴어는 ’맛을 아는‘
그리하여 자기가 만난 사람에게 좋은 맛을 남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자신과 화합하여 산다.
이런 사람에게서는 평화와 자유, 평정심과 줄거움의 ‘맛’이 흘러나온다.
자신을 받아들이기
자신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사람만이
자신과 자기 삶의 맛을 발견할 수 있다.
‘찬양은 귀로 들을 수 있는 건강이다’ - 미국 작가 싱클레어 루이스
찬양은 자신과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가장 훌륭한 방법임이 분명하다.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
보고 듣고 냄새 맡으며 사람과 사물을 다정한 손길로
어루만질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다.
그에게는 하느님이 당신의 창조 세계에서 행하시는 기적들,
마음을 사로잡는 음악이나 훌륭한 그림 같은 인류문화의 기적들을 보는 눈이 있다.
그는 늙어 간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
앞으로 닥칠 일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는 기도한다. ‘늙어 백발이 될 때까지, 하느님 저를 버리지 마소서’ (시편 71,18)
미래가 있는 사람은 젊다.
일흔 살, 여든 살, 아흔 살이라고 해도 영원을 앞에 둔 사람은 젊다.
황혼의 미학, 안셀름 그륀/ 놓아 버리기, 풍성한 열매, 함께 늙어 가기
제3장 놓아 버리기
모든 꽃잎은 열매가 되려 하고
모든 아침은 저녁이 되려 한다.
이 땅에 영원한 것은 없다,
변화와 소멸만 있을 뿐.
지극히 아름다운 여름도
가을과 시듦을 맛보려 한다.
나뭇잎아,
바람이 너를 데려가려 하거든
가만있거라.
네 놀이나 하며 막지 말아라.
가만히 두어라.
바람이 너를 꺾으면
바람에 실려 집으로 날아가리라.
헤르만 헤세
젊었을 때는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늙어서는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노인위에는 노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그 무엇이 서 있기 때문이다. .... 젊은이의 과제, 동경, 의무는 무엇이 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성숙한 사람의 과제는 자기를 내어 주는 일 또는 독일 신비주의자들이 표현했듯이 "무엇이 되기를 그만두는 일"이다. .... 63쪽
1. 재산에 집착하지 않기
누가 부자가 된다 하여도, 제집의 영광을 드높인다 하여도 불안해하지 마라. 죽을 때 그 모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으며, 그의 영광도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 .... 65쪽
2. 건강에 매달리지 않기
3. 관계에 느긋해지기
4. 성에서 자유로워지기
5. 권력 내려놓기
6. 자아 버리기
노년에는 자아를 버려야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가운데 분명 가장 여러운 과제다, 여러 종교의 현자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자아보다 더 큰 것이 내 안에서 빛을 발하려면 자아가 먼저 죽어야 한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자아를 버리라고 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
인간이여,
그대가 아직도
그 무엇이라면,
무엇을 알고 사랑하고
소유하고 있다면
그대는 아직 그대가 진 짐을
다 내려놓지 못한 것이라네.
앙겔루스실레지우스 ...
제4장 풍성한 열매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 하나는 의로움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집에 심겨지는 일이다.
사람들이 왜 늙음을 한탄하고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군, 나이가 드니까 삶에서 여러모로 한계가 생기는데, 그게 아주 편하고 마음을 느긋하고 평화롭게 해 준다네, 타고난 낙관주의자인 나는 치열하게 살았던 과거로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노년도 가장 좋은 시기라고 여기고 있네, 하인리히 호프만 "더벅머리 페터".... 86쪽
인간에게 열정과 일 .... 과제가 없는 상황처럼 견디기 힘든 것은 없다. 인간은 그런 상황에 처하면 자기가 얼마나 무가치하고, 고독하고, 무기력하고, 의존적이고, 무능하고 공허한 존재인지 느낀다. 그런 느낌이 들자마자 영혼 밑바닥에서 지루함, 슬픔, 불만, 절망이 솟아오른다. .... 88쪽
제5장 함께 늙어 가기
많은 부부 사이에는 권태라는 음울한 유령이 숨어 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이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너무도 분명해졌다. 권태는 그보다 더 음울한 말다툼이라는 유령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오래전에 덮어 둔 일들이 되살아 난다. 특히 아내는 지난 일에 대해 비난을 퍼붓는다. "당신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돌봐 줄 생각은 안 하고 밖으로만 다녔어요." "당신이 절약했더라면 지금 형편이 더 나을 거예요." ... 97쪽
고령의 노인들은 버림받았다고 느낀다. 병과 죽음이 다른 사람들을 앗아 갔으며 자기는 쓸모없는 사람이고 진작에 죽었어야 했다고 느낀다. 이는 노인들에게 주어진 최후의 시련이며 어떤 이들에게는 살면서 견뎌야 할 가장 혹독한 시련인 것 같다. 이럴 때 핵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가족의 끈이 단단하게 노인들을 묶어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리라. ... 106쪽
제 6장 노년의 덕
(평정, 인내, 온유, 자유, 감사, 사랑)
평정
작가 만프레드 하우스만은 평정을 성숙함의 덕이라 했다.
