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단짠’ 음식은 인기였다
달콤한 맛에 대한 욕구만큼 절실한 것은 없다. 설탕을 보기 힘들었던 어린 시절, 여린 소나무 가지의 속살은 단맛에 대한 욕구를 해소해 주는 창고였다. 치아로 한참 씹으면 단맛이 조금씩 배어 나왔다. 조선의 장수왕 영조도 재위 47년, 송절주(松節酒·소나무 가지를 넣어 빚은 약주)에 대해 말하며 “소나무의 속살 껍질은 달콤하여 맛있다”고 공감할 정도다.
임금의 밥상에 올려진 음식은 단순히 맛있는 먹을거리가 아니었다. 자신을 수양하는 도구 구실을 했다. 조선 임금의 밥상, 즉 수라상에는 자의식이나 편견이 없는 우주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반찬 12가지가 올라가 있는 ‘12첩 반상 차림’은 1년, 12개월 우주의 시간을 뜻한다. 여기에 밥 국 등 기본 음식 7가지가 더해진다. 태양이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순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임금은 수라상의 음식을 통해 우주의 시간을 먹는 것이다. 반찬도 오행의 원리를 따라 부족한 것을 채워 넣는다. 5가지 색깔과 5가지 맛으로 구성됐는데, 맛이 모자라면 양념으로 보충하고 색깔이 모자라면 고명으로 보충한다. 양념과 고명은 입맛을 돋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주의 시간을 밥상 위에 펼치기 위한 도구이다. 수라상 양념장에는 신맛의 초장, 매운맛의 겨자장, 단맛의 꿀, 짠맛과 쓴맛의 소금, 매운맛과 짠맛을 내는 고초장(苦椒醬·고추장의 옛 이름)이 있다. 고명으로는 푸른색의 미나리, 쑥, 승검초, 붉은색의 대추, 고추, 오미자, 노란색의 달걀지단, 치자, 잣, 검은색의 표고버섯, 흑임자, 김 등이 있고 흰색의 달걀 흰자지단이 있다.
현대 영양학적 관점에서 보면 무의미하기까지 한 수라상의 양념과 고명은 자연의 한 부분인 인간이 자연의 시간과 공간에 순응함으로써 건강하고 오래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한의학은 개인의 기호나 단맛, 짠맛, 매운맛에 기대는 식사법은 대부분 부정한다. 임금의 수라상은 말할 것도 없다.
우선 단맛을 보자. 단맛이 들어있는 음식을 먹은 후 30분 뒤에 혈당 체크를 하면 확실히 당 수치가 높게 나온다. 가장 빨리 흡수되어 혈액 속으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이다. 단맛은 입속에 있을 때는 식욕을 당기게 하지만 혈액 속의 포도당으로 흡수되면 식욕을 억제한다. 포도당이 줄면 식욕이 증진하고 늘어나면 식욕은 감퇴된다. 식후에 달콤한 디저트로 식사를 끝내는 것도 뇌에 ‘이제 그만’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과식을 방지하는 합리적 방법이라 볼 수 있다.
반면, 짠맛은 식욕을 돋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류성룡(1542∼1607)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가져오라는 말에 이여송의 손에 소금을 쥐여줬다는 일화는 맛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단짠’맛을 동시에 즐기는 행위는 교통신호로 말하자면 건너가라는 청신호와 멈추라는 적신호가 동시에 켜진 셈이다. 신호에 따라 행동하려는 뇌신경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 한의학적 생각이 전부라고 할 수 없지만 식의학의 대원칙인 대미담담(大味淡淡)이라는 구절은 양념에 대한 또 하나의 근거를 제시한다. 요리는 연하고 담백한 맛이 진정한 맛이고 건강에 좋다는 뜻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