정은 삶에 지친 사람이 고립되어 근근이 살아가는 자세를 뜻하지 않는다.
...냉정한 태연함, 무관심한 태도도 아니다.
인내
서로 존중하기를 먼저 하고, 육체나 품행 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어야 한다.
온유
온유의 신비는 루카 복음이 전하는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분명해진다.
초대받은 사람들이 아무도 오지 않는다.
집주인은 종에게 오기로 한 손님들 대신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눈먼 이들, 다리 저는 이들을 데려오라고 한다.
그런데도 아직 자리가 남아 있자 주인이 종에게 이른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루카 14,23)
자유
자유는 삶을 여유롭게 바라보게 하며,
덜 공격적이면서 자발적으로 대하게 한다.
이러한 조건들 아래서만 비로소 보이는 관점을 볼 수 있게 한다.
감사
감사의 덕을 배워야만 훌륭하게 나이 들 수 있다.
우리가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법을 새롭게 배워야 한다.
감사가 행복감을 준다는 사실을 다시 경험해야 한다.
감사는 우리를 넘어서는 관계 속으로 우리를 들어보낸다.
감사는 심정을 따뜻하게 하고 '좋은' 느낌을 향해 마음을 열어 준다.
사랑
노년에 우리가 배워야 할 덕은 새롭게 사랑할 능력이다.
노년에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자신과 자신의 행복만 생각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새롭게 사랑할 능력을 키울 기회도 있다.
자신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너무 중요하게 여길 필요가 없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사랑할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정신 분석학적으로 표현하면
나르시시즘, 자기애, 아집을 버림으로써 이 능력을 키 울 수 있다.
제7장 불안과 우울 다루기
노인성 우울증은 지금까지의 삶을 결정짓던 모든 것을 놓아 버리라고 요구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신앙, 낙천성, 능력, 자유, 창조력 등으로 우리의 본질을 규정해 왔다.
우울증이 이 모든 것을 앗아 가는 것을 허락하는 일은 영적 도전이다.
우리가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늙어서도 계속 갖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우울증은 우리가 고수하던 옛 자아상을 떠나 우리를 새롭게 규정하고
인생의 중심을 어디다 둘 것인지 새롭게 숙고하라고 촉구한다.
우리 삶을 결정짓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을 삶의 기초로 삼고 살 것인가?
나이 들면서 겪어야 했던 상실에 대한 슬픔을 억압하는 사람이 많다.
우울증으로 이 억압된 슬픔이 드러나곤 한다.
우울증은 우리가 늙으면서 잃었던
모든 것에 대해 슬퍼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든다.
이 슬픔을 온전히 치러 내고 더 나아가면 영혼의 깊은 층,
즉 영혼의 밑바닥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면 우울증은 삶의 새로운 원천으로,
새로운 자아상과 변화된 하느님상으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우울증으로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 자체도 영적 도전이다.
첫째,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면 겸허한 마음이 필요하다.
둘째, 우울증은 내면의 가장 깊은 곳으로,
하느님이 거하시는 내면의 고요한 공간으로 들어가라고 요구한다.
거기에는 우울증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내가 우울증인 것은 아니다.
나의 내면에는 흠 없고 온전한 본질이 있다.
이 본질을 하느님이 거하시는 내 안의 고요한 공간에서 발견한다.
늙으면 비판적으로 자기를 성찰하겠다는 의자가 젊을 때보다 커진다.
노인은 생각이 깊어지고 내향성이 강해진다.
따라서 문제가 생길 때 이를 한 단계 높은 곳에서
바라보겠다는 마음가짐도 강해진다.
노년 학자들은 노년기 특유의 일곱까지 불안을 언급한다.
정신을 잃게 될 것 같은 불안,
삶에 대한 일반적인 불안,
생존에 대한 불안,
의지할 곳이 없음에 대한 불안,
병에 대한 불안,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삶의 변화에 대한 불안,
삶의 변화에 따라 자기에게 주어질 새로운 발전 과제에 대한 불안이다.
제8장 침묵의 길
잘 늙어 가려면 고요해질 수 있어야 한다.
고요는 과거와 현재를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신비 앞에서 조용해지는 얼이기도 하다.
응시, 관조, 관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습관이 되고 훈련이 된다.
관조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는 부지불식간에 자신에게 스며든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우리도 수십 년의 세월을 소원과 꿈,
열망과 격정에 쫓겨 허둥지둥 달려왔다.
조급하게 안달하며 긴장과 기대에 가득 찬 마음으로,
성공과 실패에 흥분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자기 삶의 그림책을 흝어보면서,
젊은 날의 그 분망한 쫓김에서 벗어나
'관조의 삶'에 다다른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지 깨달으며 놀라워한다.
고독은 제게 삶의 가치를 주는 치유의 샘물입니다.
말하는 건 제게 고통이 되곤 합니다.
많은 말을 하고 나면 그 말들의 무가치함에서 회복하기 위해 며칠 동안 침목 해야 합니다.
저는 이미 길을 떠났으므로 어쩔 수 없을 경우에만 뒤돌아 봅니다.
길을 떠나는 것은 정말 큰 모험입니다.
그러나 이 모험에 대해 시시콜콜 떠벌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9장 자신을 넘어서기
초월에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느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다.
자기를 잊고 무한하신 창조주를 향해 자신을 열며,
그분에 의해, 그분 안에서 지탱되고 있음을 느끼는 일이다.
나이 든 다는 것은 결국 영적 여정이다.
노인들은 어린 시절 하느님을 향해 느꼈던 신뢰를 새롭게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
이렇게 노년과 어린 시절이 동그라미로 연결된다.
그리고 노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성취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태 18,3).
노년에는 산상 설교의 참행복에 관한 말씀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는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3)
제10장 죽는 연습
노인이 해야 할 마지막 영적 도전은 죽는 연습니다.
죽음은 늘 삶 속에 있다.
삶이 지연되고 있는 죽음,
행하는 모든 것에 내재하는 죽음,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삶의 재화의 침몰이다.
라너는 노인에게 요구되는 죽는 연습이 십자가를 받아들임으로써 실현된다고 본다.
노년의 영성에서 핵심은 "마지막으로 요구되는 십자가 사랑을 연습하는 일이다.
삶의 죽음의 나락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십자가 사랑을 연습할 것이냐라는 물음은
분명 제기되며 우리는 이를 연습해야 한다.".
노쇠 현상과 삶에 죽음이 현존한다는 사실에 맞서 기를 쓰고 저항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죽는 연습을 할 수도 있다.
그분의 십자가에 나는 내가 늙어 간다는 사실,
점점 커지는 고독, 또래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잘 있게나, 세상이여
헤르만 헤세
세상은 부서지고 말았네,
한때는 우리가 이 세상을 몹시도 사랑했었지,
이제 죽음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안겨 주지 않네,
세상을 비난해선 안 되지,
너무도 눈부시고 분방하지 않은가.
태고의 마력이 아직도
세상의 형상 주위에 나부끼고 있네,
우리는 감사하며
세상의 크나큰 유회에서 떠나려고 하네,
세상은 기쁨과 고통을 주었고
많은 사랑도 주었네,
잘 있게나, 세상이여
화장을 고쳐 젊고 반반한 얼굴로 만들어 보시게,
그대의 행복과 비탄에
우리는 이제 물렸네..
잘 죽는 길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을 위해 죽을 때 열린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하느님 안으로 들어감을 주저하지 않으면
우리 삶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열매 맺게 된다.
예수님은 스승을 잃는다는 사실에 몹시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위로하며 말씀하신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요한 16,7)
맺으며
노년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으며 나름의 도전이 있다.
늙어 가면서 내게는 무엇보다도 영적 과제가 주어졌다.
받아들이고 놓아 버리기에 대해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막상 구체적으로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과제를
놓아 버려야 할 상황이 되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다.
놓는 일을 방해하는 온갖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제까지 내가 해 온 일을 다른 사람들이 정말 잘할 수 있을지 의무스럽고
내가 죽고 나면 내 영성이 방향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이 모든 의문과 염려는 물론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런 생각들은 내가 이룩해 온 모든 것을 놓아 버릴 수 없게 하며,
사람들이 내 의견을 묻지 않는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ㄱ데 한다.
나이 드는 기술의 여러 단계를 연습하면 살아 있는 동안
그리고 죽어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한 축복이 될 것이다.
성공한 노년에 대해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죽을 때 사람들이 "그분은 우리를 위한 축복이었고
또 여전히 축복이다."라고 말할 것임을 굳게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